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의 왕후
변원림 지음 / 일지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일단 저자의 성실한 집필 태도는 평가해 줘야 한다 정말 세세하고 꼼꼼하게 연구했다 실록을 이잡듯 뒤졌다고 해야 할까? 역시 조선왕조실록의 국문 번역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실록의 기록에만 의존한다는 점이다 임용한씨의 "조선국왕이야기" 를 읽어 보면, 실록의 행간을 짚어내고 당시 정치적 상황 등을 잘 분석해 한 편의 맛깔스러운 책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책은 성실한 집필 자세에도 불구하고 너무 까칠하다 해석이 부족하다 본격적인 역사 연구가가 아니기 때문일까?
저자는 야사 위주의 왕비열전 등이 매우 못마땅 했고 그래서 제대로 된 기록을 위해 책을 쓴 것 같다 나 역시 구중궁궐의 암투, 이딴 식의 소설쓰기 식 왕비열전이 싫었다 그래서 신문 서평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정말 실록에 기초한 진짜 왕비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책 내용은 매우 성실하다 특히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를 권력자로 묘사한 부분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왕과 비" 의 영향 때문인지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당연히 할머니인 정희왕후가 먼저이고, 세조가 쿠테타를 할 때 갑옷을 입혀 보낼 정도로 과단성이 있는 여걸이고 보면, 정희왕후에 대한 평가는 다시 이뤄져야 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월산대군 대신 어린 자을산군을 선택하고 직접 수렴청정을 하지 않았던가? 왜 소혜왕후, 즉 인수대비를 실권자로 묘사하는지, 드라마를 보면서 무척 불만스러웠는데 책을 보면서 많이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순원왕후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는데 역시 저자도 그녀가 제대로 수렴청정을 했다고 묘사한다 과거 정희왕후나 문정왕후 등이 단지 권력을 가졌다는데 그쳤다면 순원왕후는 정국이 돌아가는 바를 제대로 이해해 안동김씨 60년 세도의 탄탄한 기반을 잡게 해 준 진짜 권력자였다고 본다 노론 일당 독재에서 그나마 한 가문으로 정권이 기울어져 버리는데는 순원왕후의 놀라운 정치술이 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드라마로 만든다면 이야기거리가 풍부할 것 같다 여인천하가 역사적 사실을 많이 왜곡하긴 했지만 그래도 문정왕후라는 새로운 소재를 들고 나와 신선했다 우리 사극도 보다 다양한 소재를 선택해서 썼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이 책은 많은 아이디어를 준다 조선은 왕비의 정치 참여를 철저하게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비가 되면 상당히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당장 수렴청정한 예만 봐도 정희왕후, 문정왕후, 정순왕후,순원왕후,신정왕후 등 여러 명이 나온다 저자는 신정왕후 역시 흥선대원군에게 전권을 맡기지 않고 나름대로 권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고종을 철종의 후사로 세운 것도, 단지 흥성대원군과 밀약이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가장 가까운 근친이 고종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새로운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왕비의 일상과 의례 복식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됐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한 책이다 단 지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