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1970년대 미 닉슨 정부와 대화를 시작으로

사회주의의 검은 장막을 걷고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등소평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말해주듯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거대한 내수시장, 풍부한 인력과 자원을 바탕으로 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당시만 해도 중국이 수십 년 만에 미국과 경쟁할 만큼

발전하리라고 예측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천년이 넘도록 자신들의 리더를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라 칭하며

동양의 패자로 군림했던 나라다.

 

중국은 일시적 혼란기에 기술문명을 앞세운 서양 열강과 일본에 당한

뼈아픈 과거를 거울삼아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 등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하였고 결국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눈부시게 성장하며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였다.

 

그렇게 아시아의 패권국가로 만족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중국은 이제 더 큰 꿈을 꾸려 한다.

시진핑이 꿈꾸는 중국몽(中國夢)은 중국 영토의 영원한 회복과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가 되는 것이다.

 

중국 영토의 회복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대만과의 통일이다.

대만을 빼고 중국몽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는 대만을 합병하기전까지 현재의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미국을 제압하는 수준까지 간다면

전쟁 없이 갈 수도 있겠지만

현재 중국의 발전 속도는 점점 늦춰지고 있고

반면에 미국의 견제 강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지정학이나 전쟁사에 자주 인용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이란 말이 있다.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 기록된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 전쟁 원인을 전통의 강국 스파르타의 신흥 강국 아테네에 대한 두려움이라

했다.   

 

다른 관점도 있다. ‘정점을 지난 강대국의 함정이다.

이미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들기 시작한 신흥 강대국이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정면 승부를 벌인다는 것이다.

1914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1941년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일본이

모두 이런 정점을 지난 강대국의 함정에 빠진 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를 보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도발하기보단

중국이 정점을 지난 강대국의 함정에 빠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조바심에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무슨 이론보다 중요한 건 미󰋯중간의 갈등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그 과정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고.

 

이미 우리는 19세기 말부터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세계열강의 치열한 각축장에서 약소국가의 설움을 톡톡히 경험했다.

우리의 주권은 무시되었고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자유가 없었다.

 

이제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 대국이 되었건만

여전히 우리의 현실은 과거의 그때다.

 

전쟁은 생각보다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전쟁은 지정학적 여건이 무르익으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다.

 

전쟁이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가

전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고

전쟁을 해도 괜찮다는 국민의 지지와 주변 여건을 만나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푸틴과 시진핑처럼 전제권력을 가진 리더의 결단은

수억의 국민보다 강력하고 위험하다.

 

긴 평화의 시간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오랫동안의 평화는 그 시간만큼

전쟁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은 압도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공멸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과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현명한 의지를 가진 리더와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 국민이 있어야 피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 중국은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 보인다.

오히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전쟁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공산당 일당독재에 기반을 둔 강력한 권한을 가진 리더,

미국과 어깨를 견줄만한 군사력과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

대중의 위험한 자국제일주의나 국수주의,

독재자를 통제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와 방법이 없는 나라.

불길한 현재 중국의 모습이다.

 

더욱 불안한 것은 언제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중국이

지금 아니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바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과거의 독일과 일본의 전철을 밟고 도발을 감행한다면

그 시작은 당연히 대만에 대한 공격이고 성동격서(聲東擊西) 격으로

한반도에 국지전을 먼저 일으킬 것이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는 본진에 앞서

주일, 주한미군을 동원하여 시간을 벌려 할 것이다.

 

중국도 이를 모를 리 없기에 대만을 공격하기 전

북한으로 하여금 국지전을 일으켜 주한미군을 볼모로 붙잡아 두면서

대만 침공의 명분을 삼을 것이라는 게 흔한 시나리오다.

 

우리는 미국이, 주한미국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리라 믿고 살았다.

󰋯소간 냉전시대에 미국의 핵을 포함한 군사력이

북한의 전쟁 도발 의지를 잠재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경쟁상대였던 소련은 중국과 대만처럼

우리나라 근처에서 문제를 일으킬만한 요인도 없었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었다. 지금 소련의 지위를 이어받은

중국의 입장은 우리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고

핵을 보유한 북한은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핵을 보유한 북한은 체제 붕괴의 파국을 야기할 수 있는

전면전 대신 국지전을 염두에 둘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도발로 한국에 미군의 발을 묶어 놓으면 되는 것이고

북한은 전면전이 아니라면 한 번 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과 북한의 군사력은 경제력의 차이 만큼이지만

단기전이나 국지전이라면 다른 문제다.

북한은 전면전으로 인한 체제 붕괴의 위험을 떠안지 않으면서

중국과 함께 다양한 선택을 생각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전격적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한동안 잠잠했던 중동에서 느닷없이 이스라엘 하마스 간 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2년 가까운 전쟁으로

100조가 넘는 돈을 쏟아부었기에 국민에게 눈치가 보이는 바이든 행정부다.

