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스타일
패밀러 클라크 키어우 지음, 정연희·정인희 옮김 / 푸른솔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사실 나는 이 여자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신비화 되고 포장됐다는 느낌 때문에 오히려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을 뿐, 이러니 저러니 논평할 만한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책을 읽은 것은 우연히 본 리뷰가 좋아서다
다만 이런 호기심은 있다
특별하게 사회적인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닌데 대체 이 여자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는 것일까?
별다른 업적 없이도 여전히 60년대 낭만주의의 대명사처럼 기억되는 전혜린을 대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혹은 스타일이 왜 중요한가를 알게 된 기분이다
평소 나는 베블런의 "현시적 소비" 를 우습게 알아 온 사람이기 때문에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이나 열광을 어리석게 생각해 왔다
과연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매우 의문스럽다
특히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한 달 동안 라면으로 때웠다는 말을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하는 어떤 여대생의 인터뷰를 보고는, 명품에 대한 열광은 곧 자신이 얼마나 허영덩어리인가를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그런데 요즘은 단순히 명품이나 사치스러운 것에 목을 매는 것은 매우 촌스럽고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고,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에 대한 갈망은 그것과 구별되는 어떤 것임을 느끼게 된다
이 책도 간단히 요약하자면 바로 그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다
왜 우리가 60년대 대통령의 미망인에게 아직도 열광하는가?
재키는 죽는 날까지도 파파라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파파라치를 고소할 만큼 알러지 반응을 보인 그녀지만, 결국 그 기자가 찍은 사진들이 그녀의 사후에도 여전히 그녀를 신비롭게 포장해 주고, 사람들의 뇌리에 아름답게 각인시켜 놓고 있다
공식 석상이 아닌,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찍은 사진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녀가 빛나는 것 같다

 

재키는 미국의 여왕 혹은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와 같은 언론의 호칭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녀가 추구하는 단어는 "타고난 귀족"이었다
돈을 줘도 쉽게 살 수 없는, 권력이나 학식이 높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우아한 안목과 스타일, 혹은 품격 같은 내면의 특성들 말이다
이것은 나 역시 간절히 원하는 것이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우아함 내지는 품격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스타일은 어느 정도 옷과 액세서리로 규정될 수 밖에 없고, 패션의 선두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경제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재키가 케네디 사망 이후 세계 제1의 부자인 오나시스에게 시집간 것도 어느 정도는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음을 책의 저자도 인정하고 있다

 

책의 사진들은 흑백과 컬러가 섞어져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죽기 직전의 모습까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젊은 대통령과 아름답고 세련된 퍼스트 레이디로써 세계 각국을 순방하던 사진들은 마치 인생의 절정인양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든다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선거 유세장을 따라다니던 사진도 기억에 남는다
언니 못지 않은 스타일리스트였던 동생 리의 사진도 흥미를 유발시킨다
말년에 엄마보다 훨씬 커 버린 아들 케네디 주니어와 길을 걸어가며 대화하는 사진도 좋았다
그녀가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파파라치 론 게일러가 찍은 사진들이지만, 그 덕분에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비호지킨성 림프종이라는 골수암으로 64세의 짧은 생을 마친 재키
크리스마스 때 진단받은 후 겨우 5개월을 투병한 후 죽은 걸 보면 진행이 매우 빨랐던 모양이다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만큼 암 진단이 더욱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했던 게 다 무슨 소용이죠? 라고 주치의에게 했다는 말은, 결국 죽음이란 하늘이 정해 주는 게 아닌가 싶은 허망한 생각이 든다
몇년 후 아들 역시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니 그나마 그 죽음을 보지 않은 게 유일한 위안이라고 해야 할까?
죽기 전에도 다이아몬드 상인인 모리스 탬플런과 사귀었던 걸 보면 마지막까지도 퍽 매력적인 여인이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재클린은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다이애나 역시 그녀를 많이 모방했다고 한다
찰스 왕세자 보다 왕세자빈을 더 지지하는 영국 국민들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더구나 자기 승마 조교와 바람까지 피웠는데도)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그들은 아름답고 세련된 그녀들을 동경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스타를 숭배하듯, 연예계의 스타들보다 훨씬 우아하고 격조있는 그녀들을 스타로 추앙한 느낌이다
재키도 그렇지만 다이애나 역시 아름답고 날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영국인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재키가 늙은 외국인 대신, 젊고 부유한 미국인과 결혼했다면 미국인들은 여전히 그녀를 숭배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대중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자신들의 우상이 무려 30여 살이나 많은 늙고 뻔뻔한 그리스 노인에게 시집간다는 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나시스로써는 마치 미국의 상징이라도 얻는 것인양 승리감에 불탔을 것이고

 

둘의 부부 관계는 처음에는 재키의 왕성한 쇼핑욕을 장려할 만큼 좋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밀려드는 청구서에 짜증을 냈고, 급기야 죽기 직전에는 이혼 위기까지 갔다고 한다
재밌는 건 이 노인네가 헌신짝처럼 차버린 마리아 칼라스와 죽기 1년 전에 다시 연애를 재개했다는 점이다
13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남겼다고 하는데 과연 재키에게는 얼마나 상속이 갔을지 궁금하다
재키가 죽기 전 남긴 재산은 2억 달러라고 한 걸 보면, 그다지 많이 분배한 것 같지는 않다

 

글로리아 스터넘이 쓴 책에서 재키가 언론의 관심에 휘둘리지 않고 오나시스의 사후에도 꿋꿋히 자기 길을 간 것을 높히 평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어쩌면 재키가 여전히 평가의 대상이 되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은, 편집자로써의 후반부 삶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른 한 살에 이미 너무나 유명해져 버린 이 세계적인 뉴스 메이커가 선박왕과의 재혼과 죽음을 거치면서 호사가들의 입방정에 함몰되지 않고 편집자로서 자기 길을 용감하게 걸어간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두 남자가 죽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재클린이라는 개인의 능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이 이해된다

 

사진을 보면 그녀가 대단한 미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키는 170cm로 작지 않고 비교적 날씬하지만, 머리 사이즈가 커서 모자를 만들 때 남자 모델에게 씌웠다고 하고 얼굴은 네모형의 각진 스타일이다
컬러 사진을 보니, 주근깨도 꽤 많다
그렇지만 항상 생긋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고, 오드리 헵번 스타일로 짧게 머리를 자른 신혼 초의 사진들은 정말 매혹적이다
그녀가 열심히 추구한 그 스타일이라는 것에 대해 나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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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0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그들이 말하는 "Blue blood" 가 있다면 품격있는 내면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스노비즘과는 물론 구분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