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 어떠한 원대한 시대사상이 없더라고 ‘그냥’ 살수도 있습니다. 그냥 산다는 것이 잘못된 일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사상이 뿌리째 뽑아버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안에 깊숙이 심어져 있기에 그냥 산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국가가 전부라고 생각하여 국가를 위해 자신 인생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시민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경험했던 전쟁터는 다음처럼 몹시 참혹했습니다. 



"어느 날 백병전이 시작됐어...... 뭐가 기억나느냐고? '오도독오도독' 소리. 그 소리가 기억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방에서 오도독오도독하는데, 사람들 연골이 으스러지고 뼈마디가 뚝뚝 부러져나가는 소리였지. 그리고 짐승의 울음 같은 처절한 비명들...... 서로를 찔러 죽이고, 숨통을 끊어놓고, 뼈를 부러뜨렸어. 총검으로 입이고 눈이고 닥치는 대로 찔렀지...... 심장을 찌르고 배를 찌르고...... 독일군에게 잡혀간 우리 여성 간호병을 찾아냈지. 세상에, 눈알이 도려내지고 가슴이 잘려나가서는...... 놈들이 말뚝에 박아놓았더라고. 몸에 살을 에는 추위에 꽁꽁 얼어 새하얗고 머리는 완전히 백발이 되어 있었어. 그 아이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어." 



러시아 시민들이 경험한 전쟁터는 이토록 참혹한데 그들은 기꺼이 스스로 지원에서 전장으로 갔습니다. 



“그저 전선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 그게 다였어. 어떻게 히틀러가 모스크바를 차지하도록 보고만 있겠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지!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내 또래 소녀들은 너나없이 모두 전선으로 가겠다고 나섰지. 우리는 우리만 애국심에 불타는 줄 알았어...... 우리만 특별한 경우라고...... 하지만 웬걸, 모병사무소에 갔더니 글쎄 우리 같은 여자애들이 한가득인 거야. 세상에, 얼마나 놀랐던지! 심장이 뛰고 피가 끓어오르더라고. 나는 선발이 안 될까봐 가슴을 졸였어." 



딸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더라도 어머니는 반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한테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었는데도 어머니는 딸을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딸이 전선에서 돌아온 일을 모욕으로 생각하셨지. 적과 싸우지 않는 것을.” 



전쟁은 이토록 끔찍한데 그들은 왜 기꺼이 그 지옥으로 갔을까요? 



"우린 어렸을 때부터 '조국은 우리의 모든 것이다. 우리는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어. 그래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전선으로 가기로 결정한 거야. 내가 안 가면 대체 누가 가겠어? 나는 반드시 가야 했지..... 나는 '전선으로 갈 거예요, 전선으로 보내줘요! 전선으로!'라고 날마다 '전선, 전선' 노래를 부르며 고집을 꺾지 않았어. 실은, 포스터 글귀들의 영향이 컸어. '모국이 그대들을 부른다!', '전선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눈만 뜨면 사방에 보이는 게 그 글귀들이었으니까. 노래는 또 어떤 줄 알아? '일어나라, 위대한 나라여...... 일어나서 죽기까지 싸우라......“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은 죽는 것이었어요! 자신을 희생하는 것, 전부를 내주는 것이요! 콤소몰(소련의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 선언에도 있어요. ‘나는 내 민족이 내 목숨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말로만 하는 맹세가 아니었어요.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요. 군대가 행군하는 걸 보면 모두들 제자리에 멈춰 서서 경의를 표했죠. 승전 이후 군인들은 더 이상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거든요.“ 
















상호주관인 시대사상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될 수 있지만, 특정 권력의 선전과 선동으로 아주 단기간 내에 '세뇌'될 수 있습니다. 철학자 죄르지 루카치(1885~1971)는 선전과 선동이 인간을 '도취'시켜 비인간화하기에 이는 비윤리적이라고 말합니다. "도취는 하나의 기만이며 사기다. 감정이입을 핵심으로 삼는 일은 일상적인 삶을 격하시킨다. 니체의 '디오니스적 도취'는 감정이입 반응의 극단적 형태이며, 개인 인격을 균열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는 세계와 인간관계를 공허하게 만든다. 선전과 선동은 인간을 기만하는 위장된 오만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흔히 ‘반복 편견’(repetition bias)이라 부르는 이상한 오류가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 들을수록 그 이야기가 참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 현상입니다. 반복은 마치 서서히 젖어들어 온 몸을 젖게 만드는 가랑비와 같습니다. 기업은 광고를 반복하고 정부 역시 홍보와 선전을 반복합니다. 그들은 같은 이야기를 자주 반복하면 이성을 압도할 수 있으며, 심지어 거짓말도 반복하면 점점 더 진실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자주 듣거나 보게 될수록 우리 뇌는 더 빨리 적응하여 그것을 진실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18년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사람들이 정보의 신뢰도와는 무관하게 같은 정보에 반복되어 노출되자 그 정보를 사실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였습니다. 아주 약간만 그럴듯해도 반복되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걸 믿었습니다. 가령 이러한 제목이 붙은 기사를 살펴보죠. ‘트럼프의 군사 개혁안: 미국은 징병제로 돌아갈 것이다.’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분명 사실이 아닌 이런 기사 제목조차도, 같은 내용을 두 번 본 사람은 한번 본 사람에 비해 두 배나 많이 사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가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를 반복 편견에 빠뜨리는 위험한 무기와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사실 확인을 통해 확인되었을 때조차, 심지어는 본인의 정치 성향과 상반되는 의견일 때조차도, 자주 노출된 가짜 정보를 사실이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정보가 되풀이된다 해서 그것이 반드시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은 우리가 무언가를 진실이라 믿게 만드는 미끼 노릇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정부나 기업, 지도자들은 모두 오래도록 이 미끼를 잘 활용해왔습니다. 가령 히틀러(1889~1945)의 『나의 투쟁』(1927)을 읽어보죠. 히틀러는 성공적인 프로파간다를 위한 몇 개의 핵심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문장은 그 하나입니다. “몇 개의 간단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반복할 것. 틀에 박힌 문구를 사용하고 객관성을 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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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를 만드는 데 아담이 갈비뼈 하나를 내주었기에 여자는 남자보다 갈비뼈가 하나 더 많다는 기독교 전통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1543년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가 사람 갈비뼈 수를 직접 세어 그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로마의 과학자이자 저술가였던 플리니우스(24?~79)는 세계 최초 백과사전인 『박물지』(77?)에서 여성 월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월경하는 여자에게 우유를 가까이 두면 상하게 된다. 그 여자가 만진 씨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접붙인 나무는 시들고, 정원의 식물은 바짝 말라버리며, 그녀가 앉았던 자리의 나무는 열매가 다 떨어져 버린다. 그녀 얼굴은 거울의 반짝임을 없애고, 철의 끝을 뭉툭하게 하고, 상아의 매끈한 표면도 거칠게 한다. 벌떼도 그녀가 바라보기만 해도 곧바로 죽어 버린다. 그녀의 배설물을 먹은 개는 미쳐서 발작을 일으키며, 그런 개에게 물리면 독성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다.”