탈레반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내주면서까지 중동에서 빠져나왔고

이제 중국과의 패권전쟁에 몰두하고자 했던 게 미국의 속내가 아니었던가?

 

모든 화력을 중국에 집중하려 했던 미국으로선

중동전으로 다시 시선이 분산되는 게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설사 이 모든 전쟁이 강대국의 전략적 음모라는 걸 배제할 수 없다 할지라도

미국의 시선이 우리에게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불안하다.

 

세계 패권국가의 지위를 위협하는 어떠한 세력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미국

유라시아제국을 꿈꾸며 우크라이나로 진군한 푸틴의 러시아

미국과 겨루며 호시탐탐 대만을 노리는 중국

중국과 러시아를 막는 미국의 전진기지를 명분으로 군사력을 확대하고 있는 일본

홍콩의 현실을 보며 중국을 거부하지만 자력으로 중국과 겨룰 수 없는 대만

 

그런데 우리의 대단한 정부는 국가의 보존과 국민의 안위를 위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중국 봉쇄 정책에 적극 참여하고

국민의 정서나 역사의식을 무시하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대책의 전부일까?

평시에 물에 빠진 제 나라 병사 한 명의 생명도 못 지키면서

이 복잡한 지정학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을까?

 

기우라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걱정하던 상황이 일어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가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가?

우리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대한민국이다.

 

이제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찍소리도 못 내고

격랑에 휩쓸리는 대한민국이 되어서는 안된다.

두 번은 아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모두 두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중국인들처럼 민족주의에 빠져도 안되겠지만

지나친 낙관주의나 방관, 무관심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지정학적 환경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최소한 우리의 운명과 목숨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주적인 국가의 국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운명은 오롯이 우리가 정해야 한다.

힘이 센 이웃이 우리를 맘대로 다루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남의 전쟁이 우리의 희생이 되는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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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핵을 비롯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백만 정예군이 대치하고 있는 나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세계 군사력 순위 1, 2, 3위를 다투는

초강대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나라.

북한 대립으로 세계 3차대전 촉발의 직접적인 시발점이 될 수도 있고,

똑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중국과 대만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나라.

 

이것이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요, 지난 70년간 전쟁 중인 국가다.

물론, 직접적인 전투는 거의 없었지만 현재 분명히 정전(停戰) 중이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생각하면 소름 끼치도록 살벌한 이 현실에 대해

지금 관련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전이든 종전이든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지금 사실상 전쟁하고 우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가끔 북한의 국지적 무력도발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때뿐

우리는 곧 일상으로 돌아가고 잊어버리곤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무력으로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은

늘 국가의 안보를 볼모로 독재를 정당화했다.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덮어버리려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우리는 안보에 무감각해졌고

실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게 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웃집 불구경 하듯이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과 목적은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푸틴의 위대한 러시아라는 제국주의적 야심일 수도 있고,

미국과 나토의 우크라이나 포섭에 위협을 느낀 자위적 대응일 수도 있고,

 

보다 근본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라는 공산주의권 블록과

미국, 유럽, 일본의 자유주의권 블록의 지정학적 대립일 수도 있고,

언급한 모든 것이 다 해당 될 수도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의 목적과 별개로 진행에 따른

여러 가지 특이점을 보여줬다.

 

전 세계 모두가 러시아의 압도적인 승리를 전망했지만

이를 비웃듯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한 참 넘도록

2차대전의 처칠까지는 아니더라도 뛰어난 지도력으로 선전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이 단순히 군사력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보여줬고

 

한때 미국과 세계를 양분한 공산주의 교조 국가로서

구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푸틴이 초반 뜻밖의 졸전과

투입한 용병의 리더인 프리고진과 내전으로 자존심을 구기며

실권의 위기에 몰린 듯 보였지만

아직 그의 권력은 탄탄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밖에서 보는 러시아와 실재 러시아는 오해가 있었다.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패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순히 국지적인 영토나 자원 분쟁 때문이 아니고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심이라면 셈법은 복잡해진다.

러시아의 옆에는 같은 목적을 가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존재하고

핵무기까지 소유한 작지만 폭발적인 뇌관을 가진 북한까지 가세하고 있지 않은가.

 

러시아, 중국을 대륙문명이라 하고 미국과 유럽을 해양문명으로 칭하며

이른바 문명의 충돌로 분석하는 지정학적 관점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체제와 국가자본주의 내지 민족주의 간의 가치와 이념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아니면 민족주의 국가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의 유라시아 이상과

미국과 나토의 동진정책 등 제국 간의 지정학적 권력 투쟁이든지

대륙문명과 해양문명과의 충돌이든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가치와 이념의 갈등이든지 간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추구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의

해양문명의 주도적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인가

러시아와 중국이 내세우는 국가자본주의의 민족주의라는 현실적 특수가치인가?

