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마태우스님의 추천대로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다
소재도 흥미롭고 글솜씨도 훌륭해서 물 흐르듯 한 번에 쑥 읽어 내려갔다
너무 금방 읽어 버려서 아까운 면도 있다
시사저널에 연재하던 정혜신의 칼럼을 참 재밌게 읽곤 했다
의사는 대표적인 기득권층인데 보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이고 냉정한 눈으로 정국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핵심을 집어 내는 글솜씨에 놀라곤 했다
그녀의 인물 분석은 중언부언 하지 않고 속마음을 콕 잡아 내는 시원함이 있다
그 때만 해도 정치는 남자들이 하는 것이고 아무래도 여자가 쓰는 칼럼은 약하다는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혜신은 이런 나의 편견을 가볍게 부숴 준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보다 자신의 성격을 고백한 서문이 마음에 든다
1:1 대화에는 문제가 없는데 1:다수와의 의사소통은 힘들다는 고백이 왠지 모를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나 역시 그런 면이 있다
여럿이 어울려 시끌벅적 떠드면서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참 힘든데, 두 세 명이 모인 자리에서는 누구보다 말을 잘 한다
집단 속의 나는 말할 수 없이 불편한 것이다
나는 스스로 그것을 내향적인 성격이라 믿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내향적인 성격이란 남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인간 관계가 넓지 않고 자기 자신의 세계로 침잠하는 성격이다
그녀는 보다 명확하게 내향성과 외향성을 구분한다
내향적인 성격은 자신의 판단을 중요시 하고 내가 어떻게 느끼냐를 먼저 생각한다
즉 보다 주관적이고 주체적이다
반면 외향적인 성격은 객관적인 사실을 중시하고 나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냐 보다는 외부의 평가가 어떤가를 중요시 한다
모짜르트 음악을 두고 외향적인 성격은 당시의 시대 배경이나 평론가들의 평판 등을 얘기하지만, 내향적인 성격은 자신이 느끼는 모짜르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인간관계의 넓고 협소함, 혹은 남들 앞에 잘 나서거나 얌전함 등으로 나누는 것은 피상적인 분석에 지나지 않고, 그 보다는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냐로 내향성과 외향성을 구분한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내향적인 성격은 어둡고 외향적인 성격은 밝다는 것도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흥미있는 인물 분석이 참 많다
특정 누구를 꼽을 것도 없이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이들이고, 저자의 분석 역시 흥미롭기 그지 없다
이명박은 자수성가한 사람 특유의 독선이 배어 있다
가난도 겪어 보고 성공도 해 봤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처지를 다 알 수 있다는 식의 오만이 묻어 있다
자수성가한 사람은 어려운 역경을 헤치고 혼자의 힘으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강하다
또 하면 된다는 식의 무조건적인 밀어 부치기도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다
다양성과 소통의 시대라는 21세기에 과연 이명박식 밀어 부치기가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본다
경제 위기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박정희식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효율적이라 생각하고 그리워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은 지도자 한 사람의 독불장군적인 리더쉽으로는 이끌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하고 성숙했으며 또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노무현의 통치 방식을 비웃고 심지어 거대 야당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보지만, 권위주의로부터의 탈피만으로도 하나의 발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이 아니라 박정희가 다시 온대도, 그래서 병영 국가가 되어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방해되는 사람들을 다 쳐낸다 해도, 21세기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끌기는 힘들 것 같다
이미 효력을 상실해 버린 통치 방식을 왜 사람들은 여전히 그리워 하는 걸까?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선회하면 박정희를 찬양하던 그 사람들 조차 견뎌 내기 힘들텐데 말이다

소설가 김훈에 대한 글도 참 재밌었다
"칼의 노래" 를 그다지 재밌게 보지 않았던 까닭으로 김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가끔 언론 매체를 통해 그의 일면을 엿볼 때마다 퍽 개성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사과나무" 라는 프로그램에서 김훈을 찾아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됐다는 말을 전하자 그는 무안하게도, 나는 영향력 있는 작가도 아니고 그런 영향력을 끼치고 싶지도 않다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 때는 참 이상한 노인네다, 싶었는데 정혜신의 글을 읽어 보면 원래 김훈은 문학의 위대성 따위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문학을 통해 사람들을 계도해야 한다는 다소 정신 상태가 이상한 것 같은 이인화의 문학론과 완전히 배치된 지점에 있다
펜을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칼 잡은 사람들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는 소리 따위는 하지 않는다, 왜? 원래 칼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김훈이 생각하는 문학이다
그래서 그는 밥벌이로서의 글쓰기를 강조하고, 인간의 본능을 끔찍하리만큼 정확하게 그려낸다
칼의 노래를 보면 유난히 끼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작가 김훈에게 밥 먹는 일이란 그만큼 절대절명의 문제인 것이다
오죽하면 "밥벌이의 지겨움" 이라는 수필집까지 냈겠는가?
그는 스스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이 노인네는 왠지 밉지가 않다
정혜신의 지적처럼, 그는 30여년 동안 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도 자신의 사상을 글에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이다
언론에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고 일정한 영향력을 끼치려 들지만 않는다면, 자기 혼자 무슨 생각을 갖고 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박근혜가 정치인이 아닌 그저 박정희의 딸로서 아버지의 업적을 기린다면 아무 문제가 없으나 그것을 공적으로 정치적으로 이루려고 하니 비판을 받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김훈은 이문열이나 이인화와는 또다른 느낌의 보수 우익 같다
그렇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훨씬 진정성이 있고 밉지가 않다

