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럿 브론테의 소설 빌레뜨는 비극에 가깝다. 고대 그리스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장중하거나 극적이지는 않지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여성이 겪는 은근하고도 끈질긴 힘듦과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노동계급보다 아래인 이급 시민으로 취급받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으로서, 특히 부모님은 물론 후견인 한 명 없이 홀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야하는 여성의 여정은 당연히 위태롭고 벅찰 것이다. 작가 샬럿 브론테는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조실부모하고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 루시 스노우를 통해 그런 환경에 처해진 여성의 삶을 자세하고도 절절히 묘사한다.

 

작가는 지나치게 세밀하고 자세한 문장을 통해, ‘루시 스노우의 생각이나 행동을 말해준다. 제인 에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샬롯 브론테는 여성도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시대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스스로 이루기 위해 매번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사랑일지라도 자신이 넘볼 수 없는 곳은 절대 시선조차 주지 않고, 언제나 감정보다는 이성을 통해 자신을 지키려는 인내심은 보통 사람이면 갖기 힘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층계급이 아닌 여성이 생계수단을 획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가정교사나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심리적인 면에서는 일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채 유모나 하녀의 일까지 겸해서 해야 했으며, 또한 고용주의 다른 피고용인들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 때문에 고립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작품 해설 중에서]

 

이 힘든 것을 묵묵히 견디는 루시 스노우지만 한 번씩 그녀에게 엄습하는 우울과 외로움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정신적 고통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은 주저앉거나 광기의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샬럿 브론테는 역시나 이 소설에서도 그것을 극복해내는 또 한 명의 강인한 영국 여성을 만들어낸다. 소설 빌레뜨는 루시 스노우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것은 결국 뽈 에마뉘엘이라는 남자가 만들어 준 것이며, 뒤늦게 찾아 온 유산을 받아서이다. 아무리 의지와 행동이 이성적이고 단단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한계도 보여준다.

 

작가 샬럿 브론테는 동생 에밀리와 함께 1842년 벨기에의 브뤼셀에 위치한 에제 부인의 기숙학교에서 학생이자 영어 교사로 생활한다. 그곳에서 프랑스어를 배워 하워스에 학교를 차릴 목적이었다. 소설 빌레뜨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여러 면에 걸쳐 상상도 하지 못할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샬럿은 또한 에제 교수에게 연정을 느낀다. 뽈 에마뉘엘은 에제 교수가 모델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느낀, 작가가 이해 못한 것들은 이 소설에 그대로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여러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지나치게 장황하고 세세한 묘사로 많이 지루했다. 다만 문장의 표현만큼은 기막혔다. 적절한 상징과 비유가 뛰어났고, ‘루시 스노우로 빙의한 샬럿 브론테의 지혜와 위트, 귀여움이 너무 좋았다.

 

[‘이성에 따르면, 나는 빵조각이나 벌려고 일하며 죽음의 고통을 기다리면서 평생 낙담한 채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이성이 옳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이성을 무시하고 이성의 채찍을 벗어나 상상에게 달려가서 빈둥대지 않는가. 밝고 부드러운, 이성의 적이자 우리의 상냥한 구원자이며, 신성한 희망상상에게 말이다. 끔찍한 복수가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따금 한계를 넘어서기도 하며, 또 그래야 한다. ‘이성은 악마처럼 복수한다. ‘이성은 늘 계모처럼 내게 독기를 품고 대했다. 내가 이성을 따르는 것은 애정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이성은 겨울밤 차가운 눈 위로 자주 나를 내쫒으면서 개들이 갉아먹다 버린 뼈다귀나 먹으라며 던져주었다. 자기 창고에는 내가 먹을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 더 나은 음식을 요구할 권리가 내겐 없다고 모질게 굴면서

-빌레뜨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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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9-17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수>에도 벨기에 사람들을 폄하하는 이야기들이 꽤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빌레뜨>는 그 뒤에 읽었는데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 같네요.. ^^;

페넬로페 2025-09-17 00:55   좋아요 1 | URL
<빌레뜨>에 엄청 그런 내용이 많았어요. 물론 작가가 경험한 것들을 서술했겠지만, 영국인의 우월주의가 많이 들어 있더라고요.
<교수>는 괜찮나요?
<셜리>는 빌레뜨보다는 제 취향인 것 같더라고요^^

건수하 2025-09-17 10:23   좋아요 1 | URL
<교수>는 초기작이라 좀 거칠고 여성도 별로 진취적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딱히 재미있지도 않았어요.. ^^
저는 <셜리>를 아직 안 읽었는데, 조금 기대해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5-09-17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빌레뜨는 장황하죠. 그래서 사실 저도 좀 읽기 힘들었어요. 뭔가 딱 이거다 하는 임팩트가 없었던.... 하지만 제인 에어가 이래서 나올수 있었구나 하는 마음을 줬어요. 그것만으로도 제인 에어의 팬으로서 감사하답니다. ^^

페넬로페 2025-09-17 15:13   좋아요 1 | URL
네, 끝까지 맥락과 임팩트가 부족해서 읽기가 지루했어요. 제인 에어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어요.

책읽는나무 2025-09-17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책표지가 다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책표지가 넘 예뻐서 기대하고 읽었는데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좀 대충 읽고 넘어갔었는데…문체가 몇 군데 끌던 곳이 있었어서…꼭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지. 찜해두긴 했는데 언제 읽을지?….

페넬로페 2025-09-18 08:38   좋아요 1 | URL
책표지가 예쁜데 뭔가 내용과 잘 맞지 않는 느낌도 들었어요. 소설이 너무 장황해 읽기가 지루하기도 ㅎㅎ
책나무님, 굳이 재독까지는~~

새파랑 2025-09-18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론테 전문가 페넬로페님~! 제인에어에 이은 읽기군요. 이 책은 잘 안읽히나 봅니다. 저는 표지가 예뻐서 구매후 초반부만 조금 읽다가 포기했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5-09-18 19:02   좋아요 1 | URL
너무 안 읽혀 조금 힘들었어요. 샬럿 브론테 작품의 주제가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표지는 넘 예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