 

혹시 머리는 자유민주주의지만 가슴은 민족주의가 아닌가?

어정쩡한 입장에서 자유민주주의로 확실하게 줄을 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과 대만, 한국과 북한을 뜨거운 감자로 둔 미일 등 초강대국 사이에서,

세계 3차대전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동아시아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내세워야 할 가치와 이념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

 

과연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어차피 모든 나라가 자국과 자민족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데

국가자본주의의 민족주의가 악으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정확히 무엇인가?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형식만 갖추었을 뿐

그 목적이 제대로 실현된 적이 거의 없다.

이론적으로만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는 결국 실현될 수 없는 허구가 아닌가?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서방과 손을 잡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서방과 한 배를 타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가 국가자본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운

러시아나 중국보다 더 나은 나라인가? 낫다면 무엇인가?

그네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형식적 자유 아닌가?

우리가 그들보다 더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가치는 무엇인가?

내 삶의 터전과 가족을 적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과

국가를 지켜야 하는 국민의 의무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무엇인가?

국가는 자신이 국민을 대한 것보다 더 많은 애국심을 국민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똑같은 상황이 됐다면 과연 우리가 저 우크라이나 국민처럼 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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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속도의 시대다.

속도는 당연히 변화를 동반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과거에 고착된다.

 

부적응자들은 속도에 따른 변화를 외면하거나 거부하며

특정 시대의 특정 이데올로기에 자신의 가치를 부여한 채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에 남는다.

현재를 과거로 회귀시켜 해석하고 판단하려 한다.

그들은 과거를 계속 살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다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는 세계에서

변하려 하지 않는 과거의 사람들

 

변화에 따르려는 현재의 사람들

변화를 준비하는 미래의 사람들

부조화와 갈등이 사회를 불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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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현대의 창조물이다.

인류가 문명을 세운 이래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가족, 부족, 마을, 공동체, 도시, 국가 등

인간이 발전시켜온 사회 시스템은

집단을 전제로 운영되었다.

 

인간이 자연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은 사회였다.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지만 여럿이 뭉치면 생존할 확률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 우린 과거에 개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다가

가끔 국민의 의무로 전쟁터에 나가기도 했다가

마지막에 다시 가족 품에서 생을 마감했다.

 

평생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딘가에 귀속되어 있었고

홀로 떨어질 일이 없었기에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이제야 시작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지금의 나는

나에 대하여, 나의 운명에 대하여 오롯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전통의 규범과 가치를 대체한 자본주의의 화폐와 소비는 인간을 파편화시켰고

새로운 가치관에 따라 그에 걸맞은 새로운 세상의 나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당연히 주어졌던 공동체에서의 역할 대신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선택해야 하고

자신이 연출한 삶에서 가면을 쓴 배우가 되어야 한다.

 

기존의 질서와 규율 대신 다양성과 불확실성을 주제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만의 차별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나와 세상 사이에 존재했던 공동체라는 보호막이 벗겨진

현대의 개인에게는 세계와의 경계를 코앞에 두고

살벌하고도 치열한 최전선에 선 삶 외 다른 선택이 없다.

 

국가와 사회는 내게 바람직한 개인이 되기를 요구한다.

어느날 갑자기 발가벗겨진 현대의 개인은

사회가 요구한 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여의치 않다.

 

권위를 내세우면서 자유롭게 살아라 한다.

최신 유행을 광고하고 소비를 조장하면서 개성을 살리라 한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은 냉엄한 세상에서 우리는

부모의 자식으로, 배우자로, 다시 부모로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직장에서 직원으로 부장으로 사장으로 그 책임을 다해야 하고

친구, 모임, 동호회에서의 관계도 잘해야 한다.

 

모든 것을 화폐의 가치로 환원시켜버리는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댈 전통적 가치와 규범은 이미 파괴되어 사라져가고 허무한 나는

오직 스스로에 기대며 나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한 자아는 부조화와 갈등으로 사회와 대립하고

여차하면 분열의 조짐을 보이다 잉여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철학적 명제이기 전에 삶의 문제고 실존의 문제다

 

개인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자존심이 아닌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감을 소유한 사람이며

 

자신을 성찰하면서 동시에 그 사실을 언어와 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이며

심리적 생존을 위해 자아를 다독일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한 자이며

 

타인의 이익에 반하여 내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주의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서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진 사람이며

 

작고 소중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되

공동체의 발전을 도외시하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개인주의의 개인은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진정한 개인주의의 개인이 되는 것은 이토록 어렵다.

