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와의 만남, 신성한 밥벌이
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밤 7시 30분 누리꿈스퀘어 18층, 김훈 작가와의 만남이 펼쳐진 곳~
광주송정에서 3시 36분 KTX를 타고 달렸건만, 용산에서 디지털미디어역까지 가장 먼 코스로 환승하느라 늦었다. 6시 수업을 마치고 인천에서 온 큰딸과 디지털미디어역에서 만나 택시로 갔음에도 10여분이 지나 강연은 진행중이었다.ㅜㅜ
늦어서 조용히 들어가 포개진 의자를 내려 두 자리를 만들어 숨을 돌리는데 강연이 끝났다. 시간은 7시 57분, 헐~ 뭐야? 정시에 시작했는지 앞사람에게 물으니 10분 늦게 시작했단다. 그러면 17분 강연에 우리가 들은 건 12분 정도~ 무슨 이야기인지 감도 잡기 전에 끝나 버린 강연이라니, 맥이 탁 풀렸다.
예약주문으로 사인본을 받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작가를 만나기 전에 다 읽으려고 KTX 에서도 코를 박고 읽었지만, 결코 편치 않은 독서였다. 다시 되짚어 읽으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지만 섣불리 단정할 수 없어, 작가의 말을 듣고 싶었다.
한국매일신문 문정수 기자, 그는 사건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기사화하지 못한 이야기를 노목희에게 쏟아낸다. 기사가 되지 않은 것들이 더 가치있고 진실되다는 걸 나도 알아챘다. 분명 못된 짓을 했음에도 나쁜놈이라고 몰아세울 수 없는 박옥출, 장기매매, 해저탄피유츨, 불법을 자행하지만 분명 좋은 사람인 장철수. 네 명으로 압축된 이 책도 만만치 않구나.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덕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35, 161쪽)
공무도하를 읽으면서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막막했는데 강연도 역시 무슨 얘기인지 한 줄로 꿰기도 전에 끝났다. 하지만 이어지는 질의 응답 시간이 길어서 오히려 좋았다. 질문의 답을 들으면서 앞에서 놓쳐버린 내용도 대략 감 잡을 수 있었다. 내가 들은 부분만 정리하자면 이런 정도~
11.12 수능시험 치는 날, 새벽같이 고사장에 가서 학생들을 보고 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공모해 개념화된 수능 속으로 아이들을 몰아넣고, 대안없이 무력하게 지켜볼 뿐이라고. 세상은 결코 개념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데 개념만 물어보는 시험으로 무엇을 평가하며, 평준화 이상을 원하는 부모의 욕망을 부정할 수없는 현실. 고교평준화 대학서열화 등급제를 비판하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그날 시험을 포기한 일만 명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회, 개념화된 지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청년들이, 그 일만 명 중에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뒤에서 볼때는 그가 좀 피곤한 듯 지쳐 보여 안쓰러웠는데, 사인을 받으며 가까이 보니 얼굴에 땀이 많이 나 있었다. 조명 때문인지 힘들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지금 이 시간에도 신성한 밥벌이를 하는 거구나,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하며 계속되는 우리들의 신성한 밥벌이는 작가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느낌이 뭉클 올라왔다.
그는 땀 흘리며 신성한 밥벌이에 경건하게 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누가 우리네 인생들의 밥벌이를 욕할 수 있으며, 비하하고 폄훼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신성한 밥벌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땀흘리는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내 밥벌이를 위해 잠시 나갔다 와서 나머지를 작성해야 될 듯....^^
*일단 사진 몇 개 올려두니 감상하시고~ 나중에 질의응답 정리하면 다시 와서 봐주세요.^^
(친정언니 같은 이웃언니가 모레 이사가기 때문에 송별회 겸 저녁을 같이 먹었다. 밥법이 하는 일도 힘들지만 사람노릇하기는 더 힘들다. 퍼져있다가 열시가 다 되어 마무리 하려고 로그인^^)
*여기부터 질의 응답, 현장에 못 가신 분들을 위해 내 메모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정리.
1. 독자가 읽기도 고통스러운 문체인데, 그걸 쓰는 작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 나의 문체는 고통스런 글쓰기의 요건이다. 원고를 넘기고 나면 절대 보지 않는다. 물론 내 책도 보지 않는다. 왜냐면 고통스럽고 지겨워서~~ ^^ 앞으로 주어와 동사만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한다. 소리의 뼈대만 갖고 있는 동편제 같은 문체의 글을 쓰고 싶다. 서편제는 장식과 떨림이 너무 많고 밀고 끌어당김이 많다.
