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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 고려사 : 고려거란전쟁 편 - 알고 봐도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
박종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3월
평점 :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진짜 고려거란전쟁 이야기!
핵심만 쏙쏙 뽑은 가장 쉽고 재미있는 역사책!
“왜 고려거란전쟁일까?”
KBS에서 대하사극이 부활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제목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서희도 아니고, 강감찬도 아닌 고려거란전쟁이라니? 왜 하필 이들은 ‘전쟁’에 주목했던 걸까? 제작발표회 당시 설명에 따르면 이 시기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거란에 의해 위협받았던 때로,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고려를 지키는 데서 그친 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에도 영향을 미치며 작지만 저력이 있는 나라의 힘을 보여준 상징적인 전쟁이었다고 한다. 책 『역주행 고려사: 고려거란전쟁』의 저자 역시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의 성장 전반과 거란, 중국 등 주변국과의 복잡한 관계가 총망라된 사건으로 규모 면에서 있어서도, 고려사에 끼친 영향 면에 있어서도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있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고려거란전쟁이야말로 고려사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전투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더욱 재밌는 고려거란전쟁
『역주행 고려사: 고려거란전쟁』 은 고려거란전쟁을 중심으로 고려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교양서다. 역사 전문 교양 채널인 ‘역주행-조선왕조실록’을 운영하는 역사 유튜버답게, 저자는 고려의 건국에서부터 3차례에 걸친 거란과의 전쟁사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재미있게 들려준다. 조선에 비해 고려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던 만큼 명쾌한 설명과 편안한 구어체, 친절한 일러스트로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고려사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 쓴 점도 이 책의 특별한 매력이다.
서희: 거란의 동경에서 우리 안북부까지의 땅 수백 리는 모두 여진이 점거하고 있는 지역이옵니다. 이에 광종께서 이 지역 중 일부를 차지하여 국경을 넓혔사오니 거란은 지금 이걸 가지고 뭐라 하는 것이옵니다. 소손녕이 옛 고구려의 땅 운운하는 것은 단지 우리에게 겁을 주려는 것일 뿐이온데 지금 적의 기세에 눌려 섣불리 땅을 내어준다면 만세에 수치가 될 것입니다. 하물며 저들이 서경을 받은 뒤에도 더 요구한다면 삼각산 이북까지 전부 내주려는 것이옵니까? 서둘러 명을 중지하시고 신 등으로 하여금 적과 맞서 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복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사옵니다! / 68p
이 책을 읽다보면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읽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를 테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 거란을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물리친 것으로 알려진 1차 고려거란전쟁에서, 저자는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거란은 수교를 맺고 조공과 사대를 얻어내려던 것이었지 고려를 완전히 점령하려던 게 아니었다. 송나라와만 친하게 지내지 말고 거란과도 친하게 지내자는 것, 딱 여기까지가 거란의 목표였던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서희가 외교담판으로 거란을 무찔렀다고 보기 보다는 거란과 고려가 원하는 게 서로 맞아떨어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때 서희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은 확실하다. 고려 신하들이 전부 겁에 질려서 아예 나라를 통째로 줘버리려 했을 때 서희 혼자 거란의 목적을 간파하고 이들과의 접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인식하고 그 의의를 성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현재와 미래까지 바르게 조명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그래도 의문이 하나 남습니다. 과연 40만 중 얼마나 실제 전투에 참여한 병사였을까 하는 겁니다. 군대에는 전투병만 있는 게 아니에요. 행정, 보급, 의무, 취사 등 여러 일을 하는 병사들이 고루 존재합니다. 당시 거란군은 3인 1조로 이뤄졌다고 해요. 정규 병사 1명에 보조인력 2명으로 말이죠. 그러니 40만 대군은 보조인력까지 전부 합친, 그야말로 이 전쟁에 동원된 전체 병력을 뜻하는 것일 테고, 실제 전추에 투입된 병사는 3분의 1정도인 13만 정도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 126p
드라마에서는 목종이 남색을 밝히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느라 무능한 이미지로 묘사되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거란과 송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친 데다 미리 북쪽에 성을 쌓고 보수하는 작업을 함으로써 훗날 2, 3차 고려거란전쟁 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2차 고려거란전쟁의 주역인 양규는 애초에 문관이었다는 것, 여기에 강조와 강감찬까지 무관이 아니라 문관 출신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고려에는 애초에 문관이 무관직을 겸할 수 있게 해서 고위 무관직조차 전부 문관이 차지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고려는 꽤 오랫동안 문벌 귀족 사회를 유지했으며, 이에 불만을 품은 무관들이 반란을 일으켜 최씨 무신정권이 들어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거란에 큰 피해를 준 데에는 분명 양규의 활약이 독보적이었습니다. 양규가 흥화진을 지키지 못했다면 전세가 순식간에 거란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며, 양규가 곽주성을 탈환하지 못했다면 거란이 퇴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양규가 퇴각하는 거란군을 계속해서 요격하지 않았다면 무려 3만에 달하는 고려 백성이 더 노예가 되어 거란으로 끌려갔을 겁니다.
그렇기에 양규는 거란의 2차 침공으로부터 고려를 구한 1등 공신이며, 서희와 강감찬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위대한 장수임이 틀림없습니다. 양규는 그야말로 고려의 영웅이자 무신 그 자체였습니다. / 207p
공신 가문에 장원급제까지 했으니 강감찬 앞에는 승진 가도가 놓여 있었겠죠. 그런데 강감찬은 신기할 정도로 진급이 느렸습니다. 과거 급제 이후에 강감찬이 처음 기록에 등장한 건 거란의 2차 침공 때입니다. 거란군이 서경을 넘어 개경으로 진격해오자 강감찬이 현종에게 몽진을 제안할 때죠. 이때 강감찬의 나이가 62세였어요. / 270p
사실 현종은 도망치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장수에게 개경 방어를 일임하고 호위무사만 데리고 도망쳐도 돼요. 그러나 현종은 끝까지 개경에 남기를 택합니다. 현종은 거란의 2차 침공 때 갑작스레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항복이 아닌 몽진을 택했었죠.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거예요. 온 조정이 항복을 외쳤는데 결국 포기치 않고 적을 물리쳤잖아요. / 297p
이 외에도 전쟁 후 거란과 고려의 손익은 무엇이었는지, 강동 6주가 왜 중요했는지 등 고려거란전쟁을 비롯해 고려사와 동아시아의 정세까지 두루 살필 수 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신 분들이라면 실제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특히 고려사를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찾고 계셨던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