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영문법 그래머콘 - 한눈에 그림으로 쏙쏙 이해되는
한송이 지음 / 성안당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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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이 어렵다는 편견은 그만!

처음 영문법을 접하거나 평소 영문법 공부가 어려웠던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

 






  와, 이런 신박한 영문법 책이라니. 비주얼 영문법 그래머콘을 펼친 순간, 이런 영문법 책이라면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어려운 영문법을 직관적인 그림 이미지로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제작된 이 책은 200개가 넘는 그림을 하나하나 손수 그린 엄마이자 교사인 저자의 세심함으로 완성되었다. 아이콘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영문법을 이해하고 영어식 사고와 연결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처음 영문법을 접하거나 평소 영문법 공부가 어려웠던 이들에겐 무척 반가운 책이 되어줄 것이다.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하는 비주얼 씽킹 영문법

 



  영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려면, 영어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순서와 구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책은 원어민의 사고방식과 언어 감각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그래머콘을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한국어는 최종 결론을 내리는 동사가 맨 나중에 등장하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중요한 본론부터 생각하기 때문에 주인공 이후에 가장 중요한 동사가 나오는 것이 핵심이다. 또 동사를 사용할 때는 시간, 개수, 누구(시개누를 기억하자!)’를 굉장히 중요시 한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이 외에도 영어는 조사가 없기 때문에 위치와 순서에 따라서 뜻이 정해진다는 점도 기억해두면 영어 문장을 쓰고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하다.

 



한국어의 명사랑 무슨 차이가 있을까?

첫째, 가장 큰 차이는 관사야. 대부분의 명사는 관사라는 모자를 써야 하는데, 한국인에게는 관사가 참 낯설고 깜빡하면 잊어버리는 존재이지.

둘째, 영어식 사고방식은 개수에 완전 민감해. 그렇기 때문에 셀 수 없나? 셀 수 있나? 셀 수 있다면 1개인가? 2개 이상인가?’를 항상 따져서 개수에 대한 정보를 밝혀 주어야 해. / 37p

 


영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려면, 영어권 사람들의 생각에 익숙해지는 게 한 방법이라고 했지? 우리가 그냥 무의식적으로 존댓말을 사용하듯이, 원어민들은 동사를 쓸 때는 3가지를 생각하며 말을 해. 바로 시간, 개수, 누구인가야.

영어 문법에서는 시제를 생각하고, 단수인지 복수인지 체크하라고 하고, 또는 3인칭 단수하라는 복잡한 일본식 한자를 사용하는데 나는 그걸 반대해. 영어보다 더 복잡한 한자식 설명은 배우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쉬워. 용어는 알아야 하겠지만 지금부터 우리는 시개누를 생각하며 동사를 사용하는 거야. / 78p







  

  영어에는 관사라는 것이 있다. a/an부정관사’, the정관사등이 이에 속한다. 이때 부정은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해지지 않은이란 뜻이지만, 선뜻 와 닿지 않는 일본식 한자 표현 때문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때문에 이 책은 일본식 한자 표현을 지양하고 좀 더 쉬운 표현으로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 쓴 점이 눈에 띈다.

 



  이 외에 다양한 영어 꿀팁도 얻을 수 있다. 이를 테면, 첫 글자가 모음일 경우에 an을 사용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첫 글자가 아니라 첫 소리를 느껴야 한다는 것(모음 소리가 연속으로 부딪히면 말할 때 불편하여 an으로 쓰는 거라서), 옥수수 쉔드위치로(o x s sh ch) 끝나는 명사는 2+개일 때 es를 붙일 것 등과 같이 영어를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익힐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the를 안 붙이는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go to school’이 있어. 이때는 단지 물리적인 학교를 간다는 뜻이 아니라, 학교에서 공부하고 친구도 만나고 선생님과 배운다는 뜻이라 the가 없는 거야. school이 건물보다는 추상명사 같은 느낌이랄까? 만약 학생이 공부하러 가는 그 본연의 목적과 다른 뭔가 특이한 이유일 때는 the를 붙여. 마찬가지로 ‘go to bed’는 침대로 간다는 물리적인 뜻이 아니라, 침대에 가서 잔다는 의미까지 포함한 거라서 the를 쓰지 않아(관습적인 경우). ‘go to the bed’라고 한다면 특정 침대에 다른 목적으로 갈 경우라서 the를 쓰는 거지. / 63p

