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의 진화 -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들려주는 성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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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판형이라 280페이지 정도 되지만, 금방 읽었다

이런 작은 판형이 좋다

일단 들고 다니기 편하다

작년에 막 사서 읽을 때만 해도 엄청 머리 아프고 복잡한 다소 어려운 책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 보니까 굉장히 평이한 내용이다

기본 지식이 쌓여서 그런가?

적어도 리처드 도킨스 보다는 더 쉽다

하긴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진화에 대한 기본 개념이 잡혀서 그런지도 모른다

집중해서 읽어서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가볍고 유쾌하며 또 대단히 유익한 책이다

제목도 어쩜 이렇게 잘 지었을까?

섹스의 진화라니...

섹스란 학문적으로 말할 때 번식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섹스하면 떠오르는 게 포르노와 터부시 되는 은밀한 쾌락인데, 학문적으로 말할 때는 유전자의 전파 방식으로 치환될 수 있겠다

 

모든 개체는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노화나 폐경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개체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보수 작업을 하지만, 생체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시점이 되면 고쳐 쓰는 것 보다 새로 만드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 고치는데 돈을 투자하는 대신, 기존의 것을 폐기처분 시키고 새로 구입하게 된다

아기를 낳는 것이다

수명이 짧은 생물이 엄청나게 많은 자손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이 유전자의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서다

자연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체들은, 포식자에게 잡아 먹힐 확률이 크기 때문에 구태여 수리비를 지불해 가며 고칠 필요가 없다

차라리 새 걸로 빨리빨리 갈아 주는 방법을 택하는 게 비용 면에서 효율적일 것이다

그래서 100여년을 사는 인간은 한 번에 하나씩 밖에 못 낳고 아무리 많이 낳아 봤자 10여 명 안팎에 불과하게 된다

개체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아주 다행인 셈이다

 

왜 인간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가?

대부분의 생물들은 수컷에 양육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암컷 혼자 낳아서 기른다고 한다

설사 수컷이 공동 양육을 하더라도 즉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더라도 인간처럼 집단으로 모여 사는 게 아니라, 무리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살아간다고 한다

무리를 이루지만, 그 안에서 한 배우자 하고만 관계를 맺고 자식을 부양하는 방식은 매우 특이하다고 한다

일부일처제의 배경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이론은 daddy at home라고 하겠다

가임 기간이 길고 자식을 키우는데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인간의 경우, 남자를 잡아 둬야만 유전자 번식에 유리하다

수정만 시키고 남자가 떠나버리면 여자는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할 확률이 높다

자연히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 보전에 실패할 것이다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유전자를 전파시키는 대신, 한 여자가 낳은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는데 힘을 보탠다

인간의 아이를 버려뒀을 경우 죽을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에 수컷 즉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양육에 동참하는 것이다

 

여자의 배란일은 여자 자신도 잘 모른다

가임기간이 언제인지 모르니까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서는 자주 섹스를 해야 한다

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언제라도 섹스가 가능하니까 굳이 남자는 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없다

비록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는 줄어들겠지만 어차피 여자 혼자 내버려 두면 자신의 후손을 제대로 키울 확률도 줄어들기 때문에 차라리 한 여자에게 협력하여 낳은 자식이라도 제대로 키우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또 배란기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배우자를 지키지 않으면 다른 수컷 경쟁자가 자신의 암컷을 임신시킬지도 모른다

당연히 남자는 파트너 곁에 머무르면서 공동 양육에도 참가하고, 암컷을 다른 수컷으로부터 지켜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암컷의 아이가 자신의 유전자를 가졌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폐경 이론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의 수컷처럼 생식 능력이 서서히 떨어진다

인간의 암컷처럼 갑작스럽게 중단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왜 인간의 생식 능력만 40세를 전후해서 갑자기 중단되는 것일까?

