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생활 지침서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4
캐롤린 매클러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은 빼빼마른 체형과 성형미인을 조장한다. 특히 여성의 날씬함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뚱보가 살아가는 일은 시선처리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몸둘바를 모르게 한다. 여성을 성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성적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비일비재한 성폭력 사건에서 우리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도가니' 열풍으로 장애자의 인권과 성폭력 사건에 많은 이들이 분노한다. 누구보다 똑똑한 인재들이 모였을 사법부는 돈 있는 자들의 성폭력 사건에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다. 또한 권력자들의 오만한 행태에 우린 언제까지 침묵만 할 것인지...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가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조금은 드러난 듯하다. 선거의 결과로 부도덕한 사회와 도덕적 불감증에 변화의 바람을 기대해본다.


이 책의 표지는 '뚱보 생활 지침서'라는 내용을 짐작키 어렵게 도발적이다. 표지만 보곤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몰라 우리 아이에게 권하기를 망설였었다. 도입부에서 보여지는 버지니아와 프로기의 애정행각이 좀 거슬렸던 것도 학부모 마인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청소년 성문제만 다룬 건 아니고, 자기 인생의 당당한 주인공이 되는 정체성 찾기다.


우리막내가 중1때 읽고는 "미국 애들 정말 조숙한 것 같아.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열다섯인데 이렇게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다니 놀라워! 그래도, 버지니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게 펼쳐나가는 결말이 좋았어!" 라고 소감을 피력했었다. 이제 고1이 된 막내는 토욜에 기숙사에서 돌아와 읽을 책을 찾다가, 새로 나온 이 책을 보더니 읽은지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거린다며 다시 펴들었다. 아이가 3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건 그만큼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좋았다는 반증이다.^^ 두번째 읽고 나서는 당당한 버지니아처럼 자신의 삶도 당당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딱 짚어서 말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공 버지니아는 열다섯 살 고등학교 1학년이다. 우리 큰딸도 고등학교 1학년때 중학교보다 넓은 학군에서 만난, 반 친구들의 서슴없는 애정표현과 자랑하듯 성 경험을 얘기하는데 충격을 받았더랬다. 아이는 역겨워하며 그런 이야기를 버젓이 하는 것에 더 놀랐고, 내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미국 고등학생들의 애정표현 수위에 충격 받았던 느낌 그대로였다. '뚱보생활 지침서'에 묘사된 청소년들의 성과 애정행각, 애정표현 수위에 대해서도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책이다.


이 책에서 새삼 놀란 것은 버지니아 부모가 자녀보다 부부의 삶에 우선한다는 것과, 그러면서 자녀에겐 부모의 결정에 따르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나 역시 사회적인 규정과 부모의 뜻을 거부하던 청소년기를 거쳤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그걸 요구하는 엄마가 되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청소년 심리학자인 버지니아 엄마는 완벽한 가정으로 보이는데 신경 쓰면서, 정작 자녀들의 소리엔 귀기울이지 않았다. 엄마가 제시한대로 따르도록 요구해 큰딸과 마찰을 일으켰고, 자랑스러웠던 아들은 술에 취해 여학생을 강간한다. 부모가 쌓은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하지만 부모는 그 소리에 정직하지 못하고 없었던 일처럼 가장하고 살기 바란다. 우상이었던 오빠 행동에 충격받은 버지니아를 배려할 여유는 없었다.


다이어트를 하던 버지니아는 미친듯 먹어댔고 자신을 학대한다. 오빠 바이런이나 엄마 아빠 누구도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나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 놓은 오빠를 용서할 수 없었던 버지니아는, 섀넌 가족의 초대로 시애틀에 가서야 상처를 위로 받는다. 오빠가 애니 밀스에게 한 짓이 자기에게 한 짓이 아니라는 것과, 오빠는 완벽하지도 않았고 항상 자기를 무시했다고 깨닫는다. 시애틀에서 섀넌과 자유롭게 지낸 후, 버지니아는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 망설이던 애니 밀스를 만나 오빠의 잘못을 사과하고, 드디어 남들의 규정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깨닫는다. 애니 밀스의 말을 듣고 자기 삶의 해답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만큼 내 인생이 망가지지는 않았어. 그가 나를 지배하게 두진 않을 거야."
"무슨 뜻이에요?"
"앞으로 미래의 내 인생은 내게 달려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선택권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거야. 내가 선택권을 갖는 것."(266쪽)  

 
버지니아는 뚱보지침으로 '다이어트 조언 목록'을 적던 것을 멈추고, 비록 뚱보일지라도 '쉬리브스' 가족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행동한다. 시애틀에서 눈썹에 피어싱도 하고 옷도 제맘대로 고르는 버지니아가 못마땅하던 엄마도 결국 인정한다. 학교 생활도 재미없고 친구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던 버지니아는, 웹사이트를 추진하며 친구들과 소통하는 중심인물이 된다.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기 인생의 당당한 주인으로 사는 버지니아에게 박수칠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청소년들도 남의 시선이나 규정에 매이지 말고, 뚱보라도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라는 '뚱보 생활 지침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1. 성에 관련된 어떤 행동도 비밀로 할 것. 애정을 드러내지 말 것. 카페테리아에서 키스하는 흉내를 내지 말 것. 복도에서 쪽지를 돌리지 말 것. 공공장소에서 막대 걸레를 타지 말 것.

2. 남자 친구와 몸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 것. 그냥 정면으로 부딪힐 것. 둘 다 그 사실을 아니까, 몸에 대해 탄식해서 “무슨 소리야? 넌 전혀 안 뚱뚱해 보여.” 같은 거짓말을 하도록 남자 친구에게 압력 넣지 말 것.

