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클래식 보물창고 43
생 텍쥐페리 지음, 이효숙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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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전, 기숙사에 있는 큰 딸을 보고 왔다. 우리 딸은 아직도 춥다고 겨울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이제 바꿔주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공부하는 독서대도 둘러보고 디카에도 담아 왔다. 모처럼 모녀가 손도 잡아보고 돌아올 때, 한번 보듬어 주고 왔다. 그러면서 작년 11월 수능 보던 날 몰아쳤던 우리집의 폭풍이 생각났다. 그때 이 책을 읽고 썼던 글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책이 된다는 건, 특별한 관계를 갖는 것이라 생각되어서.......

안녕, 어린 왕자?

네 친구 여우가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만드는 것(84쪽)'이라고 했지? 또한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88쪽)'는 말도 곁들이면서 말이야. 그런데, 난 아직도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어린 벗아, 내 푸념 한번 들어 줄래?

수능 보던 날이었어. '언어란 오해의 근원(88쪽)'이라는 말처럼, 고2 큰딸과 입장이 다른 말이 빌미가 되어 모녀간에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쳤단다. 부모 자식간이라도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오늘도 우울함이 지속되었어. 17년간 딸을 위해 쏟은 시간-잃어버린 시간(95쪽)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에, 내가 '길들인 것에 영원히 책임 져야(92쪽)' 함을 절실히 느끼며 살았지. 그러나, 심한 배반감이 들면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었단다.

'그래, 오늘은 다 팽개쳐 두고 훌훌 날아가야지~ 엄마 없이 어디 며칠이라도 살아봐라!' 이런 마음이었지. 하지만,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야 훌훌 털고 날 수 있는지, 생각과는 다르게 몸도 마음도 털고 일어설 수가 없었단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보물창고에서 새옷을 입고 태어난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 80년의 첫 만남 이후, 무수히 많은 출판사의 책으로 너를 만났고, 밑줄을 그어가며 감동했던 마음 속의 너를 다시 불러 내었어. 첫 만남이었던 문예출판사의 어린왕자, 너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기에 다시 펼쳐보며, 예전에 쳤던 밑줄과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지도 비교했단다. 컬러로 채색된 보물창고의 새옷에 이효숙님의 훨씬 더 매끄러워진 번역으로 다듬어진 너를 만나니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 며칠째 무겁게 내리누르던 마음에 따스한 위로의 샘물이 스며들었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92쪽),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99쪽)'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단다. 우리 딸이 간직하고 있을 사막의 우물은 아직 보이지 않아 발견하지 못한 거라고, 나지막히 속삭이는 너의 목소리를 들었단다. '집이든 별이든 사막이든 간에 그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100쪽)'고 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까지 듣고서야, 비로소 내 얼굴 근육이 풀어지며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단다. '창문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찾는 아이들(95쪽)'처럼, 마음속에 잠들어 잃어버린 줄 알았던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고맙다. 어린 벗이여!

'어른들은 혼자서는 결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늘 설명해 줘야 하는 아이들은 참 피곤하다(9쪽)'고 했지? 내가 바로 그런 어른이었음을 깨달았단다. 어른이 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어린왕자 네가 만난 소행성의 사람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거든.
'자기의 권위가 존중되기를 바라며 명령만 내리는 왕(46쪽)'은, 바로 아이들의 불복종을 허용치 않는 또 다른 모습의 엄마였구나. '이성에 바탕을 두고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48쪽)'는 궤변을 늘어놓는 왕과, 엄마의 권위로 복종만을 요구하는 내가 무엇이 다를 것이냐? '남을 재판하는 것보다 자신을 재판하는 것이 훨씬 어려우니, 자신을 재판하는 데 성공한다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49쪽)'이라니,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겐 인색한 내가 어찌 지혜롭다 하겠느뇨?

