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 어떠한 원대한 시대사상이 없더라고 ‘그냥’ 살수도 있습니다. 그냥 산다는 것이 잘못된 일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사상이 뿌리째 뽑아버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안에 깊숙이 심어져 있기에 그냥 산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국가가 전부라고 생각하여 국가를 위해 자신 인생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시민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경험했던 전쟁터는 다음처럼 몹시 참혹했습니다. 



"어느 날 백병전이 시작됐어...... 뭐가 기억나느냐고? '오도독오도독' 소리. 그 소리가 기억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방에서 오도독오도독하는데, 사람들 연골이 으스러지고 뼈마디가 뚝뚝 부러져나가는 소리였지. 그리고 짐승의 울음 같은 처절한 비명들...... 서로를 찔러 죽이고, 숨통을 끊어놓고, 뼈를 부러뜨렸어. 총검으로 입이고 눈이고 닥치는 대로 찔렀지...... 심장을 찌르고 배를 찌르고...... 독일군에게 잡혀간 우리 여성 간호병을 찾아냈지. 세상에, 눈알이 도려내지고 가슴이 잘려나가서는...... 놈들이 말뚝에 박아놓았더라고. 몸에 살을 에는 추위에 꽁꽁 얼어 새하얗고 머리는 완전히 백발이 되어 있었어. 그 아이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어." 



러시아 시민들이 경험한 전쟁터는 이토록 참혹한데 그들은 기꺼이 스스로 지원에서 전장으로 갔습니다. 



“그저 전선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 그게 다였어. 어떻게 히틀러가 모스크바를 차지하도록 보고만 있겠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지!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내 또래 소녀들은 너나없이 모두 전선으로 가겠다고 나섰지. 우리는 우리만 애국심에 불타는 줄 알았어...... 우리만 특별한 경우라고...... 하지만 웬걸, 모병사무소에 갔더니 글쎄 우리 같은 여자애들이 한가득인 거야. 세상에, 얼마나 놀랐던지! 심장이 뛰고 피가 끓어오르더라고. 나는 선발이 안 될까봐 가슴을 졸였어." 



딸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더라도 어머니는 반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한테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었는데도 어머니는 딸을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딸이 전선에서 돌아온 일을 모욕으로 생각하셨지. 적과 싸우지 않는 것을.” 



전쟁은 이토록 끔찍한데 그들은 왜 기꺼이 그 지옥으로 갔을까요? 



"우린 어렸을 때부터 '조국은 우리의 모든 것이다. 우리는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어. 그래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전선으로 가기로 결정한 거야. 내가 안 가면 대체 누가 가겠어? 나는 반드시 가야 했지..... 나는 '전선으로 갈 거예요, 전선으로 보내줘요! 전선으로!'라고 날마다 '전선, 전선' 노래를 부르며 고집을 꺾지 않았어. 실은, 포스터 글귀들의 영향이 컸어. '모국이 그대들을 부른다!', '전선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눈만 뜨면 사방에 보이는 게 그 글귀들이었으니까. 노래는 또 어떤 줄 알아? '일어나라, 위대한 나라여...... 일어나서 죽기까지 싸우라......“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은 죽는 것이었어요! 자신을 희생하는 것, 전부를 내주는 것이요! 콤소몰(소련의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 선언에도 있어요. ‘나는 내 민족이 내 목숨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말로만 하는 맹세가 아니었어요.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요. 군대가 행군하는 걸 보면 모두들 제자리에 멈춰 서서 경의를 표했죠. 승전 이후 군인들은 더 이상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거든요.“ 
















상호주관인 시대사상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될 수 있지만, 특정 권력의 선전과 선동으로 아주 단기간 내에 '세뇌'될 수 있습니다. 철학자 죄르지 루카치(1885~1971)는 선전과 선동이 인간을 '도취'시켜 비인간화하기에 이는 비윤리적이라고 말합니다. "도취는 하나의 기만이며 사기다. 감정이입을 핵심으로 삼는 일은 일상적인 삶을 격하시킨다. 니체의 '디오니스적 도취'는 감정이입 반응의 극단적 형태이며, 개인 인격을 균열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는 세계와 인간관계를 공허하게 만든다. 선전과 선동은 인간을 기만하는 위장된 오만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흔히 ‘반복 편견’(repetition bias)이라 부르는 이상한 오류가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 들을수록 그 이야기가 참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 현상입니다. 반복은 마치 서서히 젖어들어 온 몸을 젖게 만드는 가랑비와 같습니다. 기업은 광고를 반복하고 정부 역시 홍보와 선전을 반복합니다. 그들은 같은 이야기를 자주 반복하면 이성을 압도할 수 있으며, 심지어 거짓말도 반복하면 점점 더 진실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자주 듣거나 보게 될수록 우리 뇌는 더 빨리 적응하여 그것을 진실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18년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사람들이 정보의 신뢰도와는 무관하게 같은 정보에 반복되어 노출되자 그 정보를 사실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였습니다. 아주 약간만 그럴듯해도 반복되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걸 믿었습니다. 가령 이러한 제목이 붙은 기사를 살펴보죠. ‘트럼프의 군사 개혁안: 미국은 징병제로 돌아갈 것이다.’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분명 사실이 아닌 이런 기사 제목조차도, 같은 내용을 두 번 본 사람은 한번 본 사람에 비해 두 배나 많이 사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가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를 반복 편견에 빠뜨리는 위험한 무기와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사실 확인을 통해 확인되었을 때조차, 심지어는 본인의 정치 성향과 상반되는 의견일 때조차도, 자주 노출된 가짜 정보를 사실이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정보가 되풀이된다 해서 그것이 반드시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은 우리가 무언가를 진실이라 믿게 만드는 미끼 노릇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정부나 기업, 지도자들은 모두 오래도록 이 미끼를 잘 활용해왔습니다. 가령 히틀러(1889~1945)의 『나의 투쟁』(1927)을 읽어보죠. 히틀러는 성공적인 프로파간다를 위한 몇 개의 핵심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문장은 그 하나입니다. “몇 개의 간단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반복할 것. 틀에 박힌 문구를 사용하고 객관성을 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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