분명 정말로 그러한지 간단하게 실험해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과학혁명이 있기 전까지 아무도 1,500년 동안 지배해 온 이 믿음을 반박할 증거를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스위스는 오래되고 안정된 민주국가지만 스위스 여성은 1971년까지 투표권이 없었습니다. 뉴질랜드는 1893년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고, 핀란드는 1929년에 인정되었습니다. 조금 늦게 프랑스와 이탈리아조차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확대한 바 있습니다. 그 후 몇 년 이내에 아르헨티나와 일본, 멕시코, 파키스탄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1971년까지 스위스는 방글라데시와 바레인, 요르단, 쿠웨이트, 사모아, 이라크와 함께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은 투표권을 얻는 데 자국 남성보다 평균 47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1291년 남성 시민이 투표를 했던 스위스에서는, 여성을 포함한 보통투표가 이루어지기까지 700년이나 걸렸습니다. 



스위스 남성들은 왜 여성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전 세계 남성들이 했던 똑같은 주장, 즉 여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면 여성답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스위스의 어느 여성 참정권 반대론자는 ‘너무 똑똑한 여자처럼 불쾌한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대부분 스위스 여성이 남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런 상태에 만족하기에 어차피 실제로 투표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이유도 많았습니다. 여성을 억지로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면 가정이 무너질 것이라든지, 스위스는 여성 참정권 없이도 100년 넘게 평화롭게 지내 왔고, 두 번의 세계대전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엄청난 번영을 일구었으므로 망가지지 않은 것은 고치지 않는 것이 최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정치는 남자의 일이며, 국사를 여자에게 맡길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부유하고 교육열도 높고 민주적인 스위스가 오랫동안 여성 참정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믿음조차 시대나 사회마다 크게 다를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 대부분은 실제로 과거 어느 때 이식된 믿음입니다. 자신이 옳다는 신념은 곧 다른 누군가가 옳다는 신념과 같습니다. 철학자 몽테뉴(1533~1592)는 “사람들의 신념은 자국의 관습이나 부모의 양육 방식, 혹은 우연한 믿음 속으로 휩쓸려 형성된다”고 말하며, “태풍에 휩쓸리듯 판단이나 선택의 여지없이,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사고력이 형성되기 전인 어린 나이에 이미 그렇게 된다”고 덧붙입니다. 
















우리에게 현재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이지만, 언젠가 모든 사람이 이를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할 일은 없을까요?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믿음 중 일부는 미래에 옳지 못한 믿음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현재의 믿음 중 무엇이 언젠가 옹호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회가 공유하는 생각은 너무나 강력하고, 좁기에 누가 세상을 분명하게 보고 행동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불변하는 객관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상호주관(inter-subjective)만이 존재합니다. 상호주관이란 진리이거나[眞] 옳다거나[善] 아름답다고[美] ‘당시 대다수 사람이 믿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철학자 플라톤(BC 428?~327?)은 『국가』(BC360?)에서 예술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항아리를 아름답다고 규정했습니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역시 미(美)란 적당한 비례와 밝기, 명료성은 물론 완전무결함의 결과라고 설명하며 플라톤의 관념을 확장했습니다. 따라서 미에 반대되는 추(醜)는 비례에 맞지 않는 것, 곧 아퀴나스가 ‘축소되어 욕되다’라고 규정한 거대한 머리와 아주 짧은 다리를 가진 사람 뿐 아니라, 다리가 하나 없거나 눈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을 묘사할 때도 쓰이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비례와 조화를 이루는 미란 무엇일까요? 미의 의미는 역사에서 계속 변화해 왔습니다. 한 세기 동안 비례가 맞다고 여겨지던 것이 다른 세기에 들어서 더 이상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해할 때는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하면서 서로 공유한 경험이 바탕이 됩니다. 사회나 특정 집단 내 의미나 규범, 가치는 이러한 공유된 이해를 통해 형성됩니다. 우리는 다수 의견에 쉽게 순응하는 경향이 있기에 공유된 경험이나 환상에 손쉬운 먹잇감이 되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회에 큰 영향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도 ‘상호주관’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선 18세기에 이르자 오직 남성 간에만 한정되던 두 영혼의 결합이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도 가능하다고 처음 주장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랑에 빠진 남성이 여성을 부양할 만큼 부유하다는 사실만 진지하게 증명하면 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사랑이란 단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사랑받는 상대가 이상화되고, 누구하고든 사랑에 빠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또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부추겨져 사랑에 대한 모든 전제 조건이 철폐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가장 놀라운 발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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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오필리 <성모 마리아>(1996)



오필리는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의 종교 상징물에서 영감을 얻어 성모 마리아를 강렬하고 관능적인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마리아를 흑인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서양 미술 관습에 대한 도전입니다. 작가는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고자, 포르노 잡지에서 오려낸 여성 성기 모양을 아기 천사인양 성모 마리아 주위에 배치함으로써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함께 표현했습니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1969~ )은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우리는 틀에 박힌 일상을 보내기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예술이 찌르고 치근대고 좋은 의미로 도발할 때까지 내내 겨울잠을 잔다. 이질적인 예술 덕분에 내 안의 종교적 충동, 내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내가,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재인식할 수 있다.”

