숭배를 바라는 허영심 많은 사람도 내 모습이고,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술꾼도, 부끄러움을 감추고 잊으려는 내 모습을 담고 있구나. 소유하는 것에 유익함을 주지 못하면서 소유하려고만 하는 사업가와, 의미없는 일상을 반복하는 가로등지기도, 덧없는 세상에 지리학 책만이 진지하다고 주장하는 지리학자 속에도 나의 단면이 들어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었단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모든 별들이 웃고 있어서 슬품이 잦아들고, 어린왕자를 알게 된 걸 만족스러워 할거라(113쪽)'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장미를 돌보러 작은 별에 돌아 간 어린왕자.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과, 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인 나는, 슬프도록 아름답고 순수한 어린왕자 너를 영원히 그리워 할 것 같구나!

책의 뒷편에 실린 법정스님이 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받은 또 하나의 감동도 오래 간직할게.
오늘 밤에도 저 하늘의 별들 속에서 네가 웃고 있는지 찾아 볼게.
나의 어린 벗이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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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뿌리
김중미 지음 / 검둥소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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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6년 겨울방학 책따세 추천도서였다. 작가 김중미는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종이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현재 강화에서 농사를 지으며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거대한 뿌리‘에서 말하는 I(인천)시 M(만석)동은 내가 잘 아는 동네다. 중학교 2학년 때, 충청도 시골에서 살 수 없었던 우리는 새 삶을 꿈꾸며 I시로 이사했다. 그러나 전학 간다고 좋아했던 내 설레임은 I 입성의 초라한 현실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경제적으로 힘없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냈고, 잘난 체하는 아이들과 인정머리 없는 선생님도 적응하기 버거웠다. 그래서 지금도 내 추억 속 비밀창고엔 사춘기의 상처가 담겨있다.

나의 성장기와 같은 시대를 체험한 김중미의 작품은 내게 공감대를 제공한다. 동두천은 가본 적이 없지만, 인천의 만석동 뿐 아니라 그 외의 지명은 내가 잘 아는 곳이라 친근감이 들었다. 서술자(김정원)는 위선자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 26년만에 고향 동두천을 찾는다. 현재 인천에서의 자신과 동두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과거가 교차된다. 소설구성의 단조로움도 피하고 현재의 뿌리가 된 과거를 밝혀내기에 적합하다. 동두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우리의 아픈 상처, 양갈보로 살아야 했던 누이들과 음지의 과거를 들춰내는 그 길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많이 아팠다. 눈물나게 가슴 아팠고, 마치 내 속을 토해내듯 풀어내는 그의 고백과 정아의 외침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선생님 친구처럼 이주노동자를 돕는 활동가는 괜찮고, 이주노동자를 사랑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갖는 건 안 된다는 게 말이 돼요? 도대체 뭐가 달라요? 선생님도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손바닥 뒤집듯이 그렇게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거예요?”

정아의 외침이 나를 향해 소리친 게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와 틀리다’고 도리질하는 거대한 뿌리를 키우고 있었다. ‘김정원’이란 주인공을 내세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는 작가는, 독자에게 이런 불편을 안겨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곳곳에서 울컥 눈물이 솟구쳐도 이 해답을 찾으려 끝까지 놓지 않았다. 단일민족이라 자부하는 우리 민족의 핏줄에 대한 집착, 혼혈아에 대한 차별, 속 다르고 겉 다른 우리의 위선, 미국주둔군에게 당한 우리의 억울함 등 문제점은 많다.

혼혈아, 아니 ‘튀기’라고 불린 재민이의 울부짖음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어. 도대체 튀기가 뭐 어쨌다는 거야? 물건은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왜 우리 같은 애들은 싫어해? 나도 반쪽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제야. 그리고 나머지 반은 너희들하고 똑같다고, 도대체 왜 우리가 너희들한테 무시를 당해야 하냐고, 왜?”

