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핵을 비롯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백만 정예군이 대치하고 있는 나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세계 군사력 순위 1, 2, 3위를 다투는

초강대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나라.

북한 대립으로 세계 3차대전 촉발의 직접적인 시발점이 될 수도 있고,

똑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중국과 대만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나라.

 

이것이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요, 지난 70년간 전쟁 중인 국가다.

물론, 직접적인 전투는 거의 없었지만 현재 분명히 정전(停戰) 중이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생각하면 소름 끼치도록 살벌한 이 현실에 대해

지금 관련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전이든 종전이든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지금 사실상 전쟁하고 우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가끔 북한의 국지적 무력도발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때뿐

우리는 곧 일상으로 돌아가고 잊어버리곤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무력으로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은

늘 국가의 안보를 볼모로 독재를 정당화했다.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덮어버리려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우리는 안보에 무감각해졌고

실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게 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웃집 불구경 하듯이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과 목적은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푸틴의 위대한 러시아라는 제국주의적 야심일 수도 있고,

미국과 나토의 우크라이나 포섭에 위협을 느낀 자위적 대응일 수도 있고,

 

보다 근본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라는 공산주의권 블록과

미국, 유럽, 일본의 자유주의권 블록의 지정학적 대립일 수도 있고,

언급한 모든 것이 다 해당 될 수도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의 목적과 별개로 진행에 따른

여러 가지 특이점을 보여줬다.

 

전 세계 모두가 러시아의 압도적인 승리를 전망했지만

이를 비웃듯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한 참 넘도록

2차대전의 처칠까지는 아니더라도 뛰어난 지도력으로 선전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이 단순히 군사력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보여줬고

 

한때 미국과 세계를 양분한 공산주의 교조 국가로서

구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푸틴이 초반 뜻밖의 졸전과

투입한 용병의 리더인 프리고진과 내전으로 자존심을 구기며

실권의 위기에 몰린 듯 보였지만

아직 그의 권력은 탄탄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밖에서 보는 러시아와 실재 러시아는 오해가 있었다.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패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순히 국지적인 영토나 자원 분쟁 때문이 아니고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심이라면 셈법은 복잡해진다.

러시아의 옆에는 같은 목적을 가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존재하고

핵무기까지 소유한 작지만 폭발적인 뇌관을 가진 북한까지 가세하고 있지 않은가.

 

러시아, 중국을 대륙문명이라 하고 미국과 유럽을 해양문명으로 칭하며

이른바 문명의 충돌로 분석하는 지정학적 관점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체제와 국가자본주의 내지 민족주의 간의 가치와 이념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아니면 민족주의 국가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의 유라시아 이상과

미국과 나토의 동진정책 등 제국 간의 지정학적 권력 투쟁이든지

대륙문명과 해양문명과의 충돌이든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가치와 이념의 갈등이든지 간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추구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의

해양문명의 주도적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인가

러시아와 중국이 내세우는 국가자본주의의 민족주의라는 현실적 특수가치인가?

 

혹시 머리는 자유민주주의지만 가슴은 민족주의가 아닌가?

어정쩡한 입장에서 자유민주주의로 확실하게 줄을 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과 대만, 한국과 북한을 뜨거운 감자로 둔 미일 등 초강대국 사이에서,

세계 3차대전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동아시아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내세워야 할 가치와 이념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

 

과연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어차피 모든 나라가 자국과 자민족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데

국가자본주의의 민족주의가 악으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정확히 무엇인가?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형식만 갖추었을 뿐

그 목적이 제대로 실현된 적이 거의 없다.

이론적으로만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는 결국 실현될 수 없는 허구가 아닌가?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서방과 손을 잡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서방과 한 배를 타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가 국가자본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운

러시아나 중국보다 더 나은 나라인가? 낫다면 무엇인가?

그네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형식적 자유 아닌가?

우리가 그들보다 더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가치는 무엇인가?

내 삶의 터전과 가족을 적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과

국가를 지켜야 하는 국민의 의무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무엇인가?

국가는 자신이 국민을 대한 것보다 더 많은 애국심을 국민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똑같은 상황이 됐다면 과연 우리가 저 우크라이나 국민처럼 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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