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클래식 보물창고 43
생 텍쥐페리 지음, 이효숙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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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전, 기숙사에 있는 큰 딸을 보고 왔다. 우리 딸은 아직도 춥다고 겨울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이제 바꿔주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공부하는 독서대도 둘러보고 디카에도 담아 왔다. 모처럼 모녀가 손도 잡아보고 돌아올 때, 한번 보듬어 주고 왔다. 그러면서 작년 11월 수능 보던 날 몰아쳤던 우리집의 폭풍이 생각났다. 그때 이 책을 읽고 썼던 글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책이 된다는 건, 특별한 관계를 갖는 것이라 생각되어서.......

안녕, 어린 왕자?

네 친구 여우가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만드는 것(84쪽)'이라고 했지? 또한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88쪽)'는 말도 곁들이면서 말이야. 그런데, 난 아직도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어린 벗아, 내 푸념 한번 들어 줄래?

수능 보던 날이었어. '언어란 오해의 근원(88쪽)'이라는 말처럼, 고2 큰딸과 입장이 다른 말이 빌미가 되어 모녀간에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쳤단다. 부모 자식간이라도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오늘도 우울함이 지속되었어. 17년간 딸을 위해 쏟은 시간-잃어버린 시간(95쪽)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에, 내가 '길들인 것에 영원히 책임 져야(92쪽)' 함을 절실히 느끼며 살았지. 그러나, 심한 배반감이 들면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었단다.

'그래, 오늘은 다 팽개쳐 두고 훌훌 날아가야지~ 엄마 없이 어디 며칠이라도 살아봐라!' 이런 마음이었지. 하지만,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야 훌훌 털고 날 수 있는지, 생각과는 다르게 몸도 마음도 털고 일어설 수가 없었단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보물창고에서 새옷을 입고 태어난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 80년의 첫 만남 이후, 무수히 많은 출판사의 책으로 너를 만났고, 밑줄을 그어가며 감동했던 마음 속의 너를 다시 불러 내었어. 첫 만남이었던 문예출판사의 어린왕자, 너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기에 다시 펼쳐보며, 예전에 쳤던 밑줄과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지도 비교했단다. 컬러로 채색된 보물창고의 새옷에 이효숙님의 훨씬 더 매끄러워진 번역으로 다듬어진 너를 만나니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 며칠째 무겁게 내리누르던 마음에 따스한 위로의 샘물이 스며들었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92쪽),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99쪽)'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단다. 우리 딸이 간직하고 있을 사막의 우물은 아직 보이지 않아 발견하지 못한 거라고, 나지막히 속삭이는 너의 목소리를 들었단다. '집이든 별이든 사막이든 간에 그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100쪽)'고 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까지 듣고서야, 비로소 내 얼굴 근육이 풀어지며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단다. '창문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찾는 아이들(95쪽)'처럼, 마음속에 잠들어 잃어버린 줄 알았던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고맙다. 어린 벗이여!

'어른들은 혼자서는 결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늘 설명해 줘야 하는 아이들은 참 피곤하다(9쪽)'고 했지? 내가 바로 그런 어른이었음을 깨달았단다. 어른이 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어린왕자 네가 만난 소행성의 사람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거든.
'자기의 권위가 존중되기를 바라며 명령만 내리는 왕(46쪽)'은, 바로 아이들의 불복종을 허용치 않는 또 다른 모습의 엄마였구나. '이성에 바탕을 두고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48쪽)'는 궤변을 늘어놓는 왕과, 엄마의 권위로 복종만을 요구하는 내가 무엇이 다를 것이냐? '남을 재판하는 것보다 자신을 재판하는 것이 훨씬 어려우니, 자신을 재판하는 데 성공한다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49쪽)'이라니,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겐 인색한 내가 어찌 지혜롭다 하겠느뇨?

숭배를 바라는 허영심 많은 사람도 내 모습이고,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술꾼도, 부끄러움을 감추고 잊으려는 내 모습을 담고 있구나. 소유하는 것에 유익함을 주지 못하면서 소유하려고만 하는 사업가와, 의미없는 일상을 반복하는 가로등지기도, 덧없는 세상에 지리학 책만이 진지하다고 주장하는 지리학자 속에도 나의 단면이 들어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었단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모든 별들이 웃고 있어서 슬품이 잦아들고, 어린왕자를 알게 된 걸 만족스러워 할거라(113쪽)'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장미를 돌보러 작은 별에 돌아 간 어린왕자.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과, 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인 나는, 슬프도록 아름답고 순수한 어린왕자 너를 영원히 그리워 할 것 같구나!

책의 뒷편에 실린 법정스님이 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받은 또 하나의 감동도 오래 간직할게.
오늘 밤에도 저 하늘의 별들 속에서 네가 웃고 있는지 찾아 볼게.
나의 어린 벗이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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