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연휴 기간 이런 저런 공식 행사를 끝내고 편안히 쉬던 중 우연히 본 ‘미래일기’라는 프로그램.
처음엔 새로 생긴 예능프로그램인줄 알았는데 궁금해 조회해보니 그냥 일회성 특집이란다.
안정환, 강성연 부부, 제시 모녀는 수십 년 뒤 미래로 가기 위해 세밀하게 노인 분장을 한다.
내가 본 첫 장면은 안정환이 노인이 된 모습부터 시작했다. 출연자들은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거울로 본 자신의 노년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자신의 흰머리와 주름살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넋두리를 하는 안정환.
공항에서 아가씨에서 중년 부인으로, 중년 부인에서 할머니로 변한 서로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제시 모녀.
곱게 늙은 강성연이 호호백발이 되 버린 남편을 쳐다보며 안타까워하는 모습들은 TV 모니터를 그대로 통과하여 내 가슴에 다가왔다.
우리들 대부분은 천년만년 살 줄 알며 빛나는 청춘이 늘 내 곁에 있을 줄 착각하며 산다. 내일 죽을 수도, 모래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노인들을 보노라면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별개의 존재로 치부한다. 무섭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조차 기분 나쁘고 두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팔팔한 내가 저렇게 노쇠한 모습으로 변해 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인가? 그러나 세월이 흘러 막상 그 나이가 되면 새삼스레 깨닫는다. 모든 이에게 공평한 자연의 섭리란 예외가 없다는 것을. 그때서야 이해가 된다. 왜 아버지가 그러셨는지, 왜 어머니가 그리 말씀하셨는지, 왜 어른들이 그렇게 슬퍼하셨는지 말이다.
외모만 바뀌었을 뿐인데 출연자들은 당황한다. 마치 진짜 나이를 먹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예능으로 보이진 않는다. 흔한 예능처럼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들은 실제 노인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움직인다. 비록 가상이지만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인 것이다.
그들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해본다. 잠깐 동안의 빙의만으로도 그들은 깨닫는다.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내가 가진 지식의 양, 가진 돈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인다. 세월 앞에 나이 앞에 그동안 아등바등 집착했던 많은 것들이 덧없는 것임을 생각한다. 정말 소중한 것만 남는다.
젊은 날 하찮게 보았던 것들이 진짜 소중한 보물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과 친구의 의미가 다가오고, 소소한 삶의 소중함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울림이 올라온다.
강성연 부부가 마지막 연주회를 하는 장면은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보는 내내 울컥하기를 여러 번, 촉촉해지는 눈가를 닦기를 또 여러 번.
호들갑스런 게임, 유쾌한 말장난 하나 없이 부드럽고 나지막한 성우의 나레이션처럼 그렇게 시간은 가고 정해진 연출이 끝났음에도 여운은 길게 간다. 나도 한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그들만 간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