세이건 & 호킹 : 우주의 대변인 지식인마을 8
강태길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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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나의 태생에 관한 의문.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알고 싶었다. 거창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그에 대한 내 의문은 어느 정도 풀렸다. 우주는 소위 ‘빅뱅’이란 대폭발로 생겼고, 인간은 원시 유기물에서 진화를 거듭한 끝에 현재의 고등생물이 되었다는 ‘진화론’이다.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 전부다. 살면서 그 외에 내가 추가로 알게 된 것은 거의 없다. 생명의 기원은 ‘다윈’에게 물어 보기 시작했으나 우주의 기원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 책을 들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은 있었으나 학창 시절 과학 과목에 대한 트라우마가 발목을 잡곤 했는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과학교양서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어려운 과학이론을 쉽게 설명하다 보면 깊이에 대한 한계를 가지기 쉽다. 이 책 또한 그렇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전부다. 우주에 대한 보다 심오한 지식을 기대 했기에 다소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건 과학 자체에 대한 성찰이다.

 

저자는 이 책에 많은 것을 담으려고 욕심을 부리진 않는다. 우주에 대한 지식 자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갈래로 나누어진 현대 과학이 일반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저자는 칼 세이건 박사와 스티븐 호킹 박사를 연구 업적과 별개로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 선 사람들로 높은 평가를 내린다. 근대 과학혁명이 시작 되면서 과학기술은 세분화, 전문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다른 말로 과학이 전문가들만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업으로 하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기에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린 과학은 ‘그들’ 외의 사람들을 소외시켰고, 일반 대중과 유리된 과학의 발전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지금 우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중국의 공자, 맹자 같은 현인들이라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갈릴레이나 코페르니쿠스가 목숨을 걸고 알고자 했던 지식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뉴턴의 고전역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보어의 양자역학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알람에 눈을 뜨면 전기밥솥이 한 밥에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과 재료로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요리 해 먹고,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며 컴퓨터와 전화기로 일을 하고 퇴근 후 TV를 본 후 잠을 잔다. 아프면 병원에 가 X-Ray, CT, MRI를 찍고, 여행을 갈 땐 비행기, 기차를 탄다.

 

그러나 전기밥솥, 냉장고, TV, 자동차, 컴퓨터의 원리와 내부구조를 알고 있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단지 작동 방법만 알 뿐이다. 이는 중요하지만 흔히 간과하는 문제다.

“원리를 몰라도 운용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예측된 결과를 얻기만 하면 된다.”

결과를 얻기 위해 제작 이유, 원리, 구조를 몰라도 상관없다는 우리들의 생각은 오늘날 과학의 맹신 또는 불신을 일으켰고, 각종 사이비과학과 유사과학이 판을 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중이 과학을 알기 위한 첫 번째 열쇠는 당연히 과학자들이 쥐고 있다. 과학을 알기 위해 수학, 물리학 같은 학문을 공부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들이 손을 내밀어 줘야 한다. 과학자는 어려운 이론을 쉽게 풀어 쓴 대중과학서를 낼 의무가 있고 우리 또한 관심을 가지고 읽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철학이 빠진 첨단과학은 그야말로 인류를 멸망으로 빠트릴 흉기가 될 수 있다. 과학엔 눈이 없다. 양심도 없다. 과학이 제 멋대로 발전하는 것을 제어할 사람은 과학자겠지만, 과학자 역시 과학에 소외된 사람에 불과하다는 걸 과거의 역사에서 발견한다.

 

건설기술로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결국 폭탄으로 전용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폭사시켰다.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야 할 원자력의 가장 큰 업적은 핵무기로의 변신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첨단기술이 전쟁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연구되고 있다. 그 중심엔 뛰어난 과학자 집단이 있으며 그 뒤엔 국가가 있고, 국가를 자본주의가 조종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철학이 부재한 과학에 따스한 인간의 숨결을 넣고자 애를 쓰는 소수의 과학지성들의 노력에 박수를 치며 기꺼이 동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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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 보어 : 확률의 과학 양자역학 지식인마을 5
이현경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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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이과생이 아닌 경우 재미가 없을 것 같음. 이해 불가로 읽다가 접었음. 아무리 쉽게 써도 기본이 안되면 이해에 한계가 있음. 학교 다닐 때는 보기도 싫던 과학이 가방끈 놓은 지 엄청난 세월이 지난 이제서야 왜 관심이 가는지......그렇다고 다시 교과서를 공부할 수도 없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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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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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굴드의 목적

굴드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진화에 대한 사회적 오해를 풀기 위해서다. 그는 당초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진화의 개념이 선의의 오해와 악의의 왜곡으로 잘못 받아들여지거나 변질되어 생물학적 범위뿐 만 아니라 사회학적 이론으로 차용되고 인용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보기에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2. ‘종의 기원에는 진화가 없다.

