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역사 - 왜곡되고 과장된 고대사의 진실을 복원한다
이종욱 지음 / 김영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꼼꼼하게 사료를 분석해서 쓴 성실한 자세가 돋보인다 민족주의적 시각에 함몰되지 않고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한 좋은 책이다 드라마 연개소문을 열심히 보는 사람이라면 안 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영웅 연개소문의 실체는, 고구려를 망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게 이 책의 시각이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고구려 전반에 걸친 역사를 복원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정도 두께는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권으로 읽는 고구려 실록" 류의 가벼운 역사책이 아니고 저자의 역사적 견해가 풍부한 논거와 함께 잘 드러난 양질의 책이다 저자의 생각과 다른 관점을 갖더라도 전체적인 책의 수준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태조대왕 이전의 고구려 역사를 복원한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다 드라마 "주몽" 때문에 관심이 대상이 되고 있는 초기 고구려 역사가, 다양한 사료들의 뒷받침 속에서 꼼꼼하게 복원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삼국사기의 초기 고구려 부분을 신뢰하는 입장이라 삼국사기 인용 부분이 많다 특히 국사 교과서에 나온 5부 체제설을 부인하고, 고구려가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부여, 예맥, 행인국 등등) 그들을 제후국으로 삼았다는 새로운 학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개소문의 쿠테타가 있었지만 고구려는 절대 귀족 연합 체제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정복 국가였던 고구려는 지방관을 파견했던 신라와는 달리, 주변 소국을 점령한 후 제후국으로 묶어 놨다고 본다 제가회의는 제후국 사이에서 일어난 회의 체제였을 뿐, 고구려 전체를 놓고 보면 왕을 중심으로 한 왕권국가였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 보면 과연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부분은, 발해를 한국인의 역사로 보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국사 교과서에도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발해가 말갈인의 나라라니, 흥분할 독자들이 많을 듯 하다 그렇지만 저자는 발해가 한국인의 역사라는 주장의 근거가, 단순히 국사 교과서에 쓰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성토한다 왜 발해가 한국의 역사인지를 증명할 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발해의 건국자인 대조영을 고구려의 후예가 아닌, 속말말갈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당연히 발해는 고구려 귀족들에 의해 지배된 나라가 아니라, 말갈족의 나라라는 것이다 당 태종에게 나라가 망한 후 20여만 명에 달하는 고구려인들이 당나라로 끌려 갔기 때문에 고구려 복원 운동은 이루어지기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북한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저자의 견해로는, 고려는 명백히 신라의 제도와 문화와 인민을 이어받은, 신라를 계승한 나라다 그러므로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신라를 발해와 대등하게 놓는 현재의 주류 역사관을 부정한다

고구려의 멸망 원인도, 신라가 당에 파병을 요청해서가 아니라 대외정책의 실패로 본다 연개소문의 쿠테타 후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이 마비됐고, 당시 중국은 혼란기를 거쳐 당이라는 대제국이 등장했는데 강압적으로 맞서기만 했다 당으로써는 변방 지역의 안정을 위해 필연적으로 고구려 정벌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당 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침략했을 때 성을 지킨 사람은 중앙에서 파견한 고혜진, 고연수 부대가 아니라 (이들은 당에 투항해 오히려 길잡이 노릇을 했다) 연개소문에게 복종하지 않았던 안시성주였음을 주목한다 연개소문의 통치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했고, 연개소문의 전제 정치 하에서는 효율적인 방어를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결국 연개소문의 죽음 이후 세 아들의 내분으로 큰아들 남생은 당 태종의 공격시 길잡이 노릇을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고구려사는 워낙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막연히 민족주의적 시각에 입각해, 만주 벌판을 누비던 고구려인의 기상, 이런 식의 카피로 역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후대인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 옳은 것, 위대한 것으로 미화한다면 또다른 의미의 역사 왜곡이 될 것이다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책이지만, 사료에 근거하여 자신의 논거를 분명하게 밝힌 점에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다른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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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05 0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불편해할 사람이 많겠군요. 잘 보았어요^^

marine 2006-09-06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대사는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렇다고 단정짓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전 다양한 관점의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게 좋다는 주의라 여러 저자가 쓴 글들을 읽어 보려고 합니다 책은 좀 딱딱한 편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