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밖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걷는 길과 같은 길이 아닌, 매끄럽고 쓸쓸하며 부드러운 과거를 통과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과거는 그토록 많은 과거로 만들어져 있어, 내
슬픔을 초래한 것이 질베르트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녀를 마중하기 위해 옮겼던 발걸음에서 연유하는지, 아니면 알베르틴이 앙드레와 함께 갔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던 집과의 인접성에서 연유하는지, 또는 점심을 먹고 나서 
기둥에 풀로붙인 지 얼마 안 되는 「페드르」나 「검은색 도미노 포스터를 보려고 그렇게 서둘러 열정적으로 달려갔던 
길처럼, 더 이상 지속되지 않고 결실도 맺지 못한 열정과 더불어 그토록 수없이 쫓아갔던 길이 의미하는 철학적인 공허함에서 연유하는지, 내 우울증의 원인을 발견하는 것은 몹시 어려웠다.  - P16

그렇다. 만일 추억이 망각 때문에 그 자신과 현재 순간 사이에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고 어떤 사슬고리도 던지지 못한다 해도, 추억이 그 자리에 그 날짜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깊은골짜기나 산꼭대기에서처럼 고립 상태를 유지한다 해도, 회상은 돌연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예전에우리가 호흡했던 공기, 시인들이 낙원에 널리 퍼뜨리려고 헛되어 시도했던 것보다 더 순수한 공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그 공기를 호흡한 적이 없다면, 쇄신에 대한 어떤 깊이있는 감각도 줄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낙원이란 바로 잃어버린 낙원이기 때문이다. - P35

그러자 접시에 부딪친 스푼 소리와 고르지 않은 포석과 마들렌맛이 주는 그 행복한 인상들은 내가 현재의 
순간과 아주 먼 과거의 순간에 동시에 느낀다는, 과거를 현재로 스며들게 하여 내가 과거와 현재의 순간 중 어느 쪽에 
있는지 알기를 망설이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 나오는 이런저런 이름은 음절 사이로 그 책을 읽었던 날의 세찬 바람과 반짝이는 햇살을 담고 있다. 
따라서 ‘사물의 묘사‘에 만족하거나, 사물의 선과 표면의 초라한 목록을 나열하는 데 만족하는 문학은 사실주의로 
불리지만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문학, 우리를 메마르게 
하고 가장 슬프게 하는 문학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현 자아와 사물의 본질을 간직했던 과거, 또 사물의 본질을 다시 즐기도록 부추기는 미래 사이의 모든 소통을 느닷없이 
차단시키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예술이 표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사물의본질이며, 만일 그 일에 실패하는 경우, 우리는 이런 무능력으로부터 하나의 가르침을, 다시 말해 그 본질이 부분적으로는주관적이며 소통 불가능하다는 가르침을 끌어낼 수 있다.(반면 사실주의 문학의 성공에서는 어떤 교훈도 도출할 수 없다.) - P56

책 자체의 가치와는 무관한 아마추어들에게만 가치 있는 아름다움은 제외하고라도, 책이 거쳐 간 서재를 알고, 책이 이런저런 군주에 의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유명 인사에게 주어졌는지를 알며, 책의 삶을 통해 이 경매에서저 경매로 책을 따라가는 것, 어떻게 보면 책의 역사적인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것이 내게는 완전히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다 기꺼이, 다시 말해 단순히 호기심을 가진 자가 아닌 내 삶의 역사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끌어냈으리라. - P58

예전에 하얀 도자기 그릇에 담긴, 엉긴 우유처럼 보이는 주름 잡힌 크림색 카페오레를 마시는 동안 아직 하루가 손대지 않은 채로 가득 차 있을 때, 카페오레의 맛은 여명의 불확실한 빛 속에 우리에게 그토록 자주미소를 지었다. 한 시간은 그저 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향기와 소리와 계획과 날씨로 채워진 항아리이다.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것은 동일한 순간에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감각과 추억 사이의 어떤 관계로서 이 관계는 사실에 국한된다고 주장할수록 더욱 사실로부터 멀어지는 단순한 영화적 전망에서는 생략된다 - 작가가 서로 다른 두 요소를 자신의 문장에서 영원히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유일한 관계이다. - P63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밖에 있어서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는,
따라서 우리에게 어떤 피로도 유발하지 않는 대상 속의 인상만을 고려한다. 다시 말해 산사나무나 성당의 광경이 우리 마음속에 판 고랑을 지각하는 일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음악이나 고고학에 대해 가장 조예 깊은 애호가와 같은 방식으로 그 음악이나 고고학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바라볼 용기 없는 자신의 삶을 피해 박학이라고부르는 것 속으로 도피하면서 교향곡을 다시 연주하거나성당을 보러 간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인상으로부터 아무것도 끌어내지 못하고 일종의 예술 독신자들처럼 그저 쓸모없이 충족되지 못한 채로 늙어 가는가!  - P67

예술만이 우리 자신의삶을 타자를 위해 표현하게 하며, 또 우리 자신에게도 보게 해준다. 그 겉모습이 번역될 필요가 있으며, 또 자주 거꾸로 읽히며 힘들게 판독되는 그런 스스로를  ‘관찰할‘ 수 없는 삶을,
우리의 자만심과 열정과 모방 정신, 추상적인 지성과 습관이했던 그 작업을 예술은 해체할 것이며, 그리하여 그 작업과는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 우리도 모르게 잠들어 있는 깊은 곳으로 회귀하면서, 우리를 뒤따르게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진정한 삶을 재창조하고 인상을 새롭게 하는 일은 커다란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는 온갖 종류의 용기가, 감성적인 용기조차 필요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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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1-16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이것만 보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 보시는군요 마지막이어서 빨리 보고 싶기도 하고 천천히 보고 싶기도 할 것 같네요 페넬로페 님 마지막 권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페넬로페 2023-01-16 15:36   좋아요 1 | URL
네 드디어 마지막 권 읽어요.
빨리 보고 싶지만 처음부터 어려워 천천히 볼 수밖에 없어요 ㅎㅎ

서니데이 2023-01-16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권이니까 완결편이네요.
생각나서 찾아보니, 전에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책은 11권이었어요.
지금은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을거예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문장이 길지만, 좋은 문장이 많이 보여서, 번역하신 분이 고민 많이 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01-16 19:51   좋아요 1 | URL
좋은 문장도 많은데 읽기 힘든 문장도 많아 천천히 읽고 있어요.
번역자가 정말 힘들었을것 같습니다~~
날씨가 추워요.
서니데이님께서도 건강 유의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