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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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설국을 읽었다

항상 읽어야겠다는 부담감만 가진 책이었는데, 오늘 다 읽었다

15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은 소설이다

연작식으로 드문드문 발표한 글들을 모은 거라고 한다

그래서 글의 흐름이 이어지지가 않고 끊기는 느낌이었나 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엄청난 타이틀 때문에 상당히 쫄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 재미는 없다

이런 소설은,즉 문장력이 빛나는 소설은 원서로 직접 읽어야 맛이 날텐데 번역서로 읽다 보니 아무래도 진수를 느끼기가 힘들다

저자는 성심성의껏 번역한 듯 하지만, 왠지 겉도는 것 같은 문장들이 많다

소리를 내고 밑줄을 그으면서 여러 차례 읽어야 하는 그런 문장 말이다

 

[금각사]가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치중한 반면 [설국]은 풍경 묘사에 주력한다

[금각사]가 1인칭 시점이라 당연히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또 [설국]은 3인칭 시점이라 아무래도 심리 변화에 덜 주력할 수 밖에 없겠으나, 어쨌든 두 소설은 기법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렇지만 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미시마 유키오를 아꼈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미시마는 그가 딱 총애할만한 제자였을 것이다

난 [설국] 보다 [금각사]가 더 마음에 든다

왜냐면 금각사는, 설국보다 훨씬 읽기가 쉽다

풍경 묘사로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설국이 높게 평가되는 것 같다

탁월한 문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보면 이렇게 멋진 풍경이 있구나, 정도로 떠벌이는 것으로 끝나는데, (즉 소설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아니라 그냥 배경 묘사 정도로) 이 소설에서는 눈덮힌 겨울 풍경이 주인공에게 끼치는 심리 변화의 추이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가와바타는 천편일률적인 풍경 묘사에 질려, 본인이 직접 여행 행장을 꾸리고 눈덮힌 니카타 현의 온천장에 머물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작가 자신이 매우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인 셈이다

일본도 눈이 참 많이 오나 보다

문득 이문열이 쓴 단편 소설이 생각난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주인공은 젊은 시절 절대미를 찾아 눈덮힌 강원도로 무전 여행을 떠난다

눈에 발이 푹푹 빠져 걷기도 힘들 정도의 눈보라 속에서 주인공은 절대미를 발견하고 감격에 겨워한다

이문열 특유의 화려한 미문체가 길게 이어진다

어쩌면 이문열은 금각사나 설국을 통해 절대미의 세계를 그리겠다는 결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왠지 그도 일본 소설, 이런 탐미주의 계열을 좋아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와 감성이 맞아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문열이 탐미주의 작가란 얘기는 아니고, 모티브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시마무라는 직접 보지도 않은 서양 무용에 대한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고급 실업자다

도쿄 서민가에서 태어나 가부키와 같은 전통 문화에 취해 살다가, 언제부터인가 서양 무용에 관한 책을 탐독하더니 여기저기 평론을 발표하게 됐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빈둥빈둥 지내며 너무 무기력해지지 않기 위해 산을 타고 온천장에서 며칠 묵어 가곤 한다

그는 이미 결혼도 했고 도쿄에서 산다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1935년이니, 일본 사람들 역시 서양인이 직접 하는 발레 공연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마무라는 독학으로 선진 예술을 접하고, 실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감상에 취해 마치 천국의 시를 쓰듯 몽환적인 얘기들을 잡지에 발표하고 그것이 먹혀 들어간다

하긴 1930년대에는 글자만 알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였으니까, 시마무라 같은 고급 지식인들이 충분히 놀면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온천장에서 만난 고마코는 게이샤다

게이샤나 기생이라고 하면 왠지 예술도 좀 아는 나름대로 풍류를 즐기는 신분 같은데, 따지고 보면 결국 창녀 아닌가?