파르미자니노 <목이 긴 성모>(1540)



1520년경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 르네상스 양식이 유행했습니다. 당시 많은 젊은 미술가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화풍(manner)만 모방했는데, 후대 비평가들이 이를 비판하면서 이 시기를 매너리즘(Mannerism)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위대한 거장 작품과 달리 자연스럽지 않은 그림을 그리려는 파르미자니노 같은 예술가가 다수 있었습니다.


파르미자니노는 성모 마리아의 목을 - 현대 미술가 모딜리아니의 인물화처럼 - 길쭉하게 그렸습니다. 화가는 인체 비례를 기묘한 방식으로 길게 늘여놓았습니다.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가진 성모의 손이나 천사의 긴 다리는 마치 볼록 거울에 비친 것처럼 보입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했던 파르미자니노 같은 당대 화가들은 아마도 최초의 ‘현대적인’ 작가들이었을 것입니다.



















에드가 드가 <에투알>(1878)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스타’나 ‘주연급 발레리나’를 뜻합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오페라극장은 상류계급 남성을 위한 창관(娼館)이었고, 그곳 창녀는 발레리나였습니다. 당시 복사뼈 이상 다리를 보이는 걸 수치로 여기던 시대에 정숙한 여인은 긴 치마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다리를 다 내보이는 건, 현대 감각으로 말하면, 가슴을 드러내는 것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무대로 뛰쳐나가는 에투알 뒤에 검은 정장을 입은 한 신사 모습이 보입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에투알의 스폰서로 귀족이나 돈 많은 상인일 것입니다. 당시엔 주로 신분상승 욕구가 강한 하층계급의 딸이 발레를 했는데, 돈 많은 아저씨를 애인삼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했습니다. 

드가는 발레 그림을 1,500여점 남겼지만, 발레리나의 열악한 생존 조건에는 냉담하며, 단지 그림 제재로 발레리나를 볼뿐입니다. 드가는 발레리나의 내면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대상을 화폭에 옮겼습니다.





















테오도로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에서 일어난 식인 장면>(1819)



그림은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가 1824년 발표한 원작 <메두사호의 뗏목>의 습작품입니다. 원작에는 뗏목 위 시체만 널브러져 있지만, 습작에는 식인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원작 내용 일부가 변경되었지만, 우리는 작가가 당초 무엇을 기획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816년 7월 2일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는 아프리카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항해를 떠났으나 암초에 걸려 난파했습니다. 400여명을 태운 배가 침몰하기 전 구명보트에 타지 못한 149명은 뗏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보급품이 없는 상황에서 폭풍까지 만난 뗏목은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기아와 탈수, 질병, 난동, 광기, 살인, 자살, 급기야 식인 행위까지 벌어졌습니다. 13일간 표류 끝에 구조된 생존자는 15명뿐이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담배를 물고 있는 해골>(1885)



고흐는 해바라기나 붓꽃, 별이 빛나는 밤처럼 아름다운 정경도 많이 남겼지만, 시들어 가는 해바라기나 해골과 같은 어두운 소재도 표현했습니다. 그에게 삶이란 기쁨과 환희뿐 아니라 고통과 절망도 함께 어울려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16~17세기 사이 ‘바니타스’(vanitas)라는 정물화가 유행했습니다. 해골이나 시든 꽃이 대표적으로 바니타스를 상징하는 소재였습니다. 인생무상과 삶의 덧없음을 뜻하는 라틴어 바니타스는 삶이 언젠가는 끝나기에 부와 명예, 순간적인 쾌락에 집착하는 일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자코포 틴토렌토 <수태고지>(1587)



중세 봉건시대 영주는 초야권(初夜權)이 있었습니다. 농노가 결혼하면 신부는 영주와 첫날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무서운 그림』의 저자 나카노 교코는 “벌 받을 생각일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그림 <수태고지>는 어딘가 초야권을 닮았다”라고 말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메시지를 전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마리아에게 몸에 기억도 없는데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입니다. 혼례를 앞둔 행복한 여인에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합니다.


그림 <수태고지>의 왼편 문밖에서 마리아와 결혼하기로 한 요셉은 목수 일에 여념이 없습니다. 뒷날 예수의 양아버지가 될 사람이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이 벌어지는데도 눈치를 전혀 못 채고 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그는 비극적 인물입니다). “틴토렌토의 <수태고지>는 젊은 여성의 주체적 결정권을 침해하는 운명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리 소로카 <낚시꾼>(1840?)



그림 <낚시꾼>은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지만, 분위기는 얼음처럼 고요합니다. 소로카가 사는 세상은 햇살이 비추나 빛은 일렁이지 않고, 강물은 흐르나 물결이 없습니다. 고요함을 넘어 질식할 것만 같은 적막함이 흐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유리처럼 투명하고 단단한 무언가에 갇혀 있는 폐쇄된 공간이 느껴집니다.


러시아인 소로카는 농노였고 그의 주인은 결코 그를 해방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1864년 소로카는 지역 농민 해방운동에 연루되어 무거운 형벌을 받습니다. 마지막 희망조차 사라지자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림 속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듯한 답답함은 소로카가 농노제라는 비인간적인 제도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의 표현입니다.





그리고리 마소예도프 <수확기>(1887)



19세기 이르자 러시아 농노제는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실질적으로 노예가 해방되진 못했습니다. 토지 가격이 너무 비싸 토지를 매입할 수 없었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습니다. 지주들은 개혁에 반대하며, 소작농으로부터 높은 소작료와 임대료를 모두 받아 챙겼습니다.