이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 독자의 몫이지만, 바로 재민이를 통해 작가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재민이가 엄마에게 돌아간 까닭이 단지 제 어머니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사랑하고 기다려준 한 존재에 대한 연민과 존경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핏줄보다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가 거대한 뿌리로 박혀있는 편견을 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김수영의 싯귀에서 찾은 '거대한 뿌리'의 의미가 무엇일지 많이 생각해 봐야겠다. 우리의 감추고 싶은 치부가 된 동두천, 양색시는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고 현실이었다. 바로 그 양공주에게 붙어사는 입이 얼마인가~~~ 그들 때문에 먹고 입고 배웠던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오늘날의 우리와 사회가 존재한다. 바로 그 뿌리에서 우리가 차별하고 무시한 '튀기'가 나왔다.

아무 미래도 없다는 네팔의 이주노동자 자히드를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가진 정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거대한 뿌리를 들어내기 시작한 김정원은 바로 우리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이해하고, 핏줄에 대한 집착과 혼혈아에 대한 차별, 특히 흑인이나 우리보다 좀 못산다는 동남아인에 대한 차별을 우리 스스로 거둬내야 할 때라고 생각되었다.

*앞으로 1년을 함께 살게 된 아들 중학교 원어민 강사가 흑인이라도 편견없이 맞아주리라 다짐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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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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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마 때문에 집안이 눅눅하고 꿉꿉하시죠? 이런 처진 기분 치켜 올려줄 처방이 필요하시다면, 눈 덮인 외딴집에 다녀오는 건 어떨까요? 집안에서도 다녀올 수 있는 문학 속으로 ......

온통 눈 뒤덮인 외딴 집. 열세 살 아들 세영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이 감동이다. 몸에 홍어 모양의 흰 반점이 있어 '홍어'로 불렸던 아버지. 홍어의 성기가 둘이라 그랬는지 바람둥이였던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부엌 천정에 매달은 홍어는 어머니의 기다림에 희망을 주는 부적이었을까? 당신의 고집을 위해 아들의 고집을 꺾으며, 이웃과 담을 쌓고 바느질로 살아가지만 자존심으로 당당한 어머니를 작가는 그려내고 있다.

밤새 폭설이 내린 날,
그 폭설에 부엌으로 찾아들어 홍어를 먹어치운 비렁뱅이 소녀를 심하게 매질하는 어머니, 홍어를 먹어치웠기에... 행여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는 희망이 꺾여 돌아오지 않으리란 절망 때문이었을까? 모질게 매질했던 어머니는 더러운 소녀를 씻기며 남편처럼 반점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혹시 비렁뱅이 소녀가 남편의 딸은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녀에게 '삼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바느질 심부름을 시키며 식솔로 받아들인다. 삼례는 세영과 같이 읍내로 한복 심부름을 다니며 춘일옥 작부집 여자의 일감도 얻어온다. 어머니는 더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자존심을 지키느라 받지 않았던 일이다. 영악한 삼례는 자기 몫의 돈도 챙기고, 몽유병을 가장하여 밤나들이나 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즐기며 방종한 여인네가 되어간다.

그러다 휑하니 말없이 떠나버린 그녀, 중학생이 된 세영은 귀동냥으로 그녀의 거처를 알아내어 기생집으로 찾아간다. 엉덩이를 까고 시원스레 눈밭에 오줌을 누는 그녀, 이렇게 눈이 내리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미칠 것 같다며 오줌이라도 싸야 분이 풀린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왜 떠났고, 그녀는 어디로 떠나고 싶은 걸까? 혹시 내 어머니도 떠나고 싶은 건 아닐까? 세영은 마음으로 헤아려 본다. 삼례의 가출이 어머니도 떠날지 모른다는 복선으로 깔리며, 그들 모자의 위장된 평화에 불안의 그림자를 더한다.