화대를 받고 몸을 파는 창녀 말이다

시마무라는 외국 책을 번역하고 자비 출판까지 하는, 더구나 무용에 대한 글까지 발표하는 고급 지식인이다 (유명하진 않지만)

더구나 그는 아내까지 있고 도쿄에 산다

우리로 치자면 서울 사는 평론가가 잠시 강원도 산골에 머물면서 창녀를 불러다가 섹스는 않하고 말상대를 하는, 그런 장면일 것이다

 

눈 때문인지,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순백의 미를 가진 여자라 생각하고 함부로 다루질 않는다

시마무라는 일종의 탐미주의자 같다

어쩌면 고마코에게 우정 비슷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하긴 이제 겨우 열 아홉살의 어린애나 다름없는데, 그녀를 상대로 성욕을 풀기는 좀 그랬을 것이다

(물론 그 다음에 섹스를 위해 부른 게이샤는 겨우 열 일곱이었고 오히려 어린 애가 더 편하다는 말도 했지만)

더구나 처음 고마코를 만났을 때만 해도 일본 전통 무용을 배우고 샤이센을 연주하면서 연회에 불려 나가는 일종의 무용수 내지는 음악가 신분이었기 때문에 (즉 창녀로서의 생활이 익숙치 않은) 무용 평론가였던 시마무라는 아내와 함께 올 때 말동무 삼을 생각마저 한다

 

고마코가 시마무라에게 빠져드는 건 당연하다

일단 그녀는 나이가 어리고 자신을 성적으로 대하지 않고 점잖게 말동무로만 여기는 도쿄 남자에게 어느 정도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시마무라 역시 먼 곳으로 여행와서 눈처럼 상쾌하고 깨끗한 어린 여자를 만나 특히 시골에서 보기 드문 실력의 샤이센 연주를 듣고 고마코에게 빠져든다

그런데 둘이 사랑에 빠지면 이건 영락없는 통속 소설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마 가와바타는 둘 간의 사랑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시마무라는 그저 고마코에게 애틋한 연민의 감정 정도만 느낀다

둘이 한 방에 있는 게 여러 차례 나왔지만 끝까지 섹스를 하진 않는다

오히려 고마코는 손님들에게 불려 나간 날 꼭 혼자 묵고 있는 시마무라에게 다녀간다

여관에서는 고마코를 시마무라의 단골 손님 정도로 알았을 것이다

 

만약 내 남편이 여행지에서 창녀와 혹은 그 마을 여자와 친구 비슷한 관계를 맺게 된다면 난 어떤 기분일까?

반대로 내가 여행지에서 야릇한 감정을 주고받는 남자가 생긴다면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걸 바람피운다고 해야 할까?

둘은 분명히 죽고 못 사는 사이도 아니고 섹스를 한 것도 아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 다만 1년에 한 두 번 여관에 묵고 갈 뿐이다

이 정도 관계라면 눈감아 줘도 되지 않을까?

[바람난 가족]에서도 황정민과 문소리는 서로 다른 파트너를 가지고 있고 그 사실에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소리는, 다행이네 당신이 말할 상대가 있어서, 라고 가볍게 반응한다

그나마 영화에서는 섹스 파트너였지만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은 성관계도 갖지 않는다

뭐 이 정도라면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섹스를 안 했다고 해서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순결하다고 할 수 있을까?

루이스는 이런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섹스는 안 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라면 결혼했더라도 이성 친구가 괜찮다는 얘길까?

 

이 소설에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헛수고" 라는 단어였다

도쿄 생활을 할 때 고마코는 화려한 가구를 쓰고 열심히 일기를 쓰면서 나름대로 교양있는 문화인의 삶을 살려고 애쓴다

그러나 결국 산골 온천장에 게이샤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도 어떤 남자의 요양비를 벌어 주기 위해서 말이다

나름대로 소설도 읽고 부지런히 샤이센 연습도 하지만 결국 다 그녀에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느낀 시마무라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뭔가 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가치없는 일이 되버린 느낌 말이다

시마무라 역시 무위도식하는 삶을 보낸다

고마코와도 언젠가는 헤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녀 역시 이제 가라고 그를 애써 보내려고 한다

여행지에서 잠시 인연을 맺고 마음을 줘 봤자 그 때뿐이고 마음을 준 사람만 상처입기 마련이란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자신은 창녀가 아닌가?

적극적이지도 않는 시마무라에게 고마코는 매달리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그가 온천장으로 내려오면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달려간다

 

요코의 존재는 뭘까?

