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SE - (3disc) 일반판
강우석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무척 재밌게 본 영화다

일단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강우석은 확실히 역량있는 감독이다

공공의 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국 통일 외치면서 신파조로 흐르지도 않고 감정의 과장이 적어서 보기 편했다

영화를 보는 도중 가장 인상 깊었던 배역은 역시 안성기였다

어쩌면 이 영화는 안성기를 위한 영화인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경구는 극의 중심에서 절대 벗어나는 배우가 아닌데, 말하자면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역량있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안성기에게는 밀리는 듯 하다

캐릭터 자체도 설경구가 극의 중심이 되기에는 약한 편이었다

처음에는 조국 통일 외치면서 맹목적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 외치는 교관들이나 인간성이 말살된 특수 부대 요원들에 대한 비인간적이 처사에 스포트 라이트가 맞춰지면, 역시나 하는 신파조 영화에 불과하구나, 비웃어 줄 태세로 경계심을 풀지 않았는데 안성기가 윗사람들에게 실미도 부대원들의 신변에 대한 보호를 요구하는 장면에서 곧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꾸었다

군인이란, 혹은 권위란 저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의 경외심마저 생겼다

처음에 안성기가 부대원들을 혹독하게 교육시키는 모습에서는 그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만을 보았다

군인이란 복종하기 위한 존재이고, 권위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랫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상관에게 항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권위란, 혹은 지도자란 자신이 맡고 있는 아랫사람들의 신변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미도 부대원들의 사살 명령을 거부하는 안성기에게 중정 부장이 당신도 어차피 빨갱이에게 어머니를 잃은 복수를 하기 위해 시작한 일 아니었냐는 식으로 몰아 세우자 "군인의 임무에 개인적인 복수심을 개입시키는 일은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고 대답하는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군인 정신이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감동스러웠다

다 국가가 잘 되라고 하는 일이라는 말에 정치인은 정치를 잘 하면 되고, 군인은 나라를 열심히 지키면 저절로 국가는 잘 될 것이라고 대답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정치 군인이 사라져야 하는 당위성을 한 마디 말로 압축시켜 놓은 것 같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군인에 대한 이미지나 사회적 인지도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높지 않았을까?

국가를 위해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군인이라는 직업은 어찌 보면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숭고한 직업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회적 인식이 요즘 같은 까닭은 정치 군인들이 군인의 명예를 깍아 먹었기 떄문이 아니었을까?

난 안성기가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에 군인 같은 강하고 무거운 역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국민 배우라는 말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님을 실감했다

부당한 국가의 명령과 부대원들의 보호라는 대치 상황에서 고뇌하는 지휘관의 모습을 어쩜 그렇게 잘 표현을 하는지...

안성기도 그렇고 허준호도 극에서 부대원들에 대한 그 정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훈련을 시킨 것이라면 조금의 사심도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부대원들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허준호가 배를 타고 나갈 때 부대원들이 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 정도의 책임감을 가진 지도자와 함께라면 그 동안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극한의 훈련을 받은 세월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권위란 아랫사람들을 책임지고 보호하려는 투철한 사명감이 있을 때 비로소 세워지는 게 아닐까 싶다

안성기가 맡은 역이라 말로 진정한 군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배역도 바로 안성기라고 생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설경구에게 일부러 사살 정보를 흘린 뒤 자살하고 마는 그 비극적인 캐릭터가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옛날 야망의 전설에서 동생을 지키기 위해 결국 자신이 장렬하게 죽음의 길로 들어서 산화되어 간 유동근이 맡은 바로 그 이정우를 보는 기분이었다

부대원들을 혹독하게 다루던 허준호가 사실은 그들을 자기가 책임져야 할 부하들로 생각했던 반면, 나름대로 인간적으로 대했던 교관이 사살 명령이 내려지자 냉정하게 그 명령을 시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극한 상황을 통해서만 인간의 진심이 비로소 정확히 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경구가 어머니 사진을 들켜 허준호가 빼앗자 인간성 좋은 그 교관이 심한 처사 아니냐고 반발했을 때 안성기가 등장한다

난 안성기가 어떻게 해결을 할까 너무 궁금했다

설경구 편을 들어 사진을 돌려 줄 거라고 생각했다

안성기는 전반적으로 훈련병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친다

뜻밖에도 그는 설경구에게서 사진을 빼앗아 허준호에게 건넨다

당연히 허준호는 빡빡 찢어 버린다

안성기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있는 설경구에게 독방 처분을 내린 후 사라진다

거기에 복종하는 설경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권위란 바로 저런 게 아닐까 싶었다

허준호가 사진을 빼앗았더라면 분명히 설경구는 분노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안성기가 빼앗자 순순히 복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권위는 아랫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따르게 하는 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군기, 혹은 규칙이란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 엄격하게 지켜질 때 비로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느꼈다

엄격함이란 원칙을 가지고 모두에게 적용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

실미도 부대원들의 비극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동은 없었고, 안성기 역할에 감동을 받았다

확실히 난 영화를 보는 눈이 약간 독특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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