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내 지식과 사유의 범위와 한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정의해주는 바로미터다.

 

책을 읽고 감동에 북받치고 영감이 날뛰는 경험을 하다 보면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막상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한 순간,

모든 감정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썰렁한 현타만 감돈다.

 

내 생각, 내 감동의 1/10도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안 순간 너무 실망한다.

내 생각의 깊이가 이게 아닌데, 뭔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써보면 글은 너무 냉정하다. 순식간에 거품이 사라진다.

 

글은 내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평가를

스스럼없이 까뭉개버린다.

스스로 유식하다는 착각, 똑똑하다는 과대망상,

지적 허영심의 환상에서 나를 강제로 꺼내준다.

 

그렇다. 머리에만 들어 있는 것은 결코 내 것이 아니다.

내 지식도 내 생각이란 것도 다 내 것이 아니다.

글로 완전하게 표현된 것만이 내 것이다.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내 생각이 아니다.

그냥 머릿속에 맴도는 상념일 뿐이다.

 

반대로 글로 내 생각을 잘 표현했다면,

누군가를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를 제시했다면

그제서야 난 안다고 할 수 있다.

 

말의 수준이 곧 그 사람의 수준이라면

글이 수준은 곧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이요,

사고의 깊이요, 그의 삶의 질의 수준인 것이다.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한 페이지의 지식이 필요하고

한 페이지의 글이 나오려면 한 권의 책이 필요하며

한 권의 책이 나오려면 수백 권의 책이 필요하다.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을 절대 넘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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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법을 깨달았다. 너무 쉽다.

이미 부자들이 돈 버는 법을 자세히 설명한 책들이

하루에 한 권씩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만큼 널려 있다.

 

그 중 내게 필요한, 나한테 맞을 만한 책을 골라 보면서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부자 되기가 이렇게 쉽다.

돈 버는 비법은 널려 있다. 그냥 고르면 된다. 그냥 실천하면 된다.

 

그럼 넌 왜 돈을 못 버는 것이냐? 한번 입증해 보라 하겠지.

그러나 돈을 버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 혹은 공식이 있다.

 

방향 × 노력 × 시간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방향과 노력은 당장이라도 도전할 수 있지만

물리적인 시간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지나간 시간도 앞으로 올 시간도 내가 줄이거나 늘릴 수 없다.

부자가 되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없다.

일정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흔히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데 필요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든지 복리의 마법같은 것이다.

1만 시간이라는 일정량이던지 복리가 마법을 부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씨를 뿌리고 가꿔서 열매를 수확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1년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평생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겐 그 시간이 없다. 너무 늦게 마법의 이치를 알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쓰기엔 남은 인생이 그리 많지 않다.

돈을 버는 데에만 투자하기에는 다른 할 것이 너무 많다.

설사 돈을 벌었다 해도 쓸 시간도 없다.

 

남은 생이 많지 않은 사람에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법이다.

몰빵하기엔 이미 늦었다.  이미 먹고 살 만큼은 벌고 있기에

잉여재산에 대한 욕심은 이제 의미가 없다.

 

퇴직 후 여생을 즐길 만큼의 재산만 모으는 노력으로

이번 생의 돈을 모으는 삶은 그 목적과 의미를 다 한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라는 말이 있지만

모든 것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는 노력 없이, 충분한 일조량을 받는 과정 없이,

찬 서리를 맞는 고난을 겪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과정을 건너 뛸 수 없는 게 자연의 법칙이듯이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음을 아는 것도 인생의 지혜다.

 

세속적인 부를 쌓는 건 이제 때가 지났다.

욕심을 부리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욕심이다.

 

오늘 하루 내 할 일을 하면서 글 한 줄 쓰는 노력,

책 한 줄 읽는 호사를 누리는 것,

작은 것을 실천하는 하루의 노력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종이 한 장 두께만큼이라도 내 삶에 쌓여가는

지혜의 누적에 만족하며 후회 없는 삶, 자아실현의 삶을 사는 게

내겐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며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난 돈 버는 법에 대한 책을 읽는다.

