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 [dts] - [할인행사], (2disc)
유하 감독, 이정진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나나가 새로 본 영화의 제목은 "말죽거리 잔혹사"

별 4개를 받았다는 소리에 기대를 아주 많이 하고 가서 봤는데 음, 글쎄...

78년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많이 공감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적이지 않은, 현실적인 결말에 점수를 많이 준 걸까?

역시 영화는 감독의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봤을 떄와 비슷한 느낌

권상우를 위한 영화라고 하는데 권상우만 특별히 두드러진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감독은 권상우를 앞에 세워 70년대 후반의 고등학교 시절을 얘기하고 싶었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그는 이 이야기의 대표 화자일 뿐 전적인 주인공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관객의 입장으로는 이정진 보다 권상우가 훨씬 멋지게 느껴지는데 영화 속에서의 권상우는 이정진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로 나온다

말하자면 이정진을 더 남자답고, 멋진 인물로 생각한다

그래서 권상우가 사랑하는 여자, 한가인의 선택을 받는다

한가인은 큰 눈이 매력적인 우아한 여고생으로 나온다

학교 다닐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예인이 됐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청초하고 예쁘다

그녀는 왜 비교적 모범생인 권상우 대신 자신과 너무 맞지 않은 이정진을 택했을까?

비오는 날 집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다가 나를 받아 달라고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는 그 카리스마에 반한 걸까?

내가 보기에 그녀는 동정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

이 남자를 내가 받아 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그 남자의 페이스에 말려 드는 것처럼 말이다

하긴 어린 시절 여자들은 종종 과격한 것이 멋있는 거라고 착각을 하곤 한다

학원 폭력을 미화하는 수많은 만화책에서 익히 느끼고 있는 것들이다

여자 뿐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특히 별다른 즐거움이나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은 학생 시절, 대학이 목표일 뿐인 고등학교 시절에는 더더욱 폭력을 대단시 한다

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싸움꾼들을 동경하고 멋있다고 착각한다

결국 학교를 나가서는 조직 폭력배로 빠지는데도 말이다

70년대 고등학교 시절을 보는 것은 나에게는 참 힘든 일이다

"친구"에서도 느낀 거지만, 학생들의 폭력은 차치하고서라도 교사들의 폭력을 편한 눈으로 지켜 본다는 건 정말 어렵다

왜 그 시대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그토록 폭력적이었을까?

지금도 그런 잔재가 남아 있지만, 매를 들어야만, 다시 말해 신체적 폭력을 가해야만 교육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교사로부터 폭언을 듣거나 폭력의 대상이 될 기회도 적을 뿐더러 대부분의 일은 눈 감고 넘어가 준다

언제나 깨지는 것은 학교 생활을 성실히 안 하는, 공부 못하고 싸움에 소질 있는 뒷줄 녀석들이다

이런 식으로 차별할 바에는 차라리 성적으로 학생을 뽑는 게 낫지 평준화는 왜 한단 말인가

교사는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르치고 있다

"유신"이라는 교육 이념이 선명하게 새겨진 교문을 보면서 교사들의 폭력 역시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군사 문화가 온 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70년대의 답답한 현실이 피부로 전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영화에서는 이정진이 멋진 남자로 묘사되는데 (여주인공의 사랑을 차지할 정도로) 전혀 멋지게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거칠고 미래에 대한 비젼도 없고 친구에 대한 우정도 없다

다만 깡이 세서 싸움을 잘할 뿐이다

대신 권상우는 잘 생긴 얼굴을 차치하고서라도, 멋진 성격을 가진 놈으로 나온다

반 동료가 무참하게 맞자 별로 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또 싸움에 자신이 없음에도 하지 말라고 말린다

두렵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 이게 용기 아닐까?

학교짱인 녀석이 시비를 걸자, 한가인을 잃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보내던 권상우는 복수를 다짐하며 싸움 기술을 연마한다

진정한 복수란 오랜 시간 동안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상우는 비록 쌍절권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다섯 명이 한꺼번에 덤비는 절대 불리한 상황에서 처절한 사투 끝에 승리한다

난 그 다음에 권상우가 학교짱에 등극할 줄 알았는데 왠 걸,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권상우를 퇴학시킨다

하긴 쌍절곤을 휘둘러 대며 그 정도 부상을 입혔으니 자칫하면 감옥에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검정 고시 학원으로 나온 권상우, 짧은 고교생 머리를 탈피하고 머리를 긴 모습에서, 통제와 폭력으로 가득한 학교를 탈출한 자유가 느껴졌다

버스에서 우연히 한가인을 만났을 때도 그는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지나간 옛 사랑에 대한 추억과 아쉬움 속에서 짧은 인사를 할 뿐이다

영화적 결말이라면 한가인을 데리고 가출한 이정진의 뒷 이야기라던가, 한가인이 권상우의 사랑을 받아 들인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권상우가 좋은 대학에 붙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식으로 결론을 낼 것 같은데 너무나 밋밋하게, 혹은 현실적으로 끝이 난다

집 나간 이정진의 소식은 들을 수 없고, 한가인은 집으로 돌아와 당연하게 재수를 하고, 권상우는 검정 고시를 준비하며, 둘은 시간 속에서 서로를 잊는다

2시간이라는 런닝 타임이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범하고 밋밋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과장 없이 그저 70년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모습들을 담백하게 그린 느낌이 든다

"잔혹사"라는 제목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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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5-01-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안소니보다는 테리우스같은 반항적이고 야성미를 좋아하는 여자들의 심리아닐까요? 왠지 감싸주고 싶은 모성본능도 더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