진화는 원래 사회진화론자로 불리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사용한 용어다. 당초 다윈은 종의 기원초판에는 이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스펜서가 쓴 용어가 대중적으로 많이 통용되었기에 나중에 마지못해 따랐을 뿐이다.

 

스펜서는 진화외에도 적자생존까지 차용하며 생물학 이론 자체보다는 그 이론을 사회개혁에 활용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고 개체들의 생존 경쟁을 통해 생명이 진화하듯이 개인의 경쟁을 통해 사회가 진보한다고 믿었다. 그의 이론은 20세기 초반에 우생학으로 응용되어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지적인 근거가 되기도 한다.

 

라마르크를 비롯한 19세기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진보를 진화의 핵심으로 보았고, 생물학적인 변화를 진보와 동일하게 보았기 때문에 진화(evolution)가 다윈이 말한 <변이를 동반한 상속(혈통), descent with modification)이란 말을 대신하게 된다.

 

3.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인 풀하우스(Full House)의 의미는 포커게임의 제일 좋은 패를 말한다,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설에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명체들이 내놓는 최선의 선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우리를 소중한 요소로 포함하고 있는 전체시스템, 즉 자연 생태계를 말하기도 한다.

 

굴드는 우리가 인간을 다른 생물들과 분리시켜 우월감을 느끼는 전통적인 관념을 버리고 인간을 생명의 거대한 역사 속에 나타난 우연한 존재로서 다른 생물들과 하나로 보는 더 흥미로운 관점을 택해야 함을 제안하고 있다.

 

굴드는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절대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추락시킨 4가지 혁명을 말한다.

첫 번째 혁명으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이 지동설을 주장하며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추방했고,

두 번째 혁명으로 다윈은 인간을 <동물의 후손>으로 격하시켰으며,

세 번째 혁명으로 프로이트는 인간만이 가진 <이성>으로 겨우 위안을 삼고 있던 사람들에게 <무의식>이라는 본능을 선물하였으며,

네 번째 혁명으로 45억년의 지구 역사를 알아냄으로서 지구의 나이가 인간과 비슷하다는 성경의 천지창조설을 단숨에 날려 버린 것이다.

 

지구의 나이를 1로 봤을 때 2.5, 1년으로 본다면 1~2분에 불과한 인류의 짧은 나이가 이 세계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실망이었겠는가?

인류가 이룬 영광과 성취가 아무리 눈부시더라도 인류의 탄생은 한순간 우연히 일어난 우주적 사건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의 씨앗이 다시 뿌려져 생명의 나무가 비슷한 조건에서 자라난다면 다시는 일어자니 않을 사건임을 의미하는 진화론의 발견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며 누렸던 최고의 자부심을 통째로 무너뜨리고 인간의 역사를 다시 쓰도록 만든 혁명이었으며, 인류가 이룩한 어떠한 지식과 학문보다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뒤통수를 야무지게 후려친 이 이론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친 건 아니다. 소수의 현명한 과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신반의했고 그중 천지창조의 후손들은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이 불경스러운 이론을 가만히 앉아서 인정할 수 없었기에 절치부심 일대 반격을 개시한다.

 

