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책을 죽이는가
사노 신이치 지음, 한기호 옮김 / 시아출판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제대로 읽은 책은 아니다
맨 앞의 역자 서문은 우리 출판계의 현실을 짚어낸 글이라 재밌게 읽었는데, 본문은 역시 일본 출판계 이야기라 공감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시사적인 책은 번역서를 읽는 경우 맥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피상적으로 읽히기 마련이다
그나마 미국 쪽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기 마련이라 별 무리없이 읽어지지만, 일본 얘기만 해도 낯선 부분이 꽤 많은 느낌이다

간단히 느낀 바를 적자면
1. 일본의 도서관은 인기있는 책을 한꺼번에 다량 구입을 한다고 한다
한국 도서관은 아무리 베스트셀러라 할지라도 기껏해야 두 세권 (사실 세 권 구입한 경우도 나는 못 봤다) 이지만 여기는 화제가 됐던 "오체불만족" 같은 경우 한 도서관에서 무려 59권을 구매한 일도 있다고 한다
그 도서관의 입장은 대출율이 높은 책을 많이 구입해서 배치하는 게 이용자를 위해서도 당연하게 아니냐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이 무료 대여점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확실히 이용자 편의주의가 분명하고, 일본 도서관이 마치 기업처럼 이용자 실적을 높히는 것을 생산성 향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도서관에서 베스트셀러를 다량 구입하면 출판사의 이익이 그만큼 침해된다는 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안 사서 문제인 줄 알았더니, 베스트셀러 같은 경우는 너무 많이 사서 또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사실 이용자 입장에서 보면 많이 빌려가는 책을 많이 구비해 놓으면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한 권의 책을 다량 구입한 만큼 다른 책 구입액이 줄어들기 마련이니, 꼭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도서관이 반드시 교양지상주의로 고상한 책만 갖춰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책을 무려 60여 권이나 비치해 둔다는 건 좀 심하지 않을까?

2. 일본 도서관은 신간의 약 3%를 구매하는 반면, 미국은 20%, 스웨덴은 무려 50%를 도서관이 책임진다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몇 %일지 궁금하다
출판량의 일정 부분을 도서관이 책임져 주기 때문에 안 팔릴 책도 소신있게 출판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이나 스웨덴은 도서정가제가 없기 때문에 출판사 보호 차원에서 어느 정도 물량을 책임져 준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한다
워낙 뜨거운 이슈인지라, 어떤 게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시중에 나온 값보다 더 비싼 값으로 기본 분량을 구매해 주는 미국이나 스웨덴의 정책은 분명히 출판계가 소신있는 출판을 할 수 있는 큰 버팀목이 될 것 같다

3. 서점에 대한 새로운 인식
나는 서점이 단지 책을 사는 곳인 줄만 알았다
대부분의 서점인들도 단지 책을 맡아 팔고 안 팔리는 책은 반품하는 위탁판매 장소로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책의 판매를 향상시키는 열혈 서점인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어떻게 배치를 하느냐에 따라, 이를테면 가정법에 대한 책 옆에 이혼에 관한 책도 놓고, 이혼 과정을 훌륭하게 극복한 에세이도 함께 비치함으로써 다른 책에도 관심을 갖게끔 유도하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한다
책 홍보는 인터넷 서점에서나 하는 줄 알았는데 왠걸, 서점에서도 홍보 전략을 짤 수 있다니, 새로운 사실이다
또 서점 직원은 단순히 고객이 원하는 책을 찾아 주는데 그치지 않고, 관련 서적을 추천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서점 직원을 아르바이트생 개념으로 채용하는 서점은 잘 될 수가 없다
또 서점에서 자체적으로 홍보 문구 등을 만들어 고객으로 하여금 사고 싶은 생각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반스 앤 노블이 서점에 의자도 가져다 놓고 커피도 파는 이유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잠재적인 수요자까지 생각한 문화 공간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사실 가격만 생각한다면 굳이 서점에 갈 것도 없이 집에 편안히 앉아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하면 된다
서점에 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게 하려면, 서점 측에서도 단순히 있는 책을 판다는 개념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
일본의 유명 서점인은, 스스로 순위를 만들어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거나 "가을에 읽기 좋은 미스테리물" "놓치면 안 될 여행서" 이런 식으로 홍보를 한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서점인이 있는 서점을 매출액도 출중하고 스카웃의 대상이 된다
나로써는 서점인이라는 단어 조차 생소하다
우리나라 서점들도 온라인 서점에 맞서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서점 업그레이드를 실시해야 할 것 같다