어느 날, 처갓집이라며 불량스런 남자가 찾아들어 삼례를 찾아내라 행패를 부리고, 어머니는 그 남자를 추켜주며 돈을 쥐어주고 다독여 보낸다. 그 후 다시 읍내로 찾아든 삼례의 거처를 안 어머니는 세영을 앞세우고 그녀를 찾아간다.
"네가 이 마을을 떠나야 조용하게 살 수 있다. 이 돈은 남편을 찾아갈 때 쓰려고 모은 돈인데, 네가 가지고 떠나 꼭 필요할 때에 쓰거라." 어머니는 삼례의 손에 돈을 쥐어주고, 그녀는 조용히 슬집에서 떠난다. 남편의 행방을 찾아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럴때를 대비해 돈을 모아온 어머니는, 삼례에게 돈을 주어버리고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폭설이 내리고, 길손처럼 아기를 업은 여인네가 찾아 와 아이를 맡기고 읍내로 나간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남편의 아이라는 걸 이미 알고 떠나버린 여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아버지가 네게 주신 동생인데 '누구나 아버지는 될 수 있지만 아버지답기는 어렵다' 말한다. 바느질하는 사람까지 들이고, 자신은 아이에게 정을 쏟으며 세월을 보낸다. 세영은 그런 어머니에게 배반을 느낀다. 성장과정에서 누구나 겪었을 마음의 갈등- 혹시 어머니가 부정한 건 아닐까? 이웃 남자와 어떤 관계일까? 염탐하려는 사춘기 소년의 비애가 공감되도록 잘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돌아오고 싶다는 무책임한 남편의 전갈이 오고, 어머니는 세영을 데리고 나가 말없이 남편을 모시고 돌아온다. 모자가 정성으로 절을 올리는 모습에 이제 행복한 삶을 살겠구나 기대했는데, 작가는 뒷통수 치는 반전으로 어머니의 가출로 마무리짓는다.
'아, 인고의 세월을 말없이 보낸 어머니의 한을 저렇게 풀어내는구나~ 그래, 멋진 반전, 멋진 복수다!'
처음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여자로서의 어머니 삶에 용기를 낸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이제 무책임하고 방종했던 남편은 남겨진 두 아들을 키우며 '아버지 되는 게 어떤 건지, 아버지답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고생 좀 하겠구나' 싶어 고소했다. 그러나, 아들 세영이는 기다림의 한을 멋지게 풀어내고 자유를 찾아 떠난 어머니를 이해하며 조용히 기다리며 살아가리라 보여준다.

현재 우리의 모습보다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정서와 인고를 보여 준 '홍어'를 통해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조건 희생하며 고통을 견딘 어머니였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보여 준 용기는 던져주는 의미가 컸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듯 보여주는 아름다운 문장은 밑줄 칠 귀절이 많았다. 천천히 음미하며 다시 읽게 하는 아름다운 묘사에 감탄하며, 잔잔한 정서가 그대로 묻어나는 홍어의 일독을 주부들과 남편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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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행복한 왕자 (양장) 올 에이지 클래식
오스카 와일드 지음, 소민영 옮김, 나현정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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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행복한 왕자'와 '욕심쟁이 거인'이란 이야기로 내게 전설처럼 각인된 이름이 오스카 와일드였고, 여고생때 읽은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나를 참 불편하게 했었다. 그리고, 거의 30여년이 지나 다시 만난 '행복한 왕자'는 다른 책과 달리 단숨에 쫘르르 읽어버릴 수 없어, 일주일이나 끼고 한 편씩 읽어 나갔다. 그러면서도 영 편치 않은 기분은, 오스카 와일드의 예리한 송곳에 찔린 듯한 아픔이랄까? 하여튼 작가가 던지는 물음에 딱 떨어지는 답을 할 수 없는 심정이라 불편했다. 학창시절보다 더 많은 인생을 보고 겪었기에 그가 던지는 간단치 않은 물음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동화라면 쉽게 읽혀져야 할텐데, 독자의 맘이 불편한 것은 작가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아는 만큼, 어린이보다는 청소년이, 청소년보다는 어른들이 더 켕기듯 불편하다. 이런 불편함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는 것이 바로 천재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매력이다.

책이 온 날, 먼저 읽은 6학년 막내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뭔가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고, 사람들이 참 어리석은 것 같애!"
라고 답해서, 깊이는 다르겠지만 느낌의 분위기는 같다고 생각되었다.

