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 여고졸업 30년 첫 동창회

건망증이란 그물망에 포획된 나이테, 어느덧 쉰 개나 되는 퉁퉁한 몸피로 불려 놓았다.
지천명, 그렇다고 대단한 하늘의 도를 깨달은 것도 아니고,
단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나이라는 걸 알았을 뿐.
숨길 수 없이 희끗희끗 드러난 흰머리를 이고 온 그녀들이
30년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어 여고시절로 돌아갔던 동창회 분위기를 담아 본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1반부터 10반까지 600명이 넘는 동창들이 30년 세월이 흘러 한 자리에 모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수고한 집행부 그녀들이 있었기에 추억 속의 이름과 얼굴을 꿰맞추는 훈훈한 자리가 마련됐다.
 

인천의 끄트머리 파라다이스호텔 8층에 마련된 축제의 장
 


호텔 앞쪽엔 인천 앞바다와 월미도가 보이고, 뒷쪽엔 차이나타운을 품고 있는 자유공원이 보인다.


거금 5만원의 회비를 내고 받아든 이름표와 주소록, 친구들을 얼마나 찾아냈는지 살피며 호텔입구에서 만나 같이 들어간 *성이에게 교가를 배웠다. 이 친구 애기 같았는데 결혼은 우리반에서 제일 먼저 했다지. ^^


아~ 잊고 살았던 교가, 머리 좋았던 *성이가 부르는 걸 들으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다니 놀라워라! 
한글학자 이희승선생이 노랫말을 쓰고, 당시 모교에 재직했던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선생이 곡을 붙인 아름다운 교가다. 30년만에 마지막 순서로 다같이 부를때는 감동의 강물이 잔잔히 흘렀다.



드디어 우리 담임 김동호선생님과 39년째 동창회를 관리하시는 총동문회장 전옥련선생님이 오셨다.


오매불망 좋아했던 가용현선생님의 등장, 단 둘이 찍겠다는데 끼어든 이 친구들~ 결국 디카를 조정해 그녀들을 잘라내는 만행도 서슴치 않은 순오기.ㅋㅋ 30년 전엔 케네디를 닮았다고 학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는데 세월이 비켜가지 않은 듯... 모교 교장으로 계실 때 골든벨에 나와서 두어번 전화통화는 했지만 만나 뵙기는 처음이다. 작은 눈은 여전하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놀리셨다.^^ 선생님은 현재 교육위원으로 활동중이시라고...


인천생활과학고 교장으로 퇴임하신 10기 선배로 우리들의 선생님이셨던 전옥련선생님은, 학창시절 선발집단이라는 우리들의 자존감을 살려주며 도전하도록 격려하셨다. 그 덕분인지 교직에 몸담은 친구들이 많았다. 모교 출신 선생님 한두 명을 꼭 모교에 배치해 동창회를 관리한다고 하셨다. 현재 모교에 교사로 재직중인 23기 총무와 총동창회 총무가 함께 했다. 당시 미남 투톱이었던 선생님 두 분은 교장으로 정년퇴임 하셨고.


두분의 영어선생님, 80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으신 김병일선생님과, 같은 부평에 산다고 전철통학길에 자주 만나 친한 척했던 임정웅선생님. 함석헌옹을 생각나게 한 김영소 선생님도 완소! 


늦게 도착하는 두 분 선생님을 기다리느라 공식행사를 미루고 담임선생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3학년 8반은 일등이었다. 10명으로 제일 많이 참석했고, 장학금을 제일 많이(200만원) 낸 친구도 우리반, 교통비(으~고속버스비와 택시비까지 8만원. OTL) 많이 들어 장학금 못 낸다던 순오기까지 모두(진짜?) 장학금을 약속했고... ^^  

담임선생님께서 저녁 살테니 언제 반모임 하자셔서 10월 23일 금요일 6시, 제물포 숭의가든에서 모이기로 날 잡았다. 수술을 세번이나 하셨다는 선생님은 많이 야위셔서 우리 마음을 아프게 했고, 선생님께선 테니스 좋아하던 교장샘한테 잡혀 만날 종례도 제대로 못한 게 제일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알긴 아시는군요!" *성이의 한마디에 모두가 푸하하하~ㅋㅋㅋ