3. 날씬한 여자들보다 훨씬 더 뛰어날 것. 남자와 대화할 때 저속한 말을 사용해서 후추 가루를 뿌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 몸매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다른 성적인 것이라고 더 뛰어나야 함.

4. 절대로, 꼭, 무슨 일이 있든지 관계에 대해 밀어붙이지 말 것. 남자들이 이런 얘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러니 남자를 편하게 해 줄 것. 영화를 보러 가거나 학교 댄스 파티에 갈 때도 마찬가지. 최소한의 선만 유지할 것. 소를 사지 않고도 우유를 마실 수 있게끔 할 것.
 


아줌마인 내게는 버지니아가 적었던 다이어트 조언 목록이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의 이목이 아닌 내 건강을 위해 버지니아의 뚱보지침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겠다.^^


다이어트 조언 #1 배가 고플 때마다 위가 가득 차도록 생수를 마신다.
다이어트 조언 #2 한 입 먹을 때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랫동안 입 안에 넣고 씹는다
다이어트 조언 #3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매니큐어를 집어라. 바르는 동안 먹겠다는 갈망이 사라질 것이다.
다이어트 조언 #4 몸의 매력 없는 부분을 운동하기 위한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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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11-02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 팁, 다 그럴 듯 한데요~
1번은 좀 거시기해요.
위가 가득 차도록 생수를 마시다가 위의 크기가 늘어나 버리면 어쩌죠~(,.)

잘 지내시죠?
완연한 가을이예요~^^

sslmo 2011-11-02 15:15   좋아요 0 | URL
참, 대문 사진 바뀌셨네요?
좋아요~^^
제가 한동안 안치환이 부른 '풍경달다'라는 곡을 끼고 살았었거든요.
그 곡은 정호승님이 가사를 쓰신 건데...거기 나오는 절은 운주사였던 것 같아요.
선암사라면 요번 유홍준 님 '문화유산답사기6'에 나온 그 절인가요?

순오기 2011-11-03 10:45   좋아요 0 | URL
오늘은 햇살도 좋은 가을날이네요.
운주사 풍경도 2007년에 보았고, 선암사는 올가을에 세번이나 갑니다.
아래에 선암사 사진 줄줄이 올렸는데~ 못 보셨나요?^^

잘잘라 2011-11-0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 조언 #2...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랫동안 입 안에 넣고 씹는다!!!
튼튼한 턱관절과 이빨,부터 갖춰야겠군요. 흐흣.

뚱보 생활 지침서 2,3,4는, 듣기는 좋은데 막상 실철하려면 정말 뼈를 깎는 아픔이 따른다는 걸, 아시잖아욧.ㅠㅠ
2번은 실천하는건 문제 없는데 그렇게 했을때 '효과'는 미미하고,
3번은 남자들 '의외로' 논리적이고 역사적인 근거를 막 들이대기때문에 '대화 상대' 하기가 어렵더라구요. 늘 감정이 앞서고(아니 감정'뿐'이고) 역사 지식 자체가 얄팍한 저로서는.. ㅠㅠ
4번은 일단 '머리' 보다 '몸(손,발)'을 먼저 쓰는 저라서 힘들어욧.

그래도 마지막 말은 정말 마음에 와닿아요. 그렇죠. 맞죠.
우유를 마시려고 꼭 소를 살 필요는 없는 거~죠!!! ^^

순오기 2011-11-03 10:48   좋아요 0 | URL
다이어트 지침처럼 오래오래 씹으면 밥을 덜 먹어도 포만감이 채워지던데~
일부러 헤아리면서 씹지 않으면 그냥 꿀떡 넘어가버려요.^^
똥보 생활 지침은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듯... 소를 사지 않아도 되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ㅋㅋ

마녀고양이 2011-11-0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뚱보 생활 지침서라,,,
코알라가 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조금 받는지라 먼저 눈독이 들여지네요.
다이어트 조언,,, ㅠㅠ,,, 그래두 맛난게 맨날 먹고 싶으니, 먹으면서 적당히 빠지는 그런거 그런거 나왔으면 좋겟어요. 언니, 요즘 감기 넘 지독해요, 건강 챙기셔염!

순오기 2011-11-03 10:51   좋아요 0 | URL
맛난 거 먹고 싶으면 먹어야죠.ㅋㅋ
그래서 요즘엔 일주일마다 확인해도 몸무게가 100그램씩만 줄지만, 늘어나지 않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감기와 맞짱뜨지 말고 가까이 올 조짐이 보이면 관리를 잘 해서 그냥 보내버리지...4년째 감기를 모르고 사는 순오기. 하하~ 요렇게 자랑질하다 덜컥 찾아올라~~~~

2011-11-03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11-0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봐도 그렇고 확실히 식습관은 심리 상태와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청소년기에는요.
막내따님이,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로 한 동기는 무엇일까요?