 


한국어와의 차이점을 다시 짚고 넘어갈게. 한국어에서는 형용사가 마치 동사처럼 서술어로 쓰이기도 해. ‘그녀는 아름답다처럼. 하지만 영어에서는 ‘She beautiful’로 쓰면 안 돼. 영어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녀는 -(어떤 상태)이다. 아름다운과 같이 생각하거든. 형용사가 직접 서술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be동사나 자동사 다음에 쓰이는 거야. / 102p

 







  영문법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신개념 책이다. 영문법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보아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단순화한 그래머콘 덕분에, 엄마표 영어를 하고 있는 나와 같은 가정에서 특히 활용해보기 좋은 교재다. 영문법을 재미있게 공부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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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 고려사 : 고려거란전쟁 편 - 알고 봐도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
박종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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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진짜 고려거란전쟁 이야기!

핵심만 쏙쏙 뽑은 가장 쉽고 재미있는 역사책!






  “왜 고려거란전쟁일까?”

  KBS에서 대하사극이 부활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제목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서희도 아니고, 강감찬도 아닌 고려거란전쟁이라니? 왜 하필 이들은 전쟁에 주목했던 걸까? 제작발표회 당시 설명에 따르면 이 시기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거란에 의해 위협받았던 때로,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고려를 지키는 데서 그친 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에도 영향을 미치며 작지만 저력이 있는 나라의 힘을 보여준 상징적인 전쟁이었다고 한다. 역주행 고려사: 고려거란전쟁의 저자 역시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의 성장 전반과 거란, 중국 등 주변국과의 복잡한 관계가 총망라된 사건으로 규모 면에서 있어서도, 고려사에 끼친 영향 면에 있어서도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있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고려거란전쟁이야말로 고려사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전투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더욱 재밌는 고려거란전쟁

 



  『역주행 고려사: 고려거란전쟁은 고려거란전쟁을 중심으로 고려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교양서다. 역사 전문 교양 채널인 역주행-조선왕조실록을 운영하는 역사 유튜버답게, 저자는 고려의 건국에서부터 3차례에 걸친 거란과의 전쟁사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재미있게 들려준다. 조선에 비해 고려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던 만큼 명쾌한 설명과 편안한 구어체, 친절한 일러스트로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고려사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 쓴 점도 이 책의 특별한 매력이다.

 



서희: 거란의 동경에서 우리 안북부까지의 땅 수백 리는 모두 여진이 점거하고 있는 지역이옵니다. 이에 광종께서 이 지역 중 일부를 차지하여 국경을 넓혔사오니 거란은 지금 이걸 가지고 뭐라 하는 것이옵니다. 소손녕이 옛 고구려의 땅 운운하는 것은 단지 우리에게 겁을 주려는 것일 뿐이온데 지금 적의 기세에 눌려 섣불리 땅을 내어준다면 만세에 수치가 될 것입니다. 하물며 저들이 서경을 받은 뒤에도 더 요구한다면 삼각산 이북까지 전부 내주려는 것이옵니까? 서둘러 명을 중지하시고 신 등으로 하여금 적과 맞서 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복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사옵니다! / 68p

 