2. '개'라는 소설을 봤는데, 어떻게 이런 글을 쓰게 되었나?
==>'보리'라는 개를 의인화 한 소설인데, 집에서 키우던 진도개 이름이 '보리'였다. 사나웠는데 나한테만 좋은 개였고, 식구들한테는 좋은 개가 아니었다. 특히 여자를 무시했다.^^ 지금은 농장의 경비견으로 보냈다.
개는 사람보다 청각은 100배, 후각은 200배가 뛰어나다고 한다. 그렇다면 개의 내면에는 100배 이상 축적된 무엇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개를 대신해 내가 표현해주자, 생각했다. 글을 쓰기 위해 진도에 가서 2주 살면서 관찰, 사육(?) 취재했다. 사람과 달리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삶의 직접성을 그리고 싶었다.
3. 작가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 내게 글쓰기란 생업이다. 밥벌이를 위한 경건하고 심오한 노동이다. 이것이 먼저 성립된 후에 예술이 되고 문학이 되는 것이다. 나는 세속적인 질서를 갖고 살고, 현세적(현실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자를 경멸한다. 밥벌이를 배제한 문학과 예술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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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정연주 사장과 YTN 기자들의 해임 무효 승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세속적인 질서를 갖고 사는 사람으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으로 시민의 도리를 다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에 따라 판단하지 여론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론과 정반대의 판단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은 항상 복종해야 하는가? 불복종 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 항상 복종만 하라는 건 아니다. 불복종은 시민의 권리다. 그러나 아무것이나 불복종 하거나, 불복종이 일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지금은 불복종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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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무도하를 쓰기 위해 취재를 많이 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 공무도하에서는 최대한 세상에 대한 연민을 감추고 냉정함, 무정함으로 글을 썼다. 나쁜놈이란 말을 쓰지 않으면서 나쁜놈을 증명하는 것처럼, 연민을 감추면서 더 많은 연민을 끌어내는 것이 글쓰기 전략이다.
취재나 경험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되지는 않고 극히 일부만 쓰인다. 취재보다는 풍경보기를 좋아한다. 취재는 곧 자연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엔 광릉 수목원에 잘 가고, 새벽에 북한강 상류를 관찰한다. 상류는 젊고 신선하다. 그 젊은 안에 무심함, 야비함, 무질서, 혼란이 있다.
인간을 관찰하기 전에 풍경으로 보는 습관이 있지만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을 보는 시선과 자연을 보는 시선을 혼동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강연 이후, 이 책을 샀는데 김훈의 풍경보기가 잘 그려졌다)
5. 자전거 여행에선 국토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남한산성에서 애끓는 아름다움을 느꼈는데 작가는 애국자인가?
==>내게 이념화된 애국심은 없다. '남한산성'은 서편제 같은 글이고, 애국자는 없다. 단지 고립되고 절망적인 성에서 개구멍으로 도망친 자들도 많았지만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뿐이다. 개인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긍정하지만, 그 반대의 사람도 긍정하는 것이 문학이다.
남한산성에서 찾고 싶었던 자료는, 성에서 자급자족하며 잘 살던 백성들이 임금 때문에 살 수 없게 됐다고 임금을 원망하고 욕하는 것을 찾고 싶었는데 없었다. 그래서 상상력으로 복원했고, 그들의 일상에 종사함으로 훨씬 더 애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전거 여행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6. 추천도서 중 30%가 시집이고, 시에 대한 글도 많이 썼는데 왜 시를 쓰지 않는가?
==>나는 시를 못쓴다. 머리가 좋지도 않다. 뛰어난 시를 쓰는 사람을 보면 놀랍다. 질투나고 무서운 생각이 든다. ^^ 김소월은 산유화에서 '피다, 지다, 살다, 울다' 네 개의 자동사에 '산, 꽃, 새, 갈 봄 여름'같은 몇개의 명사만 가지고 시를 썼다. 이건 김소월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다. 육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풍경과 상처, 82쪽에 나온다)
좋은 시인이 된다는 건 하늘의 특별한 간택이다. 시인은 공적인 자원이다.
7. 무엇이 김훈을 갑자기 웃게 하는가?