순오기 2011-11-03 10:53   좋아요 0 | URL
식습관과 심리상태~ 나만 봐도 분명히 관련이 있는 거 같아요.ㅜㅜ
우리막내 기숙사에 들어가서 살이 좀 쪘다고~~~~~그래서 이 책을 다시 봤을거에요.ㅋㅋ

머큐리 2011-11-03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안은 전부 말라깽이들만 있어서 말이죠...큰 아들은 어떻게 하면 살을 찌울까 고민하는 중이에요..(돌 맞으려나?) 햄버거, 콜라를 맘껏 먹게 해달라고 시위죠..살쪄야한다고...^^;

순오기 2011-11-03 10:54   좋아요 0 | URL
아~~~~ 돌이 어디 있지? 두리번두리번~~~~ ㅋㅋ
콜라와 햄버거, 피자, 스파게티, 짜장면과 라면~~~~ 고칼로리 식품만 먹게 하세욧!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단다 I LOVE 그림책
릭 윌튼 글, 신형건 옮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 보물창고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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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시리즈 세 권을 모두 가진 독자는 행복하다.
이제 막 첫돌이 지난 조카의 아들을 위한 이모할머니의 선물로 구입했다.
시리즈 1권부터 성장에 맞춰 캐릭터 인형과 같이 선물했고,
이번엔 화이트 보드와 같이 선물하면 아이 엄마가 더 좋아할까?^^

'첫돌을 맞이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아가 -----------에게'
선물을 받을 아이 이름을 쓸 수 있게 한 센스가 돋보인다.
'강*구'라고 이름을 꼭꼭 눌러 써서 보내야지.^^

사랑스런 그림책!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의 매력에 빠져든 매니아를 위한 3탄은
아기의 탄생부터 첫돌을 맞기까지 성장 단계의 감동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아기가 처음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경이로웠던 기억을 되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출생 첫 날의 감동이 떠오르는 장면~~ 우리 아기로 대체해도 다르지 않다.

갓난 아기는 안아주는 것도 조심조심~
나도 안아보겠다고 손내미는 어린 형에게 아기를 맡기기는 불안하지만
형제 자매의 교감을 위해선 꼭 치뤄야 할 일이다.

아기에게 첫 뽀뽀도 해야지~~~~ 쪼옥!
그냥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는 그림이다.
사랑해 시리즈 첫번째 주인공은 이제 형이다.^^

아기가 혼자 앉아 있는 걸 보니 제법 자랐다.
형에 이어 누나의 등장~~ 두번째 책에서 만난 주인공이라 더욱 반갑다!^^

아가야~ 까꿍!
형과 누나와 함께하는 아기는 행복하다.
쪼옥~ 방긋~ 까꿍~
아기와 놀아주는데 많은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드디어 아가가 기어간다.
앞에 있는 공을 잡으러 앙금앙금~~~~~ 기어가는 아가도 사랑스럽다.
배경색으로 거사를 치루는 아가의 진중함이 표현되었다.

잇몸이 간지러운지 자꾸 손가락을 빨던 아가에게 반짝 새 이가 돋았다.
첫번째 책에 이어 세번째 책도 윗니가 먼저 나는 것으로 그려졌다.
하하하~ 1963년 런던에서 출생한 캐롤라인 제인 처지도
나처럼 갓난 아기를 키운지가 오래돼서 윗니가 먼저 나는 것으로 착각했나 보다.

내가 셋을 키워서 아는데, 아가들은 아랫니부터 나온다.
우리 막내 아랫니 두 개가 쑥 올라온 사진으로 확인하시라.
한참 이쁜짓 할 때라 윙크하는 모습이다.ㅋㅋㅋ

맨 처음 '엄마'라고 말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그 기분을 엄마들은 안다~~ ^^

아장아장 걸음마~
첫발을 떼고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딛을 때의 무한감동도, 아는 사람만 안다.^^
뒤뚱뒤뚱~ 흔들흔들~ 배틀배틀~
꽈당~~~~~ 넘어지는 수순도 거역할 수 없다.

한 해 동안 쑥쑥 자란 아가의 첫돌이다.
성장의 통과의례를 마치고 돌을 맞는 우리 아가 장하다.
케익 앞에 셋이 앉으니 꽉 차는 느낌~ 역시 기본은 셋이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한 일 중에 제일 잘 한 일은 삼남매를 낳은 일이라고 말한다.
6년에 셋을 낳아 10년 육아기간을 바쳤지만, 그 후엔 저희들끼리 알아서 다한다.
하나는 외롭고 둘은 찬반 결론을 못내고, 역시 셋이라야 판정을 낼 수 있다!ㅋㅋ

세상 누구라도 듣고 싶은 말이고,
언제나 아가에게 들려줄 말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가야,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음을 기억하렴!

사랑해 시리즈 3권 뒤표지에는 똑같은 말이 쓰여 있다.
'귀엽고 예쁜 우리 아가를 무릎에 앉혀 놓고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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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11-0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셋이어서 좋은 기쁨을 요새는 누리는 집안이 많지가 않아요. 우리집도 딸 셋!! 아들 딸 균형이 안 맞는 게 다소 아쉽지만 그래도 자매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순오기 2011-11-01 16:25   좋아요 0 | URL
셋이어서 누리는 기쁨이 많다는 걸 외동이나 둘 뿐이면 모르겠죠.^^
한비야씨는 언니 없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는데요~ㅋㅋ

희망찬샘 2011-11-02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저도 윗니 그림 보고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봤지요. 우리 아이가 이가 처음 날 때, 마치 새싹이 돋아나는 느낌이 들었었거든요.

