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의 발달은 가끔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하곤 한다. ‘유전자 복제’ 같은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한 윤리적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도덕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 같지 않았던 무인자동차에서도 재미있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무인자동차를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사람이 직접 운전하던 경우엔 상상할 수 없었던 문제다. 사람이 운전할 땐 당연히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사고가 발생할 상황이면 무조건 나 살자고 운전대를 돌린다.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진 않는다. 그런데 사고 상황을 시뮬레이션화해서 예측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위 기사는 아주 이성적인 결과를 내놓았지만 과연 우리의 속마음도 그럴까?

 

수억 명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내 한 목숨인 것이 본심이 아닐까? 물론, “너 혼자 살자고 다수의 사람을 죽게 하면 되겠는가?” 하고 누가 물어본다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YES"를 감히 외치진 못할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며 공동사회에서 지탄을 받을 소행이라는 것을 아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존재에 대한 본능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성과 별개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선택을 해야 한다면 공익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차를 사고 싶을까? 물론 현실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다수를 생각하는 아주 합리적인 차가 나올 것이니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이기적인 차와 공익적인 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다. 답은 싫지만 공익이다. 인간은 때론 벌떼처럼 달려드는 본능을 힘들게 누르고 억지로라도 선을 향해 가고자 하는 머리 아픈 이성이 생각보다 끈끈하게 자리 잡고 있다.

 

생명이 위급한 급박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삶과 죽을 선택해야 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현실이 내게 닥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아주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에서 위와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영웅적인’ 답을 내놓은 것이 지극히 온당한 일이다.

 

나 혼자와 다수의 선택에 대한 답은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드높이는 결과를 바라며

내 가족과 다수의 선택은 종족번식의 목적에 지극히 부합되는 결과를 보여준다.

 

인공지능의 최종 목적은 당연히 인간과 똑 같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인공지능은 인간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상황이 발생하기 전 인간의 의사결정을 합리적으로 미리 정해놓은 것은 결코 인간적이지 않다. 그건 기계적인 일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뭔가 허전하다. 생활의 편의를 위해 개발하고 있는 기계가 인간존재의 가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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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오후다. 촉촉하게 습기 밴 바람이 꽤나 상쾌하다.

오랜만에 책 몇 권 사기위해 알라딘에 들어 왔다가 플래티넘에서 골드로 강등당한 굴욕(?)을 겪었다. 일군에서 이군으로 밀려난 프로야구 선수 신세다. 이젠 VIP가 아니다. 몇 권 더 사면 회복시켜준다고 꼬드기는 문장이 새삼 웃긴다.

 

책을 안 본지 꽤 되었다. 핸드폰을 바꾸면서 어플도 사라졌다. 굳이 다시 깔지는 않았다. 얼마동안 열심히 보다 물리면 눈길 한 번 주지 않다가 또 쏠리면 보고....그런 리듬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으니까.

책을 열심히 읽을 땐 짬만 나면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 시달렸다. 와이프가 드라마라도 볼라치면 안방으로 쫒아 버리고 아이들이 떠들면 신경질을 냈다. 마트에서 쇼핑하는 와이프를 기다리던 차안에서 책 없이 흘러가던 아까운 시간에 대한 짜증 섞인 집착은 늘 불편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놓으니 내가 왜 그랬나 싶다. 보고 싶던 드라마를 요일 별로 외워놓고 신나게 봤다. 퇴근 후 밥 먹고 드라마 한두 편 보다 보면 저녁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엄청난 시간의 낭비다. 책을 보지 않은 시간 조각들은 왜 그리도 빨리 허망하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언제 저 책들을 다 볼 것인가? 순서를 정해 놓고 조바심 내던 내 앞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책들이 내 시야의 초점을 벗어난 순간 나는 자유고 책도 자유다.

인테리어로 전락한 서가 속 빽빽하게 진열된 책들은 꼼짝없는 주인 없는 개 신세다.

 

담배를 입에 문 채 니코친이 땡겨 무심코 담배곽에서 또 한 개비 꺼내다가 어이없어 하던 황당한 일이 떠오른다. 먹으면서 고프고 마시면서 갈증을 느끼는 연옥의 삶(?)

이 끝없는 갈구의 욕망을 책은 결코 채워줄 수 없었다. 다만 일시적인 위안이 될 뿐.

하지만 그건 책 탓은 아니다. 내 탓도 아니다. 그 누구 탓도 아니다.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이라는 판에 막힌 허튼 소리도 귀에 거슬리는 씨부렁거림일 뿐.