러시아에서 노예가 해방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서유럽과 달리,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가 늦게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던 가난한 민중은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미켈란젤로 <아틀라스 노예>(1536)



미켈란젤로의 노예 조각 작품은 미완성이 많습니다.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놓는 기법을 ‘논 피니토(non finito)’라고 합니다. 작품의 완성된 부분은 거의 완벽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미완성된 덩어리가 붙어 있어 완성된 부분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완성품을 ‘캐낸다’ ‘끄집어낸다’는 느낌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나의 조각 작품은 돌 속에 이미 들어 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대리석 속에서 나오고 싶어 몸부림치는 노예를 발견하고는, 정으로 돌덩이를 떼어내어 노예를 해방시켰습니다.





















케테 콜비츠 <가난>(1901)



사물에 대한 우리 감정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기억을 변화시킵니다. 같은 장소나 사물을 보더라도 기쁠 때와 비교하면 슬플 때는 아주 다르게 보입니다.


표현주의자들은 인간의 고통과 가난, 폭력, 격정을 아주 예민하게 느꼈기에 미술에서 조화나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일은 정직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콜비츠의 <가난> 같은 표현주의 화풍은 사랑이나 존경, 두려움 따위를 표현하기 위해 사물의 외관을 의도적으로 변형시킵니다. 


콜비츠는 가난하고 학대받는 이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고 그들 주장을 앞장서서 옹호했습니다. 작품 <가난>은 실업자가 많고 사회 봉기가 잦았던 시기에 방직공들이 당한 비참한 처지를 다룬 희곡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삽화입니다.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했던 밀레의 <이삭줍기>와는 달리, 콜비츠는 혁명만이 우리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알폰스 무하 <욥사의 담배 권련 용지 광고>(1896)



무하가 그린 욥(Job) 회사의 담배용지 광고는 담배에서 피어나오는 연기와 여성의 출렁거리는 머릿결이 서로 어우러져 더욱 매혹적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곡선이 사람들 시선을 끕니다. 이렇게 무하 광고 포스터는 담배 연기로 가득한 선술집이나 여인숙에서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광고는 광고를 보는 사람이 자기 현재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합니다. 잘 만든 광고일수록 불안과 불만을 증폭시킵니다. 광고에 비교적 영향을 덜 받는 사람은 부자뿐입니다.





















장레옹 제롬 <로마의 노예시장>(1886)



그림은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림 배경은 고대 로마로 설정되어 있지만, 어쩐지 사람들은 그림에서 19세기 말 이스탄불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한때 콘스탄티노플로 불린 이스탄불이야말로 로마 문화의 계승지였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에서 노예로 팔리는 여인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여인의 몸이 더 강조됩니다. ‘저렇게 수줍음을 타는 아름다운 여인이라니! 게다가 노예라니!’ 그림은 단순하게 남성의 욕망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여성 이미지가 덧쓰여진 동양에 대한 서구 욕망이기도 했습니다. 강하고 진보한 남성(서양)이 여성(동양)을 길들이고 거듭나게 한다는 허황된 생각 말입니다.




















존 콜리어 <레이디 고다이바>(1898)



전설로 내려오는 그림 속 여인 고다이바(Godiva)는 11세기 영국 코번트리에서 살았던 백작 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다이바의 남편인 레오프릭 백작은 중세 영주가 가진 권력을 남용해 과도한 세금을 걷었습니다. 


고다이바 부인은 영주의 폭정에 굶주리던 농민들을 동정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무거운 세금을 경감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레오프릭 백작은 “당신이 정말 농민들을 걱정한다면 시장거리를 알몸으로 말을 타고 지나가시오. 그러면 당신 청을 들어주겠소”라고 제안했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하면 그녀가 다시는 잔소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농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고다이바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소식을 들은 모든 마을 사람은 고다이바가 말을 타고 지나갈 때 외출도 안하고 창문을 커튼으로 가려 내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고다이바 부인의 사랑과 희생정신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고다이바는 결국 농민들의 세금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에르네스트 메쏘니에 <모르텔리 거리의 바리케이트, 1848년 6월>(1851)



그림에서 앞에 배를 드러내고 쓰러진 남자의 옷 색깔은 파란색과 하얀색, 빨간색의 프랑스 삼색기를 연상시킵니다. 왼쪽 위에 푸른 셔츠를 입고 쓰러진 사람과 흰 색 가슴 부분에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도 서로 연결해서 보면 파란색과 하얀색, 빨간색의 삼색입니다. 


1848년 혁명 시기에 역사상 최초로 농민과 노동자가 그 시대의 인간상으로 부각됐습니다. 특히 이 때 새롭게 투표권을 얻은 농민들이 큰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작은 땅을 소유했던 농민들은 국가 기간 사업을 국유화하자고 주장하는 급진파 요구에 겁을 집어먹고 매우 보수화되었습니다. 이들은 나폴레옹 황제의 추억을 되살리며 루이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1960)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는 삶만이 바람직하다고 학습한 우리에게 목표 없이 반복된 일상은 변변치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뼈만 앙상한 조각상은 우리에게 ‘나 역시 매일 목적 없이 걷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어디로 갈지, 어디서 멈출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모두 걷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 자체만으로 소중한 활동입니다. 자코메티는 자신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하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 나가야 한다.”





자크루이 다비드 <적선을 받는 벨리사리우스>(1781)



그림에서 구걸하는 노인은 벨리사리우스입니다. 그는 6세기경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밑에서 로마제국의 영토를 회복했던 전설적인 장군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그는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눈도 뽑히고 돈을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왼쪽 병사는 한때 그의 부하였으나, 지금은 극도로 곤궁하고 굴욕적인 상태에 있는 그의 옛 상관을 우연하게 보고 충격에 빠져있습니다.


이 작품은 일시적이고 세속적인 성공의 덧없음과 인간은 쉽게 나락에 빠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일시적인 물질적 성취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낙관하며 인생을 살지만, 이 그림처럼 예술은 우리에게 매사에 경각심을 줍니다.






그뤼네발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1515)



그뤼네발트는 그림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만연했던 비율과 원근법의 원칙에서 벗어나서 인물 크기를 의도적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이는 그뤼네발트가 기술적인 완벽함을 거부하고 중세와 원시 시대의 예술 원리로 돌아간 것으로 여겨집니다.