그리고 인생을 잘 사는 법과 돈을 잘 버는 법이 일치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결국 난 돈 대신 지혜를 열심히 벌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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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폭염이 지속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기후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뉴스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봉기로

무너질 것이라 했지만 그의 예언은 틀린 것 같다.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이자 종주국이었던 소련은 붕괴된 지 한참되었고

중국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일당독재의 국수주의, 민족주의 사이의 이상한 시스템으로

어정쩡한 자본주의를 안고 가고 있다.

 

일단 이념에 의해 자본주의가 무너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어쩌면 전 지구적 위기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장에 의한 대량생산을 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자본주의의 특성상

거의 무한대의 생산을 위해 파괴한 지구의 생태계로 인해 지구가,

아니 인류가 종말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며 자원을 고갈시킨 대가로

지금 지구는 온갖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처럼 계속 지구의 자원을 파괴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자본주의를 이대로 놔두고

과연 인류가 지구의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을까?

과연 인류가 자본주의를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을까? 그럴 시간이 될까?

 

오존층 파괴, 온실가스 증가, 기온상승, 해수면 상승, 빙하 소멸, 플라스틱, 멸종 동식물 증가 등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식량 위기로 기울어 가고 있는 인류의 불안한 미래를 볼 때

 

굳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더라도 국이 핵전쟁이라는 극단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자본주의는 가라앉을 것 같다. 아니 인류의 미래가 사라질 것 같다.

 

나만의 불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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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도, 한 회사의 회장이라도

자기 나라의, 자기 회사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고, 알 수도 없다.

단지 아랫사람들이 어떤 사항에 대하여 핵심을 잘 요약 정리하여

보고한 것을 토대로 판단할 뿐이다.

 

보고의 질은 보고자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고

보고를 믿고 안 믿고는 리더의 선택이다.

 

니체 전문가가 니체의 철학을 성심성의껏 잘 요약정리한 내용을 보고

나는 내게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내 것으로 한다.

 

어차피 내가 니체, 칸트를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각 보고를 청취할 뿐이다.

단 믿을만한 전문가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은 필요하다.

 

아랫사람의 보고를 받고 한 나라를, 한 회사의 운명지을 결정도 하는데

고전을 그렇게 읽는 거야 별일 아니지 않은가?

 

나라와 회사는 리더의 잘못된 판단으로 망할 수도 있는데

난 고작 잘못 이해할 뿐이고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데 뭐가 걱정인가?

위험에 비해 내가 얻을 이득은 막대하다.

 

그래서 난 보고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잘 골라 그의 보고를 믿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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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어는 순간 고전에 집착하는 나를 본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가가 평생에 걸쳐 쌓은 사유의 결정체를 단시간에

큰 노력 없이 소화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알고는 싶은데 이해하기 쉽지 않은 고전에 대해 나는 과감하게 포기한다.

사전 지식 없이 고전 원전을 읽는 것은 영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영문소설을 읽는 것과 똑같다.

내가 영문법 책을 옆에 놓고 영한사전으로 단어를 찾아가며 떠듬떠듬 영문소설을 읽는다면

그게 읽는 것인가? 그건 영문독해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어설픈 원전보다 차라리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잘 설명해 놓은 해설서를 읽는 게 훨씬 나을 수 있다.

본인의 능력에 따라 잘 선택하자.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무한하다.

한 권의 고전을 평생 씹고 음미하고 향유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것도 능력과 시간이 있을 때다.

 

나는 둘 다 부족하다. 알고 싶은 건 많지만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나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는 것이지 원서강독이 아니다.

때로는 날로 먹는 것이 유용할 때도 있다.

 

고전은 좋은 해설서를 찾자. 청소년문고도 좋다. 아니 어린이용 학습만화도 많다.

다 이해 못해도 좋다. 그 중 한 두가지라도 내 것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려운 문장 하나를 내 힘으로 이해하는 성취감도 좋지만

삶을 관통할 수 있는 큰 화두 하나를 날로 건지는 행운은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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