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에 나온 앙증맞게 생긴 이미지와는 달리, 책을 읽어 보니 꽤나 말썽피우는 대책없는 개였다
독특한 이름의 말리!
만약 내가 개를 키우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공감하면서 읽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노튼 이야기와도 비슷한 맥락인데, "파리에 간 고양이" 가 반려동물에 대한 넘치는 사랑, 즉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 못할 유대감과 강한 애착을 표현했던 책이라면, "말리와 나" 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 겪어야 할 문제점 내지는 고생을 리얼하게 그려줌으로써 모든 애견인들에게 위안을 준다
마치 그래도 우리 개는 말리보다는 낫다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 존 그로건씨는 아예 말리에 대한 자랑은 포기하고, 내 개가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다고 고백해 버린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 남들보다 못한 강아지를 키우는 저자의 고생과 가슴앓이에 많이 공감했고 또 굉장히 겸손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노튼이 세상에서 가장 잘생기고 가장 훌륭한 고양이라고 거품을 물고 자랑하는 피터 게더스씨가 잘난 척 한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의 책은, 애견인들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양면성을 각각 따로 풀어 쓴 책이다
그래서 전혀 상반된 입장의 두 책에 모두 120% 공감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나는 이 책에 더욱 많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게, 내가 키우는 세 살짜리 요크셔테리어 똘이가 워낙 애를 먹여서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똘이는 우리 집에 올 때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세 번의 수술을 거치는 동안 우리 식구들의 애간장을 녹인 개다
그래도 말리는 어디가 심하게 아픈 건 아니어서 다행스럽다
말도 못하는 짐승이 자기 아픈 걸 표현도 못하고 낑낑대면 우리는 또 그 개가 왜 괴로워 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안타깝다
속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개 한마리에 온 식구가 절절 매냐면서 갖다 버리라는 사람도 있었다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죽으면 다른 개 한 마리 키우면 되지 않냐는 거였다
그 말은 마치 애가 죽으면 다시 하나 낳으면 되잖냐는 말과 같이 들린다
이미 우리 식구들과 강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똘이는, 결코 어떤 존재로도 대치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데,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은 절대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는 그저 개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리는 아마도 과잉행동 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아무리 먹어대도 절대 지방이 붙지는 않고 죽는 날까지 매우 튼튼했다
반면 우리 똘이는 아플 때 워낙 식구들이 뜻을 받아 줘서 버릇이 나쁘게 들었다
아파트에 사는데 식구들이 나갈 때 마다 짖는 건 기본이고 기분이 안 좋을 때 안으려고 하면 물기도 한다
앉아, 일어서 같은 고차원적인 훈련은 해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워낙 몸집이 작은 견종이기 때문에 말리처럼 말썽을 크게 피울래야 피울 수가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그렇지만 솔직히 말리처럼 큰 개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가진 그로건네 집이 부럽다
대부분이 아파트 생활을 하는 한국에서는 말리 같은 대형견을 키울래야 키울 수가 없다
말썽을 피워도 좋으니 큰 개를 길러 볼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역자 역시 이런 대형견을 키울 수 있는 미국인들의 넓은 주거 환경을 부러워 한다

말리의 온갖 실수담과 말썽 피우는 걸 읽으면서 생명을 기른다는 건 희생을 각오하고 책임을 지는, 즉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마냥 좋기만 하고 마냥 기쁨만 주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또 그런 불편을 감수할 각오가 안 됐다면 그건 아직 개를 키울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그런 준비 없이 막연히 예쁘고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개를 키우다 보니 유기견들이 생기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섣불리 인터넷에서 무료분양을 원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솔직히 걱정이 된다
개 한 마리를 키우려면 드는 돈은 말 할 것도 없고,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그것도 1,2 년이 아니라 10년이 넘게 키워야 하는데 과연 어린 학생들이 키울 능력이 될까 염려스럽다
당연히 부모의 동의를 얻어 일정 부분은 부모가 책임을 져 줘야 하는데 막연히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데려오고 보는 무책임한 태도가 수많은 유기견을 양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될 것 같다

말리의 노화와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일단 당장 키우는 우리 개와 비교를 하게 됐고 언젠가 우리 똘이도 말리처럼 죽음을 맞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많이 아팠다
개가 사람처럼은 아니더라도 좀 더 오래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기껏해야 10년을 조금 넘는 수명은 늘릴 수도 없는 것이고, 그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가슴아프다
또 넓게 생각하면 인간 역시 언젠가는 죽게 된다
지금은 함께 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우리 가족도 언젠가는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당장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그렇고 아빠 엄마 역시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뜰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죽음의 순간들이 누구에게든 올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아프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면 노화는 또 어떤가?
나 역시 말리처럼 관절염으로 다리를 제대로 못 쓰고 이빨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 한 쪽에 축 늘어져 있는 그런 늙은 시절이 분명히 올 것이다
육체의 늙음이란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인지...
아직은 노년을 생각하기엔 너무 젊지만, 가끔 이런 노년의 우울함을 기록한 책을 읽을 때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어떻게 노년을 맞을 것인가도 잘 생각해 볼 문제임이 분명하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에 걸맞게 문장력이 괜찮은 책이라 마치 소설을 읽듯 술술 읽었다
노튼 이야기에 비해 문장력 면에서는 더 나은 것 같다
노튼 이야기가 세 편의 책으로 나눠져 시간차를 두고 에피소드 중심으로 쓰여진 데 비해, 이 책은 한 편의 완결성을 가지고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분명하다
양도 400페이지나 되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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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1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파리에 간 고양이" 노튼도 그렇고 말리도 결국 안락사 시켰잖아요 정말 안락사 밖에 답이 없는지 참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책 사면 머그잔 주나 봐요?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라...^^

marine 2006-10-22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덜 서운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