심은하에 대한 분석은 그 동안 그녀에 대한 나의 삐딱한 생각을 바꿔 줬다
훌륭한 글쓰기란 이처럼 읽은 이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소 심은하에 대한 언론의 추종을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먹이거리를 찾는 연예매체에 의해 자신이 가진 가치보다 훨씬 과대포장 되어 언제 복귀할 것인가로 또 하나의 쓸데없는 기사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의 연기에 특별히 감탄한 적이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신비화 전략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기자의 말처럼 어느 정도의 사생활 노출은 팬 서비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혜신의 글을 읽어 보면 원래 그녀 자신이 노출을 지극히 꺼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 심은하가 아닌 배우 심은하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 정상이다
가수로 데뷔했으면서도 음악 프로그램에는 안 나가고 토크쇼에만 나가려고 한다는 정신나간 연예인들이 오늘날 대다수를 이루는 걸 보면 심은하처럼 대중매체에 소비되는 것을 경계하고 작품으로서만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배우는 분명히 가치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혜신의 말대로 그녀는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고 있다
고현정만 해도 이혼 후 바로 TV에 얼굴을 비추며 엄청난 돈을 벌어 들이고 있는데, 심은하는 언론에의 노출을 꺼리므로써 CF 등으로 벌 수 있는 막대한 수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제발 파파라치처럼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짓을 그만뒀으면 좋겠다
이번 이은주 자살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한 번 기삿거리가 될만한 사건이 터지면 더 이상 쥐어 짜도 나올 게 없을 때가 될 때까지 당사자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리는 게 바로 연예 매체이 속성이다
결혼과 동시에 은퇴하려고 했던 그녀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수현에 대한 분석은 다소 불만족스러웠다
촌철살인 같은 저자의 분석의 칼이 왠지 김수현 편에서는 무뎌진 느낌이다
그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 할 뿐, 김수현에 대한 평가를 유보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내가 김수현을 싫어하기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에 불만을 갖는 건지도 모른다
김수현 드라마를 즐겨 보지만, 억지스럽고 작위적이며 오버하는 그 말투는 정말 싫을 때가 많다
특히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이나 수직적인 가족 관계는 참 짜증난다
버릇없고 싸가지 없는 딸과, 예의바르고 부모에게 절대 복종하는 아들의 명확한 대비를 보면, 대체 저 여자는 무슨 생각으로 드라마를 쓸까 궁금할 때도 있다
그녀의 특기가 살아 있는 대사라고 하지만, 주인공들이 속사포처럼 쏟아 내는 대사도 과장되고 억지스러워 듣기 거북할 때가 많다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그런 면이 많이 줄어든 것 같긴 하다)
인어 아가씨 등을 쓴 임성한 작가처럼 김수현 드라마를 보면 그녀가 썼음을 금방 알 정도로 정형화된 공식이 있고, 시청자들의 호불호도 분명하게 나뉜다
나는 정혜신이 그녀의 이런 부분을 분석해 주길 바랬는데, 드라마의 내용이나 주제 의식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다
다만 작가 김수현의 강한 개성에 대한 평가가 많았다
드라마 내용과 관계없는 작가의 캐릭터에 관해서라면 일견 멋지게 보이기도 한다
이효리가 캐스팅 된 걸 알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거나, 김희애 대신 이병헌이 연기 대상을 탄 걸 두고 상은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아야 한다고 일갈을 갈기는 그녀의 쓴소리는 시원한 면도 있다

그 외에도 손석희나 박근혜, 이인화, 김민기, 이창동 등 호기심을 가질 만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
누군가의 무의식 세계를 분석한다는 것은 참 재밌는 작업이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한 일 같기도 하다
개인적인 친분 없이 객관적인 지표만 가지고 평가를 내리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얻을 수 있겠으나, 그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단정짓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평전은 좀 더 활발하게 진행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강준만의 실명 비판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
단순한 평전이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곁들어 있기 때문에 가벼운 심리학 책을 읽는 기분도 든다
다음에는 전여옥을 분석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이 여자의 정신 세계는 워낙 특이하기 때문에 정혜신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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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2-26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맞아요, 다음엔 전여옥을 분석해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marine 2005-02-28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여옥은 분석꺼리가 참 많을 것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