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은 일단 제목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조선시대 탐정이라는 것도 흥미롭지만, '대체 각시투구꽃이라는 게 뭐냐?'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시나리오 원작인 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을 영화제목으로 썼다면 뻔한 내용으로 흥미유발은 물건너 가지 않았을까? 내가 책은 못 읽었으니 뻔한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투구꽃은 사진으로 봤지만, 각시투구꽃은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투구꽃(사진 왼쪽)과 각시투구꽃(사진 오른쪽)은 같은 미나리아재비과로 잎이나 꽃모양이 비슷해서 큰 차이는 모르겠다. 각시 투구꽃은 속리산 이북에 분포한다니 우리가 만나기는 어렵겠다. 로마병정의 투구를 닮았다는데 우리조상들이 썼던 남바위와 비슷하고, 영문이름 Monk’s hood는 ‘수도승의 두건’을 뜻한다고 한다. 투구를 쓴 각시꽃은 뿌리에 독을 갖고 있다니, 투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투적인 꽃인가 보다.
(양철나무꾼님의 페이퍼에서 보니, 각시투구꽃 뿌리는 법제에 따라 '부자'나 '초오'로 불린다고 한다. 영화 서편제에서 '부자'가 든 탕제를 먹고 송화의 눈이 멀었다고 나오는 그 부자가 각시투구꽃이란다. 부자는 사약에도 들어간다고... )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나 영화대사는 대놓고 2%의 부족을 말한다. 어쩌면 2%의 부족함은 탁월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부족한 2% 때문에 대중에게 먹히고 12세 관람가능한 가족영화로 흥행에 성공할지도 모르니까.^^ 말하자면 작품상을 바라볼 정도의 좋은 영화를 목표로 한 게 아니고, 흥행코드에 딱 맞는 영화로 만든 느낌이다. 더구나 개봉시기도 설과 맞물려 가족영화로 대박날 수도 있겠다.
조선 중기 정조 16년, 관료들의 공납비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로 위기에 처한 정조는 조선 제일의 명탐정을 파견한다. 조선을 뒤흔드는 거대한 스캔들을 밝히는 사건에 정조독살의 기미를 살짝 끼워 개혁을 반대하는 기득권의 속내도 보여준다. 무게감 있는 연기본좌 김명민이 허당탐정으로 변신하고, 코믹의 대명사가 된 눈치백단 오달수의 콤비플레이는 보는 내내 웃음을 끌어낸다. 게다가 터프한 군주 정조(남성진)는 두 번 밖에 안 나오지만 그래도 충분히 멋지다.
예고편을 볼 때 차승원의 <혈의루>도 떠오르고 <웰컴투 동막골>에서 본듯한 장면도 나오던데, 정말 대놓고 흉내낸 장면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나 이야기 구조는 식상함을 주지만, 오히려 친밀감을 주기도 한다. 관객 입장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까 점쳐보는 재미도 한몫하는데, 이 영화는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않아도 짐작대로 전개되며 술술 해결된다. 개연성과 서사구조를 따져가며 보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가볍게 즐기면 되는 영화다. 소재나 사건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완전 코믹이다. 깨알같은 웃음과 재미를 주는 소품과 대사에 낄낄거리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알록달록 고운 한복을 입은 귀여운 강아지가 나오는 첫 장면부터, 두 사람이 들고 있는 랜턴이 무엇으로 빛을 내는지, 마지막 즈음 명탐정이 손에 들고 있는 **을 발견하면 웃지 않을 수 없다. 배경이 정조시대인데~~~~완전 퓨전이다.ㅋㅋㅋ
조선의 명탐정은 셜록 홈즈보다 300년 이상 앞섰다?
아서 코난 도일(1859년~1930년)이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첫 장편소설(주홍색 연구)을 1887년에 썼지만, 조선의 명탐정이었던 암행어사는 중종 4년(1509년)에 처음 등장했단다. 영화의 배경이 된 정조 16년(1792년)의 암행어사를 조선의 명탐정으로 본다 해도 95년이나 앞섰으니, 조선명탐정이 셜록 홈즈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명탐정과 개장수 서필이 콤비로 활약하는 건, 2009년판 영화 셜록 홈즈를 흉내낸 거 같지만.^^ 영화를 보면서 조선명탐정 김명민과 개장수 오달수를 셜록 홈즈와 왓슨 콤비로 비교해봐도 재밌다.
명탐정은 정약용이다?
명탐정이 누구를 모델로 했는가, 드러나는 단서를 조합하면 정약용이라는 추리가 나온다. 실제로 정약용은 누구보다 정조의 사랑을 받았고, 암행어사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했으며 형제들과 같이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이었다. 영화에도 언급되는 거중기를 만든 화성 건설의 주역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고 영화가 그려낸 가볍고 체신머리 없이 촐싹대는 명탐정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정약용이라 생각하니 더 의미가 있었다.^^ 아무튼 조선명탐정 김명민은 혼자 추리를 할 때는 제법 탐정스럽지만, 난관이 닥치면 의리고 뭐고 혼자만 살 궁리하는 쪼잔한 인간성이라 적당히 무시해도 될 거 같은 만만함도 있다. 김명민은 조선명탐정으로 무거운 역할보다 오히려 코믹에도 먹히는 배우라는 걸 입증한 듯.^^
볼륨있는 가슴골을 드러낸 한지민과, 김상궁의 은밀한 매력은 아이들이 보기는 민망하려나? TV에서 보여지는 건 그보다 더하니까 그 정도는 약과일지도... 공납비리에 관련된 자의 시체에서 나온 풍부혈에 꽂힌 독침, 각시투구꽃의 주산지인 적성 농장의 비밀, 열녀문 김씨와 한객주의 실체, 개장수 서필의 정체 등, 왕까지 움직인 굵직한 사건을 한줄로 꿰어내는 촘촘한 짜임새와 추리물의 긴박감은 떨어지지만 그냥 가볍게 부담없이 보기 좋은 가족영화로 만족하면 될 듯하다. 마지막의 반전과 한지민의 역할은 스포가 될까봐 생략하지만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