선생님 옆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친구는 12(?)개의 기업을 거느린 그룹총수의 사모가 되었는데, 선생님이 취업시켜 준 곳에서 만났다고... 다음날 친정에 온 남동생한테 말했더니 000회장이 돈 벌게 된 경위부터 아주 잘 알더라. 많이 베푼다는데 이 친구 자랑하지 않고 겸손한 걸 보니 천상 여자이고 복 받을만 하더라. 우리반 부실장이었던 문*숙, 실장 조*옥은 어디에 숨었는지 아무도 몰라... 남편이 경찰인 친구에게 부탁해 10월 반모임에 나올 수 있도록 전국수배령을 내렸다. ^^ 공부 잘하던 이*미는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순오기 자리에 보이는 앨범, 친구들은 이름표를 보고도 그때 얼굴을 확인하느라 내가 가져간 앨범을 보고서 비로소 아~~ 했었지. 다른 반으로 돌다가 돌아온 앨범, 선생님중엔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이 많았다.ㅜㅜ



연대장 유연희의 인사로 공식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총동창회장님의 인사말과 최두집교장선생님의 환영사~ 올해는 22기가 '모교 방문의 해' 주인공인데, 신종플루로 후배들의 환영행사가 취소되었고 학교 공사로 모교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사과하셨다.



열 분 담임선생님 중 4반 선생님이 돌아가셨고, 6반 선생님은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감사의 꽃과 선물을 드리는 시간 



우리선생님은 "순오기~넌 왜 자꾸 가선생님을 찍냐?" 질투하시고... "제가 좋아했잖아요!"^^


모두 스승의 은혜를 부르고 교가를 부르는 시간, 국어를 맡으셨던 노수당 선생님도 보이고...


단체 기념촬영~ 여기서도 역시 앞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른쪽 끝자리의 순오기





 

>> 접힌 부분 펼치기 >>



1학년때 담임이었다고 기어이 와서 찍은 5반, 1학년 때 같은 4반이었던 *희 *란이와 순오기


대전 전*동 우체국에 근무하는 *희, 처음엔 선생님인줄 모르고 "넌 누구니? 왜 이름표를 안 달았어?" 라고 했던 걸 사과하며 파안대소중이란다. 일산가스레스를 운영하는 *복이는 내가 연락해서 왔고...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순이는 여전히 그 폼으로 씩씩하고...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숙이는 2학년 5반 반창회도 하자고 난리고... 현 교장선생님


"어머~ 넌 옛날이나 똑같다!"
"아니, 그럼 그때도 이렇게 늙었단 말이야!"ㅋㅋㅋ

우리들의 동창회는 5시부터 9시까지 장장 30년 세월을 거슬러 오르내리며 막을 내렸다.
10월 23일은 3학년 8반 반창회로 다시 올라가야 될 듯... 인천테마여행은 그때나...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09-09-21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여고친구들이 보고 싶어요..
다들 시집가서 애놓고 잘살려나.

순오기 2009-09-21 16:27   좋아요 0 | URL
흐흐~ 여고동창회를 하려면 세월이 더 흘러야 해요.
애 키울땐 정신없어서 만나기 어렵지요.^^

마노아 2009-09-2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해요. 모두들요. 3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 추억을 한껏 담아오셨네요. 10월의 모임도 기대가 됩니다.^^

순오기 2009-09-21 18:28   좋아요 0 | URL
10월 모임은 자청해서 연락책 맡았어요. 아무래도 그래야 올라갈 거 같아서...앞주 토욜에 땡겨서 수업하고 그날 오전엔 어머니독서회 모이고 오후 수업은 땡땡이 쳐야 될 듯...최규석 작가 초청도 10월인데 아직 정확한 날은 안 잡혀서 바쁜 10월 예상!!

김인성 2009-09-2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니 고생많았다.. 멀리서 온것만도 칭찬해줘야하는데..
찍사까지 자청해서 편집도 잘해서 올렸네...
근데.. 나 젤먼저 결혼한게 아니고.. 아마도 젤 늦게 간게 아닐까?? ㅋ
가까이 지냈던 앞쪽 친구들이 안와서.. 조금은 서먹했지만..
그래도.. 30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흐른건지 믿기지 않을만큼
금방 화기애애해져서 좋았던듯 싶다....
반창회.. 가능한 참석할께.. 반가웠어....

순오기 2009-09-22 00:07   좋아요 0 | URL
하하하~ 인성이가 다녀갔구나~~
선미랑 흥숙이한테는 문자왔고, 영희하곤 통화했는데.
그날 돌아오기 전 터미널에서 혜자 만나서 저녁 먹었는데, 혜자 말이 네가 제일 먼저 시집갔다고 하던데...아니었어?^^
10월 23일, 친구들 연락처 많이 많이 찾아내서 다같이 보자!