크기와 비율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일은 사실주의의 엄격한 규칙을 고수하기보다 인물의 크기를 중요도나 상징적 의미에 따라 결정했던 중세 예술 전통과 일치합니다. 그뤼네발트가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기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시각적 정확성을 전달하기 보다는 장면의 정서적, 영적 측면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뤼네발트의 접근 방식은 예술적 위대함이 반드시 ‘진보’라는 개념을 고수하거나 새로운 발견을 수용하는 데 있지 않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예술적인 표현이 규칙이나 기술에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슈 <우석의 제거>(1494)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 환자 머릿속에서 ‘바보의 돌’을 제거하여 환자의 광기를 치료하는 장면입니다. 당시 광우라는 증상이 뇌 속에 박혀 있는 ‘바보의 돌’에서 비롯되었다는 신념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 이전 중세인은 광기를 객관적인 세계의 힘으로, 다시 말하면 사탄의 역사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광기를 인간의 주관적 속성으로, 즉 ‘인간이 자신과 맺는 관계’로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광기란 이성과 덕행을 통해 피할 수 있고, 또 피해야만 하는 인간의 악덕일 뿐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의 인본주의 특성이 드러납니다.





















윌리엄 터너, <눈보라-항구를 떠나는 증기선>(1842)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터너의 그림을 “여태까지 그려진 바다 그림 가운데 바다의 움직임과 엷게 낀 안개, 빛을 가장 장엄하게 표현했다”라고 극찬했습니다. 


터너는 자연의 힘에 깊은 매력을 느꼈고 자연의 극적인 효과를 포착했습니다. 그림은 폭풍과 바다 풍경의 역동적이고 끊임없는 변화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 충격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터너에게 자연은 항상 인간 감정을 반영하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힘에 부딪히면 압도당하며, 자신이 아주 작은 존재임을 느끼게 됩니다.





















피터 파울 루벤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1639)



루벤스는 그림에서 빛과 그림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포착해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작가는 특유의 역동적인 붓놀림과 풍부한 색채를 사용해 바위와 파도의 질감을 능숙하게 표현하여 장면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그림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조개껍질을 들고 있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조개껍데기로 바닷물을 퍼내고 있는 어린아이를 향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쓸데없는 일이라고 지적하자, 어린아이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향해 “성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당신보다 더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1929)



파이프 모양이 그려져 있지만 아래에는 'Ceci n'est pas une mem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이미지가 실제 대상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우리 이해가 제한적이며 해석의 대상임을 시사합니다. 작품은 우리 인식이 정말 자유로운 것인지, 아니면 언어나 사회적 구조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받는 것이 아닌지 질문합니다.


현실에 대한 우리 인식은 주관적이며, 세상에 대한 우리 이해는 편견과 언어 한계로 제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식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자유의지 개념은 환상일 수 있습니다.





니콜라이 게 <진리란 무엇인가?>(1890)



그림에서 본디오 빌라도는 손짓까지 해가며 예수에게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기름진 풍채의 빌라도는 밝은 빛 속에서 세속 논리를 대변합니다. 반면, 메마른 육체의 예수는 그늘진 어둠속에서 정신적 논리를 주장하는 모습입니다. 빌라도는 비웃는 듯하며, 예수는 심각하거나 어두운 표정입니다.


진리는 현실에서 결코 단선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드러나 있는 것만이 진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진리에 헌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기득권 유지와 자기 헌신 사이에 갈등은 당시 모든 지식인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 알고 싶었습니다. ‘진리란 무엇인가?’





에두아르 마네 <발코니>(1869)



사실 우리는 ‘본 것’이 아닌 ‘알고 있는 것’으로 그림을 봅니다. 실외 밝은 빛 아래에서 사물을 보면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실내보다 햇빛 받은 부분이 훨씬 더 밝게 보이며, 심지어 그림자도 꼭 회색이나 검은색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전 르네상스 시기에는 세계가 어떻게 ‘보여져야’ 하는지 원근법과 인체 해부 등 이론적 지식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마네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일으킨 채색 혁명은 혁명에 비견할만합니다. 우리가 실외에서 자연을 볼 때 각 대상은 고유 색깔을 가진 개별 대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서(실제로는 우리 마음속에서) 뒤섞여 훨씬 더 밝은 색조의 혼합물로 보입니다. 


마네의 <발코니>에 등장하는 인물들 머리는 평면적입니다. 배경 속 여인은 확실한 코도 없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실 야외의 환한 빛 속에서 둥근 형태는 때때로 단순하게 색칠한 평면으로 보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인간 눈이 놀라운 도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눈에 적절한 암시를 주기만 하면 눈은 우리가 거기 있을 거라고 알고 있는 전체 형태들을 짜 맞추어 보여줍니다.




윌리엄 블레이크 <태곳적부터 계신 이>(1794)



작품 속 인물은 정교한 캠버스로 천지를 창조하는 ‘태곳적부터 계신 이’, 즉 신 또는 신성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블레이크는 자신 나름의 독특한 신화를 창조했는데, 작품 속 신을 유리즌(Urizen; 이성을 상징)이라 불렀습니다. 블레이크는 이성을 세계 창조자로 생각했으나, 세계를 악한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러한 세계 창조자인 이성도 사악한 혼을 지녔다고 생각했습니다.


블레이크는 이성과 합리성이 개인 상상력과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제한적인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블레이크는 산업 혁명과 같은 당시의 지배적인 시스템을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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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1953)은 미국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1920~2012)가 쓴 SF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화씨 451도(섭씨 약 233도)는 책이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입니다. 20세기 미국 문학 고전으로 인정받는 『화씨 451』은 장편 영화와 연극, 오페라 같은 여러 매체로 제작되었으며, 영화 <데몰리션 맨>과 <이퀄리브리엄>에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화씨 451』은 1984년 미국 SF 문학상인 프로메테우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페인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1881~1958)의 글을 서문 대신 인용하며 소설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그들이 가지런히 줄 처진 종이를 주거든, 줄에 맞추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써라.” 한마디로 주어진 익숙한 길로만 가지 말라는 내용이 『화씨 451』의 주제입니다. 소설은 스스로 선택한 길만이 올바르다고 판단하고, 다르게 생각하거나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 사회를 냉소적으로 비판합니다.



