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FE - [할인행사]
박찬욱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오랫만에 괜찮은 영화를 한 편 봤다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최민식이 연기를 무지하게 잘 한다길래 기대가 컸는데 오히려 유지태가 인상적이었다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자신감으로 최민식을 가지고 노는 그 표정이나 말투가 압권이었다

하긴 15년씩이나 사람을 가두고 관찰했으니 과히 "오대수"학의 권위자라 할 만 하다

사설 감옥이라는 발상이 신선했다

누군가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십 수년간 가둬 버린다

이거야 말로 꽤 괜찮은 복수가 될 것 같다

한 번에 죽이는 건 시시하다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가 남편이 죽은 후 눈에 가시 같던 후궁 척부인을 응징할 때도 팔다리를 자르고 눈을 멀게 한 후 변소 밑바닥에 가두고서 인간 돼지로 양육했다고 한다

인간이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얼마나 잔인하게 다른 사람을 파괴시킬 수 있는지 리얼하게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했는데 사설 감옥도 이에 필적할 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단 번에 죽여주는 건 너무 시시하고 원한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무려 15년씩이나 가둬 놓고 그 안에서 미쳐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라니!!

더구나 그 15년 후 오대수를 내보낸 후 더 철저한 복수를 계획할 때의 그 짜릿한 즐거움!!

복수를 끝낸 이우진이 허망한 나머지 자살을 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친누나를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렸을 이우진은 모든 책임을 오대수에게 돌리고 그를 응징하는 재미로 살아 왔다

더구나 딸과 간통하게 만듬으로써 최고의 복수를 완벽하게 끝냈으니, 즉 오대수에게 합당한 죄값을 완전히 치루게 만들었으니, 이제 그는 무슨 낙으로 살 것이며, 누나를 죽였다는 죄의식을 어디서 속죄할 것인가?

속죄양이 이미 사라진 이상,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죄사함을 받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우진은 누나를 죽인 후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오대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후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하루 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즉 이우진은 누나를 죽인 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졌는데, 오직 오대수에 대한 복수심으로 겨우 겨우 살아 나갔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복수가 끝난 후 자살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한 인간에 대한 복수심이 무려 15년 씩이나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것도 이미 이우진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마지막에 이우진이 누르기만 하면 자신의 심장에 들어 있는 모터가 멈추게 하는 리모콘이 있다고 자살해 버린다고 협박하던 그 리모콘을 일부러 떨어뜨렸을 때 설마 저런 식으로 죽지는 않을텐데, 저렇게 죽으면 너무 시시한데, 아니길 바랬는데 역시 실망스럽지 않은 반전이 이어졌다

오대수가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그가 떨어뜨린 리모콘을 누르자 이우진의 심장이 멎기는 커녕, 왠걸 녹음기가 틀어지면서 자신과 딸이 정사 도중에 내지르던 교성이 온 방안을 진동했다

아, 이 얼마나 잔인하고 처절한 복수인지!!

괴로워 미쳐 버리는 오대수를 힐끗 비웃은 뒤 결국 모든 게 완벽하게 끝났다는 허탈함에 자신의 머리를 총으로 미련없이 쏘고 이우진은 자살한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다는 점에서 오대수가 최종적인 승리자인지도 모른다

딸과 간통했다는 사실을 딸이 알지 못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반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가위로 혀를 자르는 장면도 압권이었다

자신을 가둔 이유가 녹음된 테잎에서 흘러나온 말, "오대수는 말이 너무 많아" 그는 자신의 혀를 자름으로써 다시는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는 최고의 반성을 몸으로 실천해 보인 셈이다

오대수와 딸의 정사 장면도 너무 리얼해 일본 만화가 원작이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우리나라 같으면 친누나와 남동생, 혹은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을 이렇게까지 리얼하게 그려낼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혹 관념적으로 묘사하는 건 몰라도 아예 정사 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줄 정도의 대담함을 보면서 심의에 안 걸린 게 신기했다

사실 근친상간은 문학의 영원한 소재이기도 하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은 터부시되는 강도에 따라 비례하여 강해지는 법이다

남매간의 간통은 많이 봤는데 아버지와 딸의 간통, 그것도 강간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서 하는 정사 장면은 처음이었다

마지막에 미도가 사실은 딸이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그녀의 성장 과정이 담긴 앨범을 선물한 것도 대단한 전개였다

인간의 복수심이 얼마나 철저하고 잔인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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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1-2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만화에서는 딸과의 정사라는 내용이 없더군요.. 영화로 만들면서 더 들어간 냐용입니다.. 원작은 오히려 마무리가 넘 시시하고, 복수에 대한 당위성도 없어 '뭐 이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marine 2005-01-22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나중에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