그들의 선택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선택은 진화론을 무시하고 성서 그대로 계속 믿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종교라는 초월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에 다윈과 그 추종자들이 내놓는 다양한 과학적 증거들에 의해 쉽게 논박되곤 한다. 애초에 과학과 종교는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한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어리석은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행 했던 창조과학(創造科學)이란 유사 과학의 성행도 한 예라 하겠다. 일부 개신교도와 과학자들이문자 그대로의 성경의 역사를 증명하기 위해 지구의 역사를 불과 6~7천년으로 축소하고, 노아의 홍수를 중요한 진화의 변환점으로 주장하며, 교과서에 창조론을 싣고자 했던 노력들은 사이비과학을 검증할 능력이 없는 호사가들에게 늘 흥미를 안겨주는 소재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진화론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교분리(政敎分離)가 확실한 국가 통치 이념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수 기독교근본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쉽게 공격당할 만큼 일반 대중들에게 깊숙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들 반()진화론자들의 목표는 이론적으로 공격하기 힘든 현명한 과학자 집단이 아니고 일반 대중이다. 진화론을 공격하는 이론의 타당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힘든 일반인의 무지와 정서를 기반으로 왜곡과 선동을 일삼는 저 신권주의자들의 거짓된 과학은 단순히 과학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이 지구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주도권 싸움이자 헤게모니 쟁탈전인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허약한 첫 번째 전략 대신 보다 현실적이고 교묘하며 사회체제 속으로 쉽게 침투하는데 효과적인 변질된 다윈주의라는 신무기를 내세운다.

 

이것은 진화에는 예정된 결과를 향해 진행되는 근본적인 경향 또는 추진력(진보)이 있으며, 그 힘이 생명의 역사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최고의 결과(인간)를 낳았다는 오류를 기반으로 한다. , 생명의 역사를 진보(進步)로 정의하려는 것이다.

 

인류가 지구 시간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존재라는 지질학의 놀랍고 끔찍한 발견을 가능한 한 듣기 좋게 왜곡하는 방법은 진화의 방향을 인간을 향해 예정된 진보라고 해명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종으로서는 짧은 역사만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전의 몇 십억 년이 인류 정신의 진화라는 절정에 이르기 위한 일련의 사건들이었음을 보여준다면 결국 인류의 기원은 이 세상의 시작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 셈이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많은 사람들에게 먹혀들었다. 심지어 역사는 진보다.” 라는 슬로건과 일맥상통하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일차적인 생물학으로서 진화론을 넘어서는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가치부여는 단선적인 시간의 역사를 따라 열등에서 우등으로, 미개에서 발전으로, 없음에서 있음으로 진격하는 오만한 인간의 행보를 옹호하고 합리화시켜주는 중요한 기제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고, 137억년의 우주역사 중 46억년의 지구역사의 마지막 1초에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점령하고 말아 먹은 것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면책권을 부여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우등한 생물이 열등한 생물을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도태시켜버린다는 진화론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가 늘 접하고 친숙한 강자의 논리가 아닌가? 자본주의 경쟁의 논리이기도 하고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법칙이기도 하고 말이다.

 

생물학계나 사회에서 다윈의 이론을 곡해하기까지 어느 정도 다윈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한다.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은 식민지 개척을 위한 세계경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었으니 다윈이나 스펜서의 제국주의 옹호 이론은 중요한 사상적 토대가 되어 주었다. 귀족으로 안락한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다윈은 자신의 진보적 사상과 사회적 요구 사이의 충돌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기에 혁명적 지식인이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실제로 혁명을 주도할 수는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

 

4. 다윈으로 돌아가라

이러한 가치를 전복하기 위해 굴드는 자연의 본성은 결코 경쟁이 아니며 다양성과 선택이라고 말한다. 자연은 결코 일정한 패턴과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불규칙적이고 무작위적이다. 시스템 전체 또는 변이들로 가득 찬 <풀하우스>야말로 가장 적나라한 현실이며 평균이나 최대값들(평균은 추상적이며 최대값은 대표적일 수 없다)은 전체의 움직임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해를 일으키거나 편파적인 견해를 제공한다.

 

더 고등한 생물도 없고 더 열등한 생물도 없으며 차이와 다양이 생태계의 본질이라는 것이니, 키 큰 사람이 우수하고 작은 사람은 열등한 것이 아니고 다만 키가 크거나 작다는 변이만이 존재하며 그것은 요새 유행하는 장애는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르다. 또는 다른 것이 아니고 다양한 것이다와 동의어인 것이다. 생존경쟁에 뒤져 도태될 수밖에 없는 장애를 열등한 것이 아니고 단지 평균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과 신체적으로 다른 차이와 다양성으로 본다는 것은 다윈 정신의 진정한 핵심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인간과 같은 복잡한 생물의 진화를 단지 우연한 일로 결론내리기엔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의식’ ‘이성을 생물학적 진화의 부차적인 산물일 뿐이라는 굴드의 주장이 사실 여부를 떠나서 허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의 읽고 쓰는 능력은 진화의 과정 중 뇌 구조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발생한 팁이라는 것을 반박하기가 힘든 것을.

