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한 장을 넘기게 됐는데 필이 확 꽂혀 바로 샀다

그리고 주인공 진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름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나라는 말은 아니다"

가볍게 살고 싶다

그러나 아무렇게 막 살고 싶지는 않다

깃털처럼 가벼운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에 인생을 걸고 세상의 온갖 의미를 다 부여하고 그 사랑이 끝나면 마치 죽을 것 같은 집요하고 무거운 사랑은 피하고 싶다

그 동안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겁고 칙칙하고 우울했다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돼, 하는 식의 강렬한 감정만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랑이 강하면 강할수록 집착의 정도는 심해지고 결국 자신과 상대방을 소모시킨 후 곧 피폐해지고 만다

은희경이 주장하는 사랑의 방식, 사랑의 감정에도 균형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애인은 셋 정도는 확보해 둬야 한다

이 얼마나 멋지고 우아한 말이가!!

애인이 둘도 아닌 셋 정도 되면 한 사람에게만 빠지지 않게 되고, 스스로 감정 컨트롤을 할 수 있게 된다

사랑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더 충실하게 된다

사랑을 위해서 인생의 향로를 결정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사랑의 위대함 따위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가끔 희생 정신으로 똘똘 뭉친 감동적인 사랑 얘기가 들리기도 하지만 그건 예외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강렬한 사랑은 집착이고 이기적인 욕심일 뿐이다

상대방을 소유하고 싶은 강한 집착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물론 애인을 하나도 아닌 셋씩이나 두려면 기본적으로 자신이 매력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른다

책에서는 주인공 강진희가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암시한다

직업도 대학 교수이고 날씬하며 지적이라는 걸 곳곳에서 간접적으로 묘사해 준다

특히 현석이라는 멋진 남자를 유혹하는데 성공하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인물평을 하나도 하지 않고서도, 오히려 현석이 얼마나 매력적인 남자인가를 묘사하므로써 그 정도의 남자를 애인으로 만들 정도면 알 만 하지 않아? 라는 식으로 독자에게 세련되게 가르쳐 준다

은희경 글쓰기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배다른 동생이 예쁘다는 점이나 애인이 잘 생겼다, 학교에서 진희에게 관심있는 교수들이 많다는 식으로, 진희의 외모에 대한 진술 없이도 그녀의 매력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물론 결말은 마음에 안 든다

이혼한 전 남편과의 재회 장면이 책에서 아무 역할을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유부남을 사랑한다는 게 발각되서 사표를 내는 것도 진부한 결말이고 그가 끝까지 현석의 청혼을 거절하는 장면에서도, 사랑에 대한 진희의 가치관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독자들이 진희의 심리 상태를 충분히 이해했을 거라 믿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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