무스탕 2009-09-2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탄 감탄 +0+
정말 부러운 친구분들이고 행사였어요.
저도 저렇게 친구들 다시 만날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방법이 없어보여요..
으아~ 하여간 좋은 시간 보내신것 부럽습니다 :)

순오기 2009-09-22 00:07   좋아요 0 | URL
으아~ 좋은 시간 보낸 건 확실해요.ㅋㅋ
무스탕님도 동창회 하면 친구들을 많이 찾게 될 거예요.^^

라로 2009-09-22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년만의 여고 동창회라고 순오기언니 한껏 멋내고 가셨는걸요!!!!ㅎㅎㅎ
역쉬 어디서나 언니의 빛나는 활약!!!멋져요~.
그나저나 저도 친구들이 보고싶네요~.^^

순오기 2009-09-22 08:52   좋아요 0 | URL
하하~우리가 부산에서 만났을때보다 멋져 보여요?^^
알라딘에 올리려고 자칭 리포터잖아~~ㅋㅋ
후애님 만남 이벤트로 우린 또 만나게 되지 않을까?

후애(厚愛) 2009-09-22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동창회 하고 싶어도 연락할 길이 없어요ㅠㅠ
예전에 알고 있던 전화번호가 다 바뀌었거든요.
30년만에 만나시는 친구분들과 좋은 시간 보내신 것 같아요.^^
넘 부러워요~~

순오기 2009-09-22 08:5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한국에서 살면 어떻게든 찾게 될텐데...
하여간 귀국해서 한국의 기를 받아 건강 회복하기 바래요.
우리도 조만간 만날테니까~ 넘 부러워하지 말아요.^^

꿈꾸는섬 2009-09-2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나는 여고 동창생들 얼마나 반가울까요. 이런 자리가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순오기 2009-09-23 21:21   좋아요 0 | URL
정말 반가웠어요~ 30년을 한 순간에 뛰어 넘는 친화력에 놀랐지요.^^

2009-09-23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9-23 21:23   좋아요 0 | URL
친정 옆동네라 너무 좋아요~ ^^
광주에서 서울 올라온 친구가 있어 저희들끼리 뭉쳤다 돌아오는 딸 기다리느라 결국 아무데도 못 갔어요.ㅜㅜ 인천테마여행은 다음을 기약해야지요.

이영미 2009-09-2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잊혀진 세월을 뛰어넘은 만남.
30년 세월의 공간을 넘어서는 따뜻함이 있었고, 멀리서 방문해준 친구들 반가웠어..
사진 많이 올려줘서 고맙고 수고많았어.
10월에 선생님하고 같이 좋은시간 보내자...
인천에서.

순오기 2009-09-24 18:04   좋아요 0 | URL
작은 영미야 큰 영미야~ 알수가 없잖여!^^
반모임 10월에 못하고 11월에 해야할 듯...
10월 24일 완도문학기행이 잡혔는데 그만 까먹고 날짜를 23일로 잡았어.ㅜㅜ
선생님계선 내가 올라올 일이 있을 때 하자시니까...^^

희망찬샘 2009-09-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순오기 2009-09-26 13:38   좋아요 0 | URL
와우~~의 의미는?^^

장경옥 2009-09-29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제야 네블로그에들어왔다 멀리서 온 널 못챙기고 보낸게 맘에 많이 걸렸었는데.. 담달에 반창회할때는 집에 안들어갈 생각이다. 우리 찜질방에라도가서 실컷 이야기 보따리라도 털어놓자구나 명절 즐겁게 잘보내고..경옥이가

순오기 2009-09-29 21:45   좋아요 0 | URL
아니야~ 인천역까지 데려다 줬잖아~ ^^
반창회 다음달 못하고 11월로 미뤄야 할 듯...문자 보낼게!

oren 2011-10-1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쓰신 페이퍼지만 '감동'이 생생한 글이네요. 그리고 순오기님 덕분에 '여고' 졸업생들의 홈커밍데이 행사도 난생 처음으로 구경하게 되는군요.

'남고'에서는 보통 1박2일씩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회포를 풀 시간이 많은데(가령, 서울 사는 친구들만 하더라도 행사 첫날 아침 일찍부터 '관광버스 2대'로 함께 움직였고, 함께 하룻밤을 잤고, 행사 이튿날 서울에 도착해서도 밤늦게까지 뒷풀이를 더 가졌으니까요), 여고 졸업생들은 '겨우' 몇 시간 정도만 함께 한다는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암튼 30주년 행사를 마치고 나니, 선생님을 모시고 '반창회'를 하자, '추억의 졸업여행'을 떠나보자 등등 후속 논의가 꽤나 활발해지면서, 그리운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날 시간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11-10-1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멋져, 순오기님... 감동적이고요.

그런데 겨우 4시간의 만남이었다니, 제가 다 아쉽네요. 다음엔 더 많은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네요.
헤어질 때 많이 아쉬웠겠어요.

이런 것에 감동하는 것 보니, 제가 이제 나이 들었다고 나이 든 티를 내는 건가요?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