  이 책을 읽다보면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읽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를 테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 거란을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물리친 것으로 알려진 1차 고려거란전쟁에서, 저자는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거란은 수교를 맺고 조공과 사대를 얻어내려던 것이었지 고려를 완전히 점령하려던 게 아니었다. 송나라와만 친하게 지내지 말고 거란과도 친하게 지내자는 것, 딱 여기까지가 거란의 목표였던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서희가 외교담판으로 거란을 무찔렀다고 보기 보다는 거란과 고려가 원하는 게 서로 맞아떨어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때 서희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은 확실하다. 고려 신하들이 전부 겁에 질려서 아예 나라를 통째로 줘버리려 했을 때 서희 혼자 거란의 목적을 간파하고 이들과의 접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인식하고 그 의의를 성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현재와 미래까지 바르게 조명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그래도 의문이 하나 남습니다. 과연 40만 중 얼마나 실제 전투에 참여한 병사였을까 하는 겁니다. 군대에는 전투병만 있는 게 아니에요. 행정, 보급, 의무, 취사 등 여러 일을 하는 병사들이 고루 존재합니다. 당시 거란군은 31조로 이뤄졌다고 해요. 정규 병사 1명에 보조인력 2명으로 말이죠. 그러니 40만 대군은 보조인력까지 전부 합친, 그야말로 이 전쟁에 동원된 전체 병력을 뜻하는 것일 테고, 실제 전추에 투입된 병사는 3분의 1정도인 13만 정도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 126p

 







  드라마에서는 목종이 남색을 밝히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느라 무능한 이미지로 묘사되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거란과 송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친 데다 미리 북쪽에 성을 쌓고 보수하는 작업을 함으로써 훗날 2, 3차 고려거란전쟁 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차 고려거란전쟁의 주역인 양규는 애초에 문관이었다는 것, 여기에 강조와 강감찬까지 무관이 아니라 문관 출신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고려에는 애초에 문관이 무관직을 겸할 수 있게 해서 고위 무관직조차 전부 문관이 차지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고려는 꽤 오랫동안 문벌 귀족 사회를 유지했으며, 이에 불만을 품은 무관들이 반란을 일으켜 최씨 무신정권이 들어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거란에 큰 피해를 준 데에는 분명 양규의 활약이 독보적이었습니다. 양규가 흥화진을 지키지 못했다면 전세가 순식간에 거란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며, 양규가 곽주성을 탈환하지 못했다면 거란이 퇴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양규가 퇴각하는 거란군을 계속해서 요격하지 않았다면 무려 3만에 달하는 고려 백성이 더 노예가 되어 거란으로 끌려갔을 겁니다.

그렇기에 양규는 거란의 2차 침공으로부터 고려를 구한 1등 공신이며, 서희와 강감찬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위대한 장수임이 틀림없습니다. 양규는 그야말로 고려의 영웅이자 무신 그 자체였습니다. / 207p

 


공신 가문에 장원급제까지 했으니 강감찬 앞에는 승진 가도가 놓여 있었겠죠. 그런데 강감찬은 신기할 정도로 진급이 느렸습니다. 과거 급제 이후에 강감찬이 처음 기록에 등장한 건 거란의 2차 침공 때입니다. 거란군이 서경을 넘어 개경으로 진격해오자 강감찬이 현종에게 몽진을 제안할 때죠. 이때 강감찬의 나이가 62세였어요. / 270p

 


사실 현종은 도망치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장수에게 개경 방어를 일임하고 호위무사만 데리고 도망쳐도 돼요. 그러나 현종은 끝까지 개경에 남기를 택합니다. 현종은 거란의 2차 침공 때 갑작스레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항복이 아닌 몽진을 택했었죠.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거예요. 온 조정이 항복을 외쳤는데 결국 포기치 않고 적을 물리쳤잖아요. / 297p

 



  이 외에도 전쟁 후 거란과 고려의 손익은 무엇이었는지, 강동 6주가 왜 중요했는지 등 고려거란전쟁을 비롯해 고려사와 동아시아의 정세까지 두루 살필 수 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신 분들이라면 실제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특히 고려사를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찾고 계셨던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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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른 등을 만질 때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엄마 그리고 나
양정훈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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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

 





