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하대 정치사 연구 민족문화 학술총서 54
권영오 지음 / 혜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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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데 생각보다 아주 재밌게 읽었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이야기라 그런지 전문적이고 어려운 내용이라 할지라도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학문 같다.

학위 논문을 손본 것 같은데 지루하지 않고 신라 하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흔히 신라 하대라고 하면 왕위계승전쟁으로 얼룩진 불안정한 시대였다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왕위분쟁은 하대 초기, 즉 선덕왕부터 신무왕 즉위까지에 불과하고, 신라 사회가 무너진 것도 하대 155년 하대 전체가 아니라 진성여왕 3년에 시작된 농민봉기부터라고 한다.

헌강왕 때 왕경에서는 숯으로 밥을 할 정도로 부유했다는 기사를 두고 보통 도탄에 빠진 농민들을 나몰라라 하는 지배층의 무능함으로 해석하는데, 저자는 실제 그 당시에는 기사 그대로 부유했고 진성여왕대부터 몰락이 시작됐다고 본다.

상당한 시각차라고 할 수 있겠다.

갑자기 진성여왕대부터 몰락한 근본적인 이유는 흉년으로 유리농민이 생겼는데 이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본다.

한마디로 운이 없었던 셈이다.

헌강왕과 정강왕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것처럼 여동생 진성여왕도 병약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숙부 위홍마저 재위 8개월 때 세상을 뜨는 바람에 국가적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왕위계승 분쟁이 선덕왕부터 신무왕까지로 국한되었고 그 후에는 적장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형제, 사위, 심지어 다른 성씨에게까지 큰 혼란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특기할만 하다.

또 저자는 적절한 왕위계승자가 없을 경우 상대등이 1순위가 된다는 기존의 학설을 부정한다.

나 역시 이 부분은 저자의 주장이 맞는 것 같다.

전왕과 혈연적으로 얼마나 가깝냐가 중요한 조건이 되지만 반드시 가장 가까운 이가 계승하는 것은 아니고 혈연적 관계에 있는 자들 중 전왕이 유조로 선택한 이가 다음 왕위를 이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문왕과 진성여왕의 즉위다

헌안왕은 딸이 있었으나 여자 즉위를 부정적으로 생각해 사위 경문왕에게 물려준 반면, 정강왕은 옛 풍습대로 누이 진성여왕을 다음 왕으로 삼았다.

 

마지막에 실린 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도 상당 부분 공감했으나 해결책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심지어 국사 과목 자체가 선택 사항이 될 만큼 중요도가 떨어지는 마당에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명적 서술 대신 내러티브 형식의 서술이라는 대안은 괜찮아 보인다.

어차피 역사가 인간의 이야기이다 보면, 무미건조한 설명보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서술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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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4-03-1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해두었는데, 순식간에 관심이 세계사로 건너뛰는 바람에 안 읽고 있네요. 어서 읽어야 할텐데...ㅡㅡ;;

marine 2014-03-12 09:54   좋아요 0 | URL
논리 전개가 비약적이지 않아 읽기 편했어요.
기존의 학설을 정리한 앞부분은 좀 지루했지만 뒤로 갈수록 상당히 재밌어요.

이리나 2014-08-0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학교 때 선생님이셨는데, 수업도 진짜 짱.. 졸업한지 한참 됐고, 담임선생님이 된적도 없었는데 늘 공부하시고 연구하시는 모습이 멋졌었죠.. 10년전에 집에 만권당을 만드셨다고하셨으니 지금은 집에 책이 얼마나 있으실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