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를 만드는 데 아담이 갈비뼈 하나를 내주었기에 여자는 남자보다 갈비뼈가 하나 더 많다는 기독교 전통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1543년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가 사람 갈비뼈 수를 직접 세어 그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로마의 과학자이자 저술가였던 플리니우스(24?~79)는 세계 최초 백과사전인 『박물지』(77?)에서 여성 월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월경하는 여자에게 우유를 가까이 두면 상하게 된다. 그 여자가 만진 씨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접붙인 나무는 시들고, 정원의 식물은 바짝 말라버리며, 그녀가 앉았던 자리의 나무는 열매가 다 떨어져 버린다. 그녀 얼굴은 거울의 반짝임을 없애고, 철의 끝을 뭉툭하게 하고, 상아의 매끈한 표면도 거칠게 한다. 벌떼도 그녀가 바라보기만 해도 곧바로 죽어 버린다. 그녀의 배설물을 먹은 개는 미쳐서 발작을 일으키며, 그런 개에게 물리면 독성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다.”



분명 정말로 그러한지 간단하게 실험해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과학혁명이 있기 전까지 아무도 1,500년 동안 지배해 온 이 믿음을 반박할 증거를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스위스는 오래되고 안정된 민주국가지만 스위스 여성은 1971년까지 투표권이 없었습니다. 뉴질랜드는 1893년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고, 핀란드는 1929년에 인정되었습니다. 조금 늦게 프랑스와 이탈리아조차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확대한 바 있습니다. 그 후 몇 년 이내에 아르헨티나와 일본, 멕시코, 파키스탄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1971년까지 스위스는 방글라데시와 바레인, 요르단, 쿠웨이트, 사모아, 이라크와 함께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은 투표권을 얻는 데 자국 남성보다 평균 47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1291년 남성 시민이 투표를 했던 스위스에서는, 여성을 포함한 보통투표가 이루어지기까지 700년이나 걸렸습니다. 



스위스 남성들은 왜 여성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전 세계 남성들이 했던 똑같은 주장, 즉 여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면 여성답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스위스의 어느 여성 참정권 반대론자는 ‘너무 똑똑한 여자처럼 불쾌한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대부분 스위스 여성이 남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런 상태에 만족하기에 어차피 실제로 투표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이유도 많았습니다. 여성을 억지로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면 가정이 무너질 것이라든지, 스위스는 여성 참정권 없이도 100년 넘게 평화롭게 지내 왔고, 두 번의 세계대전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엄청난 번영을 일구었으므로 망가지지 않은 것은 고치지 않는 것이 최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정치는 남자의 일이며, 국사를 여자에게 맡길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부유하고 교육열도 높고 민주적인 스위스가 오랫동안 여성 참정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믿음조차 시대나 사회마다 크게 다를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 대부분은 실제로 과거 어느 때 이식된 믿음입니다. 자신이 옳다는 신념은 곧 다른 누군가가 옳다는 신념과 같습니다. 철학자 몽테뉴(1533~1592)는 “사람들의 신념은 자국의 관습이나 부모의 양육 방식, 혹은 우연한 믿음 속으로 휩쓸려 형성된다”고 말하며, “태풍에 휩쓸리듯 판단이나 선택의 여지없이,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사고력이 형성되기 전인 어린 나이에 이미 그렇게 된다”고 덧붙입니다. 
















우리에게 현재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이지만, 언젠가 모든 사람이 이를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할 일은 없을까요?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믿음 중 일부는 미래에 옳지 못한 믿음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현재의 믿음 중 무엇이 언젠가 옹호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회가 공유하는 생각은 너무나 강력하고, 좁기에 누가 세상을 분명하게 보고 행동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불변하는 객관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상호주관(inter-subjective)만이 존재합니다. 상호주관이란 진리이거나[眞] 옳다거나[善] 아름답다고[美] ‘당시 대다수 사람이 믿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철학자 플라톤(BC 428?~327?)은 『국가』(BC360?)에서 예술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항아리를 아름답다고 규정했습니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역시 미(美)란 적당한 비례와 밝기, 명료성은 물론 완전무결함의 결과라고 설명하며 플라톤의 관념을 확장했습니다. 따라서 미에 반대되는 추(醜)는 비례에 맞지 않는 것, 곧 아퀴나스가 ‘축소되어 욕되다’라고 규정한 거대한 머리와 아주 짧은 다리를 가진 사람 뿐 아니라, 다리가 하나 없거나 눈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을 묘사할 때도 쓰이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비례와 조화를 이루는 미란 무엇일까요? 미의 의미는 역사에서 계속 변화해 왔습니다. 한 세기 동안 비례가 맞다고 여겨지던 것이 다른 세기에 들어서 더 이상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해할 때는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하면서 서로 공유한 경험이 바탕이 됩니다. 사회나 특정 집단 내 의미나 규범, 가치는 이러한 공유된 이해를 통해 형성됩니다. 우리는 다수 의견에 쉽게 순응하는 경향이 있기에 공유된 경험이나 환상에 손쉬운 먹잇감이 되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회에 큰 영향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도 ‘상호주관’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선 18세기에 이르자 오직 남성 간에만 한정되던 두 영혼의 결합이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도 가능하다고 처음 주장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랑에 빠진 남성이 여성을 부양할 만큼 부유하다는 사실만 진지하게 증명하면 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사랑이란 단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사랑받는 상대가 이상화되고, 누구하고든 사랑에 빠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또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부추겨져 사랑에 대한 모든 전제 조건이 철폐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가장 놀라운 발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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