  지난 주, 엄마에게서 치매예방영양제를 대신 주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치매를 한참 앓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병력이 자신에게 미칠까 염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치매만은 안 걸렸으면 좋겠다던 엄마의 바람이 어느 덧 죽음이라는 시간의 경계에 가 닿아 있는 것 같아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는 자신이 두 번 겪은 암이 나에게도 미칠까 매사 조심하라고 단속하며 동시에 미안해했다. 나의 병력이 자식에게로 이어질까, 자식의 삶을 발목 잡을까봐 미안해지는 마음. 외할머니가, 엄마가 잘못해서 아픈 게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 아픈 사람은 죄인이 되는 걸까. “정훈아, 미안해.” 엄마의 마른 등을 만질 때속에서도 죽음을 앞둔 엄마가 고르고 골라 남긴 말은 미안해였다. 그 마음이 나의 엄마와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펑펑 울어버렸다.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시간들

 



  “생을 관통하는 슬픔과 통증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낸 엄마와의 시간을 남긴다.”

  이 책은 유방암에 이어 자궁내막암이라는 두 번째 암 선고와 함께 시작된 엄마의 투병기이자,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시간을 담아 쓴 에세이다. 자궁 바깥에 퍼져 주변 장기까지 작은 씨처럼 빽빽하게 돋아난 파종성 전이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어버리고만 순간과, 항암치료와 요양병원을 오가며 서로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체감하며 먹먹해지고 마는 감정들이 섬세한 언어로 담겨 있다. 가만히 옆에 앉아 여윈 엄마의 등을 쓰다듬다, 울툭불툭 튀어나온 등뼈를 어루만질 때마다 슬픔을 삼켰을 아들의 애틋한 마음이 매만져진다.

 



엄마는 여전히 내면이 텅 빈 것처럼 보였다. 몇 번 울고, 이모들을 봤을 때는 신인지 운명인지 모를 대상을 원망했다. 그러나 대부분 말없이 세상에 문을 닫아버린 사람 같았다.

당장 서울로 올라갈 짐을 싸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챙겨야 할까? 다시 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우리는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 걸까? 어느 것 하나 예측할 수 없었다. / 26p

 


삶을 잠시 마비시킬 만큼 압도적인 시간이 안개처럼 희뿌옇다.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기억할 힘마저 마음이 다 가져다버텼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온 힘으로 단 하나의 희망을 건져 올리고 싶어 다른 건 까맣게 놓아버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남은 말이 수술하자는 말이 되었다. 수술하면 돼. 이제 싹 고치면 돼. 나는 어제오늘 이 말만 되풀이한다. 계속 말하면 반드시 그리될 것 같았다. / 33p

 


엄하고 단단하던 사람은 어떻게 이 작고 무른 노인이 되었는가. 엄마도 그때 외할아버지의 낡은 몸을 한참 만지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제야 그날의 엄마를 알 것도 같고 여전히 모를 것도 같고 날카로운 칼 같기도 하고 해진 책의 모서리 같기도 하였다. 엄마의 주름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외할아버지의 손목도 실은 그랬던 건지 모르겠다. / 66p

 







  ‘여기는 가장 날카롭게 삶을 조각내면서 동시에 아무래도 찾을 수 없었던 삶의 가장 귀한 조각 하나를 내어주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곳이었다.’ 양정훈 작가는 병원을 이렇게 표현한다. 피곤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어제와 비슷한 메뉴로 적당히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 답답한 병원 공기를 피해 잠깐이나마 햇빛을 보러 나왔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시선들.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 있다 보면 사랑하는 이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밟힌다.

 



  양정훈 작가 역시 엄마와 함께 병원을 자주 드나들며, 비슷한 듯 저마다 다른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시선이 자주 가 닿았던 것 같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여든 넘은 노인에게 중년의 딸이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모습, 항암 주사를 맞는 여덟 살 아이와 아빠, 중풍에 걸린 아내의 걸음에 맞춰 산책하는 남편. 덕분에 아픔은 결코 아픈 사람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아가 저마다의 아픔과 거친 일상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좀 더 친밀한 시선으로 보듬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듯 닮은 슬픔. 당신의 저림을 알 것도 같아서 우리는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다. 서로에 반사되는 고통이 있었다. 통증은 아무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작아지지도 않는다. 단지 아픔과 아픔을 이을 뿐. 슬픔에 슬픔을 포갤 뿐. 모두 다 아픈 것을 알고는 마음의 모서리 하나가 몽톡해졌다. 눈 덮인 밤의 숲을 서로 발자국을 겹치며 나란히 걷는 기분이었다. / 149p