 

오늘 다시 무협지라도 펼치련다. 독서 외의 삶이 다시 무료해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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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기간 이런 저런 공식 행사를 끝내고 편안히 쉬던 중 우연히 본 ‘미래일기’라는 프로그램.

처음엔 새로 생긴 예능프로그램인줄 알았는데 궁금해 조회해보니 그냥 일회성 특집이란다.

안정환, 강성연 부부, 제시 모녀는 수십 년 뒤 미래로 가기 위해 세밀하게 노인 분장을 한다.

 

내가 본 첫 장면은 안정환이 노인이 된 모습부터 시작했다. 출연자들은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거울로 본 자신의 노년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자신의 흰머리와 주름살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넋두리를 하는 안정환.

공항에서 아가씨에서 중년 부인으로, 중년 부인에서 할머니로 변한 서로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제시 모녀.

곱게 늙은 강성연이 호호백발이 되 버린 남편을 쳐다보며 안타까워하는 모습들은 TV 모니터를 그대로 통과하여 내 가슴에 다가왔다.

 

우리들 대부분은 천년만년 살 줄 알며 빛나는 청춘이 늘 내 곁에 있을 줄 착각하며 산다. 내일 죽을 수도, 모래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노인들을 보노라면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별개의 존재로 치부한다. 무섭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조차 기분 나쁘고 두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팔팔한 내가 저렇게 노쇠한 모습으로 변해 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인가? 그러나 세월이 흘러 막상 그 나이가 되면 새삼스레 깨닫는다. 모든 이에게 공평한 자연의 섭리란 예외가 없다는 것을. 그때서야 이해가 된다. 왜 아버지가 그러셨는지, 왜 어머니가 그리 말씀하셨는지, 왜 어른들이 그렇게 슬퍼하셨는지 말이다.

 

외모만 바뀌었을 뿐인데 출연자들은 당황한다. 마치 진짜 나이를 먹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예능으로 보이진 않는다. 흔한 예능처럼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들은 실제 노인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움직인다. 비록 가상이지만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인 것이다.

 

그들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해본다. 잠깐 동안의 빙의만으로도 그들은 깨닫는다.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내가 가진 지식의 양, 가진 돈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인다. 세월 앞에 나이 앞에 그동안 아등바등 집착했던 많은 것들이 덧없는 것임을 생각한다. 정말 소중한 것만 남는다.

젊은 날 하찮게 보았던 것들이 진짜 소중한 보물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과 친구의 의미가 다가오고, 소소한 삶의 소중함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울림이 올라온다.

 

강성연 부부가 마지막 연주회를 하는 장면은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보는 내내 울컥하기를 여러 번, 촉촉해지는 눈가를 닦기를 또 여러 번.

호들갑스런 게임, 유쾌한 말장난 하나 없이 부드럽고 나지막한 성우의 나레이션처럼 그렇게 시간은 가고 정해진 연출이 끝났음에도 여운은 길게 간다. 나도 한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그들만 간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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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영화를 찾기 위해 영화 사이트를 뒤지던 중 우연히 찾은 과거의 추억들.

90년대 열심히 봤던 ‘엑스 파일’이다. 지금은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지만 정보라는 것을 TV 정규채널 몇 개, 몇 종류 신문, 잡지, 책 등 한정된 소수의 창구에서 밖에 얻을 수 없었던 당시를 감안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그동안 ‘검열’이란 이름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통제한 결과, 세상은 늘 ‘~카더라 통신’이 항상 떠다녔다. 수많은 의혹들이 미제사건으로 덮였고, 행여나 알라치면 어김없이 철퇴가 가해지던 정보의 절벽 시대는 당연히 음모론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문민정권이라는 지극히 작위적인 이름으로 독재의 외투를 겨우 벗어 던진 후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정부는 국민에게 늘 뭔가를 숨기는 존재였고, 비밀의 배후에는 정보기관이라는 어둠의 세력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으르렁거리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곤 했다. 엑스 파일의 멀더 요원이 비밀을 파헤칠라치면 항상 나타나 경고하며 방해하던 세력들. 국민의 생명과 권리라는 명확한 실체 대신 국가, 국익, 국민의 이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내세우며 정작 국가의 본질인 국민의 권리를 억압하는 어두운 무리들.

