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꽃을 그려 본다.

어른이 돼서 처음 그려 보는 꽃이다.

 

객관적 실체로 존재하던 꽃이,

인간의 욕망으로 타자화된 꽃이,

 

내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다.

어설프게 태어났다.

 

신기한 일이다.

그림의 본질은 그리는 것이니

 

눈으로 만 번을 보느니

내 손으로 한 번 그리는 게 낫겠지

 

눈에 담아두느니

그냥 도화지에 꾹꾹 눌러 담아두겠네.

 

같은 꽃이나 다른 꽃이다.

못생긴 꽃이다. 제멋대로의 꽃이다.

 

인간의 몸은 참 이상하다.

눈으로 들어온 것과 손으로 나가는 게 다르다.

 

시간이 해결하겠지

눈보다 손이 더 나아진다면

그것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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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

아들이 답한다.

잘모르겠사옵니다. 딱히 되고 싶은 것은 없사옵고.

그저 게임이나 하면서 치킨 하나 시켜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사옵니다.”

 

아들은 성공이란 단어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우리 세상은 성공이란 단어가 사어(死語)가 되지 않았나 싶다.

TV, 영화, 유튜브 등 각종 매체에서는 성공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와 성공을 부르짖고

서점에서는 성공하는 법에 관한 책이 가장 잘 팔리는데

정작 성공해야 할 당사자인 사람들은 성공이란 단어가 낯설다

잊어버린 걸까, 잃어버린 걸까? 


성공이란 무엇인가?

한자로 成功이란 공을 이룬 것이다. 공이란 일이나 업적을 말함이니

간단히 말하면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을 이룬 것을 성공이라 할 것이다.

 

성공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성공이었을 것이고

일제강점기에서는 친일하여 출세하는 것만이 가능한 성공이었을 것이고

개발독재시대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 관료가 되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성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개발 호재가 사라진 저성장과 다원화 시대엔

무엇이 성공의 기준인가?

다를 것은 없다. 여전히 출세하여 고위 관직에 있거나 부를 일구는 것이다.

다만 전에 없던 전문직종이 생겨나 장사나 사업이 아니어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분야가 생겼다는 게 약간 다른 점일 것이다.

 

성공의 기준은 그대로인데 왜 사라졌을까?

그건 성공의 기준에 도달할 방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사라질 줄 알았던

부의 세습이 더 공고화되었고 그 위력이 한층 높아졌다는 것이다.

 

부의 세습은 단순히 돈의 규모만이 아니라 성공에 도달할 기회의 공정성을 훼손하였다.

돈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돈이 많을수록 그만큼 노력은 덜 해도 되는 세상이다.

 

전근대와 가장 극명하게 달라진 점은

돈이 노력을 대체하였다는 것과 돈이 노력을 대체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돈 대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세상.

노력만으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이 점거한 세상.

남들이 내 몫의 파이를 다 가져가는데 보고만 있어야 하는 세상.

신분제의 또다른 모습이 현대에 재현되고 있다.

 

어설픈 경쟁에 뛰어들어 좌절하고 싶지 않겠다는 다짐

사기가 이미 꺾여 싸우기도 전에 져버린 병사의 마음

행여 억지로 싸우다 좌절의 포화에 만신창이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마음

경쟁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회피하는 진정한 속내가 아닐까?

 

그런 현실을 파악한 냉철한 무기력은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스스로 무욕한 자로 자아를 포장하며 근근이 살아가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성공만이 성공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물욕에 푹 빠진 서푼짜리 천박한 인생이라도

 

갖고 싶은 것을 다 욕망하는 걸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고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할 수도 있어야 하고

그런 세태를 욕하며 대붕(大鵬)을 타고 소요유(逍遙遊)하는 자유가 있어야 되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탈속(脫俗)을 내 것인마냥

여린 자아를 보호하며 숨죽인 채 살아야만 한다면

망가진 세상보다 더 불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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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것을 다 욕망하게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부끄러운가?

그런 세태를 욕하며 대붕(大鵬)을 타고

만리(萬里)를 난다 한들 무에 그리 자랑일까?

 

타인의 탈속(脫俗)을 내 것 인양

소요유(逍遙遊)하는 여린 자아를 보듬으려

숨죽인 채 살아야만 한다면

참 한심한 세상이로세.


그러니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로 사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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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 시절 시속 30km만 넘어도 덜덜 떨리다가

익숙해지면 광란의 질주도 불사한다.