 


사랑이 사랑인 이유는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삶이 아름답고 눈부신 이유는 그리하지 아니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재활병원 모퉁이에서 아픈 아버지가 아픈 딸의 몸을 닦는다. 닦아도 닦아도 사랑이었다. / 206p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게 있다고 한다. 우리는 무지하고 사랑할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것. 한정 없이 사랑하는 이의 등을 쓰다듬을 시간이, 눈을 들여다보고 같이 웃고 울 시간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또 모른다. 부디 늦게, 알아버렸다고 후회하지 않기를. 사랑하는 내 사람과 함께 할 시간을 더 많이, 더 자주 그려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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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 나의 해방일지와 미투 운동의 탄생
타라나 버크 지음, 김진원 옮김 / 디플롯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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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후에 쓰일 여성들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온갖 폭력과 부당한 것들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모든 를 위한 책!

 






  나도 당했어Me, too.

  『해방의 저자인 타라나 버크는 미투 운동의 창시자이자 인권 운동가다. ‘#미투2017년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혐의를 고발하는 데 사용되면서 인종과 성별을 넘어 순식간에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돌이켜보면 이 미투운동의 촉발이야말로 전 세계의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일깨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비밀과 고통을, 수치와 걱정을, 분노와 공포를 홀로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서로 공감을 나누는 데서 치유와 행동이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 선언으로부터 분명 변화는 시작되었다.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 힘,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타라나는 뉴욕의 브롱크스 빈민가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3세대였다. 그녀는 블랙 파워 정신(미국 흑인해방운동 구호)과 아프리카 문학, 아프리카인으로서의 자부심이라는 문화적·정신적 토양 아래에서 길러졌지만, 흑인 소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폭력과 편견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었노라 고백한다. 특히 일곱 살이 되던 해, 몇몇 이웃들 가운데 큰 오빠들이라 불리던 이들 중 한 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건은 그녀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성폭행, 성추행, 성적 학대라는 언어가 무엇인지 의미도, 맥락도 모를 만큼 어린 시절이었다. 자신을 피해자가 아닌 규칙을 어긴 범법자라고 여기며, 수치심과 고통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아픔은 성장기 내내 그녀를 지배했다.

 



아무도 네 은밀한 부분에 손대게 해서는 절대 안 돼. 모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은밀한 부분을 왜 지켜야만 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 경험을 돌이켜보았을 때도 나는 성범죄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했다. 나 자신만 나무랐다. 내가 보기에 저들이 나를 학대한 게 아니었다. 내가 규칙을 어겼다. 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나를 생존자로 인식하지 못했다. 희생자로 인식하지 못했다. / 60p

 


그때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너도 좋다고 말했어? 그 가여운 여자아이가 억지로 성관계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집에서 성폭행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람들이 내가 미끼를 물어 여자아이를 죽도록 팰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동안 붙잡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푹 가라앉았다. 수많은 흑인 여자아이가 걸려드는 함정이다. 고통에 빠진 척 연기가거나 고통을 견디는 척 연기하면서. / 99p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래 여자 친구들과 생각을 주고받고, 또 내가 해나가는 활동 속에서 어린 흑인 여자아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가지가 한데 얽힌 수치심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수치심은 거의 언제나 내 삶 속의 한 나이든 흑인 여성으로 이어졌다. 그 여성은 되풀이해서 엄마였다가 이모였다가 매우 아끼는 누군가가 되었다. 대체로 이들 여성은 엄마가 나를 사랑하듯 어린 여자아이들을 사랑했다. 자신들이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엄마도 그랬으리라. / 221p

 







  ‘폭력에 둘러싸여 있는데 어떻게 폭력이 습관이 되지 않을 수 있느냐던 타라나의 고백처럼, 책은 인종주의가 한 개인을, 집단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수치심을 떠안도록 길들이는 데 얼마나 유리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느끼는 자기혐오야말로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능력마저 앗아간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타라나는 평생 자신을 옭아매던 고통의 근원에 맞서기 위해,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한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성폭력과 그것에 침묵하는 사회 구조에 맞서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어 쓰기로 결심한다. “나도 당했어(Me, too).”