순오기 2011-11-02 14:16   좋아요 0 | URL
무심히 지나면 윗니 아랫니 어떤게 먼저 나는지 잊기 쉽지요.^^

잘잘라 2011-11-0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 어머!!! 어떻게 해요. 막내 어릴때 사진 완전 귀여움!!!
그리구 완전 그림책 아가랑 붕어빵!!! 흐흐흣
첫째는 일찍부터 안경을 썼네요^^ 순오기님 어릴때랑 많이 닮았을것 같아요.(사진으로만 뵈었지만^^;;)
그러나 저는 '기본은 넷!'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ㅋㅋ(저 어릴때 사진 구도가 생각나서요^^)

순오기 2011-11-02 14:17   좋아요 0 | URL
우리 막내 어릴 때 사진 보면 정말 귀여워요~ 제 언니가 정말 이뻐했어요.ㅋㅋ
우리애들 셋 다 일곱살에 안경 썼어요~ ㅜㅜ
저도 한때는 둘 둘 해서 넷이라야 모든 촌수가 성립한다고 주장했지만, 서른 여섯에 막내를 낳고나니 힘 딸려서 셋으로 마감했어요.ㅋㅋㅋ

마녀고양이 2011-11-0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이쁘당........... 특히 중간에 있는 사진이!
훈훈해요!

순오기 2011-11-03 10:55   좋아요 0 | URL
우리 막내가 어릴 때 많이 귀여웠지요~~~ ㅋㅋㅋ
 

  선암사는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내가 답사를 다니기 시작한지 30년이 되도록 한해도 거르지 않고 다녀온 남도답사의 필수처다. 그러나 선암사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딱 집어 말하기는 참으로 힘들다. 따지고 보면 미술사적 유적으로 뛰어난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고, 가면 마음이 마냥 편해지는 절집이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 6, 147~148쪽)  

유홍준 선생님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일편단심 선암사, 그 사랑과 매력을 쏟아놓았지만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도 해마다 선암사에는 꼭 간다고 하셨다. 나는 광주살이 20년이 넘도록 선암사엔 가보지 못했는데, 올 가을엔 뭔 복인지 세 번이나 가게 생겼다. 이미 10월 22일에 한 번 다녀왔고, 11월 13일과 19일에 또 가야 한다. 내가 소속된 독서회의 가을 여행을 모두 선암사를 잡았기 때문이다. 10월과 11월 토론도서는 당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이다. 

 

우리 아이들 셋 모두 졸업한 중학교, 하지만 엄마는 독서회를 졸업하지 않아 가을 여행에 동행했다.
답사를 주관하지 않아도 되는 부담없는 일정이라 더욱 좋았다. ^^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손꼽히는 선암사 진입로~~~~  주말 산행에 나선 사람들은 공기의 다름을 느끼며 느긋하게 올랐다.
간밤에 내린 가을비로 땅은 적당한 습기를 머금어 걷기에도 좋았다.

 

붉은 단풍이 산사를 휘감지는 않았지만, 계곡의 푸름 속에 혼자 얼굴 붉힌 단풍이 반가웠다. 

  

우리 답사 자료집 내용을 살짝 옮기면...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선암사는 태고종 유일의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써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종합수도도량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클릭하면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다.

 

선암사에서 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았다. 순천군청에 미리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을 읽으면 선암사에 대해 알 수 있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책에 나오지 않은 것도 알게 된다.
선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게 '뒷간'인데, 왜 뒷간이 유명하게 되었는지 그 내력을 설명해주셨다.
오래전에 옛이야기 책에서 읽은 내용을 해설사님의 설명으로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났다.

전국의 스님들이 모여 거짓말대회를 했는데, 제일 대단한 거짓말을 한 순서대로 1.2.3 순위를 매겼단다. 
예산 수덕사 스님은 신도가 많아 법회가 어찌나 많은지 지금도 열리는 중이고...
구례 화엄사 스님은 솥단지가 엄청나게 커서 지금도 밥을 푸고 있는 중이고...
순천 선암사 스님은 뒷간이 바닥이 깊어서 아침에 눈 똥 떨어지는 소리가 여태 들리지 않는대나~~ ㅋㅋㅋ 

그새 일주일이 지났다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날 열심히 메모하던 회원에게 전화로 알아봐서 수정했다.^^

 

선암사 오르는 길에 우뚝 솟은 나무~

 

선암사 진입로 돌기둥에 8.15 해방 후 조선불교 초대 교정을 지낸 박한영 스님이 지은 게송 댓구를 새겨 놓았다.
유홍준 선생님의 해설에 의하면 이런 뜻이다. 

放出曹磎 一派淸   방출조계 일파청   조계(육조혜능)스님이 나타나자 온 물결이 맑게 되었고
劈開南岳 千峰秀  벽개남악 천봉수     남악(회양)스님이 등장하자 일천 봉우리가 빼어나게 되었네. (189쪽)

  

위 글은 돌기둥 뒷면 사찰 쪽에서 보이는 글이고, 아래는 돌기둥 앞면 진입로 쪽에서 보이는 글귀로 사찰의 이름이다.

   

선암사로 들어서면 널직하게 자리한 승탑밭이 나온다. 선암사에서 첫번째로 만나는 문화재다. 
우리가 흔히 부도라고 부르던 것, 지금은 학계에서 용어를 승탑으로 통일해 가고 있다고... 

승탑이란 고승의 사리탑이다. 이 절에 주석했던 스님이 열반에 들면 다비를 하고 수습한 사리를 모신 것으로, 승탑은 산라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말여초의 승탑은 대부분 팔각당 형식으로 경내 뒤쪽에 사당처럼 모셔져 있다. 선암사에도 고려시대에 제작된 팔각당 승탑으로 무우전 승탑, 대각암 승탑, 선조암터 승탑 등 모두 3기가 있다. (180쪽)

해설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앞 줄 왼쪽에서 세번째 비스듬히 세워진 승탑은 선암사를 위해 평생을 바친 상월(?)스님이 죽어서도 선암사를 지키겠다며 거처했던 대승암을 바라보게 하라 유언해서 그렇게 세웠다고 한다.