4. 유통의 문제
사실 이 부분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책 주문하면 곧장 소비자에게 전해지는 단순한 과정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배송 문제가 만만치 않다
일단 서점의 경우 도매상들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은 다음, 일반 서점으로 유통시킨다
안 팔린 책은 정해진 기한 내에서 반품을 받는데, 작은 서점의 경우 잘 나가는 책들은 제때 오지도 않고, 차일피일 반품을 늦추다가 기한을 넘겨 안 받아 버리는 예가 많다고 한다
또 책값도 제때 지불하지 않아 서점으로써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반면 원하는 책을 주문해도 군소 출판사의 경우 어디 있는지 찾기도 힘들고 답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대체 왜 재고 정리가 전산화 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세븐일레븐 창업자는, 출판계의 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출판사 책의 전산화를 주장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이 성공한 이유도 바로 재고정리를 완벽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물건은 전부 전산화 되어 매일 기록되는 판매량에 따라 각 지점으로 배송된다
만약 기한이 지난 게 있다면, 이를테면 삼각김밥의 경우 유통기한을 넘기면 그 자리에서 버리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재고는 있을 수 없다
당연히 판매량과 재고량이 전산화 됐을 거라고 생각한 나로써는, 책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배송이 늦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뜻밖이다
인터넷 서점의 경우도 재고량을 한정없이 가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보관의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빠른 배송을 위해 일정 부분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책을 다 보관할 수는 없고, 결국 어떤 책들은 재고 보유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면 없는 책의 주문이 들어올 경우, 도매상에 문의를 하고 다시 출판사에서 책을 주문하는 사이 그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기 때문에 독자는 지치게 된다
그래서 일본 최고의 서점 CEO는 인터넷 서점에 대해 큰 걱정을 안 한다고 한다
어렵겠지만 출판물의 전산화 시스템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문제 같다

5. 전자출판
나는 E-BOOK를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서관의 보관 문제만큼은 전자책으로 되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공간 문제를 해결하고 가능한 많은 책을 보유할 수 있을 테니까
전자출판이 가능해지면 원칙적으로 품절은 없어진다
특히 원하는 책을 주문자에게 바로 인쇄해 주는 주문형 출판이 활성화 된다면 재고 문제도 해결하고 품절도 없어서 독자와 출판계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는 E-BOOK이 가독성 부분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종이책에 많이 밀리고 있지만 적자에 허덕이는 출판계에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왜 책이 안 팔릴까?
과거에 비해 교육계층이 엄청나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업계는 불황에 허덕인다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더 이상 책으로 시간을 때우지 않기 때문인가?
그렇지만 반드시 시간 때우기만으로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출판업계의 만성 불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좋을지 참 난감하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르포 형태의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사회 문제는 대학교수들 아니면 기자나 저널리스트들이 나서서 책으로 엮어낸다
국내인의 시각이 더욱 필요한 사회학 부분에서 국내 필자의 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죄다 번역서들이라 항상 아쉽다
책값을 좀 내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서 볼까?
반품률이 무려 40%에 이른다는데 과연 위탁판매 시스템과 도서정가제 유지가 서점을 살리는 길인지 의심스럽다
서점도 단순히 도매상에서 책 받아 진열해 놓고 안 팔린 것은 반품하는 식의 수동적인 자세로 있을 게 아니라 일본의 경우처럼 직접 수요를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또 인터넷 서점의 경우 엄청난 할인율을 자랑하는데 이렇게까지 할인할 거라면 대체 책값은 왜 그렇게 높게 잡는 건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아예 할인할 생각으로 거품 가격을 책정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서점에서 제값 주고 사는 소비자는 바보라는 얘긴지 정말 답답하다
"생각의 나무" 에서 출간된 세계교양시리즈처럼 저렴한 가격을 매긴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출판계에서는 만성 불황인 마당에 그나마도 내리면 어떻게 사냐고 하소연 할 수도 있는 문제긴 하다

어쨌든 출판업도 더 이상 교양주의라는 권위에 기대는 시대는 간 것 같다
화려하고 즉각적인 영상물과 싸워야 하는 시대니만큼,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고심해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인류의 영원한 지혜의 보고인 책이, 매스미디어를 이기고 다시 지식의 왕으로 등극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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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13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무게 때문에라도 갱지처럼 가벼운 용지 썼으면 좋겠어요 한 400페이지만 되도 갖고 다니기 꽤 무겁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