 



나는 21세기 지도자다.

나는 몸과 영혼과

무엇보다 마음을 단련해야 한다.

꼭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빛날 것이다.

너는 빛날 것이다.

우리는 빛날 것이다. / 136p

 



성폭력이 삶을 얼마나 일그러뜨리는지, 촘촘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 치유와 변화에 얼마나 꼭 필요한지 이해의 폭을 넓히며 떠났다. 나는 항상 공동체를 언급하며 끝을 맺었다. 어떻게 공동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부터 이 운동 속에서 어떤 공동체를 세우려는지, 그런 공동체가 어째서 대규모 집단일 필요가 없는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아울렀다. 이따금 공동체는 겨우 두 명일 때도 있다고, 하지만 신뢰와 사랑, 공감과 연민이 존재하는 한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 318p

 







  『해방은 미투 운동의 출발점을 다룬 타라나 버크의 회고록이지만, 온갖 폭력과 부당한 것들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모든 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타라나의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타라나가 그러했듯 폭력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나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을 때, 내가 가진 자원이 무엇인지 가늠함으로써 여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나의 위치를 끊임없이 재정립할 수 있을 때, ‘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리라 믿는다. 이 책이 폭력과 차별로부터 해방되어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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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4.3.4 - no.53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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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진지하게 응시하고 읽고 이해하는 행위 속에 문학이 있다!

다면적이고 유난스러운 우리들을 위한 격월간 문학 잡지 악스트!







  “난 우리 모두가 서로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테스 건티의 소설 우주의 알(은행나무)에서 열여덟 살의 주인공 블랜딘은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가 서로 엮여 있음을 깨닫고, 잘디잔 목소리와 이야기까지 성실하게 귀 기울이기. 어쩌면 나는 문학을 쓰고, 읽는 행위야말로 세상을 좀 더 진지하게 응시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라 생각한다. 다면적이고 유난스러운 종을 성급하게 재단하지 않고, 좀 더 찬찬히 오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문학이란 것이 있어서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Axt53빌런편을 읽으며 나는 오늘 어떠한 이야기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나는 또 누구의 목소리로 세상을 듣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문학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기

 



  쭈뼛 솟은 보라색 머리카락과 동글동글한 몸집, 커다란 눈망울에 장난기 어린 표정까지. 지난 52호가 세련된 느낌이라면 이번 53호는 발랄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묘한 희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트롤 인형이 시선을 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난감을 낯설게 제시하기, 왕선정과 양승욱의 합작품 <꾸덕꾸덕팡팡>빌런을 통해 정의의 양면성을 살펴보려는 이번 호의 취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이 히어로/빌런 서사에 열광하는 이유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읽어볼 수 있다. 히어로와 빌런이 탄생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계기를 맞아 현실을 각성하고, 스스로 자기만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는 점에서 동일한 이야기 구조가 발견된다. 다만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수호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파괴하느냐 각자의 지향점에서 히어로와 빌런의 본질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명성이 됐든, 악명이 됐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획득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히어로와 빌런은 모두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 <자기만의 인형극> 왕선정과 양승욱의 커버 스토리 글 중에서 68p

 







