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만은 그의 밤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미련 없이 태양과 작별한 엘리만에 매료되었다. 승천한 그의 그림자에 매료되었다. 그의 운명의 신비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엘리만은 해야 할 많은 말을 두고 왜 침묵했을까? 나는 무엇보다 엘리만처럼 할 수 없어서 괴롭다. 침묵하는 사람, 진정으로 침묵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늘 자신의 말의 의미 - 그 필연성-를 묻게 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말이 어줍잖은 객설은 아닐까, 혹시 언어의 진흙탕이 아닐까 생각하게된다. - P16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 희망 없이 그래도 쉽게 체념하지 않으면서, 집념과 탈진과기쁨을 맛보며 세상을 더 낫게 만들겠다는 한 가지 목표로 쓴다. 눈을 부릅뜨고 전부 보고 하나도 놓치지 말 것. 눈을 깜빡이지 말고, 눈까풀 아래서 쉬지도 말고, 모든 것을 보려다가 자칫 눈이 망가질 수있다는 위험까지 감수할 것. 하지만 증인이나 예언자와는 다르다. 그렇다. 그렇게는 아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가련하게 혼자 서서 떨고있는 보초, 자신의 죽음과 도시국가의 종말을 알리는 섬광이 솟아오를 어둠을 지켜보고 있는 보초처럼 보아야 한다. - P62
아마도 모든 작가들이 그럴 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고뇌 때문이었을것이다. 우리가 비판한 것은 사실상 우리 자신이었고, 우리가 표현한것은 무능한 우리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출구 없는 동굴안에서 쥐들처럼 그 동굴 속에 갇힌 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P67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게 바로우리 삶이야. 문학을 하려고 애쓰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학에대해 말하는 것. 말하는 것 역시 살아 있게 만드는 한 가지 방식이니까. 문학이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아무리 무용하고 아무리 비극적인 희극이고 무의미할지언정 그래도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닐 수있지. 우리는 문학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 듯 굴 수밖에 없어. 이따금, 아주 드물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가끔 정말로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우리가 바로 그 증인이야, 파이.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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