 

문명의 발달이 꼭 자연 선택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진화의 과정 중 우연한 선물로 얻게 된 대용량의 뇌로 인해 인간은 우월한 문명을 이룩했으나, 지구 생태계의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지구 역사의 대부분인 30억년 이상 존재해온 박테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우스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산소가 없어도, 지하 수십 미터 속에서도, 펄펄 끊는 물에서도 태양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너끈히 생존할 수 있는 그네들의 생명유지장치에 비하면 진화의 정점에 달했다고 자랑해마지 않는 인간의 몸이란 것이 얼마나 취약한가?

 

핵전쟁이 벌어지면 영장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멸종된다고 한다. 그러나 박테리아나 우리가 하등동물로 비웃는 미개한 생물들은 생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진화한 것일까? 단순히 숙주에 기생해서 살기 위해 복잡한 모든 신체기관들을 심플하게 퇴화시켜버린 기생충인가? 몇 종류의 세균에 의해서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인간인가?

 

진정한 지구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가 진보했다고, 모든 생물의 꼭대기에 서있다고 과연 우쭐댈 상황인가?

수백만 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불과 수백 종에 불과한 포유류의 지존자리를 서슴없이 꿰차고 앉아 있은 오만한 인류만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구의 온도가 몇 도만 변해도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취약한 구조의 인간이라면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다. 수십억년동안 성공적으로 살아온 박테리아는 앞으로도 지구 자체가 남아 있는 한 번식에 성공할 것이다.

 

웃기자 말자.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결코 아니다. 장구한 지구의 역사에 거의 찰나라고 할 만큼의 짧은 시간동안 잠시 거쳐 갔다 곧 흔적 없이 사라질 별 볼일 없는 생물 중 한 종에 불과한 것이다. 진보니 적자생존이니 하는 거창한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준이 아닌 것이다.

인간들이여 겸손할 지어다.

 

다윈 혁명은 인류의 오만함이 뿌리째 뽑혀 생명이란 예측 불가능하고 방향이 없다는 진화론의 명백한 의미가 이해될 때, 그리고 다윈적 지질학 연구를 진지하게 고려하여 호모 사피엔스는 거대하고 풍성한 생명의 나무에 엊그제 돋아난 작은 가지에 지나지 않으며, 그 나무가 다시 씨앗으로 뿌려진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숙지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인류는 아직 다윈 혁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의 지푸라기를 놓지 않는 것이다. 진화론의 세계에서 인류의 오만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희망으로 진보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굴드가 던진 의미심장한 다음 말을 되뇌어 보자.

말과 함께 전통적으로 진보의 사다리로 묘사되고 있는 종이 있다. 그 종 역시 과거엔 지금보다 풍성했던 계통수에서 살아남은 하나의 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종이 무엇인가 알고 싶으면 거울을 들여다보기 바란다. 그리고 현재의 일시적 지배력을 행여나 인류의 근본적인 우월성 또는 미래의 영원한 생존 가능성과 동일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을 충고하고 싶다.”

 

후기 : 워낙 자연과학하고는 담을 쌓아온 관계라 굴드같이 뛰어난 학자가 아주 친절하게 안내한 대중과학서라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감히 진위를 논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기에 어설픈 반박 또한 불가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통 글이 논리적으로 써지지 않는다. 써야할 말을 많은데 이해의 부족으로 빠져 아쉽다. 어렵게 읽은 노력에 비해 이해한 것이 미진하지만 그래도 딴은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두고두고 곱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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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1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진화는 진보가 아니죠. 다윈주의로 되돌아가라는 back to basic에 공감합니다. 근데 왜 사람들은 진화론에 많은 흥미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요즘 진화론 책 읽다보니...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8-16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을 진화의 최상층에 놓고 싶은 거겠지요. 원시미생물에서 가장 고도화된 복잡성을 지닌 고등생물로의 진화가 주는 드라마틱한 과정이 단순히 경이롭기도 하고 과학적으로 논리 전개도 쉽구요.
 
