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철학을 왜 생철학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생철학, 이 말이야 말로 니체의 사상을 한 마디로 요약해 주는 가장 적확한 단어다
이 아저씨, 정말 바람직한 사상을 가졌다
저자의 말대로 니체의 그 유명한 말 "신은 죽었다" 는 "니체도 죽었다" "너희 둘 다 죽었다" 는 식의 화장실 낙서로 밖에 사용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니체의 명성에 비해 그의 사상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그 이름이나 관심에 비하면 그의 진짜 사상은 단 1%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신은 죽었다는 말을 단지 무신론자의 주장이라고만 이해했다
종교적 관점으로만 받아들였는데 완전히 잘못된 해석이었다
니체가 죽인 신이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내고 숭배하는 모든 종류의 우상과 권위와 관습이다
국가와 법과 모든 지배 질서들이다
인습과 전통과 사람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기존 관습들을 그는 다 부정했고 죽었다고 선언했다
우리의 일상을 지키던, 아니 억압하던 구질서가 사라졌으니 이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
수동적이고 복종하는 인간에게 창조란 너무나 위험하고 두렵고 귀찮은 일이다
기존 체제에 순응해서 살아가도 충분히 먹고 살만 한데 뭐하러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들 능력도 부족할 뿐더러, 뭘 파괴하고 뭘 만들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데 말이다
기존 질서를 무조건 부정하고 현실 세계를 파괴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저 말을 위한 말, 현실에서 붕 뜬 채 아무렇게나 관념적으로 지껄이는 말들은 들을 가치가 없다
어쨌든 우리는 원시 시대에서 문명을 이루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계속해 왔고 발전해 왔다
현대 문명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 특히 과학의 성과를 무시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우상을 파괴하라는 니체의 외침은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존 질서를 반복한다면 대체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개인의 행복이다
어떤 죄의식도, 도덕 관념도, 지배 관습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회의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의 제재는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관습에 얽매여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동성동번 금혼법 같은, 혹은 동성애자 같은 경우 얼마나 불행한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 질서를 전복시키지도 않고 다만 기존의 관습과 약간 다를 뿐인데 왜 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가?
다수의 횡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니체는 바로 이런 관습을 죽이라고 가르친 게 아닐까?
니체의 철학은 현대적이고 21세기에 딱 들어맞는다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라는 말만큼 현대인에게 필요한 게 또 있을까?
그래서 그의 철학은 현대 철학자들에게 끊임없이 재해석 되고 중요시 된다
가장 현대적인 철학자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솔직히 실제로 니체를 봤다면 썩 호감갈 인물은 아니었을 것 같다
기존 질서를 배격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라는 말은 듣기엔 좋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천한다면 기인이나 괴짜로 보이기 쉬울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창의적인 이웃은, 주변 질서에 잘 순응하면서 가벼운 정도로만 자유를 추구하는, 말하자면 니체처럼 완전히 기존의 세계를 깨버리는 위험분자가 아닌, 아주 약간의 도발 정도를 가진 그런 편안함 사람을 원한다
은희경 소설에 나온, 서울에서 전학온 그 반장 같은 인물을 우리는 원한다
공부도 적당히 잘 하고 세련됐으면서도 교칙을 가끔 어김으로써 아이들의 우상이 되는 그런 인물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존 질서를 완전히 거부하는 히피 같은 스타일은 부담스러워 한다
짜라투스트라가 우리에게 나타나 자기만의 세상을 창조하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평범한 우리는, 그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고 기인으로 밖에는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아직 나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는, 니체의 한탄을 이해한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가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현대에서조차 그는 완전히 이해받는 철학자가 아니다
하물며 산업혁명의 기치 아래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절정을 이루던 19세기 말에 이 철학자의 외침은 얼마나 기괴하고 낯설고 위험했겠는가?
똑똑한 러시아의 지적인 여성 루 살로메는 니체의 구애를 거절하고 그의 친구인 파울 레와 사귄다
평생을 두통에 시달리고 말년에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서 10여년을 산 이 음침한 연상의 철학자를, 루처럼 발랄하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좋아했을 리 만무하다
그의 지성에 다소 호감은 느꼈을 수 있지만 연인으로서 사랑하기엔 너무나 부담스럽고 불편했을 게 뻔 하다
혹시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전투적인 여성이라면 니체 같은 지성을 사랑했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전투적인 여성, 세상에 이빨을 들이대는 공격적인 여성은 오히려 니체가 싫어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