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프랑스 미술 기행
이주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읽은 이주헌 책 중에서는 제일 별로였다
내가 너무 많이 읽어서 식상해진 건가?
아니면 루브르와 오르셰 같은 큰 미술관을 제외한, 프랑스 교외의 미술관에 한정되다 보니 덜 유명한 작품 위주로 국한되서 그런 걸까?
그림에 대한 설명이라기 보다는 기행문 느낌이 강하다
한가한 사람들은 이주헌처럼 한 지역을 정해 차분이 돌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처럼 늘 시간과 돈에 쫓기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프랑스 시골은 참 시원스럽다
기차를 타고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산이 안 보이는 곳이 없지만, 프랑스는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들판이 많아 차창 풍경이 참 시원시원 하다
유럽의 농업 강대국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고흐의 그림을 보면 특히 프랑스 시골의 널찍한 들판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사는 화가들과, 들이 넓은 프랑스에서 사는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풍경 자체가 워낙 다르니, 캔버스에 옮길 그림도 판이하게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웠던 점은 니스에 갔을 때 마티스 미술관이나 샤갈 미술관을 못 가 본 점이다
그 때만 해도 워낙 준비없이 떠난 여행이고 시간에 쫓겼으며 최성수기라 호텔이나 기차표 예약도 못해 허둥대느라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없었다
파리에서 니스 갈 때도 야간열차가 만석이라 어쩔 수 없이 낮에 TGV를 타고 갔다
덕분에 오르셰 미술관은 보지도 못했다
그나마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이라도 가 봤는데, 다른 팀은 예약이 꼬이는 바람에 파리 구경은 커녕 북역에서 며칠을 보냈다
니스에 도착해서도 여행사에서 예약해 준 것은 다음날 아침이라 야간 열차를 타고 아침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어야 하는데, 낮기차를 타고 하루 전 날 저녁에 도착하는 바람에 호텔에 들어 가지도 못하고 주차장에서 꼬박 날을 샜다
호텔 로비에서라도 있게 해 달라고 했더니 한국인 이미지가 얼마나 안 좋은지, 짐도 맡을 수 없다며 내일 체크인 할 시간에 오라고 쫓아 버렷다
덕분에 20명이 넘는 우리 팀은 근처 주차장에서 날을 샜다
다음 날 호텔에 체크인 하고서는 너무 피곤해 종일 자는 바람에 니스 해변가 밖에 못 봤다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샤갈 미술관도 가고 마티스 미술관이나 피카소 미술관까지 쫓아 다녔는데 그 때만 해도 샤갈이나 마티스는 미술책에서 이름 본 게 전부일 때라 니스 해변가에 누워 선탠하는 걸로 관광을 끝마쳤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쉽다
그림으로 백 번 보는 것보다 실제로 한 번 보는 게 훨씬 감동적인 법인데,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린 셈이다
이런 기행문을 보면서 대신 만족하는 수 밖에
파리에 갔을 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외롭거나 심심할 틈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분이 우울하고 혼자라고 느낄 때는 루브르 미술관이나 오르셰 미술관 등에 가서 눈요기를 하면 금방 행복해질 것 같다
불어만 잘 하면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는 느낌을 들 정도로 파리는 문화를 즐기는 도시 같다
이주헌은 프랑스 곳곳을 방문하면서 문화대국 프랑스의 진면목을 잘 보여 준다
지나치게 찬양적이지도 않고 감상도 절제하면서 그림 설명도 진지하게 곁들이는 그의 책은, 그래서 참 재밌고 부담스럽지 않다

라스코 동굴 벽화도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때인가?
라스코 동굴 벽화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번역책이었음) 관광객들 때문에 인류 문화의 보고가 훼손된다고 걱정하던 저자의 말이 생각난다
역시 90년대부터는 동굴을 폐쇄해 벽화를 보존한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는 라스코 2라는 인조 동굴을 만들어 당시 사람들이 쓴 재료와 기법으로 똑같이 재현했는데 5mm의 차이 밖에 안 날 정도로 정교하다고 한다
이주헌은 벽화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한다
단순히 동물을 많이 잡게 해 달라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의 종족이듯, 동물들도 이웃 종족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자기들과 같은 인간 부족, 말 부족, 황소 부족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사냥 전 사기 충전을 위한 의식이 아니라 보다 고차원적인 종교 활동이 있었으리라 본다
그림들도 참 놀랍고 캐리커쳐처럼 대상의 특징을 잘 잡아낸다
색깔까지 이용해 채색을 한 걸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의 예술적 재능이란 이처럼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중요한 특성인 것 같다

오베르에서 고흐는 겨우 70일을 살았을 뿐이지만, 지금 그가 머무르던 곳은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테오가 회사에서 나와 독립한다는 말을 듣고 고흐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고 한다
회사를 나오면 당연히 테오의 재정 상태가 흔들릴테고, 테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고흐의 삶도 흔들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동생더러 언제까지 돈을 대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는 고흐의 가엾은 처지가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 들어 눈물이 살짝 났다
그런데 형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산 테오도 대단하지만, 그의 아내 조도 굉장한 여자 같다
조는 고흐에게 편지를 보내 아주버님의 경제적 지원은 계속 될 거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나중에 테오가 형 죽은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고흐의 그림값이 치솟으면서 조와 그녀의 아들에게 큰 도움을 됐다고 하니, 그녀의 예술적 안목도 상당했을 것 같다
평범한 여자 같으면 형을 부양하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기 쉽상인데 말이다
조는 테오에게 보낸 700통이 넘는 고흐의 편지들을 꼼꼼하게 시대별로 정리하면서 고흐 연구에 큰 도움을 줬다
오베르의 넓다란 밀밭을 보면 죽기 직전에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 이 보다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이 끝없는 지평선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베르의 교회도 고흐 식으로 해석하면 단순한 교회가 아닌, 느낌을 지는 생명체로 다가온다
그림과 실제 풍경을 담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예술 작품이란 늘 현실보다 더 높은 존재 같다

프랑스 여행을 계획한 사람이라면 이주헌의 기행문을 들고 따라가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물론 루브르나 오르셰 등을 먼저 방문해 어느 정도 미적 욕구를 채운 후 주변을 둘려봐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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