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밀란 쿤데라 전집 1
밀란 쿤테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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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한 개인을 향해 농담을 던진다. 그 농담이 받아들여지든, 아니면 예상치도 않게 그것이 악의로 해석되어 그 사람에게 내팽겨쳐지든 그것만으로 끝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라고 마르케타 개인에게 보낸 루드비크의 농담은 그렇게 끝내지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열정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그것을 위하여 몸바친 어떤 사상과 주의를 바탕으로 조직된 단체에 의해 문제가 되고, 그것으로 인해 배반당하고 축출된다.

 

체코의 1948년 2월혁명 후, 젊은이들에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그 모습은 경직되고 심각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여러 학습 모임들이 조직되어 빈번한 모임을 가지고 모든 조직원들에 대하여 공개적 비판과 자아비판이 행해졌다. 가벼운 행동과 미소마저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 나는 정말 누구였을끼?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아주 정직하게 답하고 싶다. 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러 모임에서 나는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확신에 찬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제멋대로에다 짖궃었으며, 마르케타하고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냉소적이고 궤변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일 때면,(마르케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겸허했고 중학생처럼 마음이 설레였다.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p55~56

 

여러 얼굴을 가진, 누구나가 다 그럴 수 있는 평범한 루드비크는 마르케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농담을 적은 편지를 보낸다. 문제는, 마르케타가 어떤 것의 저 너머를 보는 것이 불가능했고 오직 사물 자체만을 볼 수 있는 여자였다는데 있다. 결국 그 농담으로 루드비크는 당에서 축출되고 학업의 지속을 금지당하고, 최악에 속하는 검정표지를 받아 광부로서 군복무를 하게 된다.

 

루드비크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던진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었다면 그것이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는 것을.

그래서 루드비크는 그것을 농담이라고 했고 자신의 사상과 신념이 그 조직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단단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줄 안 것이다. 거기서부터 루드비크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 불행은 루드비크의 모든 것을 빼았았다. 예상도 하지 못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해 뒷통수를 맞은 인간은 나락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상당히 삶이 억울할 것이며 그 분노로 인해 쉽게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이해하며 루드비크의 루치에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본다.

 

'잊혔던 일상이라는 초원,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충분히 사랑할 만한 한 여인, 루치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유배당한 루드비크의 삶에 구원처럼 나타난 루치에를 루드비크는 사랑한다고 믿었고 자신의 욕망과 행위가 '사랑'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이라서 당연한 그 행위가 루치에에게는 왜 당연하지 않은지 루드비크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질문해보지도 않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떠나서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루드비크는 결국은 권력을 갈망했으며 자신의 여자는 성녀처럼 순결하며 구원을 가져다주어야한다는 그렇고 그런 이기적인 남자에 불과했다.

 

루치에는 코스트카에게 루드비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루드비크를 만났고 묘지에 있는 꽃을 훔쳐다 그에게 준다. 남녀간의 흔한 사랑은 아니라도 분명 루치에는 루드비크라는 한 인간을 불쌍히 여겼고, 어긋났지만 사랑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돌고돌아 먼 훗날 루드비크는 깨닫는다.

코스트카가

'즉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 쪽으로 향하고, 나에게 와 닿는 쪽에서만 그녀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그녀 자체의 모습, 그녀 혼자만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

을 해냈지만 자신은 그렇게 히지 못했다고 깨닫고, 마지막에 속죄를 함으로써 분명 루치에는 루드비크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다양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첫 장편소설 '농담'은 루드비크, 헬레나, 야로슬라프, 코스트카가 화자가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루드비크와 연관이 있다. 작가 개인의 삶이 이 작품에 많이 투영되어 있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 그런지 문장 군데군데에 괄호로 부연설명이 많이 되어 있다. 초보자가 행할 수 있는 무수한 설명인지 아니면 무척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살면서 삶을 살아가는 당위와 이유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포장하는 가면이 되기도 한다. 코스트카에게는 종교가, 헬레나에게는 자신의 신념이. 야로슬라프에게는 전통이 그런 것이다. 그 선택들은 지극히 각자의 것이지만 다만 그것들이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한 변명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잃어 나락으로 빠진 루드비크는 억울함과 패배감으로 삶을 살아가고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친구 야로슬라프를 찾아간다. 농담이 놈담이 될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이며 치욕적이다.  

 

언젠가부터 난 누군가로부터 오해받고 상처받기 싫어 농담을 안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고 비겁한  것 같아 싫었다. 그러나 오히려 누군가를 위한답시고 훅 들어가 그 사람의 약함과 치부를 보고 당황하며 돌아서기 보다 그냥 그 언저리에서 머물며 기다려주는 것이 어쩌면 더 괜찮은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멋진 농담을 준비해놓고 말이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들떠 올라서 내려버릴 수 없는 나의 정신에 차분함을 주었다. 이 소설로 가을의 느낌을 만끽했고 현재의 가을과 함께 했다. 고맙다.

쓰러진 야로슬라프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루드비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을 환하게 밝힌 구급차이다. 그 빨간 불빛속으로 들어가는 나이가 되었을 때 돌아 본 나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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