  ‘빌런을 주제로 다양한 글을 만나볼 수 있어 즐거웠다. 수상한 본성을 지녔지만 어찌 되었든 계속 변화를 꿈꿔온 인간의 다면성에 주목하는 정세랑 작가의 인터뷰를 재미있게 읽었다. 셜록 홈즈 전집 1: 주홍색 연구를 읽고 오은 시인과 박서련 소설가, 전승민 문학평론가가 비대면으로 채팅을 나눈 ‘CHAT’ 코너도 눈길을 끌었다. 빌런을 단순히 히어로와 대적하는 존재로 읽기보다는, 작가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지향성을 형상화하는 소설의 주요 요소로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이 외에 빌런의 미학을 다룬 박참새 시인, 우리 세계의 수많은 빌런들을 감지하게 하는 소설가 김홍의 글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종종 이런 일이 있거든요. 책 밖을 빠져나가서 진짜가 되는 일이. 세계는 의외로 막이 얇으니까.” 수록작인 이희주의 <0302> 속 문장이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때로는 현실 속 빌런들이 소설을 막 뚫고 나온 캐릭터보다도 과감하고 강력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검증되지 않은 단편적인 정보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고, 좌표를 찍고, 나는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우리 시대에 빌런은 어쩌면 내부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위압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밀어붙이는 대신 자기모순과 윤리 의식을 먼저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라 지적하는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의 글은 우리를 깊이 숙고하게 한다.

 



아주 실용적인 목표를 위해 회복이 있는 소설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같이 뉴스를 소화하지 못하는 분들과 이야기로 된 일종의 코팅제를 나눠 가지려고요. 미약하기 그지없는 코팅제지만요. 신념도 신념이지만 생존에 방점이 있지요. / 소설가 정세랑의 인터뷰 글 중에서 16p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고 순응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때로 커다란 망치가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벽돌을 깨부수는 그 소리가 고통이고 신경을 긁는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진보해왔다. ‘(저들이) 미워해도 (우리에게) 좋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빌런은 미워해도 좋은 사람이다. 이 문장은 너무 많은 방식으로 다르게 읽힌다. 어쩌면 실패한 문장이고, 좋은 제목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정확한 것이 더 진실될 때가 있다. / <미워해도 좋은 사람> 김홍의 글 58p

 


몇 달 전, 세월호 생존 학생, 천안함 생존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을 연구해온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를 인터뷰이로 만났을 때 인상 깊게 들은 말이 있다. “가장 큰 폭력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정의롭다 믿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 같아요. 욕망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오히려 조율도 되고 타협도 되는데, 본인의 모든 게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념이기 때문에 자신이 틀릴 수 있단 생각을 안 하죠. 나 역시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 <나는 정의롭다는 착각> 정시우의 글 중에서 63p

 







  이번 호에서도 다양한 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붕어빵에 슈크림을 넣듯 신체에 영혼을 주입하는 휴먼슈트가 활성화될 미래를 담은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조시현), ‘사거리의 미소년이라는 말랑말랑한 도시 전설의 이야기 <0302>(이희주)가 인상적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 관련 소설 <지금은 아닌>(김영은)과 자발적 은둔자를 주인공으로 한 <매점 지하 대피자들>(전예진)은 시류를 반영한 주제라 더 관심 있게 읽었다.

 



진실을 추구하는 일이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종종 사실과 진실을 혼동한다. 그러나 진실은 사실처럼 고정된 정보값이 아니다. 사실이 문자와 숫자, 통계 속에 있다면 진실은 인간 사이에 있다. 각자의 욕망과 오해, 감정으로 뒤범벅된 삶 속에 있다.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팩트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정과 대화는 이 과정의 다른 말이다. 사실이 전선을 구축하고 옳고 그름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면 진실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더하기 위한 것이다. / 정지돈 소설가의 글 중에서 88p

 


제빵을 시작한 것도 그해 봄. 마디가 슈크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흔적은 늘 그런 식으로 몸으로 들어와 함께 빚어지는 것이다. 돌아보면 인생이 다 복선이더라니까. 몸에 심는 거지, 미래를. 그렇게 말했던 게 친척 중 누군가였는지 상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거라면, 내 삶은 마디를 만나기 위한 복선이었을 것이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빚어온 몸이라면, 나는 어떤 몸으로 죽게 될까. /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 조시현의 작품 중에서 119p

 



  착한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지만 여전히 착한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매력적인 빌런보다는 그저 그래도 썩 괜찮은 사람이라면 좋겠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픈가, Axt53호를 읽고 당신도 응답해보시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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