소설은 책 읽기가 금지된 25세기 한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곳에서 자신 직업에 점차 의문을 제기하는 방화수(fireman) 가이 몬태그의 일상을 따라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몬태그는 방화서(放火署)에서 일합니다. 그는 숫자 ‘451’이 크게 쓰인 방화수 헬멧을 쓰고 책을 불태우는 자신 직업에 만족하며, 심지어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신비한 분위기의 소녀 클라리세 매클런을 우연히 만납니다. 소녀는 몬태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데, 몬태그가 방화수임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사람들은 보통 방화수를 무서워하지만, 소녀는 몬태그에게 친근하게 질문합니다. “그동안 태웠던 책 중에서 읽어보신 것은 없나요?” 몬태그는 웃으며 답합니다. “그건 법을 어기는 거지!” 몬태그는 자랑스럽게 방화수 공식 슬로건도 알려줍니다. “월요일에는 밀레이를, 수요일에는 휘트먼을, 금요일에는 포크너를 재가 될 때까지 불태우자. 그리고 그 재도 다시 태우자.”



소녀는 화제를 바꾸어 몬태그가 틀림없이 모를 법한 사실을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옛날에는 방화수라고 하지 않고 소방수라고 했다는 게 정말인가요? 그리고 그때는 불을 지르는 게 아니라 불을 끄는 게 일이었다면서요?” 몬태그는 확신에 차 반박합니다. “아니에요, 그건 사실이 아니죠. 집들은 전부터 항상 화재 예방시설이 되어 있었기에 불에 탈 수가 없죠. 내 말이 맞아요.” 소녀는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예전에는 밤늦도록 집에 전등을 켜놓고 가족들이 서로 대화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몬태그에게 묻지만, 그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소녀는 몬태그와 헤어지며 행복하냐고 묻는데, 이 질문이 그를 밤새 사로잡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소녀를 회상하며, 그녀를 만난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합니다. 그녀 모습은 마치 지혜나 깨달음의 여신인 것만 같았습니다. 몬태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온 사회의 문제와 자신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자 점차 그는 사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자신 직업과 사회가 추구하는 잘못된 가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결국 한 번 쓰고 버리는 휴지 같은 시대”에 그는 살고 있으며, 사회가 “사람들 취급하는 게 코를 풀고는 휴지를 뭉쳐서 던져 버리는 식”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상황도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프로페셔널이라는 이름 아래 노예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길 강요받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에 따르면, 노동자는 신분적 ‘모욕’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이 쭈그리고 앉아 주문받고, 백화점 영업시간이 시작되는 시간에 직원들이 입구에 늘어서서 ‘어서 오세요, 고객님, 환영합니다’를 30분간 복창하고, 마트에서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여성 계산원이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근무한다.” 사회가 개인을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원자론적 인간으로 여기면, 개인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저 “휴지처럼 취급되는”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화씨 451』에서 몬태그 아내를 비롯한 대부분 사람은 양 귓구멍에 ‘골무 모양의 조그만 라디오’를 틀어막고 자신만의 세상에 살며, 서로 대화하지 않습니다. 대화하더라도 ‘자동차며 옷들이며 수영장’ 얘기밖엔 안 합니다. ‘그런 것들이 뭐는 얼마나 멋있냐’는 둥 그런 얘기뿐입니다. 사람들 기억력도 감퇴합니다. 같이 사는 남편이나 아내를 언제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더욱 심각한 일은 ‘귀마개 라디오’를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혼수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집 거실 벽면 사방에 텔레비전을 설치하고 드라마를 항상 보며 세상 현실에 눈감고 있습니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남들에게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주는 사람이 없으며’, ‘수풀 속을 돌아다니면서 새들을 보거나 나비를 채집’하지 않습니다.



소설 속 사람들은 자신들이 듣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들 앞에 펼쳐진 인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연속극이 실제라고 믿지는 않더라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모습은 정확히 그들이 사회화된 방식과 일치합니다. 



우리는 여러 미묘한 방식으로 경험의 범위를 한정 짓는 게 사실입니다. 한 가지 신문만 읽는 사람은 자신이 사는 앎의 영역을 심각하게 제한합니다. 같은 견해를 공유한 이들하고만 정치 토론을 벌이는 사람은 자신 스스로 담을 쌓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려는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면 스스로 구축한 작고 편안한 세계의 벽 너머는 바라보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몬태그가 소녀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녀는 세상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세상이 참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건 물론 좋지요. 그렇지만 그저 떼거리로 모여 있기만 하면 뭐해요?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그냥 모여 있기만 해도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아요. 대개는 침묵한 채 고분고분 받아들이기만 해요. 이미 정해진 해답을 따라가기만 할 뿐이죠. 도대체 말도 안 돼요.”



사실 우리는 어떤 현상을 볼 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비추어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이러한 일이 우리 삶에 구석구석 배어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이든 현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세상의 관점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아는 것이 우리 자신을 규정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침묵하지 않고 고분고분하지 않고 정해진 해답만 따라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핵심이 바뀌고, 우리 자신도 변합니다. 우리 세계관과 그 세계관에 부여한 가치는 우리가 아는 것을 기반으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이 변하면 세상도 변하며, 모든 것이 함께 바뀌게 됩니다.



몬태그는 점차 자신의 방화수 일에 회의를 느끼며, 과거 역사에 대한 궁금증만 커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책을 숨기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됩니다. 몬태그는 동료들과 함께 1,000년은 더 되었을 오래된 집으로 비상 출동합니다. 현관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든 그들은 한 늙은 여자를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노파는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에서 많은 금서(禁書)를 발견합니다. 책들이 몬태그 어깨 위로, 팔 위로, 얼굴 위로 마구 쏟아졌습니다. 몬태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손에 떨어진 책 중 한 권을 움켜쥐고 옷 속 겨드랑이 사이에 숨깁니다. 그 와중에 노파는 체포에 저항하며, 책들과 함께 불에 타 자살합니다.



