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내 지식과 사유의 범위와 한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정의해주는 바로미터다.

 

책을 읽고 감동에 북받치고 영감이 날뛰는 경험을 하다 보면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막상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한 순간,

모든 감정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썰렁한 현타만 감돈다.

 

내 생각, 내 감동의 1/10도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안 순간 너무 실망한다.

내 생각의 깊이가 이게 아닌데, 뭔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써보면 글은 너무 냉정하다. 순식간에 거품이 사라진다.

 

글은 내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평가를

스스럼없이 까뭉개버린다.

스스로 유식하다는 착각, 똑똑하다는 과대망상,

지적 허영심의 환상에서 나를 강제로 꺼내준다.

 

그렇다. 머리에만 들어 있는 것은 결코 내 것이 아니다.

내 지식도 내 생각이란 것도 다 내 것이 아니다.

글로 완전하게 표현된 것만이 내 것이다.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내 생각이 아니다.

그냥 머릿속에 맴도는 상념일 뿐이다.

 

반대로 글로 내 생각을 잘 표현했다면,

누군가를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를 제시했다면

그제서야 난 안다고 할 수 있다.

 

말의 수준이 곧 그 사람의 수준이라면

글이 수준은 곧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이요,

사고의 깊이요, 그의 삶의 질의 수준인 것이다.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한 페이지의 지식이 필요하고

한 페이지의 글이 나오려면 한 권의 책이 필요하며

한 권의 책이 나오려면 수백 권의 책이 필요하다.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을 절대 넘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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