'행복한 왕자'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와 '석류나무의 집'에 실린 네 편의 이야기는, 마치 내게 가만가만 들려주는 그의 음성처럼 들린다. 성내거나 흥분하지 않으면서 조단조단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컥~ 하고 찔리는 느낌이라 독자들이 불편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에게 불편한 마음만 주는 것은 아니다. 섬세한 배경과 인물묘사에 이국적인 이야기가 마치 우리 동네에서도 있었던 이야기처럼 다가오며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누군가의 희생을 알아주거나 기억하지도 않는 몰염치한 인간들과 이기적인 욕심과 교만으로 오만방자한 인간군상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그의 필력에 부끄러움이 감돌고, 진정한 아름다움과 참된 사랑을 전하는 이야기에는 가슴이 따뜻해진다.

차분한 색감에 독특한 디자인 같은 이국적인 그림이 동화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책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나현정님의 그림에 책 읽는 즐거움이 한결 더했다. 책을 읽고도 그림만 다시 보면서 이야기를 끌어낼 만큼 손색없는 작품으로 새겨졌다. 멋진 그림으로 한결 품격있는 책으로 만들어준 화가에게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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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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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핵폭탄이 터질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폭- 폭발의 여파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염되고 병에 휩싸였다.
발- 발사를 누가 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모두들 그저 살려고 발버둥을 칠 뿐이다
뒤-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최- 최악의 상황에 지금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위의 모르는 사람이 죽고, 이웃의 친구도 죽고,
      가족도 죽고, 나도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이다
후- 후회를 해 봤자 소용없고 용서를 빌어도 부질없는 짓이다
의-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은 늘어만 가고
아- 아이들은 기형과 돌연변이로 태어났다
이- 이런 비참한 상황을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
들- 들의 부모님 세대다!
     언제쯤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잘 살아갈지 기대를 하지만,
     이런 기대를 비웃듯 책은 끝까지 현실적이었다.
     무섭다! 이런 이야기가 책 속의 상상으로만 끝날것 같지 않아서.....
     핵폭탄이 터지면 정말 이럴것 같다는 현실감이 무섭게 느껴지는 책이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책을 읽고 독후삼행시로 이렇게 적어 놓았다.
5학년 막내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게 맞는것 같다며, 쉐베보른에 남은 아이들이 자기 같아서 숨이 멎는 것 같았다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이들 감상에 공감하면서, 엄마의 느낌도 덧붙이자면,
"애들은, 역시 강하게 키워야 돼!"
열두살 '롤란트'가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는 걸 보면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다섯 살 '유디트'누나도 최악의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했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용기와 강한 의지를 가져야 된다. 쉐베보른 최후의 아이들처럼 부모 형제 그 누구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니까.

희망이 필요하고 폐허가 되었다는 고향 '보나메스'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는 엄마의 고집도 이해가 되었다. 삶에 진정 필요한 것은 물질의 풍요와 안락한 현실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한가닥 희망일지도 모르니까!
 
우리 세대는 어쩌면 그렁저렁 살다가 한 줌 흙으로 갈지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넘겨줄지 걱정된다. 핵폭발이 아닌 환경오염으로 인한 심각한 기후변화를 느끼는 요즘 정말 걱정스럽다.

작가 '구드룬 파우제방'은 '그냥 떠나는거야'라는 책에서도 해피엔딩이나 돌아온 탕자를 예감하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린다. 이 책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독자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현실로 마무리한다.
그래도 최후의 아이들에게 서로 존중하고 도움을 주며,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해결 방법을 찾으라고 한다. 책임감을 갖고 서로 사랑하며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읽고 쓰고 계산하는 법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참담한 현실에서 미래를 향한 한가닥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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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08-12-09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추천하신 책은 확실하다!!! 땡스투 누르고 한 권 접수합니다. 잘 읽어보고 소감문 올려 봐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