고마코가 요양비를 댔던 유키오를 몹시 사랑했던 모양이다

여관의 하녀 일을 하는 걸로 봐서 신분도 매우 낮고 가난한 것 같다

그녀는 유키오가 고마코를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또 고마코가 게이샤 생활을 해서 요양비를 대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 유키오에게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못한 채 그 옆에서 정성스레 간호만 할 뿐이다

그가 죽고 나자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매일 괴로워 하다가 결국 고치창고에 불이 났을 때 2층에서 뛰어내려 죽고 만다

어차피 잘 됐다 싶은 심정으로 탈출할 생각을 안 하고 그냥 뛰어내린 것 같다

고마코 보다 더 불쌍한 여자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고마코는 요코보다 나이도 많고 게이샤 생활을 하면서 돈도 꽤 모은 것 같은데 요코는 하녀일을 할 정도로 더 가난하다

또 고마코가 유키오의 임종을 지키지 않을 정도로 그에 대한 마음을 털어 버린 반면, 요코는 미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들을 만큼 유키오의 죽음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순진한 여자애다

그러니까 요코가 제일 순진하고 고마코는 그녀보다는 낫지만 역시 시마무라에게 마음을 줘 버리고, 시마무라는 이 셋 중에서는 그래도 제일 냉정한 편이다

아마 나이가 많고 남자이며 돈이 더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장 강자가 바로 시마무라고 제일 약자가 요코인 셈이다

역시 요코는 가장 약자답게 자살로 생을 마친다

 

시마무라는 아름다운 요코에게도 마음을 뺏긴다

유키오에게 마음을 줘 버린 요코는 그를 사랑하나는 고마코의 마음을 알아채고 그녀에게 잘 해 주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정작 시마무라는 이 두 여자를 가지고 마음 속의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고마코는 더 어리고 아름다운 요코에게 시마무라가 마음을 뺏길까 봐 초조해 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한다

그녀에게 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정작 도쿄의 집에 있는 시마무라의 아내는 시골에서 벌어지는 이 일을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여간 배우자가 밖으로 돌면 꼭 의심해 봐야 한다

 

온천장의 고치창고에 불이 나고 요코가 2층에서 떨어지는 걸로 소설이 끝나버려 좀 허무하다

어차피 결론이 없는 소설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본어로 직접 읽으면 훨씬 감명깊지 않았을까 싶다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면서, 혹은 여러 번역본을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문장 위주의 소설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걸 보면, 영어 번역을 엄청 잘한 것 같다

해설을 보니까 일본어 운율에 맞춰 아주 잘 써진 글이라고 하고, 또 가와바타의 노벨상 수상은 전문 번역가가 워낙 성실하게 영어 번역을 잘 한 탓이라고 한 걸 보면, 역시 성공하려면 작품의 질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알리냐도 아주 중요한 문제 같다

이문열이 상당히 미문체라 호흡이 길고 다소 관념적이고 수식적인 글들이 많지만, 영어 번역을 잘 하면 꽤 인기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황석영 작품들이 불어로 많이 번역된다고 하니까 한 번 읽어 봐야겠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이 과연 우리 문학을 그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내가 외국소설을 읽는 것도 절반 정도 밖에, 그냥 분위기 파악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와바타는 제자 미시마처럼 자살로 생을 마친다

헤밍웨이가 권총 자살한 건 문학적인 죽음 어쩌고 하면서 일본인이 죽으면 꼭 군국주의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거 너무 도식적이라 싫다

가스를 틀어 놓고 74세의 나이로 자살했다고 하는데, 어떤 생각으로 죽었는지 궁금하다

탐미주의자였던 것 만큼 관념적이고 아름다운 죽음의 절대미, 뭐 이런 것에 끌려 죽지 않았을까?

미시마의 경우 일본 자위대의 재결성을 주장하면서 할복 자살했다고 하는데, 금각사가 너무 아름다워 영원히 남기를 바라며 오히려 거기에 불을 지른 주인공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 작가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

비단 일본 군국주의 작가여서가 아니라, 그는 다른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자살로 생을 마쳤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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