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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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화제가 된 책이라 궁금해서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두께가 얇아서 조금 놀랬다
독특한 책이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떠오르는 감상을 바탕으로 쓴 몇 편의 단편들을 모은 책이다
평면적이고 강렬한 색채의 삽화와, 아르헨티나 사진들을 넣어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소설 역시 평범하지 않은 사연을 가진 여주인공이, 아르헨티나 가서 느낀 점들을 고백하는 형식이다
문체가, 뭐랄까 큰 일을 담담하게 말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문체는 작가의 원래 글 쓰는 스타일 같다
뒤에 나온 작가 후기에서도 굉장히 겸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아주 착하고 자신을 낮추는 그런 겸손함이 아니라, 세상에 그렇게까지 큰 일은 없답니다, 이런 식의 가벼운 느낌이랄까?
시니컬한 은희경식 문체와 아주 비교되는 스타일이다
조금 덜 세련된 하루키라고 할까?

 
"해피 투게더" 를 보면서 아르헨티나에 대해 처음 접했다
그래서 책이나 영화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화적인 그 어떤 것인 모양이다
그 전에는 그저 지도 위에 나온 나에게 지극히 무의미한 한 국가에 불과했는데, 그 영화를 본 후 "아르헨티나" 라는 국명을 들을 때마다 굉장히 가까운 느낌이 든다
동성애자로 내일이 없는, 오늘만을 살아가는 두 젊은이들이 찾아가려고 했던 곳, 홍콩의 정반대에 위치한 이과수 폭포가 있는 아르헨티나
결국 장국영은 죽고, 혼자서 이과수 폭포에 도달한 양조위의 독백이 서글프게 남아 있던 인상적인 영화였다
이 책을 보면서 줄곧 그 영화를 생각했다
뭔가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바나나의 책이 훨씬 덜 부담스럽고 가볍지만

 
그런데 정말 남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광고의 문구처럼 정열과 탱고의 나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역자후기에 반복되는 정열의 남미라는 수식어가 약간의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어쩌면 정형화된, 그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종의 편견은 아닐까?
실제로 그 나라를 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어쨌든 책에 실린 거대한 이과수 폭포를 보니,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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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단편은 생각할 꺼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너무나 바쁜 도시인이기 때문에 불륜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다는 표현, 현대인의 사랑 패턴을 잘 정의했다는 느낌이 든다
"바람난 가족" 에서 남편의 외도를 알아챈 문소리가 분노하는 대신 "오히려 잘 됐네, 소통할 사람이 있어서"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서로에게 어느 정도는 무심할 수 밖에 없고, 아내와 굳이 자리 다툼을 벌이지 않아도 될, 애인의 영역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

 
"현대인은 많은 사람을 만나니까, 연애를 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특히 쌍방이 일 때문에 바쁜 경우에는 불륜도 쉬 오래간다.환경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바로 그 환경이 이런 연애를 가능하게 하는 한, 환경에도 책임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 예를 들어 나 또는 부인이 임신을 하거나 부인의 부모가 죽거나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거나. 그런 외적인 힘이 가해지면 사태가 변하겠지. 아직은 젊고 어린 마음이 어떤 외적인 힘에 의해. 진짜 인생의 무게에 다소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어린애 같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때의 자신을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지를 믿고, 맡기려 했다, 특히 현대에는 연애나 결혼이나 영원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남편의 애인에게 그것도 외국에 나가 있는 애인의 호텔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죽었다는 장난을 친 아내, 정말 특이한 설정이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얼굴없는 미녀"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아내가 죽었는데 그녀와 불륜 관계에 있던 남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아내의 휴대폰으로 왜 연락하지 않냐면서 전화를 걸어 오는 것이다
차마 내 아내가 죽었소, 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남편은 말없이 그의 전화를 듣고만 있다가 끊는다
불의의 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죽어 버리면, 비공식적인 관계였던 애인은 그녀가 변심했다고 착각하는 어이없는 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일종의 블랙 코메디라고 할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관계가 주는 서글픔이라고 할까?
어쨌든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애인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아무런 조치도 못한 채 그저 낯선 외국의 묘지에 가서 울 따름이다
불륜의 관계니 장례식장에 참석할 수도 없고, 왜 죽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볼 수도 없다
그저 죽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아들일 수 밖에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저녁에 호텔로 걸려 온 애인의 전화
죽은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놀란 주인공, 사실은 애인의 아내가 악의적인 장난을 친 것이었다
정말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장난을 칠 정도라면 그 아내 역시 남편의 불륜을 그저 약간 비웃는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게 아닐까?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남편의 애인에게 달려가 머리채를 잡아 끄는 극성맞은 아내들의 모습은, 일본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드문 느낌이 든다
현대인의 불륜, 환경이 만들어 놓은, 소통의 부재나 무관심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적인 불륜이 잘 드러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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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타에 대한 감상도 자주 나온다
세 번째 단편도 독특한데, 주변의 기대를 이기지 못하는 아버지의 클래식 기태에 대한 애착이 인상적이다
장황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기타를 구입하려고 일본에서 아르헨티나까지 딸을 데리고 간 남자, 심상치 않다
주인공의 외할머니는 프랑스 화가의 현지처였다
딸 하나를 낳고 살던 외할머니는, 남편이 자신을 버리자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자살했다
현지처, 얼마나 슬픈 단어인가!
애인보다 더 서글픈, 눈물나는 단어다
현지처라고 하면 막연하게 연변족이나 후진국의 가난한 여자를 떠올렸는데, 일본이라는 선진국에서도 유럽 유명 예술가의 현지처 노릇을 하는 여자들이 있다니, 당연한 거지만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법적 관계가 아닌 애정 관계는, 아무런 울타리도 없고 외적인 힘에 대항할 능력이 없는 연약한 속살 같은 관계인 것 같다
외할머니를 그린 외할아버지의 작품을 전시회에서 본 주인공은, 엄마를 닮은 듯한 그 초상화를 사고 싶었으나 어마어마한 가격에 놀라 포기했다고 한다
매일 울고만 있는 어머니를 위해, 파리로 전화를 걸고 싶었다는 조그만 여덟 살짜리 아이의 가냘픈 심성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어 슬펐다
그 화가가 조금만 더 인간적이었다면, 버림받고 자살해 버린 여자의 딸을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찌 됐든 자기 자식인데 말이다
적어도 어머니를 그린 그 초상화 한 점이라도 기념으로 남겨 줄 수는 없었을까?
전시회에서 외할머니의 얼굴을 봐야 하는, 그것도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달고 봐야 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서글프다
엄마에게 자신이 만든 종이집에 들어가 살아달라고 사정했다는 외할머니, 어쩌면 딸이라도 자기 곁을 떠나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바램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딸은 보호대상이 됐지만, 단순히 정신병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가슴아픈 사연이다
잡히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딸이라도 자기가 만든 공간 안에 가둬 두고 싶었던 가엾은 여자...
그 딸은 어머니를 이해했고 기꺼이 종이집 안에 갇혔지만 (여덟 살짜리 소녀가 어머니를 위로하는 방법은 그 것 뿐이었으니까) 성장해서 폐쇄공포증을 갖고 만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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