==> 아이들이 웃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 울타리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면, 그중 하나가 나를 발견하고 웃는다. 곧 모든 아이들이 웃는데 전파속도가 불과 3~4초다. 놀랍지 않은가? 그걸 보는게 즐겁고 기뻐서 종종 학교를 찾아가는데 수위아저씨한테 의심받는다.^^그런 애들을 보며 좋은 동네라고 느낀다. 우리나라 어디에나 있는 풍경이다.
(김훈의 짧은 글과 사진, 여기에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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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제도에 대한 대안은 없는가?
==> 내 생각은 있지만 사람들에게 말하긴 어렵다.
사람들은 묻는다. 4대강정비사업, 세종시 문제, FTA, 기타 등등~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는 모른다. 신문들은 열심히 써놓고, 판단은 국민이 할 거라고 말한다. 그건 하나마나한 소리다. 국민이 판단할 일이라면 뭐하러 국회의원이 있고, 사법부와 대통령이 있는 거냐?
대학의 인문주의 교육쇠퇴로 위기라고 말한다. 대학이 취업준비를 위한 밥벌이 공부만 시킨다고 비난하지만, 나는 세속적인 사람이라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토대에서 제 밥벌이를 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맞다. 고졸자도 밥벌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졸자와 임금격차가 많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요즘 집짓는 현장에서 젊은 목수들 보기 좋다. 스스로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젊은이들이 정서적으로 현실을 보지 말고 과학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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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무도하에서 끈적한 사랑 얘기를 기대했는데 없다. 어떤 의미로 제목을 차용했는가?
==> 고2때 공무도하를 배웠는데 무서웠다. 남편을 못 가게 잡으려다 죽은 건지, 남편이 먼저 죽으니까 따라서 죽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너머'를 가려는 그것이 무서웠다. 40년이 지나 그 이야기를 썼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너머를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외우라고 했다.^^ 우리 교육은 그때나 지금이나 개념만 가르친다.
공무도하에 왜 사랑이 없는가? '사랑'이 꼭 들러붙어서 자식 낳고 살아야 사랑인가? 그것은 속박이다. 인륜을 떠나고 애정을 떠나서, 관계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좌절과 고통을 그렸다. 사랑도 새로운 관계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기서 개인적인 물음, 과연 작가의 딸이 노목희와 문정수의 관계처럼 사랑한다면 지지할 수 있는가? 나의 '엄마 마인드'는 우리 딸이 그런 관계를 갖는다면 결코 지지할 수 없다. 세속적이어도 들러붙어 자식 낳고 사는 속박의 사랑을 요구할 것이다.^^)
9. 오늘 수능얘기를 할 줄은 몰랐다. 수능에 두번이나 아이를 밀어넣은 엄마다. 비열한 제도를 문학으로 형상화할 작품을 쓸 의향은 없는가?
==> 우리에겐 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같은 책이 없는가. 작가들의 직무유기다. 건전하고 발랄한 문제아 허크, 건강한 미시시피강의 모험은 얼마나 멋진가? 우리 문학과 예술이 모순된 제도에서 고통받는 우리 아이들의 절규를 그려야 하는데 없다. 왜 없을까~
10. 공무도하에서 노목희가 냉장고에서 낫토를 꺼내서 놀랐다. 왜, 우리와 친숙하지 않은 낫토인가?
==> 왜, 청국장이 아니냐고 묻는 건가? 젊은이의 야식인데 청국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청국장은 중년부부의 이야기에 어울리고, 심야에 냄새나는 청국장을 끓여야겠는가? 그래서 낫토일 수밖에 없다.^^
11. 고압산소통 폭발과 화장실에 빠져 죽은 사건에 '빵' 터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실제 있었던 사건인지 궁금하다.
==> 삶을 조롱하는 게 아닌가 싶어 뺄까 망설였지만, 이런 것도 삶의 모습이다 싶어 넣었다. 옛날의 일을 더듬어서 썼기에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12. 오늘 강연에서 수능 분위기를 얘기하니까, 예전 기자시절에 썼던 어느 대학졸업식 풍경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 김훈은 예전의 기자 김훈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궁금하다.