몬태그가 궁금해 하는 역사란 과연 무엇일까요?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1941~ )는 역사란 과거 사실을 단순하게 묘사하거나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울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유용한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역사가 현재와 미래에 짐이 된다면, 역사학자 역할은 분명 이 짐을 덜어내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현재 존재하는 것이 과거에도 반드시 그러했던 것이 아니므로 미래에도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역사학자의 몫이다.” 역사는 어떤 새로운 행동에 의미가 부여되고 다수가 그 행동을 반복할 때 비로소 바뀝니다. 역사는 인류가 의미를 찾고, 의미에 살고, 의미 핵심을 후대에 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파가 숨진 현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몬태그는 다음날 아내에게 어젯밤 일을 이야기합니다. “책 속에는 뭔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게 들어 있어. 그 여자가 불타는 집 속에서도 빠져나오지 않고 남아 있게 만드는, 분명히 뭐가 있어. 그저 괜히 불타는 집에 남아 있었을 리가 없어.” 하지만 그의 아내 답변은 시큰둥합니다. “노파의 정신이 이상한 거예요.” 몬태그는 전날 밤 일을 평생 잊을 수 없을 지경인데, 아내는 별일 아닌 듯 대답합니다. 몬태그는 아내가 답답합니다. 



사실상 타인에 대한 관심과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편견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공감능력은 내가 상대방 감정 안으로 들어가 그가 느끼는 고통을 나도 느끼는 일일 뿐 아니라, 자신 고정관념을 돌아보고 바꿀 계기가 됩니다. 다른 사람 상황을 단순히 그 사람 탓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와 연관 지어 더 넓고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 생각의 폭이 넓혀져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특히 공감능력은 개인적인 능력일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함께해야 할 중요한 역할입니다. 



노파가 죽은 다음날 몬태그가 오랜 시간 출근하지 않자 방화서 서장이 몬태그 집으로 찾아옵니다. 서장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말합니다. “방화수라면 누구나 한 번씩 겪게 되지. 도대체 이 일을 왜 하는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무척이나 회의가 생기지. 우리 직업의 내력도 궁금해지고. 이제 내가 얘기해 주겠네. 20세기가 막 동틀 무렵이었지. 또 라디오, 텔레비전. 그때부터 모든 것은 엄청나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네. 그 때문에 모든 것은 갈수록 단순해졌네. 한때는 책이란 것도 이곳저곳 모든 사람에게 대접받았지. 경제적 부담이 적기도 하고. 세상은 아직 여러모로 여유가 많았으니까. 그런데 갈수록 인구가 늘고, 대중 규모도 커지고, 따라서 대중 매체도 변화하기 시작했네. 인구가 두 배, 세 배, 네 배로 계속 늘어났지.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책들이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네.”



문화비평가 마셜 매클루언(1911~1989)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지적하며, 미디어가 이데올로기 장치로 이용되어 가족이나 학교, 교회와 더불어 국가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질서에 복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데올로기란 사람들 믿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을 지칭합니다. 권력 집단은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에서 떠도는 지배적인 생각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는 지배 집단 이해를 감추거나 정당화하는 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철도 노사분규 관련 뉴스는 파업하는 노동자들보다는 정부와 기업 편을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노동자로서 그들을 응원하기보다 내일 아침 출근길의 불편함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미디어는 개인 생각과 행동을 크게 좌우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방화서 서장은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일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말을 이어갑니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으로 불행해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양면을 가진 질문을 해서 그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지 말고 대답이 하나만 나올 수 있는 질문만 던지라고. 물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게 제일 낫지.” 서장은 이러한 말들을 남기고 몬태그 집을 떠납니다. 



방화서 서장은 양면을 가진 질문이 사회에 틈과 균열을 만들어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사회 변혁은 누군가 엄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틈과 균열 속에서 우연히 등장하고, 그 국면을 놓치지 않으면서 치열한 의지로 공감대를 확산하여 사회를 변혁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평소에 필요한 일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왜?’라고 질문하고, 당연하게 느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어느 순간 가까운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고, 바로 거기서부터 사회 변혁이 시작됩니다.



다음날 몬태그는 체념한 듯 책 한 권을 들고 방화서로 출근하여 책을 서장에게 넘겨줍니다. 방화서 서장은 책을 받자마자 불태웁니다. 그때 방화서에 경보기가 울립니다. 몬태그와 서장을 포함한 다수 방화수가 차의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현장에 도착하는데, 그 집은 바로 몬태그의 집이었습니다. 어제 만난 아내의 동네 친구들이 몬태그의 집을 책 보유 혐의로 신고한 것입니다. 집은 책과 함께 타올랐습니다. 몬태그는 서장과 감정적으로 심하게 충돌하게 되고 서장을 방화기로 살해한 후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이후 소설은 계속 이어지지만, 이제 우리는 작가가 말하고 싶은 뜻을 이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가상사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 역시 기술 발전으로 세계 어디에 있는 누군가와 손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침묵하며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이 골고루 존중받지도 못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채 주어진 길만이 최선이라 여기거나, 그 길이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라 여깁니다. 