 

초보 때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주의력의

거의 100%를 운전 조작에 할애하는 반면에

고수가 되면 주변 환경에 거의 100%의 주의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건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는 말이다.

시야가 넓어진다는 건 예측할 수 있는 미래의 길이가 더 길어짐을 의미한다.

 

이렇듯 익숙함이란 내가 별다른 주의와 힘을 들이지 않고

거의 자동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수준과 같은 말이다.

우리 뇌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최소의 노력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건 최고의 효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함이란 달성하고자 한 목표의 도착점임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낯설고 서투른 것이 익숙해졌다면 이미 터득한 것이다. 목표를 이뤘다.

 

그러나 익숙함에 계속 머물고 있다면 안주하고 있는 것이니 다시 출발 해야 한다.

익숙함을 다시 낯선 것으로 바꾸고 다시 새로운 익숙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야말로 성공의 열쇠이지 않을까?

 

성공이란 기회비용에 다름 아니다.

성공은 교환이다. 시간의 교환이다.

 

친구들과 클럽에 가서 놀 시간과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의 교환이다.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시간과

추운 겨울 찬바람과 싸우며 달리기를 하는 시간의 교환이다.

 

PC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는 한나절의 시간도 쾌락을 안겨주지만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는 봉사의 시간은

다른 종류의 쾌락을 제공할 것이다.

주관적 가치 있는 시간과 가치 없는 시간의 교환이다.

내게 필요한 시간과 필요 없는 시간의 교환이다.

 

, 시간은 등가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유흥을 즐기는 서너 시간은 내일에도 같은 가치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내일 시험을 위해 오늘 공부하는 몇 시간은

결과에 따라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성공의 종류와 삶의 방식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걸 얻는 방식은 늘 동일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똑같이 내게 부여된 시간의 교환을 어떻게 하는가이다.

 

성공은 익숙함으로의 전진과 시간의 교환이다.

성공은 익숙함에 얼마나 근접했느냐와

시간을 무엇과 교환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 내가 성공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제자리거나 퇴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지금 내가 무엇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시간을 어디에 쏟고 있는지 계산해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질구레하고 의례적인 일상으로 하루가 꽉 차 있다면

내일도 그저 그렇게 똑같은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고

어떤 시간과 다른 어떤 시간을 바꿀 것인지

그 가치와 무게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고민한 만큼 나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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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휴일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영어를 시작했다.

그러다 불현듯 종일 영어에 몰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엔 여건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했지만

주말엔 오롯이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학창 시절에도 하지 않던 짓을 이제 와 새삼스럽게 하는게 우습기는 하지만

오직 영어 공부 만을 목표로 공부한다면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 계속 침대에 누워서 영어만 했다.

 

처음엔 다소 지루했지만 익숙해지다 보니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chapter30분쯤 하고 잠깐 쉰 다음 계속했다.

결과는 총 8시간 16chapter, 230여개 문장을 했다.

 

하루가 24시간임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적은 시간이고

평소 2~3시간 정도 한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시간이다.

어쨌든 하루종일 몰입한다고 해도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는

대충 이 정도라는 걸 깨달았다.

 

하루에 14시간, 일 년이면 5,000시간을 하겠다고 엄청난 계획을 세울 수는 있겠지만

감옥의 독방에 갇혀 어차피 공부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거나

1년 뒤에 당장 유학이나 이민을 떠나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 한들 하루종일 영어에만 몰두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역시 생각과 현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물론 그냥 편하게 흘려듣기만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대신에 공부 효과는 장담 못한다)

집중해서 따라 하는 것을 하루 내내 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독종이 아니면 힘들 것 같다.

 

그냥 리스닝만 주야장천 한다고 귀가 뚫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해석할 수 없는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효과가 없다고 한다.

흘려듣기는 언뜻 공부를 많이 한 듯 착각을 일으키지만

실제 효과는 미지수다.

 

영어에 대한 노출시간을 늘려 귀가 뚫리면 말은 저절로 된다고들 하는데

어차피 말은 입으로 해야 되는 것이기에

그냥 듣기와 말하기를 동시에 훈련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공부방법도 중요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어차피 목적은 명확하니 내 갈 길로 가야겠다.

 

온종일 영어만 듣고 말한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견딜 만큼 괴로운 일도 아니기에

직장인이라면 주말이라도 몰아서 몰입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하루 1시간씩 30일간 하는 것 보다

하루 10시간 3일이 훨씬 낫다고 한다.

초반엔 강한 집중과 몰입이 중요하니

앞으로 휴일엔 영어에만 몰입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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