 

세번째 승탑은 다른 각도로 세워진 게 확연히 보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에 실린 사진은 내가 찍은 것과 반대쪽에서 찍은 듯하다. 

 

선암사의 제1경이라 불리는 승선교의 무지개 다리와 그 너머로 보이는 강선루까지~
유홍준 선생님은 승선교 위로 사람들이 많이 다녀야 튼튼한 승선교를 보존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밟고 다녀야 흙이 다져져서 해빙기에도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던가... 하지만 계곡 옆으로 넓은 길을 내서 굳이 승선교를 건너야 했던 ㄷ자 길이 유명무실해져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선암사 가시는 분들~ 꼭 승선교로 걸어가세요!!

  

무지개 다리 중심부엔 멋지게 조각한 용머리가 있어 중심추 역할을 해서 다리의 균형이 잘 맞는다고 한다.
보성 벌교의 무지개 다리도 선암사 스님들이 놓았다고 한다. 


승선교에는 전설이 있는데, 숙종 24년(1698년) 호암대사가관음보살 뵙기를 기원하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였다.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홀연듯 자신을 구해준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승선교라고....
 

 

 

책에 나온 사진처럼 승선교 너머로 강선루가 보이게 찍고 싶었지만, 계곡으로 내려가야 가능한 일이라 그냥 강선루만 찍었다.

  

그래도 강선루 돌기둥 하나가 계곡에 빠져 있는 것은 잘 보인다.^^

 

강선루를 들어서는 앞모습과 강선루를 지나쳐서 찍은 뒷모습~~

 

강선루를 지나면 삼인당이 나온다. 선암사 동쪽 기슭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물을 모아 채우는 연못으로, 여름 장마철에 큰물이 오면 일단 여기에 가두었다 계곡으로 흘려보내 홍수를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데, 가운데 섬이 있어 연못이 더 커보인다고...

 

삼인당을 지나면 송광사와 선암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길이 송광사 길인데 여기서 걸으면 약 4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19일 일정은 송광사까지 가볼 예정이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 오르막을 오르면 바로 선암사가 나온다.

 

우리 중학생들이 관심을 보였던 고목, 다들 핸드폰을 치켜들고 인증샷을 남기는 모습~

   

드디어 선암사 일주문이다. 보통 일반적인 사찰 일주문과 달리 두 줄로 써 있다.
조계산 선암사
또 다른 특징은,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의 호위를 받기 때문에 불법의 수호신 사천왕이 모셔진 천왕문도 없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범종루가 나온다.

 

누각 아래에는 기념품 판매대가 있어 좀 심란스럽고, 위에는 범종과 법고, 운판과 목어가 있다.
불사중이라 조용한 산사의 맛을 느끼기엔 아쉬움이 많다.

 

 

대웅전 현판에는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세도정치의 극치를 확인할 수 있다.
보이나요? 순조의 장인이었던 안동김씨 김조순의 이름이~~~~ ㅠㅠ

  

대웅전 옆에 지장전이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10왕과 더불어 애쓴다고....
무릎 위 장부에 뭔가를 기록하는 이가 염라대왕이다. 

   

선암사는 선암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수령 600년이 넘는 토종 홍매화를 비롯 청매와 백매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선암사를 보려면 봄에 가봐야 되겠다.
무우전 담장길엔 홍매가 피고, 그 뒤편엔 백매가 핀다던가...-
 

전각이 많아 다 돌아보지 못했고, 뭘 봤는지도 헷갈린다. 가기 전에 답사기를 한 번 더 꼼꼼히 짚었으면, 달마전과 칠전선원의 4단 석조를 봤을텐데~~~ 다녀와서 책을 다시 읽고 안내도를 확인하니 비로소 동선이 파악되고 다음에는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감이 잡힌다.  


무우전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 선암사를 감싸고 있는 조계산의 느릿한 능선을 넋놓고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선암사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196쪽) 


유홍준 선생님은 답사기에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무우전에 스님의 허락을 얻고 들어갔다고 자랑(^^)하셨지만, 나는 유홍준 선생님이 부럽고 배아프지 않다.
왜냐면 나도 13일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무우전에 들어가 보는 것을 물론이고, 안내와 해설까지 받게 됐으니까!
어떻게???? 궁금하면 접힌 부분을 클릭하시라~ ^^ 

>> 접힌 부분 펼치기 >>



정조는 후사가 없어 선암사 눌암대사에게 100일 기도를 부탁하여 순조를 얻었다고 한다.
100일 기도를 드렸던 산신각, 그 정면에 안치된 불화는 하체가 물고기라고 했던가, 가물거린다.ㅜㅜ

  

후에 순조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대복전이란 친필 현판을 하사하였다.
대복전 현판, 큰 대 자 위에 어필(御筆)라고 써 있다.

 

정호승 시인이 노래한 선암사, 해우소와 소나무를 돌아보기 전에 시를 읊어보는 건 기본!^^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수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해우소 앞의 소나무~
한 줄기에서 뻗어나와 한가지는 하늘로 솟아 부처님을 떠받드는 연꽃처럼 다섯가지를 벌리고 서 있고,
한가지는 땅과 나란히 누워 몸을 낮추는 하심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어, 와송으로도 불린다.

