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을 보면 인간은 이기주의에서 이끌어낸 공평이라는 개념을 고양이보다 잘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혜의 측면에서는 고양이보다못한 것 같다. 그렇게 산더미처럼 쌓기만 하지 말고 얼른 핥아먹었으면 
되었을 텐데, 여느 때처럼 내가 하는 말은 통하지 않으니 
안타깝지만 밥통 위에서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었다.
- P46

그에 비하면 고양이는 단순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나면 열심히 화를 내고, 울 때는 죽어라 운다. 우선 일기처럼쓸데없는 건 결코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처럼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어두운 방에서나마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고양이족은 걷고 멈추고 앉고 눕는 일상생활, 똥을 누고 오줌을 누는 자잘한 일 등이 모두 진정한 일기이니, 특별히 그렇게 성가신 짓을 하면서 자신의 진면목을 보존할 필요가 없다. 일기 쓸 시간이있다면 툇마루에서 잠이나 자겠다.
- P49

나는 얌전히 앉아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었는데,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인간이라는 족속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놀리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고, 재미있지도 않은 이야기에 기뻐하는 것 말고는 별 재주가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인이 방자하고 속 좁은 인간이라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말수가 적어 어쩐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은 것 같았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얼마간 두려운 느낌도 들었으나, 지금 이야기를 듣고 나자 갑자기 경멸하고 싶어졌다. 그는 왜 두 사람의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단 말인가. 그들에게 질세라 얼토당토않은
잡담을 지껄여댄들 무슨 소득이 있을까. 에픽테토스의 책에 그렇게 하라고 쓰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 P108

그렇다면 왜 숨어들었다‘는 애매한 말을 사용 했느냐고? 글쎄, 그건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원래 내 생각에 따르면 하늘은 만물을 덮기위해, 대지는 만물을 싣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아무리 집요한 논의를좋아하는 인간이라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하늘과 대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 인류가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가. 조금의 도움도 주지 않았지 않은가.
자신이 만들지 않은 물건을 자신의 소유로 정하는 법은 없으리라.
자기 소유로 정하는 것이야 별 지장이 없겠지만, 다른 사람의 출입을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드넓은 대지에 빈틈없이 울타리를 치고말뚝을 세워 누구누구의 소유지로 구획하는 것은, 마치 창공에 새끼줄을 치고 여기는 나의 하늘, 저기는 그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토지를 잘라내어 한 평에 얼마를 받고 소유권을매매한다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한 30세제곱미터로 나누어 팔아도 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공기는 나누어 팔 수 없고 하늘에 새끼를 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토지의 사유 역시 불합리하지 않은가. - P186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나날이 위험이 많아져 방심할 수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열해지는 것도, 표리 두 겹으로 된 호신용 옷을 걸치는 것도 모두 세상 이치를 아는 결과이며, 세상 이치를안다는 것은 결국 나이를 먹는 죗값이다. 노인 중에 변변한 자가 없다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나 같은 자도 어쩌면 머지않아 다타라 군의 냄비 안에서 양파와 함께 성불하는 것이 득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구석 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조금 전에 안주인과 싸움을 하고 일단 서재로 물러났던 주인이 다타라 군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어슬렁어슬렁 거실로 나왔다.
- P251

비록 자기 자식이지만 그래도 주인이 절실히 생각하는 것이있다.아이들은 성장한다. 그냥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절간의 죽순이 대나무로 변화하는 기세로 자란다. 언제 이렇게 자랐나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주인은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무리 종잡을 수 없는 주인이라도 이 세 딸들이 여자라는것 정도는 알고 있다. 여자인 이상 언젠가는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다. 알고만 있을 뿐 시집보낼 수완이 없다는 것또한 자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면서도 조금은 벅차하는 것이다. 벅차할 거라면낳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을 정의하는 데 다른 것은 필요 없다. 그저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내 스스로괴로워하는 존재라고 하면 충분하다.
역시 아이들은 대단하다. 아버지가 이만큼 처치 곤란해하고 있다는것은 꿈에도 모른 채 신나게 밥을 먹고 있다.  - P484

아까부터 이런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면서도 주인은 한 마디도 하지않고 오로지 자신의 밥을 먹고 자신의 국을 먹더니, 이때는 이미 이쑤시개로 한창 이를 쑤시는 중이었다. 주인은 딸의 교육에 절대적 방임주의를 취할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세 아이가 에비차 시키부(海老茶式部)나 네즈미 시키부(式部)"가 되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정부(情夫)를 두어 집을 나간다 한들 여전히 자신의 밥을 먹고 자신의 국을 먹으며 태연히 보고 있을 사람이다. 무능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 유능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거짓말을 하여 사람을 피는 일, 눈 감으면 코를 베어갈 만큼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일,
허세를 부리며 남을 위협하는 일, 마음속을 떠보고 함정에 빠뜨리는일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중학교에 다니는 소년들까지 보고 배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력을 떨칠 수 없다고 잘못 알고 있고,
마땅히 낯을 붉혀야 할 일을 당당하게 하면서 자신을 미래의 신사라 여기고 있다.
이런 사람을 유능한 일꾼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불한당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나도 일본의 고양이라서 나름대로 애국심은 있다. 그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 대 쥐어박고 싶다. - P487

