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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6 ㅣ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6
고종희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도판들이 훌륭하다
이 정도 그림이면 책값이 꽤 비쌀텐데 의외로 저렴하게 보급됐다
책값이 이 정도로 부담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션은 막연하게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명확한 개념도 없었고, 삽화 내지는 만화 비슷한 상업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 전통이 아주 깊다
저자의 서문처럼, 순수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니, 오히려 이런 상업 미술을 예술과 접목시키는 게 새로운 방법이 될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동 도서가 불황을 모르고 꾸준히 팔리는 분야이기 때문에 예술적으로 승화된 일러스트레이션이 설 수 있는 훌륭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이 줄줄이 나온다
독일의 위대한 판화가 뒤러부터 시작해 라파엘전파의 로세티나 밀레이, 명암의 대비를 활용한 카라밧지오, 전쟁의 실상을 고발한 고야 등등 관심있게 보는 화가들 그림이 많이 나와서 반가웠다
그러고 보면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가 이 책에 나오는 그림처럼, 자연이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느낌을 풍기는, 특히 화려하고 세밀한 색체로 분명한 느낌을 주는 일러스트레이션 풍의 그림을 좋아한 모양이다
특히 빛을 극적으로 이용해 포커스를 맞춘 카라밧지오의 그림은 그 강렬한 대비 효과 때문에 볼 때마다 깊은 인상을 받는데 현대적인 의미의 일러스트레이션과도 통하는 느낌이다
또 마지막에 언급된 클림트의 장식 미술도 현대적인 삽화 등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화가는 보쉬와 아르침볼디다
보쉬는 르네상스 시대 화가로써는 드물게 환상적인 그림을 선보여 독특한 화가라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아르침볼디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
보쉬의 그림을 보면 꼭 달리나 에른스트 같은 초현실주의자의 신비로운 그림을 보는 느낌이 드는데, 아르침볼디의 작품은 이보다 더하다
저자의 말대로 도저히 500년 전의 그림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기괴하고 상상력이 돋보이는 뛰어난 그림이다
말 그대로 초현실적이다
르네상스 시대라면 라파엘로나 다 빈치처럼 대상을 마치 사진 찍듯 똑같이 묘사하는 사실주의 그림이 유행했던 시대라고 알고 있는데, 또 기껏해야 성상화나 초상화 등만 있는 줄 알았는데 보쉬와 아르침볼디 같은 놀라운 상상력의 화가들도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이 놀랍다
그만큼 열린 사회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초상화를 꽃이나 야채 등으로 표현한 아르침볼디의 상상력이 놀랍다
그러고 보면 예술가란 바로 그 창조성에 핵심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일반인들이 지극히 평범하고 전형적인 사고 속에 갇혀 있을 때 또다른 시대를 예고하는 독특하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 주는 게 바로 예술가가 아닐까?
그렇다면 자연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창의성, 상상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16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의 대명사인 브뤼겔의 그림도 뜯어 볼수록 놀랍다
특히 네덜란드 속담이라는 주제 아래, 120여 가지의 속담들을 하나의 화폭에 담은 그림은 그 정밀함과 세세함에 그리고 신선한 아이디어에 놀라게 된다
흔히 알고 있는 속담들, 이를테면 돼지에게 꽃을 주는 것은 가치없는 사람에게 귀한 것을 준다를 의미하고, 여우에게 목이 긴 물병을 대접한 두루미 이야기, 악마에게 자신의 속내를 고백하는 어리석은 인간 등등 우화나 격언 같은 것을 한 컷의 그림으로 그려낸 솜씨가 놀랍다
어찌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지 꼼꼼하게 그림을 읽지 않으면 제대로 그림을 볼 수가 없다
저자 역시 당시 네덜란드에 유행하던 격언들이 무엇이었는지를 학자들의 연구 덕에 알게 됐다고 한다
호가드의 연작 그림도 재밌다
이 사람은 호가드법이라는 저작권법을 처음으로 도입했을 만큼, 예술의 상업적 가치에 민감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초상화를 세익스피어, 밀턴 등 유명 작가들의 책 위에 올려 놓는 그림을 그릴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던 화가, 그러고 보니 화가의 위상과 자존심을 끌어 올리는데 애를 쓴 뒤러가 생각난다
결국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높힐 때 올라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은 아들이 흥청망청 돈을 쓴 후 결국은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는 내용을 여섯 점의 그림으로 선보인 호가드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놀랍다
당시 풍속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그림도 마치 책을 읽듯 꼼꼼하게 살펴 봐야 한다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바흐로 돌아가자!!
비틀즈가 외친 구호라고 한다
결국 고전이란 현대인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주는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명작은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이리라
가장 현대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이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밝혀 낸 저자의 솜씨가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