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사무라이
에드워드 즈윅 감독, 톰 크루즈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굉장히 감동적인 영화였다

간만에 멋진 영화를 건진 기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영화를 봤다

인디언들을 학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탐 크루즈의 갈팡질팡 하는 연기가 상당히 눈에 거슬렸다

일본으로 건너가 사무라이들에게 잡혀 포로 생활을 할 때도 선문답식의 대화도 마음에 안 들고 도대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가, 모호한 영화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그가 사무라이 정신을 이해하면서 나는 영화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난 이 영화의 주인공이 카츠모토라고 생각한다

평론에도 나왔지만 그는 사무라이이면서 불교도 같다

그에게는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키려는 결연한 사무라이의 정신과, 죽음을 기꺼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해탈한 듯한 불교도의 믿음이 함께 존재하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점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 놓는 그 놀라운 정신이었다

사무라이라고 하면 단순히 무사 집단이라고 배웠는데 그들에게도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무사도 정신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집단이 죽음을 불사하고 지키려는 정신이 있다면, 이미 그 집단은 함부로 폄훼하기 어려운 어떤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한 안타까운 몸부림에 눈물이 났다

특히 마지막 전투 씬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무사들에게 정부군이 속사포를 쏴 대자 적에게 가기도 전에 허망하게 쓰러지고 마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많이 울었다

정부군의 지휘관마저 눈시울을 붉히고 마침내 중지를 명령하는데, 카츠모토의 정적이었던 오마리는 겁에 질려 계속 대포를 쏘라고 외쳐댄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 장면인가!!

정적의 눈에는 사무라이들의 비장한 죽음이 전혀 들어 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죽음을 불사하고 덤벼드는 그들의 용맹함이 견딜 수 없는 공포로 작용했을 뿐이다

카츠모토가 천황을 만나 자신은 근대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나는 이것이 그의, 혹은 근대화에 반대해 죽음을 택한 사무라이들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구한말에 선비 정신을 지키기 위해 자결을 한 우리의 조상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순히 세태에 적응을 못한 것이라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카츠모토는 근대화를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영어를 공부하고, 적을 알기 위해 알그렌을 살려 둔 데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근대화를 빌미로 일본의 전통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을 안타까워 했고, 근대화를 외치는 세력들이 천황을 무력화 시킨 뒤 전횡을 일삼는 것에 분노했을 따름이다

그가 천황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천황의 질문에 당신은 신이다, 신은 신하에게 질문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정권을 농단하는 세력에게 휘둘리지 말고 뜻대로 하라고 말한다

그는 천황이 세력가들에게 좌지우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천황은 곧 신이다라고 생각하는 일본 특유의 군국주의적 정신이 드러나는 것 같지만, 옳든 그르든 그것이 그들의 신념이고, 목숨까지 던져 가면서 지키려고 했던 것이라면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제 목숨은 당신의 것이고,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거두어 가라고 한다

그의 신념이 잘못 됐든, 아니든 간에 천황, 곧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근대화를 빌미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그의 정적보다는 도덕적으로 훨씬 우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인간이란 영적이 존재라는 걸 새삼 느꼈다

본능대로 잘 먹고,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또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얼마든지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게 바로 인간이다

이것은 사무라이 집단에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나라 현대사를 보더라도 민주화를 외치며 스러져 간 투사들이나, 전향을 거부하고 수십 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견뎌내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들이 있다

좀 더 나가면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항일 투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신은 다를지라도 그 가치나 무게는 같다고 생각한다

인디언을 학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미국 군인 알그렌이 카츠모토의 사무라이 정신, 곧 그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지키려고 했던 그 신념에 감동하여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찾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 죽음의 전투로 용감히 나아가는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당신까지 죽을 필요는 없다고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카츠모토의 말에 알그렌은 더 이상의 내 삶은 덤일 뿐이라고 전투복을 입는 알그렌은 아마도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알그렌과 카츠모토 여동생 타가와의 로맨스도 인상적이었다

알그렌은 전투에서 타가의 남편을 죽인다

카츠모토가 알그렌을 그녀의 집에서 묵게 하자 처음에 그녀는 심한 치욕감을 느끼지만, 네 남편은 사무라이 정신에 따라 용감하게 죽었다는 오빠의 말을 묵묵히 따른다

또 알그렌이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자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인다면서 더 이상의 분노를 갖지 않는다

남편과 알그렌은 적으로 전쟁터에서 만났을 뿐이고,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죽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받아 들인 그녀 역시 사무라이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고 알그렌에게 복수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알그렌과 타가 사이에 로맨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부분은 깔끔하게 넘어 간다

딱 한 번 서로 포옹하고 가볍게 입맞춤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둘이 이불 위에서 나뒹구는 것 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알그렌이 사무라이들과 함께 죽음의 전쟁터로 나가기 전 날 그녀는 남편의 전투복을 입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 동안 그에 대한 사랑이 싹텄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그 보다는 자신의 집단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이방인에 대한 감동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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