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양이현정 옮김 / 현실문화 / 2002년 4월
평점 :
글로리아 스터이넘은 유명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 여자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아름다운 페미니스트로 유명하다
여자를 상품화 시키고 외모만으로 판단하는 것에 반기를 든 것이 페미니즘이지만, 그녀의 아름다움과 날씬함이 명성을 높이는데 한 몫 한다
자신이 미모를 이용해 바니걸로 클럽에 위장 취업해 겪은 경험담을 르포 형식으로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즈라는 잡지의 편집자이기도 한 그녀는, 60세가 넘는 나이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20여세 어린 백인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 후 변절자라는 말도 듣지만, 페미니즘이 결혼과 유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말이다
페미니즘은 인종차별 폐지와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당하는 것을 거부하자는 이 운동이 대체 개인의 결혼 여부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재밌는 상상이다
글로리아는 멋진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월경은 남자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징표가 될 것이고 한 달에 한 번 정화의식을 치루지 못한 여자는 불경하다고 간주될 것이다
남자들은 몇 개의 패드를 착용하는지로 자신의 월경양이 많다는 것을 자랑할 것이고 월경하는 기간은 법에 의해 특별한 보호를 받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상상을 통해 어떤 현상이든 기득권을 가진 집단이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라는 날카로운 분석을 시도한다
고대 이래 월경하는 여성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그 월경을 남자가 한다면 지금처럼 뒤로 숨겨지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하긴 흑인들이 세계를 지배한다면, 검은 것은 순수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칭송받을 것이고, 백인의 피부색은 병약하고 색소가 부족한 기형적인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의미란 없는 법이다
결국 기득권층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정해진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온갖 사회의 편견들은 말 그래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 보는 편견, 잘못된 생각에 불과하다
재클린 케네디에 관한 글을 의외였다
아름다운 레이디 퍼스트로 세계를 떠들석하게 했던 그녀는 케네디가 죽고 난 후 그리스의 대부호 오나시스와 재혼한다
특별히 사회를 위해 기여한 것도 없는데 그저 이름과 미모만으로 유명해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마치 다이애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글로리아의 글을 통해 그녀가 결코 만만한 가쉽거리가 아님을 알게 됐다
케네디가 죽은 뒤 미국은 그녀가 케네디의 상징으로 남기를 원했다
즉 그녀 자신의 삶을 살기 보다는 케네디의 영광을 지속시킬 액세서리로 살길 바란 것이다
그러나 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자는 자신의 행복을 지켜 줄 수 있는 결혼을 택했다
(어떤 기사에서 읽은 건데 재클린은 오나시스에게 값비싼 선물들을 받아낸 후 즉시 중고 명품 가게로 달려가 반값에 넘겨 버리고 그 돈을 모았다고 한다)
오나시스마저 죽자 그녀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뜻밖에도 편집자가 되었다
결혼 전 기자였던 만큼 자신의 일을 다시 찾은 셈이지만, 누구도 그녀가 일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재클린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보통 사람의 생을 감당해 냈다
사람들은 그녀가 정치적인 일에 나서길 원했지만, (특히 여성의 권익 향상 쪽으로) 그녀는 뒤에서 후원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기 삶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
글로리아는 재클린이 개인적인 삶을 지키기 위해 애쓴 점을 높이 샀다
사실 재클린 정도로 유명세를 탄 사람이 평범한 삶을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세계적인 대부호의 미망인이 물려 받은 유산만으로도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 결혼 전의 일터로 나와 돈을 벌기 위해 사소한 것들과 싸우는 모습은 너무나 의외다
그녀 정도 명성이라면 정치권이나 연예계 쪽의 유혹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낸 그녀의 강단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포르노에 관한 시각도 무척 신선했다
어떤 글에서 포르노는 여성 폭력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포르노를 접한 적이 없을 때라 대체 포르노와 여성 폭력이 무슨 관계가 있나, 의아했다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글로리아는 포르노와 에로티카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로티카는 남녀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의 애정을 더욱 깊게 하는 성적 유희를 즐긴다
그런데 포르노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어져 있다
힘을 가진 권력자가 묶여 있는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성적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다
가끔 접하는 포르노를 보면 여성을 묶어 놓고 애무를 즐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때는 이해가 안 갔는데, 그것이 바로 권력 관계라는 걸 깨달았다
더 심한 건 스너프 필름이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8mm을 통해 스너프 필름을 처음 접했다
쉽게 상상이 안 가지만, 포르노 필름을 찍다가 실제로 여성을 죽인다
사람이 아무리 가학성을 가지고 있다지만, 살인당하는 여자를 보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는지 영화 보는 내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스너프 필름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딱 한 경우 뿐이라고 한다
스너프 필림을 촬영한 감독의 집 근처에서 여러 구의 여자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스너프가 얼마나 일상화 됐는지 영어 사전에도 그 단어가 실려 있다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더라도 여자를 묶어 놓고 온갖 성적 가학 행위를 하는 필름은 흔하게 접한다
이것을 성적 취향이라고 내버려 둬야 하는가?
저자의 말대로 에로티카와 포르노를 구분하여, 여성 혹은 힘약한 어린 소년들에게 성적 가혹 행위를 하는 포르노 산업에 제재를 가하여야 할 것 같다
이 글들은 대부분 1970년대에 발간된 것이다
70년대라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그런데도 21세기인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어찌 보면 불행인지도 모르겠다
글로리아 역시 서문에 그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차별의 역사는 너무나 길고 관습으로 굳어진 것이라 한 번에 개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합해져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일정 부분의 희생을 약자들이 감당할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약자들의 권익을 지켜주는 것도 한층 성숙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귀족들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진보했듯,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100% 완벽하게 평등한 세상은 인류의 유토피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게 진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