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 흑인 민권 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한마디 더불어 사는 지구 37
파올라 카프리올로 지음, 김태은 옮김, 이우건 그림 / 초록개구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미국은 1965년까지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짐 크로' 법을 갖고 있었다. 흑인은 백인이 다니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매일 타는 버스도 앞문으로 타서 돈을 내고 다시 내려서 뒷문으로 타야 했다. 버스의 앞자리는 백인만 앉을 수 있었고, 흑인은 맨 뒤 몇 줄에만 앉을 수 있었다. 중간 줄도 백인이 먼저 앉고, 자리가 비었을 때만 흑인이 앉을 수 있었다. 만약 중간에 백인이 타면 흑인은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백인이 앉으면 흑인은 나란히 앉을 수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가 하늘을 찌르는 사회였던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차별을 당하면서 흑인들은 어쩔수 없는 '자연의 법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자는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은 피부색에 상관없이 평등하다' 믿었다. 학교에서는 백인 화이트 교장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나는 존엄성과 자존심을 지닌 한 사람이고,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누구보다 낮은 사람은 아니다' 소중한 진리를 깨달았다. 흑인들은 사회적인 불평등과 차별이 부당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분노했지만, 거세게 저항하지는 못했다.

평범한 재단사로 직장생활을 하던 로자는 친구의 소개로 만난 파크스와 결혼했고, 파크스와 함께 흑인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친구들도 만났다. 로자는 미국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에서 일을 도우며, 미국이 진정한 자유의 땅이라면 흑인들을 못 살게 구는 '짐 크로'법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유색인 지위향상 협회는 교통수단에서의 흑백차별을 없애려고 힘을 쏟았다. 몽고메리 시의회는 '먼저 오는 사람이 먼저 앉는다'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지만 백인들은 따르지 않았다.  

로자는 마틴 킹 목사의 '우리 중의 몇몇은 미국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연설에 감명을 받았고, 인종차별에 의한 흑인 소년의 부당한 죽음에 박해받는 민중들은 분노했다.  

마침내 로자의 삶과 미국의 역사를 바꾸게 된 1955년 12월 1일, 로자는 제임스 블레이크라'는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버스 운전사의 차에 타게 된다. 12년 전, 로자에게 자기의 버스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던 바로 그 남자다. 로자는 백인이나 흑인이나 모두 앉을 수 있는 중간 자리에 앉았고, 나중에 올라탄 백인을 위해 운전사는 로자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로자는 
"싫어요!"
라고 대답했고, 곧 이어 경찰서로 끌려갔다. 

42세 흑인 부인 로자의 용기 있는 한 마디 '싫어요!'라는 저항은, 억눌린 흑인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버스 승차 거부'로 나타났다. 12월 2일 금요일 아침, 몽고메리에 사는 3만 5천명의 흑인 시민들은 전단지를 받고 기꺼이 버스 승차 거부 운동에 동참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교회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은 1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인종주의라는 상처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의 참뜻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103쪽)

 

몽고메리 인권 위원회가 조직한 운송 시스템은 날마다 3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태우고 시내 곳곳을 누볐고, 몽고메리는 '걸어다니는 도시'로 알려졌다. 로자와 몽고메리 사람들에겐 미국 방방곡곡에서 선물로 신발을 보내왔다.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이 계속되는 동안 로자는 백화점에서 해고되었고 남편도 직장을 그만두었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집에서는 폭탄이 터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겁내지 않고 1년이 넘도록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계속했고, 마침내 1956년 12월 21일 최고 법원의 판결로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후에도 로자는 흑인들(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도 시민권을 달라는 시위에 참가하고 투쟁을 벌였고, 1965년 흑인의 권리가 법으로 인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다.

 

2005년 10월 24일 로자 파크스는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미국에서 최고로 우러러 받든 장례를 치뤘다.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유해가 놓였던 국회의사당 원형 건물의 바로 그 관대에 로자 파크스의 관이 놓였고, 5만 명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민권 운동의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3년 후, 미국에는 검은피부의 후세인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권리를 찾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되고 많은 이들이 함께 싸워야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과 부당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바른 인식과 더불어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서울시장 선거에 표출된 시민의 뜻을 받아들여 정치와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가 정비되기 바란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해서 인내하고 싸우는 민주시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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