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장마 때문에 집안이 눅눅하고 꿉꿉하시죠? 이런 처진 기분 치켜 올려줄 처방이 필요하시다면, 눈 덮인 외딴집에 다녀오는 건 어떨까요? 집안에서도 다녀올 수 있는 문학 속으로 ......

온통 눈 뒤덮인 외딴 집. 열세 살 아들 세영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이 감동이다. 몸에 홍어 모양의 흰 반점이 있어 '홍어'로 불렸던 아버지. 홍어의 성기가 둘이라 그랬는지 바람둥이였던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부엌 천정에 매달은 홍어는 어머니의 기다림에 희망을 주는 부적이었을까? 당신의 고집을 위해 아들의 고집을 꺾으며, 이웃과 담을 쌓고 바느질로 살아가지만 자존심으로 당당한 어머니를 작가는 그려내고 있다.

밤새 폭설이 내린 날,
그 폭설에 부엌으로 찾아들어 홍어를 먹어치운 비렁뱅이 소녀를 심하게 매질하는 어머니, 홍어를 먹어치웠기에... 행여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는 희망이 꺾여 돌아오지 않으리란 절망 때문이었을까? 모질게 매질했던 어머니는 더러운 소녀를 씻기며 남편처럼 반점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혹시 비렁뱅이 소녀가 남편의 딸은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녀에게 '삼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바느질 심부름을 시키며 식솔로 받아들인다. 삼례는 세영과 같이 읍내로 한복 심부름을 다니며 춘일옥 작부집 여자의 일감도 얻어온다. 어머니는 더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자존심을 지키느라 받지 않았던 일이다. 영악한 삼례는 자기 몫의 돈도 챙기고, 몽유병을 가장하여 밤나들이나 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즐기며 방종한 여인네가 되어간다.

그러다 휑하니 말없이 떠나버린 그녀, 중학생이 된 세영은 귀동냥으로 그녀의 거처를 알아내어 기생집으로 찾아간다. 엉덩이를 까고 시원스레 눈밭에 오줌을 누는 그녀, 이렇게 눈이 내리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미칠 것 같다며 오줌이라도 싸야 분이 풀린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왜 떠났고, 그녀는 어디로 떠나고 싶은 걸까? 혹시 내 어머니도 떠나고 싶은 건 아닐까? 세영은 마음으로 헤아려 본다. 삼례의 가출이 어머니도 떠날지 모른다는 복선으로 깔리며, 그들 모자의 위장된 평화에 불안의 그림자를 더한다.

어느 날, 처갓집이라며 불량스런 남자가 찾아들어 삼례를 찾아내라 행패를 부리고, 어머니는 그 남자를 추켜주며 돈을 쥐어주고 다독여 보낸다. 그 후 다시 읍내로 찾아든 삼례의 거처를 안 어머니는 세영을 앞세우고 그녀를 찾아간다.
"네가 이 마을을 떠나야 조용하게 살 수 있다. 이 돈은 남편을 찾아갈 때 쓰려고 모은 돈인데, 네가 가지고 떠나 꼭 필요할 때에 쓰거라." 어머니는 삼례의 손에 돈을 쥐어주고, 그녀는 조용히 슬집에서 떠난다. 남편의 행방을 찾아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럴때를 대비해 돈을 모아온 어머니는, 삼례에게 돈을 주어버리고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폭설이 내리고, 길손처럼 아기를 업은 여인네가 찾아 와 아이를 맡기고 읍내로 나간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남편의 아이라는 걸 이미 알고 떠나버린 여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아버지가 네게 주신 동생인데 '누구나 아버지는 될 수 있지만 아버지답기는 어렵다' 말한다. 바느질하는 사람까지 들이고, 자신은 아이에게 정을 쏟으며 세월을 보낸다. 세영은 그런 어머니에게 배반을 느낀다. 성장과정에서 누구나 겪었을 마음의 갈등- 혹시 어머니가 부정한 건 아닐까? 이웃 남자와 어떤 관계일까? 염탐하려는 사춘기 소년의 비애가 공감되도록 잘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돌아오고 싶다는 무책임한 남편의 전갈이 오고, 어머니는 세영을 데리고 나가 말없이 남편을 모시고 돌아온다. 모자가 정성으로 절을 올리는 모습에 이제 행복한 삶을 살겠구나 기대했는데, 작가는 뒷통수 치는 반전으로 어머니의 가출로 마무리짓는다.
'아, 인고의 세월을 말없이 보낸 어머니의 한을 저렇게 풀어내는구나~ 그래, 멋진 반전, 멋진 복수다!'
처음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여자로서의 어머니 삶에 용기를 낸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이제 무책임하고 방종했던 남편은 남겨진 두 아들을 키우며 '아버지 되는 게 어떤 건지, 아버지답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고생 좀 하겠구나' 싶어 고소했다. 그러나, 아들 세영이는 기다림의 한을 멋지게 풀어내고 자유를 찾아 떠난 어머니를 이해하며 조용히 기다리며 살아가리라 보여준다.

현재 우리의 모습보다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정서와 인고를 보여 준 '홍어'를 통해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조건 희생하며 고통을 견딘 어머니였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보여 준 용기는 던져주는 의미가 컸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듯 보여주는 아름다운 문장은 밑줄 칠 귀절이 많았다. 천천히 음미하며 다시 읽게 하는 아름다운 묘사에 감탄하며, 잔잔한 정서가 그대로 묻어나는 홍어의 일독을 주부들과 남편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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