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SE (2disc)
이준익 감독, 박중훈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정말 짜증나는 영화였다

나의 오후를 돌려 달라고 외치고 싶은 영화였다

초반부터 졸려 억지로 눈뜨고 보다가 도저히 못 참고 한참 잔 뒤 주위가 시끄러워 깬 후 어쩔 수 없이 후반부도 봤다

도대체 사투리는 왜 그렇게 어색한 것일까?

극장에서 사람들이 웃는 게 신기할 정도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라서 그런지 전라도 사투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면 그 어색함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지금까지 내가 본 배우 중 전라도 사투리를 가장 잘 구사한 사람은 "은실이"의 빨간 양말 성동혁이다

난 그 사람이 전라도 사람인 줄 알았다

전라도 특유의 촌스럽고 투박한 억양을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구사한 사람은, 내가 본 배우 중 유일하다

알고 봤더니 고향이 전라도 화순인 친구가 있어 그 친구와 매일 한 시간씩 전화 통화를 한 뒤 녹음해서 하루 종일 들었다고 한다

그 정도 노력이 있어서인지 전라도 사람인 내가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 외의 배우들은 정말 짜증날 정도로 너무 못한다

거의 정형화 되어 있는 듯한 어색한 전라도 사투리들, 아마 타 지방 사람들은 억양의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 못 할 것이다

나 역시 경상도 사투리는 다 똑같게 들리니까

도대체 사투리를 웃음 코드로 내세운 영화에서 이렇게까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게 연기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나마 의자왕으로 나온 오지명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시트콤의 대가답게 자연스러운 대사 처리와 연기를 보여 줬다

나머지는 최악이었다

당나라의 소정방으로 나온 배우가 중국말 잘 한다 싶었더니 진짜 중국인이었다

그 두 사람 빼고는 정말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까메오로 출연한 김승우와 신현준은 유명한 배우들이 나와서 양념 역할 해 준 거니까 그런다 쳐도 계백 장군의 아내 역으로써, 비교적 중요한 배역을 맡은 김선아(뭐, 이것도 우정 출연이긴 하지만)의 어색한 사투리는 차마 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최소한 진짜 전라도 사투리를 며칠만이라도 이어폰 끼고 들었다면 그 정도로 형편없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단지 대사만 외우고 그 동안 자기가 알고 있는 정형화된, 전라도 지방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억양으로 연기한 게 틀림없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계백 장군의 말에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면서 명예욕의 허망함을 지적하는 대사는 날카로웠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은 정말 엉망이었다

사실 홍보할 때 그 기사를 읽고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었었다

촌철살인의 대사 한 마디에 영화 전체가 그렇다고 착각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어색하게 대사를 외우는지...

황산벌 전투도 진짜 어이없었다

코미디 영화라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제목이 황산벌인데 좀 신경 좀 써서 만들 일이지 어쩜 그렇게 성의없이 대충 세트 세워서 때울 수가 있는지...

전투신 진짜 애들 장난 같다

TV 드라마도 아니고 명색이 영화인데 화면 구성에 신경 좀 쓸 일이지, 진짜 사투리 하나 가지고 울거 먹으려고 작정을 했나

난 개그 콘서트  생활 사투리 코너의 영화판인 줄 알았다

어쩜 그런 식으로 무성의하게 사투리 하나에 의존해 시나리오를 썼는지 진짜 해도 너무한다

요즘 우리 관객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데, 기본이 안 됐다

백제 군사들이 사투리를 써 가면서 의자왕에게 보고하는 장면도 너무 억지스러워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그런 어색한 대사를 들으면서 어떻게 관객에게 웃으라고 할 수 있는지 뻔뻔하다

여태까지 신라 중심의 삼국 통일을 보는 시각을 비틀어 외세를 등에 업고 같은 민족을 쳤다는 식으로 보는 논리는 비교적 신선하다

나름대로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정치적 상황을 삼국 역사에 대입시키려고 노력도 하긴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큰 뜻을 세웠어도 세부 묘사가 부실하면 의미가 상실되는 것 아닌가?

영화야 말로 주제를 표현해 내는 섬세한 디테일이 요구되는 장르 아닌가?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의상이나 소품 하나 하나에 엄청난 정성을 쏟은 스캔들과 너무 비교된다

박중훈의 연기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코미디 연기의 달인 어쩌고 하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웃겼다고 하지만 그 역시 전라도 사투리에 대해 전혀 연구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혹시나 하고 박중훈에 기대를 걸어 봤는데 역시나였다

그나마 김유신으로 출연한 정진영의 표정 연기가 좀 나았다

그 역시 사투리 구사가 부자연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표정이나 눈빛 연기가 예사롭지 않은 큰 배움임은 확실하다

거시기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이문식의 연기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또 비교적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구사하긴 했지만, 솔직히 계백과 김유신의 대결이 중심축인 이 영화에서 양념으로 첨가됐어야 할 배역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해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이문식의 역할을 좀 줄여 지나가는 유쾌한 웃음 정도로 넘어갔음 더 좋았을 뻔 했다

아, 그 동안 역사의 뒷편에 가려져 있던 백제의 마지막 멸망을 좀 더 깊이있는 해학과 위트로써 처리할 수는 없었을까!!

그 동안 신라에 가려 소외되어 있던 백제를 중심으로 부각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수준이 낮은 코미디 소재로 전락시키고 말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영화가 흥행 1위를 달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에는 곧 뒷심이 딸릴 것 같다

정말 이 영화가 성공한다면 그건 100% 마케팅의 힘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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