저자는 나이 많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얻는 이득이, 생산을 중단하고 기존의 아이를 키움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더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새로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기존의 아이들에게 돌아갈 양육 에너지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가 된다

생체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한히 많은 자식을 낳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인간의 아이는 대단히 긴 양육 기간을 필요로 하고, 출산에 따른 위험성도 매우 큰 편이다

고릴라가 100kg에 육박하지만 겨우 1.5kg의 새끼를 출산할 뿐이다

반면 50kg 남짓의 여자는 3kg의 거대한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다가 산모가 죽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얘기다

자연히 여자는 개체의 보전을 위해서라도 다른 동물보다 임신과 출산에 훨씬 더 신중해질 것이다

유전자 전파도 중요하지만 개체의 보전도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가 죽고 나면 나머지 아이들은 성인까지 자라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난자의 질은 떨어진다

40대 후반에 아이를 낳으면 다운 증후군 확률이 무려 10%에 달한다는 통계는 노산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새삼 확인하게 해 준다

그러니 굳이 나이가 들어서까지 나쁜 유전자를 낳을 위험성을 가지고 또 개체가 죽을 수 있는 모험을 감행하기 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생식을 중단하고 기존의 아이들을 키우는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또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문자 이전의 사회에서 노인의 경험은 공동체의 생존에 매우 중요했다

이런 노인이 늙어서 애 낳다가 죽는 것 보다는 손자 손녀를 키우면서 공동체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보다 많은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각 생물들은 나름대로의 적응 전략을 가지고 다양하게 진화해 왔다

유전자 풀이 넓을수록 보다 많은 개체들이 생존할 수 있다

특정 환경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야 대응 전략도 다양해질 것이다

 

이성을 유혹할 수 있는 특정 신호에 대한 얘기도 재밌었다

세 가지 이론이 있는데 먼저 피셔의 이탈 선택 모델이 있다

공작새의 경우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화려한 꼬리를 발달시킨다

그렇지만 너무 큰 꼬리는 도망가기에도 불편하고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오히려 생존에 불리하게 된다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시점까지만 진화하는 것이 바로 이탈 선택 이론이다

 

다음은 핸디캡 이론이 있다

공작새의 꼬리는 생존에 불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핸디캡을 안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뜻이므로 오히려 핸디캡이 없는 경쟁자 보다 생존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가 된다

 

마지막으로 광고 속의 진실 이론

숫사슴은 뿔이 화려할수록 기생충이 없고 건강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성에게 어필하는 성적 매력이 핸디캡이 아니라 실제로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성을 매혹하는 성적 매력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생존 능력도 뛰어나다는 이중광고가 된다

 

인간에게 비유해 보자면, 돈많은 남자들이 먹고 사는데 별 필요가 없는 사치품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포르쉐를 타고 다니는 남자는 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배우자와 자식에게 더 많은 생산물을 제공할 수 있다는 광고가 된다

데이트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의 물질공세에 넘어가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인간은 시각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기 때문에 당연히 시각적 아름다움에 많이 좌우된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으며 근육이 잘 발달한 남자는 경쟁자를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에 여성들은 더 선호할 것이다

여자 역시 영양 상태가 좋고 지방이 적절하게 분포된 균형잡힌 굴곡을 가질수록 아이를 효율적으로 키울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즉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실제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외모는 배우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 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요즘은 영양 상태가 워낙 풍부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마른 여자들을 선호한다

누구나 다 잘 먹고 수유나 양육 정도는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방의 함량 정도가 선택의 기준이 될 리가 있겠는가?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생명의 신비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새삼 느낀다

다윈은 자신이 발견한 진리가 성경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두려웠을까?

19세기 사람들이 진화론에 격분한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그렇지만 21세기의 사람들 역시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 한다

마치 17세기 사람들이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좀 더 시간이 가고 더 많은 진리들이 발견되면, 사람들은 더이상 진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생명의 신비를 푸는 진리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절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하신 우주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지름길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갈릴레이나 코페르니쿠스도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너무나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용감한 과학자들은 신앙과 진리가 서로 다른 차원임을 충분히 이해했고 갈등하지 않았다

나 역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무섭지만, 내 신앙과 절대 대립하지 않음을 믿는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어떤 기독교인들도 두려움 없이 진화론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과 진화론은 비교불가능한 다른 차원의 진리이고,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서툴기 때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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