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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분량이 많은 소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나뉘어 출간된다. 분절된 책은 가벼워 읽고 휴대하기 편하지만, 1권을 읽고 바로 2권을 시작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가뜩이나 벽돌책은 앞의 내용과 뒤를 연결하기 쉽지 않은데, 읽기를 잠깐만 쉬어버려도 소설의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는 1권을 읽고 거의 한 달 반 만에 2권을 읽었지만 괜찮았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 잘 연결되었고, 2권만을 독자적으로 떼어놓아도 완성도가 높았다.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대작인 이유는 소설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형식이나 내용이 느슨해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독이라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읽을수록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나싶게 새로운 것이 많았다.
사랑을 느끼는 것은 잠깐이다. 사랑은 대상을 향하지만, 어떤 사람의 숨겨진 내면의 모습도 들어있다. 안나에게 폭풍처럼 들이닥친 사랑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존재를 자각하게 한다. 안나에게 남편 카레닌은 아들 세료자의 아버지라는 역할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이상 다시 카레닌에게 돌아갈 수는 없다. 안나는 거짓된 삶을 계속 살수 없었다. 찰나적으로 시작된 사랑은 안나를 카레닌의 둥지에서 벗어나 브론스키의 둥지로 옮겨가게 만든다. 그것은 여성으로서, 시대적 한계로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브론스키 역시 남자라는 사실이 안나를 불행하게 할 것이다. 안나가 여자이기에 그녀가 추구하는 삶은 자립적이지 못하다.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톨스토이의 삶이 투영된 레빈이라고도 한다. 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농업 혁명을 시도하지만 자주 벽에 부딪힌다. 농노 해방이후, 농민은 아직 농노와 노동자 사이에 어정쩡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들을 노동자나 민중으로 인식해 앞서나가는 레빈에 비해 농부들은 전근대적인 생각과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민중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만사태평과 방종과 만취와 거짓말(p.12)’에 레빈은 좌절하기도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럼에도 레빈은 농부의 생명력을 사랑하고, 그들을 향한 이해로 다가간다. ‘개인의 이해와 공공의 이해 사이에 놓인 필연적인 연관을 찾기 위해(p.30)' 분투한다.
레빈과 농부들이 함께 풀베기를 하는 모습은 압도적이다. 이론적인 레빈에게 낫을 휘두르는 솜씨와 더위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지치지 않고 화살처럼 똑바르게 풀을 베어 나가는 농부의 관록에서 레빈은 경외심과 노동의 참모습을 본다. 그들과 점심을 먹고 크바스를 마시며 행복을 느끼고, 그들과 가까워진다. 소설에서 이 풀베기의 장면은 시각적이고도 웅장하다. 레빈이 자신이 아닌, 농부의 시선에서 ‘개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안나에게 직접 임신 사실과 결별 통보를 들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의 심리 변화도 재미있고 현실적이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던 자신의 삶에 균열을 가져 온 안나에게 카레닌은 ‘그녀가 잘못했다‘고 단정하며 안나를 벌하기로 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행복한 생활을 용납하지 않고 사교계에 알려지기도 원치 않는다. 그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안나를 사랑해서가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다. 안나가 그것을 거부하자 카레닌은 안나에게 치욕과 고통을 주기 위해 이혼을 원한다. 조건은 아들의 양육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안나가 브론스키의 아이를 낳다가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가자 카레닌은 그녀에 대해 연민을 갖지만, 안나가 회복되자 다시 안나를 고립시킨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테레자와 토마시의 반려견에게 ‘카레닌’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여기에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밀란 쿤데라가 카레닌을 싫어해서 개에게 그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말도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사랑의 시작은 순간적이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데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결혼이라는 법적인 제도뿐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사교계의 시선, 자녀와 경제적 능력 등 여러 요소가 안정적으로 결합될 때, 사랑은 유지된다. 불륜으로 시작된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위태롭다. 공교롭게도 브론스키와 카레닌의 지위 역시 위협받는다. 어느 것 하나 그들에게 유리한 것이 없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확고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불리해지자 안나의 마음은 흔들리고 불안해진다.
톨스토이는 카레닌의 심리 변화뿐만 아니라 안나의 마음과 생각의 변화도 탁월하게 묘사한다. 안나가 받은 모욕과 수치는 그녀를 고립시킨다. 그로 인해 야기된 불안은 안나를 피폐하게 만들어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자신의 의도와 선택에 의해 안나는 점점 파멸되어 가지만, 그녀가 여성이었기에 짊어져야 할 무게와 편견, 비난은 분명 공평하지 않다. 만약 카레닌이 불륜을 저질렀다면 안나와 같은 무게를 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안나의 오빠인 스테판 오블론스키의 경우를 봐도 이것은 분명하다.
작가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도 그랬지만,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죽음’에 대해 명쾌하게 서술한다. 레빈의 형, 니콜라이 레빈의 죽음을 통해 톨스토이는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여러 태도에 대해 묘사한다. 니콜라이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다. 그런 니콜라이의 죽음 앞에 레빈은 쉽게 다가가지 못하지만, 키티와 마리야 니콜라예브나는 침착하고도 지혜롭게 대처한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현상을 의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환자도 힘들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건강한 사람의 견딤과 상실감도 힘들 수밖에 없다. 레빈은 형과 키티를 통해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p.563).‘ 레빈은 형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사랑과 삶에 강하게 이끌린다.
안나는 카레닌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아들 세료자를 보러 카레닌의 집으로 간다. 안나의 사랑으로 카레닌은 세료자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고 다그친다. 안나의 사랑을 응원하지만, 앞으로 세료자에게 닥칠 상황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안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도 혐오스럽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안나는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인 카를로타 파티의 공연을 보러가고 싶었지만 브론스키는 반대한다. 혼자 그곳을 간 안나는 모든 사교계 사람들이 그녀를 무시하고 혐오한다는 것을 느낀다.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브론스키 역시 안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했을 때의 안나의 똑같은 행동과 표정에 이제는 분노와 증오를 느낀다. 그의 마음에 짜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인 안나와 레빈은 성장 중이다. 안나는 자신에게 돌아가고 있고, 레빈은 이론과 사상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삶과 사람을 사랑한다. 다만 그들의 성장이 파멸과 결실로 끝맺을 것 같다는 나쁜 예감이 든다. 안나에게 ‘성장’의 다른 말은 불행일지도 모른다. 여자인 안나에게 그 시대는 불리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알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한 일을 후회하냐고요? 아뇨,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다시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할 거예요. 우리에게,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예요. 다른 것은 생각할 것도 없어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따로 지내고 서로 만나지도 않는 거죠? 왜 난 갈 수 없다는 거예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녀는 눈동자에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광채를 띠고 그를 쳐다보며 러시아어로 말했다.
"만약 당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요. 당신은 도대체 왜 날 바라보지 않는 거죠?"
-p.643~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