다윈 & 페일리 : 진화론도 진화한다 지식인마을 1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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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 다닐 때 배운 진화론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기독교인들도 말로는 창조론을 믿는다고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일 뿐. 과학으로서 진화론을 무시하지 못한다. 서양식 교육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우리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진화론이 저쪽 동네에서는 아직도 아닌 것 같다. 관념과 믿음이 아닌 생활과 문화로 정착이 돼버린 신의 존재가 너무 크기에 서양인들은 아직도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에서는 아직도 진화론과 창조론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단다. 심지어 보수기독교도인 ‘조시 부시’ 전 미국 대통령까지 창조론을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 보고 진화론과 동등하게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는 무식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도 심정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밀한 기계처럼 한 치의 실수나 오차 없이 돌아가는 이 정교한 세상이 저절로 완성됐다는 말이 오히려 더 엉성하게 들릴 만큼, 자연이 보여 주는 광경은 신비롭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한 쪽 끝자락에서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 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부딪치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것을 보면, 오히려 딱딱하고 복잡하며 허점이 많은 과학이론보다는 창조주 절대자의 섭리를 더 받아들이고 싶으며, 그게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돌덩이 하나가 길가에 떨어져 있다면 우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시계가 떨어져 있다면 그것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화론이 나오기 전 다윈이 좋아했던 ‘페일리’라는 신학자의 말이다. 당시 가장 정밀한 인공물이었던 시계를 자연에 빗대고 창조주를 시계공에 비유하며 창조론으로서 ‘지적설계론’을 말한 것이다. 이 오묘한 자연이 어떻게 저절로 생겼냐는 물음이다.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며, 무작위가 아닌 의도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근대 이전의 우리 문헌에서 인간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 보지 못한 것 같다. ‘어떻게 태어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중시하는 것이 동양의 세계관이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자연과학식의 연구에 몰두하지 않았던 우리는 그래서 서양문명의 지식중 하나로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인다.

 

19C 중반이니 진화론이 태어난 지 150여년이다. 산업혁명이 18C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니 사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비추어보면 생명의 진화에 대한 연구는 한참 늦은 편이다.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진화론이 정확하게 어떤 이론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초기원시세포에서 점차적으로 고등생물로 발달했다는 것만 막연히 알 뿐, 세부적인 것에는 대부분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학교 다닐 때 암기과목으로 인식될 만 큼 외울 것이 많았던 생물은 그 어려운 용어만큼이나 재미가 없는 과목이었다. 생명에 대한 과학이 생각보다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진 건 고등학교 생물을 배운 기억이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될 만큼의 긴 시간이 지난 뒤다.

 

진화론의 최대 의의는 다른 근대 학문과 마찬가지로 신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이 지구를 다스릴 권한을 부여 받은 인간이 단지 수많은 생물보다 조금 더 진화한 존재라는 사실은 과거에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우주의 유일무이한 영적존재에서 원숭이와 사촌이며 심지어 초파리 같은 미물과도 유전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동물의 한 종류로의 추락은 얼마나 모욕적인가?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에 나온 과정부터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현대의 생물학자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이유까지를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냥 진화론에 대해 편안한 마음으로 쭉 한 번 읽어 보고 권장하는 추가도서를 필요에 따라 읽어 보면 좋을 듯하다.

 

아무래도 가끔씩 튀어 나오는 전문용어는 낯설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평생 과학을 피해 다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래도 입안의 보리밥알처럼 헛돌기 일쑤다. 그렇지만 우리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변화과정을 알아야 하는 것은 족보를 보며 조상의 권세를 세는 것보다 더 근원적이며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진짜 조상의 뿌리를 찾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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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 대답 없는 우주에 대답을 던지는 두 지성 간의 대화
최준식.지영해 지음 / 김영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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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내가 이 책을 산 이유

아마 내가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썼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믿고 산 이유는 순전히 지은이의 교수라는 신분 때문이다.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는 종교에 관한 책을 다수 출간한 종교학 권위자로 그 중 몇 권을 읽은 적이 있기에 신뢰할 수 있었고, 지영해 옥스퍼드대 교수는 잘 모르지만 영국 최고 대학의 교수라기에 믿을 수 있었다.

 

멀쩡한 대학 교수 두 명이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애들과 철이 덜 든 어른들이나 관심을 가질 법한 UFO라는 황당하고도 무계한 주제로 의기투합하여 책을 냈다? 흥미가 확 당기지 않은가?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기에 사이비과학으로 치부되며 학계에서는 금기시하는 이런 허접한 주제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젊잖은 교수 신분에 이 무슨 망동이냐? 라는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고 말이다.