누구나 의식적으로 의도하지 않으면, 생각은 패턴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편하게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일이 중요할 때도 많지만, 느끼고 사고하고 상상하는 방식을 바꾸면, 익숙한 일도 낯설게 보이고, 놓치고 있는 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 세상에 대해 아는 것과 앞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우리 기억과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단 기억이 잘못되었다면? 그리고 그 집착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우리 기억은 단편적이기에, 과거도 현재와 비슷했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단순히 현재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현재와 달랐던 과거를 투영한 새로운 미래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우리 능력은 어떤 전후 맥락에서 그 어려움을 보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관점을 바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한때 가장 중요하게 보였던 일이 갑자기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할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현상에 의미를 부여할 때 암묵적인 가정에 의존하는데, 그 가정은 집단 기억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집단 기억은 우리가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집단 기억은 주로 과거 믿음을 재확인하고 강화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현상을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 집단 기억에 낯선 과거를 추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과거의 낯섦이 부각된다면 현재의 일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천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우리 그대로의 인간이 될 뿐입니다. 사회학자 윌리엄 아이작 토머스(1863~1947)가 제시한 이른바 ‘토머스 정리’(Thomas theorem)가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현실로 정의한다면, 결과적으로 현실이 된다.” 우리가 믿는다면, 그러한 믿음에 따른 결과만큼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을 넓히고 인식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 미래는 소설 『화씨 451』에 나온 미래와 달라질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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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의 인문학 - 실수투성이 인간에 대한 유쾌한 고찰
캐서린 슐츠 지음, 안은주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자신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정보에는 덜 노출된다. 우리는 이미 자신이 가진 견해를 고수하는 데 완전히 만족한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믿음에 대해 공부해 볼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전혀 다른 믿음 체계를 가진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별로 없다. 게다가 그런 사람과 시간을 보내더라도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 토론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날씨에 대해서는 얘기를 나누지만 기후 변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최근의 여행은 얘기하지만 사회의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이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그런 행동이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선호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예절 바른 행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에티켓 전문가는 ‘타인이 기분 좋아할 만한 일과 말만 하려고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pp. 182-183. - P182

1990년 아프가니스탄인 압둘 라만은 기독교로 개종했다. 국민 99퍼센트가 이슬람교도인 아프가니스탄에서 개종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하만은 아프간 난민들에게 의료용품을 원조하는 가톨릭 자선단체에서 일하다가 동료들의 종교를 믿게 된 것이다. 라만이 개종하면서 그의 삶은 모두 달라졌다. 그는 배신자라는 이유로 독실한 이슬람신자인 부인에게 이혼당했다. 두 딸에 대한 양육권 소송에서도 같은 이유로 패했다. 라만의 부모는 ‘우리 집안에서는 이슬람에서 다른 종료로 개종한 자식은 필요 없다’면서 그와 연을 끊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가혹한 형벌이지만, 2006년 라만은 배교 혐의로 아프간 경찰에 체포당해 투옥되었다. 교리에 따라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다. 검사는 ‘무슬림 사회에서 차단되어 사라져야 하며, 죽음을 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간 변호사협회 역시 그 견해를 지지하면서 그의 교수형을 촉구했다. 국제 사회가 강력하게 압력을 행사한 후에야 비로소 라만은 석방되었다. 법정 사형은 면했으나 법정 밖에서의 신변 위협으로 그는 이탈리아로 도망치듯 망명했다. 기독교로 개종해 가족에게서 쫓겨나고 사랑하는 이들과 격리된 채 이국에서 떠도는 운명에 처하게 된 이슬람 압둘 라만은 본질적으로 방랑 유대인이 된 셈이다.
이 사례는 한 사람의 불순분자가 공동체 전체의 일관성을 파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의심과 반대는 확산되어 공동체를 파괴할 수도 있는 전염병과도 같다. 따라서 많은 공동체가 반대론자를 치료하거나 격리하거나 추방하려는(극단적인 경우에는 제거하려는) 조치를 재빨리 취한다. 어떤 하나의 믿음에 대해 서열을 깨는 한 사람이 전체 공동체의 일관성을 위협한다고 본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더욱 심하게, 믿는 행위의 본질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국경을 넘을 때(또는 가톨릭 신자인 국제 원조 요원을 만날 때) 믿음이 변할 수 있다면 진리란 단지 지역 관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진리라는 개념의 요점은 보편성에 있으므로 믿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곤란하다. 라만의 사형 언도를 지지했던 한 이슬람 언론가는 그 문제를 간단히 설명했다. ‘누군가가 한 순간에는 진리를 긍정하다가 그 다음 순간에는 그것을 거부하거나 부정한다면 진리의 전체 패러다임이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p. 188-189. - P188

미국 의학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환자 69만 명이 의료 과실로 희생되며, 그들 중 4만 4천 명이 사망한다. 의료 과실은 미국에서 여덟 번째 사망 원인으로 유방암이나 에이즈, 오토바이 사고보다 그 순위가 높다. 미국 항공업계가 의료 과실과 동일한 사망자 수를 내려면 항공권이 매진된 747기가 사흘에 한 번 꼴로 추락해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해야 한다. p. 368. - P368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소유했다는 생각은 굉장히 중요한 심리적 목적에 기여한다. 우리에게 본질적이고 불변하는 정체성이 있다면 우리가 가진 믿음, 우리가 하는 선택, 우리가 될 사람 중 어느 것도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삶의 모든 궤적은 필연적인 것이 되고, 우리의 진정한 자아가 결국은 드러날 것이라는 확신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 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오류를 범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우리의 거짓 자아는 미리 운명지어져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 오류처럼 보이는 것도 엄격히 말하면 더 큰 진리에 복무하기 위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신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종교적 주장, 즉 삶의 시행착오나 오점으로 보이는 것조차도 신의 더 큰 계획의 일부라는 주장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렇듯 진정한 자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야기들은 목적론이다. 우리는 결국 운명이 미리 정해 놓은 바로 그 자리에 도착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 본질론적 자아론의 매력인 동시에 약점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결정론적이며 그 자체의 지적, 감정적, 영혼적 강점 때문에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어제의 신념은 단지 미리 결정된 미래의 자아를 위해 우리를 유인한 함정에 불과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때 과거가 그 자체로 가지고 있었을 의미와 가치는 손쉽게 지워져 버린다.
더 큰 문제는, 진정한 자아라는 개념이 우리가 절대로 어떤 중요한 대변동도 경험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큰 변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마침내 진정한 자신, 늘 그러했던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한 후에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변신은 불가능하다. 자아가 계속 변한다면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고, 계속 새로운 누군가가 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각자에게 고정된 본질이 있다면 우리는 그 본질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거에 그 본질적 자아로부터 벗어났던 것은 단지 설명할 수 없는 한 번의 의도일 뿐이며 배신이나 죄로 규정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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