  

학생들은 코를 찌르는 냄새에도 코를 싸잡고 문제의 해우소에 들어갔는데, 정말 냄새가 장난 아니었다.  
선암사에서 제일 유명한 해우소와 소나무 앞에서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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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더 운이 좋았던 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영산재-석가모니 부처님때 영취산에서 행산 설법회상인 영산회상을 재현하는 법회이며,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를 볼 수 있었다. 대웅전 앞에 탱화를 걸고, 전날 비가 내렸기 때문인지 진행중인 불사 때문인지 휘장을 쳐 놓아서 사진은 별로지만, 스님들의 바라춤도 보기 힘든 영산재를 온전히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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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에 실린 사진처럼 대웅전과 삼층석탑이 나오도록 전면에서 찍을 수는 없어서


 

요렇게 삼층석탑을 따로 따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선암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마주보는 자리에 만세루가 있고, 그 앞이 대웅전이다.
만세루 뒤편 위쪽에 장중한 예서체의 '육조고사' 현판은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의 글씨로, 그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다. 

 

  

 

영산재를 지켜보다 12시가 되어 점심공양을 하러 갔다.
스님들 먼저 드시고 일반인은 12시부터 먹을 수 있는데, 선암사에 온 누구라도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40명이나 되는 단체라 사전에 연락을 드리고, 식재료비를 생각해 1인당 3천원씩 셈했다. 
길게 늘어선 줄, 벗어 놓은 신발만 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암사의 점심공양에 동참하는지 짐작이 된다.

 
 
 
   


배식 차례를 기다리면서 주방에 계신 스님께 여쭈었더니, 평일은 200명 주말엔 4~500명 분량의 음식을 준비한다고 했다.
사진엔 영산재 음식을 준비하는 보살님이 찍혔지만, 스님 네 분이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죽어난다'고 하셨다.

감사의 마음으로 한 알의 밥알도 남기지 않고 먹은 후엔, 각자 식판을 들고 나가 깨끗이 씻어 마른 수건으로 닦았다.
학생들은 줄서서 기다렸다 식판을 씻은 일이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돌아오는 버스에서 후기에 설거지 얘기를 많이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라서 그랬는지 얌체라서 그랬는지 물 속에 식판을 담가두고 간 사람도 꽤 있었다.
스님들이 음식 준비만으로도 벅찬데, 설거지까지 하게 하다니~~ 점심 공양하신 분들은 꼭 설거지까지 끝내시길...

   

점심공양까지 끝내고 돌아 나오는 길~~~

 

 

선암사에 가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600원
단체 30인 이상이면 어른 1,3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500원이고, 순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11월 13일과 19일에는 못 봤던 곳을 꼭 챙겨서 보고 '늦가을, 선암사' 페이퍼를 써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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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번째 선암사 답사
    from 엄마는 독서중 2011-11-15 02:27 
    어제 11월 13일 일요일, 선암사에 또 다녀왔어요.고등학교 학부모독서회원 8명과 도서관장님과 사서선생님, 국어, 영어, 과학샘까지 13명의 조촐한 나들이였지만'완전 대박!'이라고 소리칠만큼 행복한 가을 여행이었어요.미리 자랑했던 것처럼 교무스님(대해스님)의 안내를 받은 건 물론이고,주지스님(경덕스님)처소에서 선암사 스님들이 손수 덖은 차를 대접받았거든요.제가 찍은 사진은 아직 디카에 그대로 있어서, 우선 학교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을 캡처해 올립니다.주
 
 
조선인 2011-11-01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무릎팍의 힘은 대단한 듯. 최근에 관광객이 급증했다는 얘기를 듣긴 들었지만... 끼야...

순오기 2011-11-01 16:28   좋아요 0 | URL
무릎팍 덕분에 젊은이들이 유홍준 선생님을 알고 답사기를 들게 되었으니 대단하죠.
페이퍼에 추가하겠지만~ 점심공양을 평일에는 200명 주말에는 4~500명이 드신다네요.
그 많은 음식을 비구스님 네 분이 다 준비하느라 죽어난다고 말씀하셧어요.

소나무집 2011-11-01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번 갔는데...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태어나 태백산맥을 잉태한 곳이기도 하죠.

순오기 2011-11-01 16:29   좋아요 0 | URL
조정래 작가님 아버님이 선암사 주지스님이셨다죠~ 대작가와 동시대에 산다는 건 우리의 복이고요.^^

2011-11-01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2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11-11-0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와 1박 2일 코스로 정해 놓고 시간만 들여다 보고 있는 곳입니다.ㅜㅜ

순오기 2011-11-01 16:29   좋아요 0 | URL
남도에서 1박 2일~ 좋지요!!

차좋아 2011-11-0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요.막연한 생각으로 작고 아담한 작은 절이라 상상했었거든요.
사람도 만네요 ㅎㅎㅎ 가보고 싶다^^

순오기 2011-11-01 16:33   좋아요 0 | URL
예,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부딪히기도 하죠.
전각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어 공간의 여유로움은 조금 아쉽더군요.
일반에 공개된 곳을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꽤 걸려서 다 돌아보지 못했지만 13일과 19일에 또 가니까 괜찮아요.^^

잘잘라 2011-11-0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비 온 다음에 숲에 가면 정말 좋은 냄새 나고 온 몸이 구석 구석 깨끗해지는 느낌 나요.
가을비 내린 다음 날 선암사 사진, 사진에서도 나무 냄새가 막 나는 느낌이예요.
좋~습니다요^^

순오기 2011-11-01 16:34   좋아요 0 | URL
아아~ 비 온 다음에 숲길 산책은 정말 좋아요!!
온 몸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고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

무스탕 2011-11-0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 본 내용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다는건 신기한 일이에요 :)
전 책에서 본것이 별로 없는대신 알라디너님들의 페이퍼에서 더 많이 보고 배우고 있어요 ^^

순오기 2011-11-01 16: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책에서 본 것들을 온 몸으로 확인하는 기쁨!!