 

2. UFO는 존재하는가?

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보고서야 믿는 것, 보지 않고도 믿는 것, 보고도 믿지 않는 것.

봤으니 믿는 것은 당연하다.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은 신과 같이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보고도 믿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UFO가 존재함에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 다고 한다.

 

물론, 그들은 어떠한 결정적인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 UFO우주선의 실체를 보여줄 수도 없고 외계인을 우리 눈앞에 데리고 올 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신 그들은 지금껏 세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UFO사진과 영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90%는 자연 현상 같은 물리적 현상이나 인위적 조작으로 설명되지만 나머지 10%는 분명 우리 눈앞에 잠깐 동안 실재했던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하여 실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 UFO를 검색해보면 금방 알 일이다.

 

두 번째로 그들이 내놓는 증거는 수천 명의 UFO피랍자의 증언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UFO에 납치되어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것이다. 지영해 교수는 오랜 시간동안 그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신이상자도, 사회부적응자도, 사이비종교 신봉자도 아니고 굳이 거짓말로 관심을 받을 이유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에는 서로 짜지 않고는 같을 수 없는 일관성이 있고, 직접 겪지 않고서는 묘사할 수 없는 생생함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 똑 같은 일을 똑 같이 겪은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냥 개인적인 정신이상이나 거짓으로 몰아붙이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다는 것도 분명 이상한 일이라는 것이다. 실재하지만 설명할 수 없다면 안 믿는 것이 맞는 것인가?

 

UFO를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정부의 정치, 사회적 장악력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외계인의 기술력은 우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지구의 물리법칙을 비웃 듯이날아다니는 UFO의 비행기록을 보면 분명 외계인의 문명 수준은 우리보다 한참 우월하다. 정부가 자기보다 우월한 존재를 인정한 다는 것은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것이니 당연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최선책인 것이다.

 

또한 이 세계의 절대자로 군림해온 인간이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의 가능성을 인정할 경우 오직 절대자 창조주만을 우위에 둔 인류의 권력과 교만이 붕괴되는 것이니 어찌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인간은 우주에 대한 관심도 아주 멀리 전파로만 조우할 수 있거나 하등한 유기체생물에만 관심을 갖는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도 같은 맥락이다. ‘인디펜던스데이화성침공같은 영화를 보면 우리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가진 적대적인 외계인을 아주 황당한 방법으로 싱겁게 이겨 버리지 않은가? 거기에는 외계인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구인의 가소로운 자존감이 엿보인다.

 

3. 저자의 주장

UFO와 외계인의 정체

UFO 기원설은 세 가지다. 먼 우주에서 왔다. 지구의 땅속이나 해저에 살고 있다. 우리와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UFO를 우리 은하계와 안드로메다 저 편 먼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생명체로 생각하지만 두 분은 세 번째를 지지한다. 최교수는 외계인을 우리가 사는 차원과 영계의 중간 쯤에 존재하는 물질과 반물질로 이루어진 생명체로 주장한다. 지구의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그네들의 행동을 보면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UFO가 나타나는 이유와 지구인을 납치하는 이유

먼저 두 교수는 외계인의 지구정복설을 일축한다. 그들의 우월한 문명과 과학기술 수준이라면 그렇게 비밀리에 뭔가를 꾸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영화와 달리 그네들이 맘만 먹는 다면 지구 정복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할 거였으면 옛날 지구인들이 미개한 시절에 했지 굳이 지구인의 과학기술이 발달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보다 진화에 앞선 존재라면 사랑과 평화의 존재다. 폭력적인 성향의 유전자가 공멸하지 않고 진화의 끝까지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침 흘리며 달려드는 외계인의 설정은 지극히 탐욕적인 지구인의 수준을 투사한 결과일 뿐.

 

외계인이 나타나는 이유는 지구가 현재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란다. 외계인의 거주지는 우리와 차원을 달리하는 곳이긴 하지만 광역생태권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현재 지구가 처한 위기상황을 무시할 수 없어 나타난 다는 것이다. 지구위기의 원인은 환경파괴. 이대로 두면 지구의 종말은 필연적이기에 뭔가 조치를 취하기 위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치 방법 중 하나가 지구인 납치다.

