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뿌리
김중미 지음 / 검둥소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2006년 겨울방학 책따세 추천도서였다. 작가 김중미는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종이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현재 강화에서 농사를 지으며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거대한 뿌리‘에서 말하는 I(인천)시 M(만석)동은 내가 잘 아는 동네다. 중학교 2학년 때, 충청도 시골에서 살 수 없었던 우리는 새 삶을 꿈꾸며 I시로 이사했다. 그러나 전학 간다고 좋아했던 내 설레임은 I 입성의 초라한 현실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경제적으로 힘없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냈고, 잘난 체하는 아이들과 인정머리 없는 선생님도 적응하기 버거웠다. 그래서 지금도 내 추억 속 비밀창고엔 사춘기의 상처가 담겨있다.

나의 성장기와 같은 시대를 체험한 김중미의 작품은 내게 공감대를 제공한다. 동두천은 가본 적이 없지만, 인천의 만석동 뿐 아니라 그 외의 지명은 내가 잘 아는 곳이라 친근감이 들었다. 서술자(김정원)는 위선자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 26년만에 고향 동두천을 찾는다. 현재 인천에서의 자신과 동두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과거가 교차된다. 소설구성의 단조로움도 피하고 현재의 뿌리가 된 과거를 밝혀내기에 적합하다. 동두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우리의 아픈 상처, 양갈보로 살아야 했던 누이들과 음지의 과거를 들춰내는 그 길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많이 아팠다. 눈물나게 가슴 아팠고, 마치 내 속을 토해내듯 풀어내는 그의 고백과 정아의 외침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선생님 친구처럼 이주노동자를 돕는 활동가는 괜찮고, 이주노동자를 사랑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갖는 건 안 된다는 게 말이 돼요? 도대체 뭐가 달라요? 선생님도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손바닥 뒤집듯이 그렇게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거예요?”

정아의 외침이 나를 향해 소리친 게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와 틀리다’고 도리질하는 거대한 뿌리를 키우고 있었다. ‘김정원’이란 주인공을 내세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는 작가는, 독자에게 이런 불편을 안겨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곳곳에서 울컥 눈물이 솟구쳐도 이 해답을 찾으려 끝까지 놓지 않았다. 단일민족이라 자부하는 우리 민족의 핏줄에 대한 집착, 혼혈아에 대한 차별, 속 다르고 겉 다른 우리의 위선, 미국주둔군에게 당한 우리의 억울함 등 문제점은 많다.

혼혈아, 아니 ‘튀기’라고 불린 재민이의 울부짖음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어. 도대체 튀기가 뭐 어쨌다는 거야? 물건은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왜 우리 같은 애들은 싫어해? 나도 반쪽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제야. 그리고 나머지 반은 너희들하고 똑같다고, 도대체 왜 우리가 너희들한테 무시를 당해야 하냐고, 왜?”

이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 독자의 몫이지만, 바로 재민이를 통해 작가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재민이가 엄마에게 돌아간 까닭이 단지 제 어머니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사랑하고 기다려준 한 존재에 대한 연민과 존경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핏줄보다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가 거대한 뿌리로 박혀있는 편견을 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김수영의 싯귀에서 찾은 '거대한 뿌리'의 의미가 무엇일지 많이 생각해 봐야겠다. 우리의 감추고 싶은 치부가 된 동두천, 양색시는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고 현실이었다. 바로 그 양공주에게 붙어사는 입이 얼마인가~~~ 그들 때문에 먹고 입고 배웠던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오늘날의 우리와 사회가 존재한다. 바로 그 뿌리에서 우리가 차별하고 무시한 '튀기'가 나왔다.

아무 미래도 없다는 네팔의 이주노동자 자히드를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가진 정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거대한 뿌리를 들어내기 시작한 김정원은 바로 우리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이해하고, 핏줄에 대한 집착과 혼혈아에 대한 차별, 특히 흑인이나 우리보다 좀 못산다는 동남아인에 대한 차별을 우리 스스로 거둬내야 할 때라고 생각되었다.

*앞으로 1년을 함께 살게 된 아들 중학교 원어민 강사가 흑인이라도 편견없이 맞아주리라 다짐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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