마노아 2011-11-0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가을 정취 물씬 느껴봅니다. 선암사,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세 번 다녀오면 다음 설명은 순오기님이 직접 하셔도 되겠어요.^^

순오기 2011-11-01 16:36   좋아요 0 | URL
하하~ 페이퍼 쓰느라 복습하니까 도움이 되네요.
세번 다녀오면 반 해설사 흉내는 낼만 할까요?ㅋㅋ
 
톤즈의 약속 - 이태석 신부 이야기 담쟁이 문고
이병승 지음, 한수임 그림 / 실천문학사 / 2011년 8월
품절


지난 토요일은 특별한 나들이를 했다.
당신의 삶으로 우리를 울게 한 쫄리, 이태석 신부님이 잠들어 계신 담양천주교공원묘지에...

이병승 작가님이 쓴 <톤즈의 약속>을 그분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신부님의 삶에 감동받은 많은 이들이 당신을 그리워 한다는 말씀도 드리고...

<톤즈의 약속>에 기록된 말씀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도 싶었다.

'신부님은 담양천주교공원묘지에 모셔졌다.
신부님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164쪽

수단에서도 가장 열악한 마을 톤즈의 돈 보스코 미션 공동체에서
신부님은 의사이고 선생님이며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주치의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영화처럼 이태석 신부님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가 아니라
어린이를 만나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여긴 신부님이 만난 한 소년의 이야기다.
소년 병사 마뉴의 슬픔에 울컥 눈물이 나고 신부님의 따뜻함에 위로받기도 한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소년은 한밤중 들것에 실려왔고 신부님은 상처에서 총알을 빼냈다.
소년은 신부님이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신부님 이름은 이태석인데 세례명이 요한이라 존 리(John Lee)라서 부르기 편하고 친근하게 쫄리 신부님이라고 소개했다.
말하지 않는 소년을 골치아픈 말썽쟁이 꼴통이라 부르거나 모른다는 뜻으로 몰랑이라 부른다 하자,
소년은 겨우 '마뉴, 열세 살, 아홉 살부터 군인이었다'고 답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소년의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것일까...

돈 보스코 공동체의 제임스 신부님이나 마리아 수녀님이 내보내라고 했지만
쫄리 신부님은 마뉴를 볼 때마다 빚진 기분이 들어 특별하게 생각했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거나 장난이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아이
공동체 아이를 때리고 귀중한 약품을 훔쳐내어 파묻어 버린 마뉴.
신부님은 마음의 상처가 낫도록 마뉴의 속에 깃든 사랑을 꺼내주고 싶었다.

총이 세상에서 제일 세다고 생각하는 마뉴에게 신부님은 말한다.
"총은 사람을 죽이지만 공부는 사람을 살린다.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 넌 어느 쪽이 세다고 생각하니?"
영혼을 위로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을 마뉴에게도 알게 하고 싶었다.

전쟁터로 끌려가 총으로 사람까지 죽인 마뉴에게 신부님은 용서를 구했다.
"전쟁의 고통을 겪게 한 죄, 네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돌아가시게 한 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죄...네 영혼을 망가뜨린 죄... 이 모든 죄를 내가 대신 사죄하마. 용서해다오. 마뉴!"
신부님은 마뉴를 꼭 안아주었고, 마침내 봇물이 터진 듯 미뉴는 통곡을 쏟아냈다.

눈물로 마음을 열게 된 마뉴는 작은 북을 두드렸다.
톤즈의 아이들은 모두 음악에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태어난 듯했다.
마뉴의 슬픔과 분노와 복수심은 어느새 하얀 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듯했다.

"이건 비밀인데.... 전 솔직히 신부님을 처음 본 때부터 좋아했어요."
수줍게 고백하고 아킬을 따라 가야만 했던 마뉴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진짜 자기의 길을 갈 때, 신부님이 선물한 운동화를 신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신부님은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으므로 7년만에 한국에 나왔을 땐, 이미 대장암이 깊어 다시는 톤즈로 돌아가지 못했다.

책 뒤표지에는 정호승 시인과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가 실렸다.
세상살이에 날로 영악해진 우리들은, 이제라도 작은이를 돌아보는 이타적 삶에 눈떠야 한다.
그래서 톤즈의 아이들에게 곧 돌아오겠다고 한 신부님의 약속을 지키려는 제2 제3의 이태석 신부님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신부님의 묘비에 쓰인 성경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164쪽

*신부님 묘비에 새겨진 성경구절을 확인해보니 책에 인용한 성경구절은 '해' 한 글자가 빠졌다. 다음 쇄를 찍을 땐 '해'자를 꼭 넣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이태석 신부님이 뵙고 싶은 독자들은 신부님이 잠들어 계신 담양 천주교 공원 묘지에 가보시라 권한다.
신부님은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에서 만나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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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e 2011-10-3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순오기님.
지난 봄, 글을 쓰기 전에 바로 그곳에 다녀왔었는데 책이 나온 후에는 막상 가보질 못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두 번째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이 울컥 했습니다. 제가 해야할 일을 순오기 님이 대신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살레시오회를 비롯해 몇몇 분들께 책을 보내 드렸지만 막상 이태석 신부님께는 그러질 못했어요. 당장 책 한 권 꺼내어 이태석 신부님께 라고 써서 고이 모셔놔야겠습니다. - 이병승 드림
* 2쇄를 펴보니 수정 되어 있네요. ^^