 

그들은 지구인을 납치하여 생체실험을 하는데 목적은 외계인과 지구인의 혼혈종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혼혈종을 만드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천의 증언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자와 난자를 채취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혼혈종으로 하여금 지구의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하는지, 현 인류를 대체할 신인류를 만들고자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사고범위를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들이기에 자기들 나름대로 뭔가 해결책을 찾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만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UFO에 대항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두 학자의 결론이다.

우리의 기술수준으로 그들의 의사에 반해 UFO를 잡을 수도 만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들의 행태로 보건데 앞으로도 우리 앞에 공식적으로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란다.

그렇다면 그네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 경고를 하고자 하는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가?

 

산업혁명 이후 막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한 결과 지구의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야기했고 이 상태를 방치할 경우 인류의 멸절은 시간문제다. 현재 인류는 이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어떤 효과적인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온실가스배출의 주범이었던 미국, 영국, 호주 등 강대국들은 기후변화대응에 소극적이고 이제 막 잘살아보자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 인도 등 후발 주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하늘은 무너지고 있는데 자기 집안에서 가족들이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있는 꼴이다.

 

저자들은 지구 종말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경제적 요인으로 과생산, 과소비를 지향하지 않으면 몰락하는 시장자본주의

둘째, 정치적 요인으로 정부가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하지 않으면 선거를 통해 정부를 바꾸어 버리는 민주주의 체제.

셋째, 국제관계적인 요인으로 국가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 간 경쟁 체제 속에서 범국제적 기후협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민족주의 체제.,

 

두 분의 의견도 그렇지만 내 생각 역시 이 세 가지 체제가 하루 이틀에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현 체제가 정립되는데 수백 년이 걸렸는데 바뀌는 데도 당연히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지구의 환경이 그 때까지 기다려 줄지다. 인류가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하고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인류의 생존을 위해 공동협력을 할 날이 과연 올까?

 

그러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외계인들은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자기들 나름대로 뭔가 대응책을 꾸리고 있다는 것이 결론인 것이다. 물론, 그들의 대응책이 우리 인류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우리 보다 우월한 초월적인 존재의 생각을 어찌 가늠하겠는가?

 

4. 마무리

시작은 다소 황당했지만 결말은 아주 비극적인 인류종말로 끝나 버린 UFO와 외계인 이야기.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중간 하다. 내가 믿는다고 없는 존재가 있는 것이 되고 내가 무시한다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인테스텔라미지와의 조우처럼 우리보다 우월한 외계종족으로부터 지구와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는 없을까?

 

이런 거창하고도 장대무변의 우주이야기보다 당장 오늘 저녁 뭘 먹을까? 내일 어디로 놀러 갈까? 퇴직 후에는 뭘 하고 살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우리.

이 광대한 우주의 스펙트럼과 신비한 외계생명체와의 조우에 비하면 먼지 하나만큼의 무게도 안 되는 이 하잘 것 없는 일상사에 찌들어 살고 있는 우리가 과연 인류의 종말이니 우주의 신비니 하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만약 신이든 외계인이든 지구종말을 앞에 두고 절망하고 있는 우리 앞에 나타나 "너희가 지금까지 지은 죄를 사하고 구원받을 이유를 단 한가지라도 대면 구해주겠다" 하고 말한다면 과연 인류는 무엇을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을까?

 

밤늦도록 책을 본 후 새카만 하늘을 문득 쳐다본다. 공해에 찌든 도시의 밤하늘엔 꺼질 듯 희미한 별 빛 몇 개가 반짝거린다. 어릴 적 어느 날 저녁에 황금빛 UFO가 내 앞에 나타나고 외계인이 내리는 장면을 상상한 적이 있었다. 내게도 그런 특별한 일이 일어나길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가? 아주 특별한 일이.

 

그래....아무일 없을 거야. 다 이야기야. 그냥 재미로만 보면 돼.

내일이면 또 납치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오늘 일은 깨끗이 잊어버릴거야.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잖아. UFO를 본 적도 외계인에 대한 관심도 없고, 이산화탄소도 많이 배출하지 않았어. 인류종말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잊어버리는 것 뿐이야.

그저 한여름밤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어린애 장난 같은 주제와 황당한 내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는 두 교수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긴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도록 만드는 어두운 결론. 그래서 누군가에게 권하기도 애매한 책. 읽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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