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은 책이었다
서경식은 좋은 에세이스트다
일본어로 쓴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고종석의 에세이와 느낌은 다르지만 같은 크기의 감동을 준다
소수자로써 살아야 하는 사람의 고통은 직접 겪지 않는 사람은 절대 모른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 차별에 민감하듯 흑인은 인종차별에 상처를 입을 것이고 소수민족은 배타적 민족주의에 멍이 들 것이다
누가 당사자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대학만 해도 그렇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에게 몇 학번이라고 묻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는가?
책에서 그 부분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인지조차 못했다
다 그렇다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공감 정도는, 혹은 차별의 부당함 정도는 인지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디아스포라, 중세의 게토 지역에 갇혀 살던 고향잃은 유랑 민족들, 2천년을 설움과 박해 속에서 심지어 말살 정책에까지 시달렸던 유대 민족이, 이제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서 새로운 난민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처참한 현실에 대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말하는 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들으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든다
자신들이 비난하고 떨어져 나왔던 바로 그 카톨릭의 교조주의, 세속화, 정치와의 결탁을 그대로 본받고 있는 것 같아서다
GO라는 재일교포의 소설을 읽어 보면, 한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여전히 한국 국적, 혹은 조선 국적을 갖고 있는 2세,3세들의 성장기가 잘 그려진다
조선적 학교를 다니는 범생이 친구는, 지하철에서 후배 여학생이 일본학생의 희롱을 당하는 걸 보고 덤볐다가 경동맥을 찔려 죽고 만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친구는 소심하고 나설 줄도 모르는 공부벌레였다
급우들이 민족정신 어쩌고 해도 거기에 끼지도 못하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얼핏 보기에는 겁쟁이 같은 녀석이었다
그래서 주먹이 세고 거칠 게 없는 주인공을 동경하던 녀석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일본 최고의 대학에 진학해 선생님이 된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되겠다는 꿈 말이다
사실 그 애는 주인공을 자랑스러워 했다
자기는 힘도 없고 소심해서 뒤에 숨어 있지만 일본학생들과 맞짱을 뜨는 주인공을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부러워 했던 것이다
그런 그 애가, 그냥 넘어가도 됐을 뻔한 상황에서, 그것도 자기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후배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일본인 학생에게 덤비고 결국은 죽게 됐을 때 나는 그 애 마음에 숨겨진 누구보다도 강한 애국심과 민족정신, 아니 그보다도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자긍심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 애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겁쟁이라면 자기 생명이 위급한 순간에 용감하게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애가 일본인 학생의 칼에 경동맥을 찔리고 쓰러지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하다
왜 재일교포들은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가?
재미교포나 다른 나라 교포들은 당연히 그 나라 국적 따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생각하는데, 왜 유독 재일교포만이 평생 가보지도 못한 상상 속의 나라를 조국으로 섬기고 있는가?
식민지 지배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혹은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그나마 있는 조선인 울타리에서도 쫒겨 날까 봐 두려워서인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다
서경식이 꿈꾸는 세상, 지구상 어디에서도 국적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한 인간으로써 대접받는 사회, 열린 사회, 관용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유랑이라는 슬픈 단어 대신 자유로운 노마드가 될 수 있는 사회, 정말 그 시대는 내가 죽기 전에 올 수 있을까?
1910년대는 벨 아포크라고 불렸을 정도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던 시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대전이 두 번이나 일어났고 20세기 초 지성인들이 예측하던 이상적인 사회는 여전히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서경식은,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지구촌이 하나가 된다는 말이 아직도 그저 구호에 지나지 않음을 생생한 체험으로 보여 준다
본인이 직접 겪고 있으니 더 말할 게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