 

‘1984’의 빅브라더처럼 보이지 않는 감시자는 선량한 사람들을 ‘자기검열’의 덫에 빠트리며 ‘원형감옥’을 구축한다. 목숨을 걸어야만 알 수 있는 진실! 끝도 없는 미스테리의 꼬리를 조금만 밟아도 뒤를 조심해야 하는 소심한 범인은 그냥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귀를 막는 것이 제일 신간 편한 일이다.

 

쉽게 밝혀지지 않을 진실의 끝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멀더.

직접 본 것도 과학과 논리에 맞지 않으면 외면하는 스컬리. 엑스파일은 멀더의 쓸데없는 호기심과 진실 찾기를 스컬리의 차가운 시선으로 거른다. 실제로는 진실이나 결과로는 가짜인 사건들은 이성의 여과기에 걸러진 순간, 믿거나 말거나 어린애 장난 같은 일로 끝나고 만다. 미궁에 빠진 사건들은 또 다시 차가운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진실은 절대로 아무에게나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마지못해 살짝 보여 주고 만다. 그것도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거나 책임 질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이 세상에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이 얼마나 많을까?

모든 이에게 공개되는 정보의 바다엔 과연 먹을 만한 고기가 살고 있을까?

권력과 금력을 쥐고 있는 자들만이 공유하고 있다는 특별한 정보는 무엇일까?

 

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다니는 멀더가 진정 알고 싶은 것은 비밀의 내용이 아닌 그 비밀을 숨긴 사람들의 정체와 숨겨야 할 이유가 아닐까? 비밀의 끝자락을 쥐었다 한들 그 만의 것으로 끝난다면 비밀을 푼 것이 아니리라. 그것이 멀더가 포기하지 않고 뛰어 다니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것도 숨길 것도, 숨길 수도 없는 투명한 세상. 비밀을 간직할 것도, 간직할 수도 없는 소통의 사회. 멀더는 그래서 지금도 빅브라더를 쫒고 있겠지.

 

그러나 숨기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와의 긴 줄다리기는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며 여운을 남긴다.

“그래, 더 찾아보렴. 용용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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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이들과 같이 보면 좋을 영화 ‘팬’을 봤다. 어린 시절 최초로 본 컬러동화로부터 시작해 어린이 프로그램에 단골로 방영됐던 디즈니 제작 애니메이션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 영화는 피터팬 원작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피터팬이 되기 전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다. 동화 속 환상의 나라 ‘네버랜드’엔 늙지 않는 약을 광산에서 캐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납치하는 해적 검은 수염이 있었고, 피터팬은 아직 적이 되지 않은 그의 영원한 라이벌 ‘후크’와 함께 네버랜드를 지키기 위해 해적들과 일전을 벌인다는 줄거리다.

 

동화 속 상상의 나라에서도 아이들의 노동력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어른 해적 일당이 존재하고 그들에게서 아이들과 네버랜드를 지키기 위한 피터팬의 액션은 보는 내내 유쾌하다. 육해공을 누비는 해적선에 총질을 해대는 독일군 비행기의 모습은 자못 우습기까지 하다

 

그러나 동화엔 결코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자신은 늙지 않지만 친구들이 나이 들어 죽어가는 모습들을 보는 것이 과연 행복한 일인가?

늘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지만 때가 되면 어른이 되어 환상이 아닌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운명은 슬픈 것인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몸만 어른을 피터팬신드롬에 빗대곤 한다. 흔히 인용하는 ‘마이클 잭슨’ 같은 사람들이다. 부정적인 의미다. 불안한 현실을 회피하고자 어린 시절에서 나오지 않거나 돌아가 버리는 퇴행이다. 꿈과 환상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의 유무나 실체를 아는 순간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다. 삶이 힘들다고, 어린 아이 시늉을 한다고 눈앞의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모든 문제는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라야 그 실체가 명확히 보이고 그 해결책이 보인다.

 

현실에 결코 발을 떼서는 안 된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것은 현실에서 발을 떼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을 동경하지만 결국 땅바닥을 딛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다. 피터팬을 동경하지만 피터팬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터팬은 어릴 적 한 때 동경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동화 속 이야기여만 하고 어른이 된 우리는 당연히 잊어버리는 것이 맞다. 정 만나고 싶으면 꿈속이나 이처럼 영화에서 보면 된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유쾌한 시간이기는 하지만 슬픈 일이기도 하다. 깔깔대며 재미있다고 신나게 웃어 제치는 애들처럼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없는 어른의 현실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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