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집단에서 쫓겨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우리의 사회 정체성은 우리가 속한 집단과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집단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죽음의 키스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공포는 우리를 집단 착각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착각에 빠져들게 하며, 심지어 우리를 그 공범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추방하다’(ostracize)라는 동사는 그리스어 단어 ‘도편추방’(ostracon)에 유래를 두고 있다. 도편추방은 기원전 5세기, 탄핵이라는 정치적 절차가 발명되기 한참 전, 아테네인들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 허풍쟁이, 거짓말쟁이, 그 외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를 아테네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고안된 법으로, 깨진 도자기 조각(도편 ostraca)에 추방하고자 하는 사람 이름을 적어내는 방식으로 원치 않는 자를 그들 속에서 솎아내기 위한 투표였다.



매년 아테네 시장에서는 도편추방 투표를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개표가 진행됐다. 여기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은 누가 됐건 아테네를 떠나야 했다. 도편추방 대상자에게는 짐을 싸서 떠나기 위한 열흘의 말미가 주어졌고, 10년을 꼬박 채우기 전까지는 귀환이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10년을 채우고 나면 돌아와서 아테네인으로서의 생활과 직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도시 내에서 보유하던 자산은 안전하게 보존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도편추방자 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라든가, 영웅적 업적을 남긴 페리클레스처럼 유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추방당한 이들은 혈압이 높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 또한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회적 관계에 손상을 입든 물리적 부상을 입든, 우리 뇌는 동일한 경고 신호를 발산한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배척당한 고통은 허리와 척추의 통증 및 심지어 출산의 고통과도도 관련성을 보인다. 마음의 상처가 마치 다리 골절상처럼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고통에 엄청난 사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추방에 대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주 약한 수준의 냉대와 무시만으로도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때로는 매일 경험하는 일로 인해 그런 고통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더욱 안 좋은 일이다. 참가자 40명을 대상으로 일상 속에서 배척당한 경험을 할 때마다 일기에 기록하도록 한 연구가 있었다. 참여자들이 기록한 사건 중 7백여 건 이상은 (버스나 기차에서 낯선 이가 반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거나, 친구가 이메일에 제때 답장을 해주지 않는 등) 비교적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자로부터 싸늘한 침묵만을 돌려받는 등) 보다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특히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추방당한 경험을 하고 나면 참여자들은 귀속감, 자기 통제감, 자존감 등의 하락을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 존재를 더욱 의미 없게 느꼈다.



거절에 대한 우리의 내적 감각은 너무도 예민하게 발달해 있는 나머지, 심지어 그 일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작위적인 상황이라는 걸 분명히 아는 경우에도 고통을 느낀다. 인터넷에서 무시당하거나 배제당하는 기분, 즉 사이버 도편추방은 사람을 만나서 거절당하는 일보다 훨씬 더 쉽게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물리적, 감정적 반응은 거의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가 ‘좋아요’가 낳는 즉각적인 만족의 세상 속에서 수천여 명의 가상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기가 너무도 쉬운 세상이 되었다. 가령 누군가가 쓴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놓고 상대방 반응을 기다리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사소한 경우를 떠올려 보자. 사이버 도편추방을 당하는 사람은 귀중한 소속감이나 자기존중감의 상실을 겪게 된다. 



거절의 크기나 강도가 얼마나 큰지는 상관없다. 일단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인식되고 스위치가 켜지고 나면, 우리에게 내제된 도편추방 경고등은 가장 큰 소리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사회적 거절이 아주 미세하게 벌어질 때조차 생명이 위협당할 때와 맞먹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여러 차례 반복된 한 실험을 살펴보자. 피험자는 방 안에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공 넘기기 게임을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이유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 피험자를 따돌리고는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는다. 이 실험은 온라인에서 ‘사이버볼’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수천여 명을 상대로 진행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같은 패턴이 드러났다. 사회적 추방을 단 2분에서 3분 정도 경험한 것만으로도, 특히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강력하게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한 것이다. 낯선 이들과 공을 주고받는 인위적인 상황임에도, 심지어 컴퓨터 앞에서 공을 주고받는 상황에서조차, 배제당한 참여자는 감정이 격양되고 말았다. pp. 9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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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1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편추방은 태생적으로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제도였네요.ㅠㅠ 내편이 아니면 추방 가능한 제도이니까요.

북다이제스터 2023-06-21 13:09   좋아요 0 | URL
넵, 다수결(투표)이 항상 옳거나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선거 결과를 봐도 그런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