내가 재미있다고 하면 뭐가 그리 재미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묻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신을아는 것은 평생의 큰 과업이다. 자신을 알 수만 있다면 인간도 인간으로서 고양이보다 더 존경을 받아도 좋다. 그때는 나도 이런 짓궂은 글을 쓰는 일도 딱한 노릇이니 당장 그만둘 생각이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의 코 높이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좀처럼 알기 힘든 모양이다. 그러니 평소 경멸하는 고양이에게조차 이런질문을 던지는 것이리라. 인간은 건방진 듯해도 역시 어딘가 나사가빠져 있다. 만물의 영장입네 하면서 어디를 가든 만물의 영장임을 내세우지만 이까짓 사실도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태연자약인 데는 한바탕 웃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어진다.
그들은 만물의 영장을 등에 업고, 내 코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줘.
하면서 소란을 피운다. 그렇다고 만물의 영장을 그만두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 죽어도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공공연히 모순된 태도를 보이며 태연히 있을 수 있다면 애교가 있다고 할 것이다.
애교를 택한 대신 바보로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518

주인은 저녁을 마치고 서재로 들어갔다. 안주인은 오슬오슬한 속옷의 깃을 여미고 빛바랜 옷을 집고 있다. 아이들은 베개를 나란히 하고잠들어 있다. 하녀는 목욕하러 갔다.
무사태평해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도통한 듯 보이는 도쿠센 선생 역시 발은 지면 외에는 밟지 않는다.
마음 편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메이테이 선생의 세상은 그림 속의세상이 아니다. 간게쓰 군은 유리알 가는 일을 그만두고 드디어 고향에서 아내를 데려왔다. 이것이 순리다. 하지만 순리가 오래 계속되면필시 지겨워질 것이다. 도후 군도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무턱대고 신체시를 바치는 일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산페이 군도 물에 사는 사람인지 산에 사는 사람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평생 샴페인을 대접하며 의기양양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스즈키 도주로씨는 어디까지고 굴러갈 것이다. 구르다 보면 흙탕물도 묻는다. 흙탕물이 묻어도 구르지 않는 자보다는 말발이 선다.
고양이로 태어나 인간 세상에 살게 된 것도 이제 2년이 넘었다. - P612

차츰 편해졌다. 고통스러운 것인지 다행스러운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물속에 있는 것인지 방 안에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디에 어떻게 있어도 상관없다. 그냥 편하다. 아니, 편하다는 느낌 자체도 느낄 수 없다. 세월을 잘라내고 천지를 분쇄하여 불가사의한 태평함으로 들어선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태평함을 얻는다. 죽지 않으면태평함을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고도 고마운지고,
- P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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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1-08-15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은 참으로 우스운 자들이로소이다… 저는 고등학생 때 이 책 딱 반만큼 읽고 포기했었는데, 페넬로페님께서 그으신 밑줄들을 보니 고양이님의 말씀이 재밌네요ㅎㅎ

페넬로페 2021-08-15 17:22   좋아요 1 | URL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서 놀랐어요.
거의 600페이지라 좀 그랬는데 잘 읽히는거 같아요
고양이가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는 느낌입니다 ㅎㅎ

서니데이 2021-08-15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는 단순한 것같은데,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 외에도 할 일들이 계속 있으니까요.
하지만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들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페넬로페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1-08-15 20:44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것 같아요^^
고양이 보다는 더 해야할 일이 많은것 같은데 그것이 우리가 사는데 다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다시 날씨가 더워졨어요
남은 주말 저녁도 잘 보내시길 바래요^^

페크pek0501 2021-08-16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디오로 들어서 내용을 알고 있는 책이에요. 고양이의 눈에 비춰진 주인의 모습이 재밌던 기억이 나네요.

페넬로페 2021-08-16 20:11   좋아요 1 | URL
네, 생각보다 재미있어 진도가 잘 나가더라고요^^

초딩 2021-08-17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문장 좋네요~
아 책장에서 고양이로소이다가 노려보고 있어요 ㅜㅜ ㅎㅎ

페넬로페 2021-08-17 00:50   좋아요 0 | URL
고양이가 신랄하게 인간을 평가하고 있어 인간인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