 

(울컥)

 

그러니 돌아버릴 수밖에

세상을 보라

온통 미친놈들만 있는 것 같다.

모두 자아가 분열되어 있다.

그네들을 보면 나도 돌아버릴 것 같다.

 

오늘날 이처럼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틈만 나면 분열되어 버릴 것 같은 허약한 내 자아들을

건강하게 하나로 통합하기는커녕

더 이상 분열되지 않도록 봉합하는 것만도 너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끊임없는 존재의 불안에 굴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나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기반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며

내가 속한 공동체와 국가 더 나아가 세계와 우주를

사랑할 수 있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개인이 되기를 희망하고 노력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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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최초로 제대로 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 후 일기일 것이다.

 

저학년 땐 그림일기를 그리는데

엄마랑 수박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친구랑 놀았다. 참 재미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삐뚤빼뚤 글자 몇 개를 써 놓으면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라고 새겨진 동그란 도장을 찍어주셨다.

 

그때는 방학 때 일기 쓰기가 기본 숙제였다.

방학 내내 미루다 개학을 코앞에 두고서야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느라 고생했던 추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내용은 그럭저럭 기억을 되살려 만들어 내는데

지나간 날씨를 몰라 난감해 해다 아버지가 보시고 버린

신문의 일기예보를 뒤적이며 나의 재치에

스스로 감탄하며 베낀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또 그때는 글짓기 시간이 꽤 있었다.

국어 시간에 동화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를 자주 받았던 것 같다.

그놈의 방학숙제에도 독후감은 단골 메뉴였다.

글짓기 대회도 자주 있었다. 주제는 주로 김일성과 북한 타도와 같은

이상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먹고 살기 힘들었고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엄혹한 독재의 시대였음에도 공교육이 글쓰기를 생각보다 중시한 걸 보면

현재와 비교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초등학교가 끝이다.

중고등학교 과정엔 글짓기가 없다. 글이란 걸 써본 기억이 거의 없다.

대학교에서도 리포트 제출 외 별도 글쓰기를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사회에 나와 보고서를 작성하고서야 나의 글솜씨를 새삼 자각한다.

시작할 땐 누구나 칭찬할 수밖에 없는 멋진 보고서를 기대하지만

결과는 늘 그저 그런 수준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글쓰기란 게 글로 먹고사는 작가나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웬걸 직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글솜씨였다.

내 정보와 생각을 공식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은 결국 글밖에 없었다.

그제야 아차! 하지만 글솜씨란 게 하루아침에 느는 게 아니다 보니

늘 아쉬웠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왜 난 다시 글을 쓰는가?

일기 숙제도, 리포트와 보고서를 써야 할 일도 없는데

왜 난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가?

 

우리나라 평균 독서량을 꽤 상회하는 수준의 독서를 평생 했음에도

책을 읽으면 바뀐다는 인생이 아직도 그대로인 날 보며

독서의 부질없음에 늘 실망하곤 했다.

 

이제야 알겠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한 몸이라는 것을

읽기만 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읽는 건 그냥 시작일 뿐이라는 걸

읽는 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행위란 걸

읽는다는 건 그저 정보를 아는 것까지의 과정이란 걸 알았다.

 

글쓰기를 해야 내 생각이 밖으로 나오고 그래서야 변화가 시작된다는 걸

글을 쓰고서야 내가 읽은 게 이해한 것이 아니란 걸

글을 써야 읽은 게 소화가 된다는 걸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이란 게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알았다.

 

오만한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것에 대해 쓸라치면 쓸 말이 없었다.

내가 그것에 대해 쓰지 못한다는 건 결코 아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읽기만 하는 건 내 운명에서 나를 소외시키는 것이며

글쓰기가 더해져야 책과 나는 온전한 하나로 변화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쓰기 위해 읽어야겠다.

쓰기 위해 생각해야겠다.

 

이제 나는 정정한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건 독서가 아니라고.

독서와 글쓰기라고.

 

독서와 글쓰기는 총과 총알이자 활과 화살이다.

따로는 존재의 의미가 미약하다.

 

고미숙 작가님의 말씀을 빌자면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읽기는 그저 정보로 환원된다.

  그 정보는 아무리 원대하고 심오해도 존재의 심연에

  가 닿을 수 없다.”

 

반성한다. 지금까지 난 그저 지적 허영을 즐겼을 뿐이다.

지금까지 내 독서는 읽는 척, 아는 척, 생각한 척,

내 삶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부표처럼 떠다니며 간질일 뿐이었다.

 

이제라도 내 존재의 심연에 닿을 수 있도록 글을 써야겠다.

제대로 된 독서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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