==>기자나 소설가나 관찰자의 시선은 다르지 않다. 나는 목격한 것만 적는다. 나는 형식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자다. 내용을 유지하고 버티는 것이 삶의 형식이다. 그래서 형식이 무너지면 내용도 무너진다. 대학졸업식은 난민캠프 같다. 온갖 잡상인이 판을 벌리고 졸업식장에서 총장의 마지막 말을 들어야 할 졸업생은 부모와 사진 찍기 바쁘다. 부모는 총장의 말보다 부모와 사진 찍는 자녀를 원한다. 훈련이 안된 사람들은 날라리다. 우린 교양이 없는 이런 풍경에서 산다.ㅜㅜ (이 책은 사두고 안 읽어서 모른다.)
13. 공무도하는 다를 소설보다 등장인물이 많다. 소설이 끝나는 시점을 어떻게 아는가?
==> 끝날 때쯤 되면 기진맥진한다. 끝낼 때를 놓치면 또 써야 하니까 '이때다!'라고 저절로 안다. 빨리 끝내고 싶어서 노목희를 외국으로 보내야 겠다, 생각했다.^^ 특히 소설 속에 여자가 등장하면 힘들다. 칼의 노래를 쓸때도 '여진'이 등장해서 힘들었다.^^
순오기는 칼의 노래를 읽을 때, 여진의 등장으로 나의 자랑스런 조상님이 망가지는 거 같아서, '이거 뭐야?' 소리치며 집어던졌었다.^^ 하지만 두번째 읽을 땐 극진히 장군을 모신 여진에게 애정이 갔고, 진중에서 여자를 품는 것까지 일기에 적은 충무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짧은 강연과 긴 질의 응답이 끝나고 참석자들이 기다리던 사인회 시간이다.
작가는 신성한 밥벌이의 하나인 '독자와의 만남과 사인회'까지 마음을 다하는 게 느껴져 고마웠다. 사인할 때는 어느 틈에 썼는지 모자가 보인다. 일일이 이름을 적어 정성껏 사인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 일일이 이름을 적어주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도 묵묵히 기다렸다.
누구일까요?^^ 노트북으로 열심히 기사를 작성하는 저분은 뉘신지 모른다.
초상권 보호받고 싶은 큰딸, 작년에 리포트 텍스트가 남한산성이라 열독했는데 사인본이 됐다. 나는 예약주문으로 이미 사인본을 받았기에 이름만 써 달라고 했다.
아래 사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죠?^^
"몇 달 전, 내게도 폐경조짐이 있어 '언니의 화장'을 읽었는데,
여자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폐경조짐과 심리를 잘 아나요?
혹시 부인의 경험이나 조언을 받았나요?"
질문했더니 이 양반 대답을 미루고 되려 내게 물었어요.
"어때요, 비슷하던가요?"
"예, 비슷하던데요."
"오, 그럼 됐어요. 사실은 책보고 썼거든요." ^^
사인을 받으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곤, 기다리는 사람들이 미안해서 기념촬영은 못했다.
다시 뒤에 줄서서 10분을 기다렸다가 우리 딸이랑 같이 사진을 찍었다.
"제가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왔으니 사진 하나는 남겨야 할 거 같아요."
"전라도 광주에서 왔다고요? 뭐하러 그렇게 멀리서 올라와요. 다음엔 오지 마세요."
"예, 그럴게요. 덕분에 추석 이후 두 달만에 우리 딸도 만났잖아요!"
"따님은 어디~ 여기서 학교 다니나요?"
"예~~ "
우린 정식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이 정도면 서울까지 올라간 보람이 있지요.^^
사진은 문학동네 직원이 찍어 주었다.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
그는 피곤해 보였고, 땀도 많이 흘렸지만 끝까지 성실하게 사인해주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이었다.
김훈 작가가 늘 하는 말처럼, 나도 신성한 밥벌이를 마치고 부랴부랴 올라갔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궁금했던 이야기도 눈과 눈을 마주하며 나누었으니 그 이상 무엇을 바라리오! 나와는 12년차, 띠동갑이다.^^ 건강하시고 더 좋은 작품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강연이 끝나고, 신성한 밥벌이로 번 돈으로 우리 딸에게 간만에 고기를 먹였다.^^ 그리고 지하철을 두번 환승해서 기숙사에 도착한 시간은 24시. 모녀의 동침으로 포근하게 마무리되었다.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의 삶이지만, 이렇게 신성한 밥벌이와 휴식으로 '그 너머'를 기웃거리지 않으며 오늘도 버틴다.
위에 담지 못한 그의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