순오기 2011-10-31 21:44   좋아요 0 | URL
와우~~~ 작가님이 납시어주셨네요.^^
신부님이 잠들어 계신 담양은 저희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책을 읽고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습니다. 2쇄에는 빠진 글자가 수정 되었다니 고맙습니다!^^

희망찬샘 2011-11-02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태석 신부님이 담양에 계시는군요. 저도 이 책을 살까 고민하다가 이태석 신부님의 다른 책을 샀습니다. 순오기님 읽은 책 말고, 강론집을 샀는데, 매일 명상하듯 읽어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실천이 잘 안 되네요.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에서 만난 그 소년병의 이야기인가 봅니다. 꼼꼼하게 글을 읽으시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하십니다.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제가 산 책을 다 읽은 후에 말이지요. ^^

순오기 2011-11-03 10:58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와 이 책 말고, 다른 책은 아직 못 봤어요.
암송했던 성경구절이라 책에서 빠진 글자가 콕 들어왔더랬어요.^^
 
싫어요! - 흑인 민권 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한마디 더불어 사는 지구 37
파올라 카프리올로 지음, 김태은 옮김, 이우건 그림 / 초록개구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미국은 1965년까지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짐 크로' 법을 갖고 있었다. 흑인은 백인이 다니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매일 타는 버스도 앞문으로 타서 돈을 내고 다시 내려서 뒷문으로 타야 했다. 버스의 앞자리는 백인만 앉을 수 있었고, 흑인은 맨 뒤 몇 줄에만 앉을 수 있었다. 중간 줄도 백인이 먼저 앉고, 자리가 비었을 때만 흑인이 앉을 수 있었다. 만약 중간에 백인이 타면 흑인은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백인이 앉으면 흑인은 나란히 앉을 수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가 하늘을 찌르는 사회였던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차별을 당하면서 흑인들은 어쩔수 없는 '자연의 법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자는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은 피부색에 상관없이 평등하다' 믿었다. 학교에서는 백인 화이트 교장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나는 존엄성과 자존심을 지닌 한 사람이고,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누구보다 낮은 사람은 아니다' 소중한 진리를 깨달았다. 흑인들은 사회적인 불평등과 차별이 부당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분노했지만, 거세게 저항하지는 못했다.

평범한 재단사로 직장생활을 하던 로자는 친구의 소개로 만난 파크스와 결혼했고, 파크스와 함께 흑인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친구들도 만났다. 로자는 미국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에서 일을 도우며, 미국이 진정한 자유의 땅이라면 흑인들을 못 살게 구는 '짐 크로'법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유색인 지위향상 협회는 교통수단에서의 흑백차별을 없애려고 힘을 쏟았다. 몽고메리 시의회는 '먼저 오는 사람이 먼저 앉는다'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지만 백인들은 따르지 않았다.  

로자는 마틴 킹 목사의 '우리 중의 몇몇은 미국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연설에 감명을 받았고, 인종차별에 의한 흑인 소년의 부당한 죽음에 박해받는 민중들은 분노했다.  

마침내 로자의 삶과 미국의 역사를 바꾸게 된 1955년 12월 1일, 로자는 제임스 블레이크라'는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버스 운전사의 차에 타게 된다. 12년 전, 로자에게 자기의 버스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던 바로 그 남자다. 로자는 백인이나 흑인이나 모두 앉을 수 있는 중간 자리에 앉았고, 나중에 올라탄 백인을 위해 운전사는 로자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로자는 
"싫어요!"
라고 대답했고, 곧 이어 경찰서로 끌려갔다. 

42세 흑인 부인 로자의 용기 있는 한 마디 '싫어요!'라는 저항은, 억눌린 흑인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버스 승차 거부'로 나타났다. 12월 2일 금요일 아침, 몽고메리에 사는 3만 5천명의 흑인 시민들은 전단지를 받고 기꺼이 버스 승차 거부 운동에 동참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교회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은 1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인종주의라는 상처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의 참뜻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103쪽)

 

몽고메리 인권 위원회가 조직한 운송 시스템은 날마다 3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태우고 시내 곳곳을 누볐고, 몽고메리는 '걸어다니는 도시'로 알려졌다. 로자와 몽고메리 사람들에겐 미국 방방곡곡에서 선물로 신발을 보내왔다.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이 계속되는 동안 로자는 백화점에서 해고되었고 남편도 직장을 그만두었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집에서는 폭탄이 터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겁내지 않고 1년이 넘도록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계속했고, 마침내 1956년 12월 21일 최고 법원의 판결로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후에도 로자는 흑인들(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도 시민권을 달라는 시위에 참가하고 투쟁을 벌였고, 1965년 흑인의 권리가 법으로 인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다.

 

2005년 10월 24일 로자 파크스는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미국에서 최고로 우러러 받든 장례를 치뤘다.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유해가 놓였던 국회의사당 원형 건물의 바로 그 관대에 로자 파크스의 관이 놓였고, 5만 명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민권 운동의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3년 후, 미국에는 검은피부의 후세인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권리를 찾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되고 많은 이들이 함께 싸워야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과 부당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바른 인식과 더불어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서울시장 선거에 표출된 시민의 뜻을 받아들여 정치와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가 정비되기 바란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해서 인내하고 싸우는 민주시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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